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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17화 (117/201)

117화. Know Your Enemy (2)

시온Zion.

악몽이 되어 버린 꿈의 도시.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연방정부는 시에라시티를 대신할 새로운 수도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무려 3,000억 달러라는 경이로운 액수의 비용이 들어간 초대형 신도시 개발 사업. 정부는 이 놀라운 계획의 이름을 ‘시온 프로젝트’라 명명했다.

시온 프로젝트는 당시 어스테이트 전체가 참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규모 숙원 사업이었다.

시에라시티, 밤비타운, 샌제이비어 등의 지방 정부들과, <슐츠텍>과 <카이젠>을 필두로 한 굴지의 대기업들이 모두 힘을 합쳐 도시 건설에 솔선했다.

그리하여, 완공까지 최소 20년이 걸릴 것이라 생각됐던 초기 예측과는 다르게, 불과 7년 만에 주요 시설을 포함한 도시 개발이 99% 완료되는 기적적인 성과를 이룩하는 데 이르렀다.

시온의 처음은 밝았다.

초창기에 시온으로 이주한 시민들은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과학 기술과 마법 공학이 집약된 도시는 ‘살기 좋은 도시’란 모토를 완벽히 계승했다.

깨끗한 공기와 쾌적한 환경…… 도시 전체가 이스트포레스트나 다름없는, 문자 그대로 섬나라의 지상 낙원이자 모두가 꿈꾸던 최고의 도시였다.

이 새로운 수도의 미래는 더없이 찬란해 보였다.

도시 개발은 멈추지 않았다. 빌딩을 더욱더 높이 쌓아 올렸고, 이주민들은 더더욱 늘어났다. 시온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거대한 도시로 성장해 갔다.

허나, 마치 제2의 바벨탑을 지으려는 듯한 인간의 욕망이 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일까.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어느 날 갑자기, 시온의 상공에 타르타로스 게이트가 열렸다. 미국 중부를 초토화시킨 아이오와 사태 때와 필적한 크기였다.

게이트 너머의 이차원에서부터 넘어온 괴수들은 도시를 한순간에 지옥으로 만들었다.

맑았던 공기는 유독성 에테르로 시뻘겋게 물들었고, 거리는 오염체가 득실거리는 병든 땅이 되었다.

시온은 그렇게 허무하게 멸망하고 말았다.

이제 그곳에서 사람이 거주하는 것은 불가능해졌지만, 그럼에도 정부는 그 도시를 포기하지 않았다.

게이트가 닫히고 난 뒤, 연방정부의 특별 기구인 ‘기관’의 주도하에 신규 프로젝트가 거행됐다.

장장 30년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 도시 정화 계획. 빼앗긴 낙원을 되찾기 위한 인류의 몸부림.

그것이 바로― ‘시온 퀘스트’다.

“이걸 내가 드디어 받아 보는군.”

3등급 의뢰임에도 1등급에 준하는 높은 보수.

여러 차례 완수할 경우 기관에서 부여해주는 공식 가짜 신분과 면책권 등의 다양한 특례.

매우 위험하지만 그만큼 리턴이 짭짤하다.

시온 퀘스트는 <사이버판타지>에서도 메인 콘텐츠 중 하나로 꼽힌다. 캐릭터를 단기간 내에 빠르게 성장시키고 스토리를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필수로 받아야 하는 의뢰다.

“당연하지만 이건 공식 의뢰서. 즉, 기관 쪽에서 카이트 자네를 직접 지명한 의뢰야.”

기관으로부터 공식 지명 의뢰가 하달됐다는 것은 내 명성과 신용도가 꽤 괜찮은 지점까지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적어도 뒷세계 용병으로서의 내 인생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보면 된다.

“의뢰서는 됐고, 상세 지침서는?”

“여기 있네.”

주인장은 선반에서 다른 종이를 한 장 더 꺼내 내게 건넸다. 나는 그걸 받아 곧장 읽어 내렸다.

어디 보자.

임무 시작 일자는 모레.

60시간짜리 스케줄이면 금요일 새벽부터 일요일 오후까지인가. 금요일에만 연차를 쓰면 되겠군.

위치는…… Z3구역?

게임에서는 얻기 어려운 유니크 아이템을 상당히 자주 루팅 가능한 던전 지역인 걸로 기억하는데.

그중에는 분명 ‘님로드 스톤’도 있었지.

마법사 캐릭터 전용 액세서리를 만들 때 쓰는 재료. 마력 스탯을 뻥튀기시켜 주는 사기템.

운이 좋으면 그걸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타 색채인 자색 마력을 가진 나한테도 스탯 상승이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어쨌거나 진귀한 물건이니 손에 들어오면 반드시 이득이 될 터.

“혹시 인원은 몇이나 참가하는지 알 수 있나?”

“아마 많아 봤자 열 명 내외일걸. T/O가 대충 그 정도라 들었거든.”

다른 참가자들은 경쟁자가 아닌 동료에 가깝다.

위험한 임무인 만큼 동료 운이 따라주는 것도 꽤나 중요하다. 지옥에서 등을 맡길 녀석이 어중이떠중이밖에 없다고 한다면 살아남긴 어려울 테니까.

“참, 그 친구도 이번에 동참할 거야.”

그때쯤 주인장이 말했다.

“누구?”

“도살자 말일세.”

아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살자 잭 린든. 샷건질에 일가견이 있는 오크 용병. 성격도 실력도 썩 나쁘지 않은 시티헌터다.

“도살자 그 친구, 틈만 나면 여기 와서 손님들한테 자네 무용담을 고래고래 설파하고 다녔지. 듣자 하니 덩치가 티라노사우루스만 한 괴물 트롤을 상대로 거의 이길 뻔했다며? 그 조던 피터슨인가 뭔가 하는 트롤이 드래곤보다도 셌다던데, 거 진짠감?”

잭 린든이 퍼뜨리고 다닌다는 이야기는 하나같이 구라였다. 자그말렉 피터스의 덩치는 아프리카코끼리 정도였으며 난 걔한테 쪽도 못 쓰고 개 같이 쳐 발렸다. 그리고 놈은 (최근에 직접 만난) 드래곤과 비교하자면 병아리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적당한 허세는 내 명성을 차근차근 올려줄 거다. 그보다 지금은 모레 일에 대해 생각해야만 했다.

생존율 50%의 지옥.

게임을 하면서도 가장 많이 죽은 장소는 시온이었다. 거기 있는 몬스터들은 노스네스트 뒷골목에 널린 잡몹 양아치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몬스터란 호칭에 어울리는 진짜 ‘괴수’들이니까 말이다.

이쪽 세계에서 나는 아직 괴수를 만난 적이 없다.

사람과 싸우는 것은 이제 익숙해졌지만,

괴물을 상대로도 내 마법이 과연 통할까?

모쪼록―

준비는 철저히 해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

금요일 새벽 1시.

노스네스트 12구역의 터미널에서 번호판이 없는 검은색 밴을 타고서 도시 바깥으로 이동했다.

아우터필드 844번 도로의 정거장.

거기서 다시 다른 차로 옮겨 탔다. 이번에는 군용 두돈반 트럭의 수송 칸이었다.

“카이트!”

곧 익숙한 얼굴과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나보다 앞서 트럭에 탑승해 있던 인물이 한 명 있었다. 도살자 잭 린든이었다.

“이제야 왔구만! 목 빠지는 줄 알았네!”

“일찍 왔네.”

“으하핫, 기관 놈들이 마중 나온다고는 들었지만, 그때까지 좀처럼 기다릴 수가 있어야지! 난 초등학교 다닐 적에도 항상 소풍 전날이면 좀이 쑤셔 갖고 밤새 잠도 못 자다가, 새벽에 엄마 차를 훔쳐 타서 소풍 장소까지 혼자 미리 가 있고는 했어! 과속 단속하는 경찰차랑 불꽃 튀는 추격전을 벌이느라 결국 매번 소풍에는 못 따라갔지만 말이야!”

“그럼 또 엄마 차 타고 미리 온 건가?”

“아니, 택시! 우리 엄만 작년에 죽었어!”

“……농담이었는데, 패드립 쳐서 미안해.”

“괜찮아! 사실 너네 엄마 죽었냐고 묻는 건 오크들 사이에서 흔한 안부 인사거든!”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오크 문화를 알게 된 직후, 트럭은 꽉 잡으란 말도 없이 빠르게 출발했다.

수송 칸에 타 있는 건 나와 잭 린든 두 사람뿐이었다. 적적해지려던 찰나에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쪽도 기관에서 직접 지명 온 건가?”

“아냐, 나는 대타. 원래 오기로 한 놈이 병원 신세를 지게 돼서 내가 대신 왔지.”

“흐음, 그래도 시온 퀘스트에 불려 온 걸 보면 의뢰 달성 실적이 꽤 좋았나 본데?”

“핫하하! 맞아! 내가 요새 되게 열심히 살긴 했지. 이게 다 자네한테 자극받아서 그런 거야. 자네처럼 젊은 친구가 뒷세계 데뷔한 지 몇 달 만에 벌써 노스네스트 생태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는데, 나도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막 들더라고.”

잭 린든은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나와 우호한 관계인 인물이 나에게 영향을 받아 성장한 것은 어떻게 봐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헌데 자네, 짐이 좀 많군그래.”

그즈음,

그가 눈으로 내 짐을 가리키며 말했다.

큼지막한 더플백 두 개에 배낭. 확실히 2박 3일을 머무는 것치고는 적지 않은 양이었다.

“혹시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좀 봐도 되겠나? 자네 같은 일류는 도대체 어떤 식으로 여행 짐을 꾸리나 궁금해져서 말이지.”

“뭐, 그러든지.”

잭 린든은 진지한 태도로 더플백을 열어 내용물을 살폈다.

그쪽 가방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옷가지와 식량, 비닐 백과 물티슈와 같은 평범한 물품들이 전부였다. 오크는 곧바로 다른 쪽 가방을 열었다.

“음?”

거기 안에 든 것은,

약간 이상한 물건들.

“이건…….”

리볼버. 자동소총. 폭발물과 탄약.

신체 부착형 전투철완. 신형 배틀슈트.

비전 타입 완드. 인챈티드 전투대검까지.

“자네, 무기를 가져온 건가……?”

잭 린든의 표정이 아리송하게 변했다.

그럴 만도 했다. 원래 정통 마법사는 완드를 제외한 전투용 장비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하물며 흑마법사인 나는 무기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음. 이것저것 시험해 보려고.”

“시험해 본다니? 카이트 자네는 무기 없이도 충분히 강하지 않나? 이런 건 방해만 될 텐데…….”

그는 내가 싸우는 모습을 몇 번인가 보았다.

<부름>의 힘이 얼마나 압도적인지는 잘 알고 있을 테지.

“…….”

나도 물론 알고 있다.

<부름>은 최강이다. 그 힘만 있다면 설사 드래곤이라 해도 일격으로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

그렇게도 강한 힘을 쓰는 나는,

너무나도 약하다. 연약해 빠졌다.

무엇보다 자그말렉 피터스와의 싸움 이후.

내 안에 있는 악마의 벌레들이, 무언가 위험한 진실을 깨달았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느껴진다.

……다음번에 <부름>을 쓴다면.

……틀림없이 나는 잡아먹히고 만다.

적어도 그 벌레들을 온전한 내 힘만으로 제어할 수 있을 때까지는 강해져야 했다.

강해지기 위해서, 뭐든지 일단은 시도해 보기로 결심했다. 마법사가 무기 쓰면 안 될 게 또 뭔데.

마검사나 마총사처럼, 무기술과 마법을 함께 구사하는 하이브리드 스타일의 클래스도 존재하니까.

이제 와서 칼이나 총 쓰는 법을 익히기 시작한다는 건 역시나 조금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뭐,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지 않았던가.

다시금 말하지만, 뭐든 해볼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이후 잭 린든은 까먹고 안 챙긴 여분의 칫솔을 내게서 빌린 뒤 남의 짐 뒤적거리는 것을 멈췄다.

황무지의 도로를 따라 달리기를 30여 분.

어딘지도 알 수 없는 곳에서 차가 정거했다.

나와 잭 린든은 짐을 갖고 트럭 밖으로 나왔다.

그곳은 평야 한가운데 여러 천막들이 펼쳐진 야전 캠프. 치누크 한 대가 자리한 헬기장 앞이었다.

“타십시오, 여러분.”

방탄복을 입은 군인이 우리를 인솔했다.

“이제부터 시온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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