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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16화 (116/201)

116화. Know Your Enemy (1)

야심한 밤.

노스네스트 B구역.

창고 주변이 경비 병력으로 가득했다.

갱스터 연합 <언더도그마 브라더후드>의 각 사무소는 삼엄한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노스네스트에서는 갱단끼리의 충돌이 잦았다.

뒷세계 암흑가의 한 축이었던 거대 조직 <홍룡파>의 몰락 이후, 불안정해진 치안을 틈타 이때다 싶어 나대기 시작한 깡패들 탓에 거리와 골목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규모의 쌈박질이 일어나곤 했다.

특히나 <언더도그마 브라더후드>는 비자금 크레딧을 보관 중이던 아지트를 한 달 사이에 다섯 군데나 연이어 털려 한창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그들의 주적은 바로 <헬터 스켈터>였다.

‘암귀 카이트’가 이끄는 D 구역의 개자식들.

밤마다 금낭을 노린 게릴라 습격에 경비를 몇이나 세워두든 매번 쪽도 못 쓰고 발리기 일쑤.

D 구역은 <블랙 대거즈>의 영역이기도 했던지라 섣불리 역공을 나서기도 여건상 쉽지가 않았다.

물론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비싼 용병단을 고용하여 경비를 강화했고, 출입구 경비원들한테는 주변에 수상한 녀석이 보이면 문답무용 일단 조져 놓고 보라는 지령까지 내려졌다.

창고 뒷문을 지키는 대여섯 명의 졸병들은 살벌한 눈으로 새벽녘의 어두컴컴한 거리를 훑었다.

쥐새끼 한 마리조차도 감히 그들의 시야에 띄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던 와중.

스윽―.

문득 자그마한 실루엣 하나가,

가로등 불빛 너머에서 나타났다.

“어이. 저쪽에 누가 온다.”

그 실루엣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졸병들은 하나둘 일어나 무기를 들었다.

저벅, 저벅―.

절뚝거리며 걸어온 그림자가,

어느새 그들의 앞에 당도했다.

“……잉?”

그 순간 졸병들은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

아닌 밤중에 난데없이 등장한 실루엣의 정체는, 많아야 중학생 정도 됐을 법한 어린 여자아이였다.

“뭐야, 애새끼잖아?”

인형 같은 생김새의 빨간 머리 소녀.

검은색 로리타 드레스를 차려입은 그 소녀는 어째서인지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었다.

“귀엽게 생겼네. 딱 니 취향 아니냐?”

“그러고 보니, 저기 2구역 젠슨네 가게에 이런 애 데리고 가면 꽤 비싸게 쳐준다고 들었는데.”

“케케케. 꼬마야, 아저씨가 사탕 줄까? 응?”

음흉한 눈빛을 한 사내들이 소녀에게 접근했다.

소녀는 가만히 있었다. 저항하려는 움직임은 없었다.

단지,

눈을 치켜뜨고서.

빙긋―.

입꼬리를 올린 채,

그저 웃고 있었을 뿐.

“……으응……?”

그리고 그때.

졸병 중 하나가 이상을 감지했다.

“……어, 잠깐, 목에 뭔가……?”

돌연 목덜미에서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긁으려고 손을 갖다 대자, 뭉툭한 게 잡혔다.

….

….

그것은 주먹만 한 크기의 인형이었다.

몸통이 끔찍하게 뒤틀린 거미, 혹은 다리가 여덟 개인 사람의 형체를 한, 기괴한 모양의 금속 인형.

까득, 까드득, 까득.

까드득, 까드드드드득―.

족히 수십 개가 넘는 작은 인형들이,

전신의 피부를 완전히 뒤덮고 있었다.

“끄아아아아아악!!”

인형의 날카로운 다리가 힘줄을 끊고 목젖을 터뜨렸다. 눈알을 쑤셔 쪼개어 그 안을 휘저었다.

사내들의 온몸이 찢어발겨지며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무자비한 고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그곳은 피바다가 되었다.

“아파?”

“…….”

소녀는 쭈그리고 앉아, 곤죽이 된 시체에게 태연히 질문을 던졌다. 물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으응, 맞아. 무지 아프지.”

“…….”

“나도 알아.”

이내 무릎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안대 쓴 눈을 부여잡고, 절룩거리는 걸음으로, 졸병들이 지키고 있던 뒷문 쪽에 향했다.

「아리엘. 그쪽 상황은?」

“다 죽였어. 이제 들어갈게.”

「입구 뚫었으면 무리하지 마. 여기 있는 인원 좀 돌려서 곧 그쪽으로 보낼 테니까.」

“아니야. 안 그래도 돼. 지나는 정문 쪽에 집중해 줘. 여긴 내가 알아서 할게.”

「……괜찮겠어?」

“응. 괜찮아.”

….

….

약 30분 후.

상황은 정리됐다.

아지트 공략은 성공적이었다.

분신 능력을 가진 에스퍼, 지나 드비토의 물량 공세로 정문의 경비와 후속 지원을 분산.

그사이 뒷문 쪽으로 창고 내부에 진입한 인형술사 아리엘이 주요 병력을 모조리 격파했다.

유진이 할 일은 잔당 몇몇을 처리하는 것 정도였다. 당초 계획보다도 훨씬 수월한 마무리였다.

“오빠!”

아리엘은 바닥에 쌓여 있는 시체들을 밟고 달려가 해맑은 표정으로 유진에게 와락 안겼다.

“에헤헤, 나 잘했지?”

“…….”

“나 오늘 완전 열심히 했어. 오빠한테 도움 되고 싶어서. 오빠한테 잘 보이려고 옷도 새로 샀다?”

피범벅이 된 옷자락과 피비린내 가득한 체취.

자기 품에 안겨 있는 소녀에게서 유진이 느낀 거라곤, 시뻘건 피와 가녀린 죽음의 감촉뿐이었다.

“레오도, 토마도, 이제 없어. 오빠 때문에 다 죽어 버렸어. 나랑 놀아주는 건 이제 오빠밖에 없어.”

소녀는 흐느끼듯이 말했다.

품속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그러니까, 오빠는 없어지면 안 돼…….”

자기를 버리고 가지 말라고,

눈물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

유진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럼에도 입을 열어 말해야 했다.

“걱정 마. 절대 혼자 놔두지 않을게.”

그걸로 이 아이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없애줄 수 있다면, 혀를 찢어서라도 말을 해야만 했다.

“정말로? 약속이야?”

“그래. 약속.”

새끼손가락을 거는 행위에 의미가 있을까.

효력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가치는 있었다.

웨스트록 13구역의 낡은 목조 저택.

서늘한 지하실의 매트리스에 곤히 잠든 아리엘을 눕혀 두고서, 유진은 홀연히 집 밖으로 나왔다.

“헤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짓던 중.

갓길에 세워둔 바이크에 기대어 서서 담배를 태우던 지나 드비토가 유진에게 눈짓을 보냈다.

“한 대 피울래?”

“……아니.”

“흐응, 오늘은 기분이 덜 나쁜가 보네.”

유진은 기분이 매우 안 좋을 때만 담배를 딱 한 개비씩 피웠다. 최근까지도 집요할 정도로 그의 뒤를 봐주던 지나였기에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드래곤한테 죽을 뻔했다면서?”

“현재진행형이야. 시한부 2주짜리 목숨이지.”

“뭔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은 참을게. 어차피 별로 얘기하고 싶지도 않아 보이고.”

“그쪽도 지금은 나 못지않게 피곤할 텐데.”

“흐음, 그닥? 난 내내 뒤에서 구경만 했으니까. 원래 위험한 일은 분신이 다 도맡아 하거든. 아무렴 본체가 죽어 버리면 큰일 날 거 아냐?”

“분신들이 파업이나 혁명 같은 건 안 하디?”

“분신도 결국엔 나야. 독립된 개체이기는 해도 어디까지나 나란 존재의 일부란 거지. 오른손이 갑자기 내 말을 안 들을까 봐 걱정하진 않잖아?”

지나 드비토는 명랑한 어조로 말했다.

유진은 딱히 그녀와의 대화를 길게 이어갈 생각이 없었으나, 그렇다고 어색한 침묵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고맙다.”

대뜸 그리 말하자, 지나가 놀랐다.

“으어엥? 갑자기 뭐야?”

“그냥. 내가 블랙 대거즈를 망쳐 놓은 거나 다름없는데, 안 나가고 계속 있어 줘서 고맙다고.”

“으음, 너무 그렇게 센치하게 몰고 가진 마? 난 어차피 돈 때문에 남아 있는 거야. 받은 돈이 있고 받을 돈도 있으니까. 이유 없이 떠날 이유는 없지.”

“그러냐.”

“뭐어, 그래도 불만인 부분이 아예 없진 않아. 요새 벌이가 시원찮은 것도 있지만, 그런 것보다도 제일 큰 불만은 역시…….”

지나는 날카로운 시선을 쏘아붙였다.

“당신이 너무 약하다는 거.”

유진은 움찔했다.

그야말로 정곡으로 꽂힌 한마디였다.

“토마가 살아있었을 때는 당신이 엄청나게 강하다 생각했어. 아마 실제로도 그랬겠지. 레오노프도 그렇고, 토니 웡이라거나, 그런 괴물들을 상대로 쉽게 이겨 버리는 녀석은 이 도시에 드문 편이니까.”

“…….”

“근데 언젠가부터 당신, 별것도 아닌 걸로도 아주 빌빌 기더라? 오늘만 해도 그래. 나랑 꼬맹이 도움 없이는 겨우 그 정도 일도 혼자서 못 해낸다니. 암귀란 이름값에 전~ 혀 걸맞지 않아.”

지나 드비토는 비꼬듯이 말했다.

비꼴 만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유진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할 수 없었다.

“알아, 안다구. 부름인가 뭔가 쓰다가 힘이 폭주해 버려서, 토마를 죽게 만들었다는 거.”

“…….”

“트라우마 때문에 무턱대고 힘을 쓰기 꺼려지는 모양이지. 그건 이해해. 다만 이 상태로 계속 가면 힘들걸. 힘숨찐 같은 그런 안일한 컨셉으로 이 미친 도시에서 도대체 어떻게 버티려고 그래?”

그녀의 말에 틀린 부분은 하나 없었다.

유진과 헬터 스켈터는 언더도그마 브라더후드를 포함한 많은 갱단들의 표적이 되어 있었다.

더욱이 일전에는 그 페르골리치 패밀리의 코털마저 건드려 버리지 않았던가. 하여간 그동안에 유진은 이미 너무 일들을 크게도 벌려 놓은 뒤였다.

<부름>을 쓰지 않겠다는 결심.

그 결심은 분명 틀리지 않았다. 악마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손가락 사이에서 꿈틀대는 벌레들은 언젠가 반드시 그때처럼 또 폭주할 터였다.

하지만―

<부름>이 없는 자신은 너무나도 약했다.

쓸 줄 아는 거라곤 <강화>를 활용한 몇 가지 빈약한 마법들이 전부. 마법사로서의 수준은 암만 높게 쳐줘도 고위 마법사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3개월의 노력 끝에 비로소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주위에 잔재해 있는 수많은 위협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했다.

어떤 적을 만나도, 이길 수 있도록―.

***

늦은 저녁.

노스네스트 3구역 <펍 미드나이트>.

“어서 오게, 카이트!”

주인장이 손을 번쩍 들어 나를 반겼다. 오랜만에 들른 술집은 꽤나 익숙한 한적함을 띠고 있었다.

“오늘은 손님이 없네.”

“뭐, 원래 이게 정상이었지. 요즘 페르골리치 패밀리가 근방에서 극성이잖나. 블랙 대거즈 등빨도 영 예전 같지 않으니, 상권이 다 죽은 게지. 허허.”

“개시부터 파리만 날리는 것치곤 어째 표정이 좀 신나 보이는데.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

처음 가게에 들어왔을 때부터 주인장의 얼굴은 왠지 굉장히 들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내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크흐흐. 내가 뭘 갖고 왔는지 보라고.”

주인장은 아래쪽 선반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그걸 내가 볼 수 있도록 술청 위에 슥 올렸다.

뭔가 했더니 의뢰서였다.

평소에도 자주 보던 종이다.

“어?”

허나,

그 맵시가 평소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빳빳한 A4용지에 정갈한 양식과 얇은 폰트.

맨 하단에는 큼지막하게 도장까지 찍혀 있다.

“이거, 기관 공식 의뢰서잖아……?”

“맞아. 자네가 그토록 바라던 그거야.”

나는 얼른 그 종이를 가져가 살폈다.

3등급짜리 의뢰서. 그것도 기관 공식.

“진짜다…….”

주인장의 말대로―

내가 바라던 그거다.

“시온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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