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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12화 (112/201)

112화. Use Your Illusion (3)

순간 섬뜩해졌다.

“……?!”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의 벽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내 시선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이제야 이쪽을 보는구나.」

벽 너머의 목소리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내 얘기 듣고 있지?」

“…….”

「이 마을은 위험해. 애초에 발을 들인 것부터가 실수였다고 할까. 어쩌겠어? 부주의한 당신 탓인걸.」

알게 모르게 키득거리는 그 목소리는 나를 책망한다기보다도 그저 놀리려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일단 침묵했다. 우선은 옆방의 상대가 누구인지, 대체 무슨 속셈인지를 먼저 확인해야만 했다.

「헷갈리는 모양이네.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그러나 벽 너머의 목소리는 내가 품은 그런 의문들을 해소할 여지 따위는 주지 않았다.

「당신은 이미 진실을 알고 있어. 그걸 구석에다 밀어 넣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하고 있을 뿐.」

처음부터 끝까지.

내게 발설할 기회는 없었다.

「곧 아주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야.」

수수께끼 같은 말들만을 남긴 채.

「그때가 되면, 우린 또 만날 수 있겠지.」

방안에는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이봐?”

불러 봐도 대답은 없었다. 벽을 손등으로 몇 번 콩콩 두드려도 보았다. 역시나 무반응이었다.

나는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옆방에 직접 찾아가서 상대의 정체를 확인해볼 셈이었다.

허나―

그건 불가능했다.

“어……?”

1408호 옆에는 객실이 없었다.

내 방은 14층 복도의 끝자락이었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은 벽으로 완전히 막혀 있었다.

“이게, 무슨…….”

그때 내가 당황한 이유는 단지 방이 없는 곳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었다.

어제와 오늘, 객실에 들락날락할 때마다, 나는 내 방 옆에 1409호가 있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런데,

없어졌다.

분명히 있었던 방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마치 언덕 위에 있었던 그 교회처럼 말이다.

“최근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괴이한 현상들.”

“어제 광장 앞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시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단 이야기는 들으셨겠지요?”

“땅이 사라진 겁니다. 마을이 줄어들고 있어요.”

……틀림없이.

……이 마을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

나는 서둘러 1층 프런트로 내려가 호텔 직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직원은 처음엔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으나, 자기 눈으로 건물 구조가 변한 것을 직접 확인하고는 그 자리서 까무러치게 놀랐다. 사라진 객실은 총 30개였으며, 그중에는 현재 사람이 숙박 중인 방도 여럿 있었다. 1409호는 빈방이었다.

소동 이후 곧바로 체크아웃을 했다.

원래는 내일 아침에 떠나려고 했지만, 한시라도 빨리 이 마을을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릉―!

렌터카를 거칠게 몰아 마을을 벗어났다.

어두컴컴한 시골길을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존한 채로 거침없이 내달리는 동안, 어째서인지 불안함만 커져 갔다. 자꾸 뭔가가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듯한 느낌에, 백미러를 신경질적으로 계속 흘겨보았다.

그렇게 한참 차를 끌고 달리던 와중, 불현듯 정면에서 주황 불빛이 번쩍였다. 도로 맞은편으로부터 자동차 한 대가 마을 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지금 마을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알려야 할까?

나는 머뭇거렸다. 평소의 나쁜 버릇대로, 괜한 오지랖을 부릴지 말지를 잠시간 고민했다.

그때쯤.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자동차 불빛의 위치가 어째 약간 애매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그러고 나서,

뒤늦게 깨달았다.

“헉.”

내 차와 저쪽 차가,

같은 차선에 있었음을.

끼이이이익―!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멈춰 세웠다.

다행히도 충돌하진 않았다. 반대편의 자동차 역시 브레이크를 제때 밟은 덕이었다.

“와 씨, 죽을 뻔했네…….”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이 밤중에 외길 도로에서 역주행이라니. 도대체 정신머리를 얻다가 둔 거야?

나는 따지고 들 심산으로 차에서 내렸다.

상대 차량은 조수석에서 사람이 내렸다.

“이봐요! 운전을 그렇게 하면 어떡합니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상대는 요지부동이었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지? 사과할 생각이 없는 건가?

아니면 혹시 운전수가 다치기라도 했나?

나는 맞은편 차량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제야 조수석에서 나온 상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

걸어가는 동안.

문득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어제부터 줄곧 느껴졌던 위화감.

바로 그 위화감과 비슷한 종류였다.

……상대의 걸음걸이가 왠지 나와 비슷하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발동작이 정확하다.

어느 정도 다가갔을 무렵,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상대도 나를 따라, 걸음을 멈췄다.

상대의 얼굴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키는 나와 똑같았다. 덩치와 옷차림도 그랬다.

상대의 차는 내 차와 같은 모델의 흰색 소형차.

한쪽 범퍼 부분에 찌그러진 자국까지도 같았다.

“…….”

“…….”

나는 상대를 보았다.

상대도 나를 보았다.

거울을 마주 보고 있는 것처럼.

똑같이 서로에게 향해 있었다.

그쪽으로 천천히 가까이 다가가자,

그쪽에서 천천히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이제는 상대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

….

나였다.

나와 똑같이 생긴 남자가, 거기에 있었다.

뒷목에 무던히 소름이 돋았다.

한동안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였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보았다.

그리고.

닿기 직전에.

놈이 웃었다.

입이 찢어질 정도로 환하게.

“…….”

나는 뻗었던 손을 다시 거뒀다.

놈은 여전히 활짝 웃고 있었다.

뒤로 물러나 차가 있는 곳까지 돌아갔다.

놈도 똑같이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운전석에 앉아, 차를 돌려 마을로 향했다.

뒷목에 돋은 소름은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던스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빌어먹을 안내판이 다시 나를 반겼다.

30분 만에 돌아온 마을에, 호텔은 없었다.

***

광장 앞 술집 바에서 그 남자와 만났다.

“오, 아까 봤던 마법사 형씨군요.”

FBJ 수사관 레이먼드 펜버.

그는 시에라시티에서 큰 사건을 일으킨 흑마법사를 쫓아 이곳에 왔다고 한다.

다만 그건 내가 아니라 다른 녀석, 듣기로는 ‘하데스의 투구’를 사용한 흑마법사란 모양이었다.

“좋은 소식이랑 나쁜 소식이 있는데, 뭐부터 듣고 싶습니까?”

“……아무거나요.”

“좋은 소식은 오늘 밤 이 술집에서 우리가 공짜 맥주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나쁜 소식은 술집 주인이 방금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는 거죠.”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벌써 꽤나 마셨는지 취기가 올라와 있는 듯 보였지만,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적어도 눈동자만큼은 또렷했다.

“그건 그렇고, 방금 전에 그쪽이 탄 차가 마을 밖에서 들어오는 걸 봤는데…… 왜 돌아온 겁니까?”

남자가 물었고, 나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

“돌아올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길이 막혀 있던가요?”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결계 마법이 처져 있었습니다. 그것도 상당히 강력한 수준으로요.”

거울처럼 뒤집혀 가로막힌 공간.

그것은 찌끄레기 마법사인 나조차도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고차원적인 술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법이라면, 아마도 제가 쫓고 있는 그놈의 짓이겠군요. ‘하데스의 투구’로 악마와 계약해 받아낸 흑마법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바에 앉은 건 우리뿐이었다. 지금 술집 안에 다른 손님은 없었다. 어쩌면 있었는데 없어진 걸지도 몰랐다.

“어제부터 본부 쪽에서 답신이 오질 않더군요.”

“제 휴대전화도 먹통입니다. 전파가 아예 안 터져요.”

“나가는 길도 막혔고. 외부와의 연락도 불가능. 아무래도, 우린 여기에 꼼짝없이 갇힌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맥주를 홀짝였다.

체념한 것에서 나온 푸념은 아니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그의 눈동자에선 아직 또렷함이 엿보였다.

“뭐, 맥주나 마시고 있을 때는 아니겠지요.”

“…….”

“하데스의 투구를 사용한 흑마법사. 이 망할 마을에서 나가려면 놈을 찾아서 족쳐야 할 겁니다. 혹시 여기 어디서 수상한 인물을 본 적은 없습니까?”

그가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

살짝 머리를 굴려 되짚어 보니,

떠오르는 인물이 한 사람 있었다.

“……보안관…….”

내가 속삭인 말을 남자가 주워 담았다.

“레스트레이드 보안관 말씀이십니까?”

“예. 그 사람이 좀 마음에 걸리는데요.”

“이유는요?”

“어제 제가 마을에 들어왔을 때, 렌터카 범퍼 한쪽 부분이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외부인이 타고 온 자동차에 그런 교통사고 흔적 같은 게 있으면 자초지종을 물어볼 법도 한데…….”

“보안관은 그냥 보내줬군요. 별말도 없이.”

“그리고 그때 사건 조사를 위해 광장으로 출동했다고 말했는데, 정작 현장 쪽에는 사람인 한 명도 없었어요. 경찰도, 구경꾼도, 전혀 보이질 않았죠.”

남자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광장에 들어오는 걸 막으려 했다……?”

“묘하게 뭔가 숨기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흐음, 만약 보안관이 그 흑마법사가 맞다고 한다면, 숨기려던 것은 아마 하데스의 투구였을 테죠.”

그는 머릿속에서 정리를 대충 끝마친 듯했다.

“좋습니다. 보안관 사택은 경찰서 건물 바로 뒤쪽에 있어요. 지금부터 그리로 한번 가봅시다.”

우리는 술집을 나왔다.

광장에서 경찰서까지 가는 길은 지도 안내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허나 지도에서 알려준 것보다도 실제 거리는 훨씬 더 짧았다. 땅이 줄어든 탓이었다.

“서둘러야겠군요. 마을이 다 사라져 버리기 전에.”

한밤중의 마을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경찰서 건물에 다다를 즈음, 길 저편에서 누군가 흐느적거리며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저건……?”

카우보이모자를 쓴 보안관이었다.

그는 길쭉한 뭔가를 양손으로 들고 있었는데, 가까이 오자 그 물건의 정체가 드러났다. 엽총이었다.

“이런.”

남자가 주춤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더니 곧장 내 등 뒤에 숨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미안합니다. 난 전투 요원이 아니라서.”

“…….”

“형씨는 마법사 맞죠? 무슨 일이 생기면 앞에서 저 대신에 좀 싸워 줬으면 좋겠네요.”

FBJ에는 이런 허당도 있는 건가.

뭐, 상관은 없었다. 나는 <부름> 없이는 그리 썩 강한 마법사가 아니지만, 소구경 엽총을 든 일반인 따위는 내게 요만치도 위협이 되지 않는 존재였다. 제압하는 것 역시 마나의 색깔을 숨길 수 있는 저출력의 <강화>만으로도 충분했다.

허나 방심해서는 안 됐다.

놈은 흑마법사일지도 모르니까.

나는 가만히 보안관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가 총을 들어 나에게 겨누는 순간을 노리려 했다.

그즈음.

보안관이 멈춰 섰다.

텅 빈 거리 한복판에 멍하니 선 채,

그는 땅을 쳐다보며 무어라 뇌까렸다.

“……?”

너무 멀어서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보안관이 총구를 들었다.

다만,

그가 겨눈 것은 내가 아니었다.

“뭣……?”

총구가 향한 방향은 위쪽.

자기 자신의 머리였다.

….

….

타앙―!

격발음이 지천에 울렸다.

총알이 보안관의 턱부터 정수리까지를 뚫어 버리는 광경은, 아주 짧은 찰나 동안의 장면에 불과했다.

눈을 감았다 뜬 순간.

보안관의 시체는 사라졌다.

거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젠장, 이게 대체 무슨…….”

그리고.

바로 그즈음.

내 뒤에 숨어 있는 남자가,

왠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숨이 덜컥 막혔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저 멀리.

아주 멀찌감치에.

거리 저편의 길 한복판에는,

웃고 있는 남자가 서 있었다.

….

….

나였다.

나와 똑같이 생긴 남자가,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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