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Know Your Enemy (3)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웅장하게 귀에 때려 박히는 동안, 수송 헬기까지 안내하는 군인은 우리가 들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말했다.
“Z3 구역의 베이스캠프까지 여러분을 모실 겁니다. 현재 시각은 오전 2시 34분이며, 6분 뒤에 출발합니다. 도착 예정 시간은 오전 6시입니다.”
시온은 게이트 오픈 이후 도시 출입구가 완전히 봉쇄되어 민간인은 드나들 수 없다.
기관에서 정화를 위한 인력을 투입할 때는 일반적으로 육로보다 안전한 하늘길을 이용한다.
공중은 지상에 비해 괴수의 위협이 적은 편이고, 신경 써야 할 것은 농축된 에테르 부유체뿐.
열권에 위치한 인공위성에서 마나 펄스를 쏘아 에테르를 일시적으로 제거함으로써 하늘길을 연다. 그 짤막한 틈을 타 헬기가 왕복하는 것이다.
“이틀 뒤인 일요일 오후 2시에 여러분을 복귀시킬 헬리콥터가 베이스캠프로 올 겁니다.”
시온 안에서는 외부와의 연락이 불가능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전파 차단 현상 때문이다.
한때는 직접적으로 전화선을 연결하여 통신하는 방식을 썼지만 유지 보수가 곤란하여 폐기.
공기 중에 함유된 고농도의 에테르 탓에 마법을 활용한 중세식 통신에도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다.
즉,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바깥으로는 알릴 방법이 전무하다.
“이번 임무에 관한 자세한 브리핑은 베이스캠프의 작전 책임자로부터 받으시면 됩니다.”
“갔더니 그 친구가 죽어 있으면요?”
군인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얼을 타거나 한 게 아니라, 순수하게 씁쓸해하는 반응이었다.
“사전에 의뢰서와 함께 첨부해 드린 매뉴얼을 참고하세요. 인수인계에 대해서도 쓰여 있을 겁니다.”
“…….”
“살아서 봅시다.”
군인의 마지막 한마디는 얼핏 사무적으로 들리기도 했으나, 내게는 약간이나마 진심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수송 헬기에 올라탔다.
헬기 내부는 기름 냄새가 상당히 심했다. 탑승한 인원은 나와 잭 린든을 제외하고 세 명 더 있었다.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백발의 늙은 동양인과,
쌍둥이처럼 비슷하게 생긴 대머리 백인 한 쌍.
「출발하겠습니다.」
화물칸 측면의 시트에 앉아 소음 차단 헤드셋을 착용하자 조종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센 진동이 느껴짐과 동시에 둔중한 치누크의 몸체가 하늘로 둥실 떠올랐다.
투투투투투투―!
오전 2시 40분.
헬기가 이륙했다.
반대편의 둥근 유리창 너머로 컴컴한 창밖을 보았다. 내 옆에 앉은 잭 린든은 자기 머리 크기에 맞지 않은 헤드셋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닌 듯했다.
“이봐, 카이트.”
툭, 툭―.
헤드셋을 벗은 그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뭔가 말하고 있었는데, 노이즈 캔슬링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결국 나도 헤드셋을 벗어야 했다.
“왜?”
“저치들 좀 보라고.”
잭 린든은 저편 시트에 앉은 백인들을 가리켰다. 똑같은 스킨헤드에 똑같은 야상점퍼 차림. 분위기도 생김새도 매우 흡사하게 생긴 놈들이었다.
“저 녀석들, 폴란드인이야.”
시끄러운 프로펠러와 엔진 소음 탓에 대화하는 소리는 나란히 앉은 우리끼리만 들을 수 있었다.
“들어는 봤겠지. 작년 겨울에 자살 폭탄 신공으로 레드 마피아 보스를 살해하고 자기들은 멀쩡히 살아남았다는 전설의 미치광이 테러범 2인조.”
“그게 저 대머리 쌍둥이라고?”
“아니. 소문으론 쌍둥이 같은 것도 아니고, 완전 남남이래. 도플갱어처럼 소름 돋게 닮았을 뿐이지.”
도플갱어라는 단어에 왠지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어쨌거나 실제로도 저렇게 기분 나쁠 정도로 서로 닮은 사람이 존재하기는 하는 모양이다.
“특수부대 출신의 폭발물 전문가인데다 테러까지 벌일 정도로 정신 상태까지 헤까닥인 놈들이야.”
“괴수 사냥엔 딱인 인재들이군.”
“이 바닥서 꽤 오래 활동했는데도 저 친구들 이름이 뭔지는 아무도 몰라. 딱히 별명 같은 것도 없고. 그래서 다들 그냥 폴란드인이라고 부르지.”
“그렇구만.”
“구석에 있는 저 늙은이는 얼굴만 봐선 짐작이 잘 안 가는데, 혹시 자네는 아는가?”
나는 가장자리에 앉은 노인을 보았다.
“흠.”
무협지에서 튀어나온 듯한 거추장스러운 도복 차림에, 빗자루마냥 길게 늘어진 하얀 장발.
그리고, 쿨쿨 자고 있는 마당에도 결코 손에서 떼어 놓지 않은― 한 자루의 거대한 태도太刀.
“누군지 알 것도 같네.”
시온 퀘스트에 참가할 정도로 강자이면서, 저런 특이한 복장을 한 칼잡이는 그야 한 명밖에 없지.
“도그아이드 킴.”
속칭 개눈깔 김씨.
배드 피플 50 리스트에서 항상 랭킹 상위권을 차지하는, 시에라시티의 대표적인 네임드 빌런.
“뭐, 뭣?! 저 말라빠진 노친네가……!?”
뒷골목에 무성한 괴소문들에 비해 도그아이드 킴의 실제 모습은 상당히 얌전한 편이었으니, 잭 린든이 그를 몰라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째서 시온에 가는 거지? 도그아이드 킴은 용병 일 따위는 거들떠도 안 본다고 들었는데…….”
“돈 때문이거나, 아니면 면책 특권을 노린 거겠지. 기관이랑 친해지면 경우에 따라서 범죄 기록을 말살해 주기도 한다니까.”
도그아이드 킴의 별호는 미발흉검.
그는 검을 뽑지 않고서 언제나 칼집에 꽂힌 채로 상대를 두들겨 패 죽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변태적인 싸움법에도 불구하고, 도그아이드 킴은 <사이버판타지> 본편에 등장하는 칼잡이 중에서는 가장 강하다고 볼 수 있는 캐릭터였다.
“폴란드인 듀오에 개눈깔 김씨까지……. 어째 함께할 녀석들이 하나같이 개성적이구만그래.”
잭 린든은 그리 말하며 혀를 내둘렀다.
비슷한 의견이었다. 아군이라면 든든하기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뒤를 맡기기는 싫은 놈들이었다.
조금 있자, 프로펠러 소리 때문에 양쪽 귀가 먹먹해져서, 우리 둘은 다시 헤드셋을 꼈다.
「시온 상공에 진입합니다.」
3시간여의 여정 끝에,
드디어 지옥에 도착했다.
***
붉은색.
시온의 하늘은 붉은색이었다.
밤에도 그 색조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오염된 에테르로 가득한 도시에서는 어둠마저도 붉었다.
짙은 빨강에 삼켜진 도시의 전경은 뚜렷한 종말 그 자체로, 현대의 묵시록은 분명히 이런 공포스러운 무대를 배경으로 작성될 것이란 확신을 주었다.
검붉은 오염물로 침식된 도로.
골조만 남기고 무너져 내린 빌딩.
곳곳을 뒤덮은 크립. 포자와 종양.
한 발짝도 내딛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그나마 이쪽 구역은 정화 작업이 일부 완료되었기에 근처에서 보이는 광경은 덜 끔찍한 편이었다.
수송 헬기는 천천히 베이스캠프에 착륙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생각보다 공기가 맑다는 사실에 놀랐다. 방독면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였다.
헬기는 우리를 캠프에 내려 주고는 금방 다시 하늘로 돌아가 어느새 먼 발치로 사라졌다.
베이스캠프는 그리 크지 않았다. 방호 울타리 안쪽만 따지면 잘 쳐줘야 초등학교 운동장 너비였다.
“쌔삥들이 왔군.”
헬기장 근처 사격장에서 총을 쏘고 있던 덩치 큰 흑인 여성이 우리를 흘겨보며 말했다.
이내 캠프 중앙 천막에서 나온 푸근한 인상의 남자가 헬기에서 내린 우리 앞에 다가와 섰다.
“반갑습니다. 새로 오신 여러분.”
남자는 근육질에 곱슬머리가 인상적인 미남이었다. 아마도 기존 캠프의 리더 격인 인물로 보였다.
“저는 펩입니다. 기관 소속으로, 이번 정화 임무에서는 작전 계획 전반을 맡고 있습니다.”
그가 웃는 얼굴로 악수를 청했다. 그의 악수를 선뜻 받아준 인물은 나와 잭 린든뿐이었다.
“환영회라도 열고 싶지만 시간이 없으니, 다 같이 간략하게 자기소개 정도만 하도록 할게요.”
펩은 캠프의 기존 멤버들을 불렀다.
곧 큼지막한 총을 짊어진 흑인 여자와 키가 무척 작은 아랍계 남자가 우리 앞에 모였다.
“나는 벅스. 총기랑 탄약 관리를 하고 있어.”
“저, 저는 오마르임니다. 그, 취사병임니다…….”
리더인 펩을 제외하면 기관 소속인 사람은 아무도 없이 모두 우리처럼 고용된 용병인 듯 보였다.
나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캠프에 있는 사람은 우리들 앞에 모인 세 명이 전부였다.
“기존 인원은 다섯 명이라고 들었는데.”
펩은 말없이 입꼬리를 찡그렸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두 명은 죽었군.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사실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여러분께서도 자기소개를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어떤 분들이 오시는지 저흰 듣지 못했거든요.”
“…….”
“가면 쓴 분부터. 이름이 뭐죠?”
펩이란 양반은 자연스럽게 나를 가리켜 먼저 나서기를 유도했다. 쓸데없이 커뮤니케이션에 능숙한 사람이었지만 딱히 그렇게 거북하지는 않았다.
“유클리드.”
평소에는 ‘카이트’란 이름을 쓰지만, 낯선 이들 앞에서는 일단 정체를 숨기는 것이 버릇이 됐다.
‘유클리드’는 게임에서 주로 사용하던 닉네임으로,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즐겨 쓰는 가명이다.
“잭 린든이오. 잘 부탁하지.”
“도그아이드 킴. 김씨라 부르쇼.”
“바르트워미에이 자파지에위츠.”
“프셰미스와프 트셰부호프스키.”
내 뒤로 이어서 각자 본인 이름을 말했다.
다만 폴란드인 두 사람은 뭔가 이상한 소리를 중얼댔다. 뭘 말한 건지는 아무도 모르는 눈치였다.
펩은 메모장을 꺼내 무언가를 끼적이더니, 그걸 도로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좋아요. 우선 짐부터 정리하시죠.”
“작업은 언제 시작하지?”
“30분 뒤입니다. 새벽부터 움직이느라 다들 피곤하시겠지만, 휴식을 길게 드릴 여유가 없군요.”
펩은 가볍게 브리핑을 시작했다.
“무기와 탄약 등의 장비는 벅스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식사는 오전 6시. 오후 12시. 오후 6시. 이렇게 세 번. 추가 식량과 생필품 지급은 오마르에게 문의하세요. 화장실과 샤워실은 저쪽에 보이는 컨테이너예요. 따뜻한 물은 되도록 아껴 쓰시고, 샤워하면서 소변보는 건 금지입니다. 수돗물은 간이정화조를 거쳐 재활용하는데, 암모니아가 너무 많이 함유되면 정화 장치에서 잘못 인식돼서 변기 쪽 물이랑 섞여 버리거든요.”
“…….”
“작전 목표는 Z3구역 거점 근처의 잔존 괴수와 오염체 정리 및 11번 플랜트 파괴입니다. 목표 완수까지 예상 소요 시간은 55시간 내외. 플랜트 파괴를 1순위로 두고서 작전을 진행할 겁니다.”
리더의 브리핑은 사전에 받은 지침서에 쓰인 내용과 별 다를 바 없었다.
“질문이 있는데.”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작전은 합동으로 진행하나?”
“특별한 일이 없는 한은 그렇죠. 동료끼리 다 같이 함께 있는 편이 목숨 부지하기 쉬우니까요.”
펩이 눈짓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뭉치는 게 효율적이었다.
“그렇군.”
“질문은 더 없으십니까?”
“하나만 더 묻지.”
나는 슬며시 운을 뗐다.
“혼자 따로 움직여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