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Use Your Illusion (2)
이 마을 안에 교회는 하나밖에 없었다.
낮에 토지 측량을 했던 그 언덕 위의 교회.
혹시나 싶어 광장의 마을 지도 안내판을 통해 달리 교회라 할 만한 장소가 없음을 우선 확인했다.
단서를 알려준 꼬마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용돈을 조금 안겨주고 나서,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토지 측량을 위해 두 차례나 들렀던 만큼 길을 헷갈릴 일은 없이 목적지에 금방 도착했다.
마을 중심에서 1.5km 정도 떨어진 주택가의 변두리, 레드우드 숲으로 둘러싸인 낮은 언덕.
그 언덕 위에는 꽤나 멋들어진 모양새의 교회가 등등하게 자리해 있었음을 기억한다.
양파 모양의 파란 지붕과 금색 첨탑이 올라간, 아기자기한 생일 케이크같이 생긴 건물이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 측량을 하면서 사진까지 찍었었다.
그런데―
“……?”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교회는커녕 벽돌 한 개조차도.
“……얼라리……?”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아까 전에 왔던 장소였다. 사무소 기사들과 함께 토지 측량을 했던 바로 그곳임이 틀림없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오솔길 옆에는 성경 구절이 적힌 예배당 안내 표지판이 있었다. 이곳에 교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명백한 흔적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도대체 뭐가 벌어진 거야?
혼란에 빠진 내가 생각을 정리할 생각조차도 미처 하지 못하고 있었을 무렵―
“없어졌죠. 여기 있던 교회.”
바로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담배 연기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30분 전만 해도 멀쩡히 있었는데, 담배 좀 사러 갔다 왔더니 그새 이래 사라져 버렸군요. 쯔읏.”
나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검은 셔츠에 검은 구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정 일색의 정장으로 갖춰 입은 젊은 남자였다.
“여기는 소위 ‘블랙 처치’라고 하는, 마을의 흑인들이 주로 다니는 침례교회였다고 들었습니다만.”
“…….”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도 그럴 게, 저는 이 동네에서 흑인은 단 한 명도 보질 못했거든요.”
그는 한 손에는 불붙은 담배 궐련을, 다른 손에는 낡은 투구 같은 물건을 들고 있었다.
말하는 내용으로 보아 마을 사람은 아닌 듯했다. 어느 쪽이냐 한다면 수상한 사람처럼 보였다.
“저기, 당신은……?”
내가 묻자, 남자는 품에서 수첩을 꺼내 펼쳤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배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연방정의국의 레이먼드 펜버입니다.”
연방정의국Federal Bureau of Justice.
줄여서 FBJ. 어스테이트의 FBI라 할 수 있는, 연방검찰 산하의 범죄 수사 및 사법 집행 기관.
“FBJ라면, 지금 뭔가 수사 중이신 건가요?”
“뭐, 비슷합니다. 그쪽은 던스타 주민이 아닌 것 같은데. 어쩐 일로 이런 지도에도 안 나오는 깡촌에 계신 것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회사 일로 출장을 나왔습니다.”
“재개발 때문에 오셨나 보군요.”
“예, 맞습니다.”
“혹시 마법사십니까?”
움찔―.
그가 질문을 던진 순간, 나는 속으로 당황했다. 다행히 당황했다는 사실은 들키지 않았다.
“어, 제가 마법사냐고요?”
“레스트레이드 보안관에게 들었습니다. 어제 저녁 마을 광장에서 살인 신고가 들어와 출동했을 때쯤에 방문한 외지인이 한 명 있다고.”
남자는 담뱃불을 빨아들이며 말했다.
“최근에 시에라시티서 떠들썩한 사건을 일으켰다가 던스타 안으로 숨어든 흑마법사가 있는데, 어쩌면 그게 그쪽이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시에라시티에서 대사건을 일으키고,
변두리 마을에 불쑥 찾아온 흑마법사.
―나잖아.
난데없이 찾아온 위기. 생각지도 못했던 압박.
이자는 설마 나를, 카이트를 찾고 있었던 건가?
“…….”
침착하자. 아직 들킨 건 아무것도 없어.
어쨌건 수상쩍은 티를 내보여서는 안 된다.
“……하하, 아닙니다. 저는 마법사도 뭣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영업쟁이 회사원입니다.”
“그래요?”
누군가가 마법사인지 아닌지를 외적으로 알기 위해선 전문적인 측정 장비가 필요하다.
사실 그마저도 단순히 대상자의 마나 보유 여부를 확인하는 것에 그치는 방식이다.
즉, 내가 먼저 마법을 쓰거나 하지 않는 이상, 이자가 내 정체를 알아낼 방법은 없다.
저쪽이 아무리 나를 의심한다고 해도 내 쪽에서 아니라고 시치미 떼면 그만이란 얘기다.
“흐음.”
남자는 잠시 위아래로 나를 훑었다.
그렇게까지 막 의심을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거 아십니까?”
“예?”
“이거 캡슐 담배입니다.”
그는 입에 문 담배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고는 이빨로 담배 필터 부분을 깨물었다. 작게 아작 하고 캡슐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멘솔 같은 건 아닙니다. 쓸데없이 맛있는 향기 첨가한 뭐 그런 것도 아니고요.”
“…….”
“그래서, 이게 무슨 캡슐이냐면 말이죠.”
남자가 내게 다가와 가까이서 눈을 맞댔다.
눈앞에서 후―. 하고, 담배 연기를 내 불었다.
“에테르 캡슐입니다.”
내 얼굴을 감싸 온 담배 연기는,
피를 섞은 듯 진한 붉은색이었다.
“……?!”
나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허나 어쩔 수 없게도 연기를 조금 마셔 버렸다. 내가 그 붉은 연기를 들이마셨단 걸 남자 또한 알았다.
“농도가 진한 에테르는 인체에 맹독으로 작용하죠. 하지만 마법사라면 체내의 마나가 에테르를 정화시켜 주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안전합니다.”
“…….”
“방금 그쪽은 치사량의 몇십 배나 되는 에테르를 흡입했을 텐데, 아주 멀쩡해 보이시는군요.”
남자의 시선이 날카롭게 내 눈에 꽂혔다.
“마법사죠. 당신.”
나는 그 시선에 대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는 시치미를 뗀대도 바로 알아챌 터였다.
“이런, 진짜로 맞나 보네.”
“…….”
“사실 에테르 캡슐 얘기는 뻥입니다. 세상에 누가 담배에 그딴 걸 넣고 다니겠습니까. 이건 그냥 마술사들이 쓰는 색소 캡슐 들어간 담배예요.”
남자는 툭 버린 담배를 짓밟아 불을 꺼뜨렸다.
“거짓말은 가끔씩 수사에 도움이 되죠. 이렇게 거짓말쟁이를 찾아낸다거나 할 때 말입니다.”
나는 말을 하는 대신 그저 침묵했다.
그리고 언제든 전투 태세에 돌입할 수 있도록, 전신에 걸쳐 마나를 장전하고 싸울 준비를 마쳤다.
“자아, 그럼 이제…….”
경직된 긴장 틈에서,
남자가 입을 열었다.
“같이 맥주라도 한잔할까요?”
….
….
정적.
침묵이 흘렀다.
“예에?”
“광장 앞 술집에 가면 던스타에서만 마실 수 있는 수제 에일을 판다는데 그게 꽤 괜찮다더군요. 저는 내일 떠나니까 오늘 밤밖에 시간이 없어서요.”
남자는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이 상황에 굉장히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대사인 것처럼 말했다.
“……저기, 수사관님은 지금 저를 의심하고 계신 것 아니었습니까?”
“뭐, 용의선상에 추가해 두기는 했죠. 근데 그쪽은 영 내가 찾는 인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걸 보고도 반응이 전혀 없지 않았습니까.”
그는 손에 든 물건을 슥 올려 보였다.
고대 유물처럼 보이는 청동제 투구. 먼지가 쌓여 있고, 여기저기 흠집 난 자국이 많았다.
“그건……?”
“‘하데스의 투구’입니다. 아까 전에 여기 있던 교회 안에서 발견했죠.”
하데스의 투구라는 건…… 설마?
책에서 그 이름을 본 기억이 있었다.
실존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흑마법 관련 아티팩트 중 하나로, ‘카인의 단도’와 마찬가지로 악마의 영혼이 봉인되어 있다고 전해지는 금지된 성물.
“이걸로 악마와 계약해 힘을 얻은 흑마법사가 던스타에 숨어 있습니다. 최근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괴이한 현상들도 녀석이 일으킨 것이죠.”
“괴이한 현상이라면…….”
“어제 광장 앞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시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단 이야기는 들으셨겠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보안관에게서 들었던 매우 기묘한 이야기였다.
“요 며칠간 땅이나 건물의 일부가 사라졌다는 신고가 몇 차례 들어왔다 하더군요. 지금 여기에 있다가 없어진 이 언덕 위의 교회처럼 말이죠.”
“…….”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없어진 건 교회 건물뿐만이 아닙니다. 건물이 자리해 있던 언덕 크기가 작아졌어요. 쥐가 땅속을 파먹은 것마냥요.”
남자의 말이 맞았다.
교회가 있었던 언덕은 낮에 측량할 때보다 크기가 훨씬 더 작아져 있었다. 내용물을 억지로 뽑아낸 것처럼, 지면이 기하학적으로 어긋나 있었다.
마치,
공간 자체가 통째로 증발한 듯한―
“땅이 사라진 겁니다. 마을이 줄어들고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도 의심을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눈앞에서 직접 목격했으니까.
“아무튼 저는 이 하데스의 투구를 사용한 흑마법사를 쫓고 있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마을에 더 머무르는 건 위험하겠다는 판단이 들어서요.”
“그래서 내일 떠나시려는 건가요?”
“경험상 흑마법사랑 엮여서 좋은 꼴 보긴 어렵거든요. 뭐, 어차피 금방 다시 돌아와야겠지만요. 그쪽도 일 다 봤으면 빨리 여길 뜨는 게 좋을 겁니다.”
남자는 내게서 의심을 완전히 던 모양이었다.
FBJ의 수사관치고는 허술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내가 일련의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아니란 확신을 가졌다는 점에선 꽤 유능한 인물인 듯도 했다.
“아참, 맥주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오늘은 피곤해서요.”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나는 그에게 제임스 델핀 실종 건에 대해서 물었다. 그는 일단 던스타에서 벌어지고 있는 괴현상과 도주한 흑마법사 건을 해결한 뒤 곧바로 실종 수사에 착수하겠다 알리고는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있었다.
사라진 교회를 뒤로 하고서, 나는 렌터카를 끌고 호텔로 돌아갔다.
1408호 객실로 복귀.
씻고 나서 침대에 누웠다.
“하아.”
원래는 오늘 중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아직 델핀 부인의 실종된 남편을 찾지 못했다.
다만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은혜를 갚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목숨까지 걸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
이 마을에 있다고 한다.
나 말고 다른 흑마법사가.
……어떤 녀석일까.
……위험한 놈 같던데.
무익한 호기심이 부글부글 들끓었다.
어쩌면 실종된 제임스 델핀이랑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무용한 추론까지도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런저런 생각들에 휩싸여 있던 와중.
「그러니까. 내가 가지 말라고 했잖아.」
어제처럼 옆방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애매한 목소리가. 얇은 벽면을 타고 전해지며 웅웅 하고 귓가에 울렸다.
「이 마을은 정상이 아니야. 너도 알잖아.」
「대체 왜 눈치 못 챈 척하고 있는 거야?」
「뭔가 일이 벌어질 거야. 아주 끔찍한 일이.」
「어제도 말했지. 이번에는 무시하지 말라고.」
….
….
「지금.」
「당신한테 말하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