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Use Your Illusion (4)
“유진 씨는 뭐가 제일 무서워요?”
사무실을 옮긴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비너스가 대뜸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내가 회사에선 팀장님이라고 부르랬지.”
“아, 뭐 어때요. 지금 우리 말고 아무도 없는데.”
그날은 소프트웨어 최적화 작업 겸 정기 점검을 위해 스몰필드 씨가 타이퍼를 데리고 슐츠 센터에 가 있었기에, 공교롭게도 사무실에는 나와 비너스 단둘뿐인 오후였다.
“그보다 질문에 답이나 좀 해주시져.”
“뭔 질문?”
“유진 씨가 무서워하는 게 뭐냐고 물었잖아요.”
“그딴 건 왜 물어봐. 내 약점 잡으려고?”
“아뇨. 그냥 심심해서요.”
“농땡이 피울 시간 있으면 일이나 하시지.”
“일을 할래도 할 일이 있어야 하죠. 그러는 유진 씨는 지금 뭐 바빠서 아주 죽을 정도예요?”
나는 침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쪽도 꽤나 한가한 처지였다. 아무렴 요새 일거리가 팍 줄은 걸 어쩌겠나.
점심 먹고 와서부터는 컴퓨터로 솔리테어나 주구장창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애저녁에 들켰을 테지.
“거 봐, 어차피 자기도 한가하면서 뭘.”
“한가하다고 해서 떠들어도 되는 건 아니다.”
“그렇다 쳐도 너무 조용하잖아요. 분위기 환기나 좀 해보자구요. 스몰 토크 몰라요, 스몰 토크?”
“토크는 무슨. 가만있어도 더워 죽겠는데.”
“아 그러니까, 이 망할 더위를 싹 날려줄 무써―운 얘기나 같이 함 해보잔 거죠. 여름이니까 납량 특집? 뭐 그런 느낌으루다가?”
비너스는 마냥 쉴 새 없이 깐족거렸다.
하기야 뭐 수다 좀 나눈다고 큰일 날 상황인 것도 아니었다. 심심하기는 매한가지였고 말이지.
“그래서, 유진 씨는 뭘 무서워해요?”
“에어컨 없는 한여름의 사무실.”
“아니, 그건 저도 무섭긴 한데……. 토크 취지에 안 맞잖아요. 좀 진지하게 대답해주면 안 돼요?”
녀석이 보챘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흐으으음. 무서운 거, 무서운 거라…….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진짜요? 귀신도 안 무서워요?”
“별로. 그냥 죽은 사람인데 그게 뭐가 무서워.”
“빨간 마스크 같은 건요? 입 찢어진 여자요.”
“더 끔찍한 것도 많이 봤어.”
“연쇄살인마는요?”
“내가 그거잖아.”
시큰둥한 대답밖에는 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정말로 무섭다 할 만한 게 거의 없었으니까.
비단 게임 속에 빠지기 전부터도 그랬다. 겁도 없이 악마한테 심장을 팔아넘겼을 정도니 뭐.
“그러는 넌 뭐가 무서운데?”
내가 비너스에게 되묻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잠깐 고민하는 척을 했다가―
“도플갱어요!”
퀴즈쇼에서 가장 쉬운 첫 번째 문제의 정답을 외치는 도전자처럼, 자신만만하게 그렇게 외쳤다.
“……도플갱어?”
“네. 저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요.”
“……그게 무섭다고?”
“엄청 무섭죠. 만나면 바로 튀어야징.”
나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귀신도, 살인마도, 늑대인간이나 뱀파이어처럼 실존하는 괴이종도 아닌, 뜬금없이 도플갱어라니?
“도플갱어가 왜 무서운 줄 알아요?”
“아니.”
“길 가다 자기랑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났다고 가정해 봐요. 경우의 수가 세 가지 있는데, 그 세 개가 다 무섭거등여. 흠, 일단 ‘알고 보니 나한테 어릴 적 생이별한 일란성쌍둥이가 있었다!?’ 하는 그런 아침드라마 같은 전개는 빼고 시작할까요!”
비너스는 물어본 적도 없는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진짜로 도시괴담이나 전설 속에 나오는 바로 그 도플갱어일 경우. 이건 뭐 당연히 무섭겠죠. 도플갱어랑 마주치면 죽는다고들 하잖아요?”
“음.”
“다음으로, 상대가 마법사일 경우.”
나는 의문을 표했다.
“마법사라거나 그런 거라면 무서울 것도 없지 않나? 결국 상대는 사람이란 거 아니야?”
“쯧쯔, 뭘 모르시네―. 그 경우에는 상대가 사람이라서 무서운 거라구요, 사람이라서.”
비너스는 손가락을 양옆으로 휘휘 내저었다.
“저번에 제가 성형 마법 걸어드린 거 기억하죠? 샌마대에서 멜리에스 강의 들어갔을 때요.”
“어.”
“유진 씨는 잘 모르겠지만, 그게 그래 보여도 실은 엄청난 고난도 술식을 왕창 적용해서 간신히 성공한 거예요. 환영 마법에 결계 마법, 거기에 연금술까지 섞은 트리플 퓨저널이었으니까요. 저야 뭐 그런 쪽이 특기라서 그리 애먹지는 않았지만요.”
“근데 뭐?”
“제가 썼던 환영 마법 기반의 퓨저널이든, 아니면 일반적인 폴리모프 변신술이든, 다른 사람의 얼굴을 똑같이 따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림을 보고서 비슷하게 베껴 그리는 것은 얼추 가능해도, 보는 것만으로 완벽히 똑같은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은 힘든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너스는 예시를 들어 말했다.
“저도 다른 사람이랑 얼굴을 똑같이 만드는 것까진 못 해요. 그 정도를 해내려면 고위 마법 서너 개 정돈 마스터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니까요.”
“고작 얼굴 따라 하는 게 그렇게 어렵다고?”
“게다가 타인의 신체를 완전히 동일하게 모방하려면 알아야 하는 게 많죠. 체형, 신장, 몸무게, 각 부위의 근육량, 안면의 굴곡, 자세별 실루엣…… 이런 것들을 알려면 그 사람에 대해 아주 면밀하게, 오랫동안 지켜보며 탐구할 필요가 있어요.”
즉, 이런 얘기였다.
만약 길 가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알고 보니 마법사였다고 한다면―
“대마법사급의 스토커가 자기한테 따라붙었다는 얘기죠.”
과연.
확실히 소름이 돋는 이야기였다.
강한 상대와 대면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두려운 상황인데, 심지어 그 상대가 나를 굉장히 잘 알고 있다면, 승산은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근데, 저는 사실 첫 번째나 두 번째보다도, 마지막 세 번째 경우인 때가 제일 무서워요.”
그즈음 비너스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바로 다시 물음표를 띄웠다.
“세 번째 경우는 뭔데?”
“다 헛것이었을 때죠.”
녀석이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
“아무래도 그게 제일 무섭잖아요.”
“분명히 내 눈에는 보이고 있는데.”
“그게 다 착각이고 꿈이라고 한다면.”
자기랑 똑같은 사람 따위는 없으며,
그저 순수하게 자신이 미쳐 있는 경우.
“여기 있는 건 사실 나뿐이고.”
“미친 인간도 오직 나뿐인 거니까.”
“전부, 내가 저질렀단 거니까―.”
***
이건 착각일까. 아니면 꿈일까.
혹은 어느 쪽도 아닌 무언가일까.
나는 섣불리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분명히 내 눈에는 보이고 있다. 나와 똑같이 생긴 무언가가. 저 먼발치 거리에 우뚝 서 있다.
거기 있는 나는 웃고 있었지만,
여기 있는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침착하자.
……난 미치지 않았어.
그래. 내 정신은 멀쩡하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적잖이 쌓였을 뿐, 결코 사려분별을 못 할 정도의 헤까닥 상태이진 않다.
그러므로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고,
저 도플갱어도 환각 따위가 아니다.
놈의 정체는 아마도―
“흑마법사지?”
도플갱어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반응은 없었다. 놈은 10미터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그저 한사코 기분 나쁜 웃음을 유지한 채였다.
“땅이 없어진 것도 네가 한 거냐?”
“…….”
“마을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된 거지?”
대답은 없었다. 놈은 마냥 쪼갤 뿐이었다.
어쩌면 도플갱어 쪽은 본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을 무렵.
스윽―.
움직임이 있었다.
천천히, 정말로 아주 천천히.
놈이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나는 놈과 마주 본 채로 서서히 뒷걸음질을 쳤다.
맹수에게 등을 보여선 안 되는 것처럼, 저것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데스.”
놈이 입을 열었다.
무언가를 읊조렸다.
“디스파테르.”
그러자,
사라졌다.
“……?!”
놈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연히 발걸음을 주춤했다.
당황한 기색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야 여기저기에 검은 여백이 짙었다.
사라지고 있었다. 땅, 건물, 하늘이, 눈을 깜빡이거나, 시선을 돌린 순간마다, 공간째로 증발했다.
좁혀져 오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를 중심으로, 블랙홀에 서서히 빨려 들어오듯이.
―<부름>을 쓴 건가?
놈의 흑마법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상대에 대해서 전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반대로 상대는 나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도플갱어로 나타났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했다.
“제기랄……!”
주변 지대에 검은 구멍이 숭숭 뚫렸다. 발 디딜 땅이 부족했다. 종말이 다가오듯, 공포가 다가왔다.
이윽고,
다시 놈의 얼굴이 보였다.
나와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의 얼굴, 창백하고 흉측하게 일그러진 미소를 짓고 있는 그것이, 어느덧 내 코앞에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였다.
시간이 없다. 싸워야 한다.
상대는 흑마법사. 나를 완벽히 모방 가능한 대마법사급의 실력자. 어떤 힘을 가졌는지는 미지수.
―이길 수 있나?
마을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놈이다.
내가 놈을 이길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부름>밖에 없어.
항상 의존해 왔다.
그 힘을 쓰는 일에 망설임은 없었다.
다시는 그걸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지금은 누가 뭐래도,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도플갱어가 내게 손을 뻗었다.
나 또한 놈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안 돼.」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악마의 목소리가 아니었고, 내 안에 잠재된 무의식의 목소리 같은 것도 물론 아니었다.
그 목소리는 아마도 분명,
어딘가에서 들은 적 있는.
「지금은 쓰면 안 돼.」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야.」
어떤 소녀의 목소리.
「날 믿어.」
벽 너머의 목소리였다.
***
<부름>은 쓰지 않았다.
대신에 나는 마력을 방출했다.
가지고 있던 모든 마력을 한방에 쏟아내어,
주변 일대를 자색의 화염으로 덮어 물들였다.
“<강화>.”
이어서 전 방위에 <강화>를 적용했다.
그때 쓴 건 정확히는 <기능 강화>였다.
타인이 쓴 마법에 내가 <강화>를 적용하면, 어느 정도는 그 위력이 평범하게 증대된다.
허나 <기능 강화>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현상이 일어난다.
미리 합을 맞춰 두지 않고 무분별하게 <기능 강화>를 시도하면, 침투한 자색 마력과의 호환이 되지 않는 술식이 마나 분열을 일으키게 된다.
아주 간단하게도, 가이우스급 이상의 마법사들이나 가능한 <술식 파훼>를 쓸 수 있는 셈이다.
물론 가능만 할 뿐. 여러모로 효율이 좋지 않아 실전에서 방어나 공격 용도로는 사용이 어렵다.
어느 정도냐 하면, 비너스가 쓰는 파이어볼의 위력을 쪼끔 경감시키는 정도에 그치는 정도니까.
대신, 이걸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감지하기 어려운 마법을 감지할 때 쓴다거나.
아니면 이렇게,
환영 마법을 깨뜨리는 식으로.
콰드드드득―!
얼음장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서진 유리창처럼, 세상이 일그러져 있었다.
땅, 건물, 하늘, 지천에 뚫린 검은 구멍들.
전부 다 진짜가 아니었다. 모두 환각이었다.
“……커윽…….”
도플갱어는 여전히 내 눈앞에 있었다.
나와 똑같이 생긴 남자가, 한쪽 손으로 내 목을 힘껏 조른 채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부름>을 쓰지 않았군.”
놈이 말했다. 내 목소리로.
“기회가 있었을 텐데, 왜 안 썼지?”
눈꺼풀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내 맘이야…….”
그때.
놈이 피식 웃었다.
“거참 웃기는 놈이로구나.”
목을 조르던 힘이 조금 풀렸다.
놈은 나를 바닥에 떨구듯이 내려놓았다.
“그나저나 참 아깝도다. 이 내가 성심성의껏 주조한 놀이터일진대, 도대체 언제 눈치챘담.”
“…….”
“공들인 화장까지 망가져 버렸군.”
도플갱어의 윤곽이 비스듬히 오그라져 있었다.
놈은 손짓 한 번으로 그 균열을 한껏 풀어냈다.
사르르―.
반짝가루 같은 것이 사방에 날리며 유진 연의 얼굴이 날아가고, 상대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머리털 위로 꼿꼿이 솟은 사슴뿔.
붉은 부분이 섞인 청록색 머리카락.
태양처럼 빛나는 날카로운 눈동자.
특이한 그 외모를 보자마자,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좆됐다.’
나인서클의 제2원. 현재 세상에 단 세 명만 존재한다는 아우구스투스급 대마법사.
“자아, 그럼.”
시에라시티의 진정한 제왕이며,
역사상 최강이자 최악의 드래곤.
“요놈은 무슨 벌을 줘야 할꼬.”
청룡 미르각시.
그녀가 내 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