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19화 (119/201)

119화. Know Your Enemy (4)

흠칫―.

그는 내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따로 움직이겠다고요……?”

“그쪽이 허락해 준다면야.”

펩은 사뭇 곤란하다는 기색을 내보였으나, 그런 와중에도 제안을 완전히 무시하려 들지는 않았다.

“……이름이, 유클리드라고 했던가요? 혹시 이전에 시온 퀘스트에 참가한 경험은 있습니까?”

“아니. 오늘이 처음이야.”

“그렇다면 이 얘기는 논외입니다. 여긴 시온이에요. 죽음의 땅이죠. 내로라하는 베테랑들도 픽픽 죽어 나가는 마당에, 경력도 없는 초심자에게 무턱대고 단독 행동을 허가할 수는 없어요.”

리더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는 캠프의 총책임자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작전 기간 동안 사상자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이었기에.

“즉, 위험하니까 안 된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설득력이 필요했다.

“그럼 더더욱 내 말대로 해야 해.”

“……어째서죠?”

“파티를 나누는 편이 더 안전하니까.”

나는 더플백 안에서 완드를 꺼냈다.

한 손에 든 나무 지팡이로 바닥의 흙을 찍고 슥슥 선을 그어, 던전의 간략한 지도를 그렸다.

“목표물인 Z번대 구역의 메인 플랜트가 있는 지점 주변의 탐색 루트는 총 세 갈래야. 괴수 생산 시설인 콜로니가 위치한 A루트, 지상의 마천루를 통과하는 B루트, 그리고 지하철 터널로 연결된 C루트.”

“…….”

“그쪽이 세운 작전은 아마 A루트에 먼저 들러서 콜로니를 파괴해 괴수들의 후속을 없애고, 이후 지상에 비해 안전한 지하 쪽 C루트로 플랜트까지 향하는 길을 찾아내 공략할 셈이겠지.”

리더인 펩은 물론이요, 뒤에서 듣고 있던 기존 캠프 멤버들 전원이 내가 한 말에 움찔했다.

“그걸 어떻게……?”

“예습을 좀 해 왔거든.”

게임에서 시온의 맵 구조는 매 퀘스트 때마다 랜덤으로 형성되지만, 던전의 기본적인 디자인은 항상 비슷하다. 레이드 계획을 컴퓨터에게 맡기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역시 불 보듯 뻔한 이야기.

“계획 자체는 정석이긴 하지만 템포가 너무 느려. 신속하게 임무를 완수하기는 어렵지. 소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변수가 늘게 돼. 신중하게 움직이려 할수록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는 얘기야.”

“파티를 나누자는 이유가 그것 때문인가요?”

“뭉텅이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인력을 분산해서 동시에 여러 루트를 뚫는 편이 더 효율적이잖아. 팀을 나누는 것만으로 메인 플랜트 파괴까지 걸리는 시간을 절반 이하로 단축할 수 있어.”

나는 바닥에 그린 지도를 완드로 치며 말했다.

“일단 한쪽 루트로 들어가면 침입자로부터 플랜트를 보호하기 위해 괴수들이 그쪽으로 몰릴 테니, 다른 루트의 방어가 상대적으로 빈약해질 거야.”

지하 터널을 지나가는 C루트는 길이 복잡하고 오염체가 많아 통행에 시간이 걸린다. 지형도 비좁은지라 고출력의 마법을 사용하기도 꺼려진다.

단시간 내에 빠르게 공략하려면,

C루트보다는 B루트로 가야 한다.

“내가 먼저 지상 B루트 쪽으로 진입할게. 나머지 팀원들을 데리고 A루트의 콜로니를 공략해 줘.”

“……정말로 당신 혼자서 괜찮겠습니까?”

“이 친구 실력은 내가 보증하지.”

그때쯤, 호시탐탐 나설 기회를 엿보고 있던 잭 린든이 옳다구나 하고 대화 중간에 끼어들었다.

“같이 여러 번 일해 봤는데, 되도 않는 허세를 부리는 타입은 절대로 아냐.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분명 할 수 있는 거겠지.”

“…….”

“최악의 경우라도 자기 혼자 죽는 정도 아닌가. 그렇게 되면 이 친구 몫의 성과급은 남은 사람들끼리 낼름 먹을 수 있다고. 어때, 군침 돌지 않나?”

잭 린든은 사람들을 돌아보며 은근하게 유혹하듯이 말했다. 용병이라면 필히 귀가 쫑긋해질 만한 이야기. 과연 혓바닥 놀리는 기술이 제법이군.

“난 상관없어. 저놈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지가 알아서 어그로 끌어준다면야 땡큐지.”

“오, 오마르도, 반대는 안 함니다…….”

기존 캠프 멤버 두 사람은 내가 내세운 제안에 소극적으로 찬성의 뜻을 밝혔다.

폴란드인 듀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그아이드 킴은 관심 없는 듯 귓구멍을 파고 있었다.

“……후.”

결정을 내리는 것은 리더의 몫이었다.

곱슬머리 펩은 짤막하게 혀를 찼다가, 이내 깊이 숨을 내쉬며 고개를 천천히 끄떡댔다.

“……알겠습니다. 단독 행동을 허가하죠.”

그가 뱉은 한숨에는 부디 서로가 후회하지 않게 해 달라는 진심 어린 전언이 담겨 있었다.

***

오전 7시.

영원히 저물지 않는 핏빛 홍연으로 물든 하늘이 아주 잠시 푸름을 되찾는 순간, 그 찰나의 휘광을 만끽할 수 있는 때가 바로 이 시온의 아침이다.

새벽녘보다 더욱 선명해진 거리에는 ‘위험’이라 쓰인 표지판들이 병적으로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남극 얼음 위에다 굳이 ‘추움’이란 안내문을 꽂아둔 것처럼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정화 작업을 위해 파티가 출발한 지 30여 분.

도심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우리는 멈춰 섰다.

“이 앞부터는 미정화 구역입니다.”

리더인 펩이 조금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장비 상태를 점검하세요. 대열은 전위 3명과 후위 4명. 우리 팀은 콜로니로, 그리고…… 유클리드 씨는 메인 플랜트 방면에 단독으로 침투합니다.”

여전히 석연치 않은 듯한 어조였다.

그의 의심을 지우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멀쩡히 살아서 8시간 뒤에 체크포인트에서 만나는 것.

“그럼, 출발하죠.”

나를 제외한 파티 7인은 A루트에 진입했다.

원래는 내가 먼저 B루트에 진입하여 A루트의 방어를 느슨하게 만드는 것이 본 계획이었지만, 리더의 똥고집 탓에 내 순번은 뒤쪽으로 밀려났다.

“죽지 마십시오.”

“당신들도.”

7인 파티가 출발한 뒤, 10분가량의 텀을 두고서 나 또한 슬슬 작전 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운하의 다리를 건너 마천루 지대에 들어섰다. 어디선가 까마귀 우는 소리 같은 게 들렸다.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빌딩들 사이를 유유히 걸었다.

스아아아아―.

정면에서부터 메마른 바람이 불어왔다.

불길한 내음이 가득했다. 죽음의 냄새였다.

나는 더플백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거리에 기분 나쁜 기척이 감돌기 시작했다.

잘그락거리는 소음과 함께,

곧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키샤아아아아아악……!」

동물형 괴수. C급 변이종 오르토스.

철갑 피부와 맹독 발톱을 가진 괴물 들개.

풍뎅이처럼 번쩍거리는 피갑을 두른 그 덩치 큰 괴수들은 족히 50마리는 넘을 듯 보였다.

끔찍하게 뒤틀린 턱뼈와 송곳니 사이로 녹색 침을 질질 흘려 대며, 놈들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앞뿐만이 아니라 뒤에도 있었다.

어느새 6차선 도로를 가득 채워, 이 넓은 길목을 미친 개떼의 퍼레이드 무대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흠.”

초장부터 이 정도 물량인가.

역시 생존율 50%의 던전답군.

사실 오르토스 개개의 전투력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레벨로 치면 20도 못 넘기는 수준이니까.

그러나 실전에서는, 보다시피 이 무지막지한 개체 수가 문제가 된다.

일반 소총탄을 거진 십여 발은 욱여넣어야 간신히 제압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놈이 반백 마리씩 몰려다니는 것이 예사.

게다가 시에라시티의 용병들은 클래스를 불문하고 하나같이 대인전에만 특화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상시에 벌이는 싸움이래 봤자 결국 사람끼리 치고받는 게 전부이기 때문에, 괴수를 상대로 하는 싸움법에는 아무래도 익숙하지 못한 것이다.

시온 퀘스트의 생존율이 터무니없이 낮은 것은 바로 그 때문.

세간에 소문난 강자라 할지라도, 고작 멍멍이 몇 마리에 맥을 못 추고 당하다가 결국에는 개껌 신세가 되어 버리는 것이 여기서는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는 남 얘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여기 있는 녀석들도 꽤나 진심으로 간식을 원해 보였다.

시온의 괴수들은 마법사를 좋아한다. 에테르의 독성에 찌든 변이종에게 있어 마법사 체내의 마나는 꽉 막힌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사이다나 다름없었다.

「캬아아아아악―!!」

숨구멍까지 차오른 식욕을 도저히 참지 못했는지, 무리의 앞에 있던 한 녀석이 내게 달려들었다.

녀석의 돌진이 신호가 되어 주변에 있던 십여 마리의 오르토스들이 따라 괴성을 지르며 날아왔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

마법사가 할 수 있는 대처는 그리 많지 않다.

필요한 것은 복잡한 술식 계산이나 마법진 연성 따위가 요구되지 않는 단순한 파괴 마법.

쉴 틈 없이 밀려오는 적들을 일일이 요격할 수 있는 지구력과, 그에 비례하는 폭발적인 출력.

말하자면―

“<폭렬파>.”

나는 이런 상황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강한 마법사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거센 폭음이 울려 퍼졌다.

고온·고압의 충격파에 오르토스 무리는 전자레인지 속 팝콘처럼 터지며 하늘로 튕겨져 나갔다.

만약 달려든 상대가 사람이었다면, 방금 전의 일격으로 나머지 잔당들이 확 굳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괴수였다.

괴수는 감정이 없고 지능이 매우 낮다. 말도 안 되게 강력한 출력의 <폭렬파>가 눈앞에서 터졌음에도, 괴수들은 그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달려든다. 먹이를 향한 돌진을 멈추지 않는다.

“끝이 없구만.”

아직 사방에 괴수가 널려 있다.

물론 내 마나는 더없이 충분하다.

***

솔로 플레이는 생각보다도 훨씬 수월했다.

괴수 무리를 서너 번 마주쳤지만 체크포인트 장소까지 크게 힘들이지 않고 통과했다. 어쩌면 나는 이런 몬스터 사냥 쪽이 적성에 맞는 걸지도.

체크포인트는 B루트의 ⅔ 지점.

전파 방해가 약한 구역에서 무전기로 주파수를 대역을 검색해 파티와의 통신을 시도했다.

“아아. 여기는 유클리드. 통신 상태 확인 바람.”

아직 저쪽은 체크포인트까지 채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란 내 예상과는 다르게도.

「아. 아.」

「연결 상태 양호.」

「살아 있었군요. 다행입니다.」

무전을 날리자마자, 곧바로 답신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저쪽 그룹이 나보다도 먼저 체크포인트 장소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그쪽 상황은 어때?”

「전원 생존입니다. 다친 사람도 없고요.」

“뭐 그렇겠지.”

파티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이 없었다.

무엇보다 저쪽 그룹에는 세계관 최강의 칼잡이 중 한 명인 도그아이드 킴이 있었으니까. 시온의 잡몹 변이종 따위는 그에게 상대도 되지 않겠지.

“별다른 사항 없으면 계속 진행할게.”

「아, 잠시만요. 알려줘야 할 게 있습니다.」

나는 무전기 너머로 물음표를 날렸다. 리더의 말투로 보아 딱히 심각한 이야기 같지는 않았다.

「실은 방금 전 웨이브에서 추가 보수 지급 대상인 희귀 물품을 하나 습득했습니다.」

“그래? 뭘 찾았는데?”

말인즉슨 레어 아이템을 주웠다는 얘기.

시온에는 주인을 찾지 못한 귀중품들이 여기저기 버려져 있기 때문에, 괴수 뱃속에서 보석을 발견했다거나 하는 그런 것도 뭐 가끔씩 있는 일이다.

다만―

「님로드 스톤이요.」

그 주웠다는 물건이 설마,

3억 달러짜리일 줄은 몰랐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