120화. Know Your Enemy (5)
“이게 정말 그렇게 비싼 것 맞나?”
오크 총잡이 잭 린든은 조막만 한 유리 케이스에 보관된 ‘님로드 스톤’을 뚫어져라 살폈다.
“보기엔 그냥 퍼런 돌멩이 같은데.”
“화, 확실함니다. 오마르는 감정사 자격증까지 잇슴니다. 그거 님로드 스톤 맞슴니다…….”
“어쨌든 마석이란 얘기 아닌가? 보통 마석은 빨간색일 텐데, 이건 왜 이리 시퍼런 색인 거야?”
“니, 님로드 스톤은 그, 일반 마석과 다르게 자체적으로 마나 색채를 발현하기 때문임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발견한 이건 청색 마력을 함유하고 잇는 검니다…….”
투명 유리 안쪽에 있는 조약돌 크기의 마석은 인공적으로 보일 만큼이나 진한 푸른색을 띠었다.
전투 보조원 오마르가 케이스에 손을 가져다 대자, 마석이 덜덜 떨리며 약하게 진동했다.
“마석 중에서도 특품인 것들은 외부의 마나에 반응해 공명을 함니다. 님로드 스톤은 이러케…….”
그는 얼굴 표정을 한껏 찌푸리면서, 손끝으로 아주 작은 줄기의 노란색 마나를 한 가닥 뿜었다.
그러자,
푸샤아아악―!
마석에 닿은 조그마한 불꽃이 한순간 토네이도처럼 거세게 휘날리며 주변 공간을 에워쌌다.
단순한 마나 불꽃이었기에 아무런 영향은 없었다. 허나 출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은 분명했다.
“이, 이러케, 접한 마나의 질과 양을 늘려주는 특성을 가지고 잇슴니다…….”
“<강화> 마법이라도 쓴 것 같구만.”
“우리가 찾은 님로드 스톤은 파란색이니까, 청색 마력 보유자와의 상성이 엄청 조을 검니다…….”
과연, 마법사들이 환장할 만한 물건이었다.
증강계 파워스톤은 언제라도 부르는 게 값이었다. 하물며 마나 수련 없이도 이 정도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면 그 누가 지갑 여는 것을 망설이리오.
“쉽게 말해 우린 대박 난 거야.”
그 무렵 총기 관리인 벅스가 헤실거리는 얼굴로 나타났다. 그녀는 님로드 스톤의 최초 발견자였다.
“이게 요새 프리미엄이 붙어서, 암시장 경매에서 시작가가 1억 달러부터 출발한다 하더라고.”
“뭣이, 1억……?!”
“그래. 여덟 명이서 나눠도 최소 1,000만 달러씩은 먹을 수 있어. 못해도 백만장자는 된다는 거지.”
꿀꺽―.
잭 린든은 침을 삼켰다.
천만.
그것은 이 자리에 모인 그들에게 있어, 일개 용병에게 있어서는 실로 까마득한 액수였다.
시온 퀘스트의 보수는 기본급 10만 달러.
그리고 작업 성과에 따라 개인별 최대 50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이 추가로 지급됐다.
결코 적은 돈은 아니라지만…….
눈앞의 돌멩이는 그 이상이었다. 그야말로 한 방에 인생 역전까지도 가능케 해줄 무가지보였다.
“이거, 우리가 챙겨도 되는 건 맞지……?”
“뭐, 매뉴얼상으론 작업 중 습득한 귀중품들은 기관 회수 품목 대상이긴 한데, 펩이 그렇게 융통성 없는 녀석은 아니거든. 리더 재량하에 대충 눈감아줄 테니 어렵지 않게 빼돌릴 수 있을 거야. 작업 의욕 장려 때문에 기관 쪽에서도 암묵적으로 허용하고 있다나 뭐라나. 암튼 그러니 걱정 마셔.”
잭 린든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1,000만 달러라니, 그렇게나 큰돈을 만진 경험은 그의 생애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 그 돈이라면 평소에 눈독만 들였었던 온갖 값비싼 장비들을 원 없이 사 버릴 수도 있었다.
아니지. 그럴 필요가 어디 있나? 가진 돈이 천만이다! 당장 용병 생활을 은퇴한다 하더라도 평생 놀고먹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돈이지 않은가!
“듣자 하니 참 좋은 소식이네그려.”
행복한 상상에 빠져 있는 오크의 등 뒤로―
백발의 늙은 칼잡이가 기척도 없이 다가왔다.
“거기 그 돌멩이가 얼마라고?”
도그아이드 킴은 님로드 스톤을 사이에 두고 왁자지껄 떠들고 있던 동료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봐들. 얼마냐고 묻고 있잖나.”
“……1억일세. 아니, 경매 시작가가 그 정도고, 아마 그것보다는 더 받을 수 있다는 모양이더군.”
“어이구야. 봉 잡았네, 봉 잡았어. 킥킥.”
백발의 노인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방정맞은 웃음소리를 내며 실컷 좋아라 했다. 그 모습은 어쩐지 좋아하는 시늉을 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근데, 아까 오크 형씨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작업 도중에 사망자가 나오면, 죽은 녀석 몫의 보수는 남은 사람들끼리 갈라먹을 수 있다고?”
“……어어. 그랬었지.”
“그러면 말이야.”
도그아이드 킴이 말했다.
“예를 들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나 빼고 다 죽으면…… 그 돌멩이는 내 차지가 되는 거겠지?”
정적.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농담이야. 농담.”
“…….”
도그아이드 킴은 혀를 내민 채 경박하게 웃고는 자기 허리에 매단 칼집의 줄을 고쳐 묶었다.
그의 ‘농담’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긴장해 있었다. 저 늙은 사내가 검이 아닌 검으로 괴수들을 때려죽이는 장면들을 직접 목격했기에.
납상참納狀斬.
벤다는 의미의 ‘참’이 들어간 그 검법은 모순적이게도 베는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행위였다.
칼집에 꽂힌 칼을 휘둘러 봤자 그것은 그저 후려 패는 것에 불과했다. 베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그럼에도.
목격자들은 똑똑히 보았다.
칼집에 꽂힌 칼이,
괴수들을 베는 광경을―.
달인의 경지에 다다른 칼잡이는 검성Kensei이라 불린다. 자신의 손에 지닌 무기와 혼연일체가 되어, 마나와는 또 다른 종류의 기묘한 파괴력이 담긴 에너지, 검기Kenki를 발산할 수 있는 자를 뜻한다.
그는 칼을 살짝 휘두른 것으로,
수십 체의 괴수를 일도양단했다.
허나 전투 중에 검기를 쓰는 것은 한두 번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그저 심심풀이 삼아 칼집째로 때려죽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졸린 듯이 하품을 했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본 이들은 알고 있었다.
도그아이드 킴이란 작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파티 전원이 몰살당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란 것을.
“유클리드 씨와 연락을 마쳤습니다.”
그즈음.
파티 리더인 펩이 무전기를 들고 나타났다.
“저쪽도 순조롭게 진행 중인 듯합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4시간 안에 플랜트에 도달하겠더군요.”
“…….”
“작전 계획에 맞추려면 이쪽에서 콜로니 파괴를 빠르게 끝마쳐야 합니다. 서두르도록 하죠.”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가 차츰 풀어졌다.
어쨌거나 지금 그들의 적은 괴수였다. 캠프로 무사히 돌아가기 전까지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자, 일하러 갑시다.”
***
B루트의 최종 능선.
메인 플랜트 앞에 도착했다.
올림픽 경기장을 통째로 뒤덮은 새까만 오염체.
살아 있는 심장처럼 두근거리며 고동하는 거대한 종양 덩어리가 외벽에 득실득실 붙어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의외로 쉬웠으나,
마지막은 역시나 제법 고난도로 보였다.
“살벌하네.”
C급 변이종 오르토스와 가고일 무리.
거기에 B급 변이종 기가스 키메라까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엄청난 숫자의 괴수들은 저만치에 떨어진 나를 발견하고는 아이돌 콘서트를 보러 온 열성 팬마냥 꽥꽥 소리를 내질렀다.
그런 다음 미친 듯이 내게 달려들었다.
화끈한 팬 서비스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좋아.”
일단, 지금의 내 능력이라면 저 정도 괴수들은 큰 문제 없이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증명했다.
슬슬 다른 테스트를 해볼 시간이다.
나는 더플백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철컥, 퉁―.
하인라인 MP5의 장전 손잡이를 내리쳤다.
대괴수용으로 어레인지한 독일제 기관단총.
마법사가 총을 쓰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일반적으로 마탄 위주의 사격술을 사용하는 직업은 마총사, 즉 매직거너Magic Gunner라는 시티헌터 계열의 클래스로 분류된다.
마탄은 <물리 관통 술식> 같은 사격술 전용 마법을 총탄에 깃들게 한 것이다.
비단 마총사가 아니더라도 자주 써먹는 방식이지만, 총을 쓰는 마법사라고 하면 대개 마탄 사격에 능한 놈들을 뜻한다.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다.
마탄을 쓰려면 총탄에 마력을 온전히 깃들게 해야 하는데, 자색 마력은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
고로,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강화>.”
내가 택한 방식은 총기 그 자체를 <강화>.
<기능 강화>의 영향을 받은 총은 연사력이 대폭 증가한다. 동시에 발사될 때마다 탄약에 든 화약의 폭발력을 더해, 한층 강력해진 사격을 구사.
투타타타타타타탕―!!
100발들이 확장 탄창에 힘입어, 기관단총 한 정만으로 중기관총에 육박하는 파워를 낼 수 있다.
나는 <강화>된 신체로 빌딩 숲 사이를 날듯이 뛰어다니며 괴수들에게 계속해서 총을 발사했다.
높은 공격력을 유지하면서도 이런 기민한 움직임이 가능하다는 건 특히나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틱―.
방아쇠를 당기고 있던 중, 탄이 걸리고 말았다.
“쯧.”
연습할 때도 잼 현상이 잦았다.
아무리 연사력이 늘어 봤자 총알이 걸려 가지고 낑낑대느라 시간을 소모해 버리면 말짱 꽝 아닌가.
나는 혀를 찬 다음 총을 바닥에 휙 버렸다.
어깨에 멘 더플백에서 대신 다른 걸 꺼냈다.
이번에는 칼이었다.
슐츠 Superior-B ″바스타드 블레이드″. 한 손으로 휘두를 수 있는 가볍고 정석적인 브로드소드.
칼을 강화해서 싸우는 건 딱히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나는 그리 훌륭한 검사가 아닌 데다, 그럴 바에야 그냥 마법을 쓰는 편이 효율이 훨씬 좋았다.
내가 <강화>를 부여한 것은,
칼에 인챈트시킨 마법 쪽이다.
“<페이탈 볼텍스>.”
칼끝에서부터 날카로운 송곳들이 번개처럼 뿜어져 나와, 달려들어오는 괴수들을 산산조각 냈다.
이미 깃들어 있는 마법을 <강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참고로 인챈트는 비너스가 해줬다.
다만…… 일회용이라는 거.
마법을 소모하고 나서는 몇 번 휘둘러보다가 역시나 바닥에 던져 버렸다. 이것도 무쓸모인가.
“쯔읏.”
결국,
원점으로 회귀한다.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마법.
“<폭렬파>.”
앞서 시험해 보았던 총질이나 칼질이 무색할 정도로, 괴수들은 한방에 시원하게도 날아갔다.
….
….
어째 좀 걱정이 되었다.
<부름>을 쓰기 싫어서 시작한 훈련인데, 이러다 <폭렬파> 원툴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이후는 아무런 문제 없이 진행했다.
괴수 한 마리 남지 않은 경기장 안쪽, 메인 플랜트의 심장부를 파괴하고서, 곧장 무전을 걸었다.
“여기는 유클리드. 플랜트를 파괴했다.”
「이쪽도 콜로니 공략 완료했습니다.」
무전을 마치고 캠프로 복귀했다.
정화 작업을 개시한 지 8시간 17분.
역대 최단 시간 기록을 세우며,
우리는 플랜트 공략에 성공했다.
***
사건은 그날 밤에 일어났다.
저녁, 캠프로 돌아온 우리는 작업 완료와 전원 생존을 축하하며 한바탕 술판을 벌였다.
거하게 취한 사람들은 밤새 술을 마셨고, 나머지는 각자 자기 시간을 가지다가 천막으로 들어갔다. 나 또한 그날은 피곤에 못 이겨 일찍 잠을 청했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새벽.
베이스캠프 뒷마당에서,
동료의 시체가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