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10화 (110/201)

110화. Use Your Illusion (1)

“…….”

식은땀이 흘렀다.

한눈팔다가 그만 사람을 치어 버렸다. 세상에, 이 미친 새끼.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좌우지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주차 브레이크를 올리고 허겁지겁 차에서 나왔다.

“이봐요, 괜찮아요?!”

치인 사람이 튕겨져 나간 쪽으로 달려가 안부를 살피려 했다. 시속 50km 언저리에서 부딪혔으니 피해자의 상태가 그리 성치는 않을 터였다.

그런데―

“……?”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은커녕 먼지 한 톨조차도.

“……얼레……?”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곤 저녁 무렵의 어두움을 머금은 짙은 회색빛 안개뿐이었다.

자동차 범퍼와 보닛에는 큼지막하게 찌그러진 자국이 있었다. 분명히 뭔가를 들이받은 흔적이었다.

……이상하다?

……사람이 아니었나?

사고를 낸 순간의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어쩌면 앞을 제대로 보고 있지 않아서 사람을 치었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고라니나 사슴 같은 야생 동물이 튀어나와 차에 부딪힌 걸지도.

어쨌거나 십년감수했다.

큰일이 아닌 것 같아 다행이긴 하나, 렌터카 수리비를 물어줘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씁쓸할 뿐이었다.

차로 되돌아가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허튼짓 안 하도록 정신 꽉 붙들어 매고서.

지도에는 아무런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서류에 적힌 주소대로라면 곧 마을이 나올 터였다.

그리고 10여 분쯤 뒤.

뿌연 안개가 걷힐 때쯤, 온종일 허했던 도로 양옆으로 서서히 마을 같은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던스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목가적인 삽화가 그려진 거대한 안내판이 도로 맡에서 외부인을 반겼다.

“여긴가.”

남색으로 어두워져 가는 하늘 아래, 차는 주황 불빛의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거리로 들어섰다.

던스타는 작고 고즈넉한 마을이었다.

시내는 걸어서 10분이면 저쪽 끝부터 이쪽 끝까지 다다를 수 있을 만큼 아담한 사이즈.

동네의 분위기는 제법 예스러웠다.

20세기 감성이 느껴지는 근현대적인 양식의 건축물들이 억지스러운 조화를 이루며, 웬만한 대학 부지보다도 좁은 땅에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느낌이랄까.

여기가 사실은 복고풍 아메리카 테마의 레트로 민속촌 같은 곳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벽돌 도로를 따라 천천히 달리다,

마을 중앙의 광장에 도착했을 무렵.

삑. 삑―!

멀리 앞쪽에서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차를 세우라는 표시였다.

나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카우보이모자를 쓴 베이지색 제복 차림의 나이 많은 경찰이 다가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외지에서 오셨습니까?”

운전석 창문을 내리자, 그가 내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그의 제복에는 보안관 배지가 달려 있었다.

“예. 시에라시티에서 왔습니다.”

“방문 목적이 뭐죠?”

“출장입니다. 부동산 관련한 업무로요.”

“신분증 있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나는 보안관에게 시민증을 건넸다.

그는 신분증을 살피고는 제복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펜으로 무언가를 끼적였다.

“OK, 미스터 연. 던스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이 동네 보안관 레스트레이드입니다.”

그가 악수를 청했다. 의외로 살갑게 맞이해 주는 분위기였다. 나는 열린 창 너머로 그와 악수했다.

“죄송하지만 지금 이쪽 길로는 지나가실 수 없습니다. 사건 현장이라 진입을 금하고 있어서요.”

“사건이요?”

“예. 살인 사건입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살인 사건이라고요……?”

보안관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 것처럼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했다. 무언가 석연찮은 태도였다.

“한 시간쯤 전에 분수대 옆에서 누가 사람을 칼로 수십 차례나 찔렀다고 하더군요. 목격자가 다섯 명이나 있고, 흉기인 칼도 발견되긴 했는데…….”

그는 말했다.

“시체가 없어요.”

나는 이번에도 깜짝 놀랐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칼에 찔린 사람은커녕 핏자국 하나 없었죠. 목격자들한테 다시 물어보니까 증언이 다 같았습니다. 시체가 분명 거기에 있었는데, 눈 감았다 떠보니 그새 없어졌다지 뭡니까.”

보안관은 어이없어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흉기도 있고 목격 증언까지 있으니 일단 사건으로 두고 현장 조사를 준비 중입니다. 죄송하지만 차를 돌려주셔야겠습니다, 선생님.”

왜인지.

내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뭐지?

……이 위화감은?

“부동산 업무 보러 오셨다 했죠? 혹시 재개발 때문에 토지 측량하러 오신 것 아닙니까?”

“……아, 예. 맞습니다.”

“공인중개사무소는 광장에서 북쪽 방면으로 가시면 나옵니다. 지금부터 일 보러 가실 건가요?”

“……아뇨,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가보려고 합니다.”

“묵을 곳을 찾고 계신다면 저쪽에 호텔이 한 군데 있습니다. 이 동네에 유일한 숙박업소죠.”

“……감사합니다, 보안관님.”

“즐거운 여행 되시길.”

보안관은 모자챙을 슥 흔들고는 물러났다.

나는 그가 호텔이 있다고 알려준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HOTEL’이라 쓰인 붉은 네온사인 간판을 매단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호텔 규모는 예상외로 큼직했다. 주차장도 컸고, 시골 촌락에 있는 것치고는 층수도 많아 15층까지 있었다. 객실도 그만큼 많겠지. 아마 이 호텔에 동네 사람들을 전부 수용하고도 남을 거다.

“손님분 객실은 1408호입니다. 안쪽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프런트의 직원은 친절하게 체크인을 도와주었다. 우리 모텔 관리인 페니도 이 정도로 싹싹하게 군다면 지금보다 평판이 훨씬 나아질 텐데 말이지.

“좋은 밤 보내십시오.”

호텔 객실은 많이 좁은 편이었다. 더블 침대 하나에 방 평수가 거의 다 차버릴 정도였으니.

장거리 운전으로 상당히 지쳤던지라 나는 우선 샤워를 한 다음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

마을의 첫인상은 딱히 별거 없었다.

그냥저냥 한적한 시골 마을이란 느낌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보안관한테서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 썰을 듣게 된 것은 별개로 친다면 말이다.

다만―

묘한 위화감이 있었다.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흘러나와 대뇌피질 안쪽을 슬금슬금 간지럽히는 기분 나쁜 자극.

물론 그게 뭔지 고민을 하고 앉아 있기에는 몸이 너무 피곤했다. 4시간 넘게 운전했고, 오는 길에 사고까지 났고, 하여튼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살며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던 중.

「여기 조금 이상한 것 같아.」

객실 간 방음이 잘되지 않는 모양인지.

옆방에서 말하는 소리가 전부 다 들렸다.

「아니, 진짜로 이상하다니까?」

「거리 한복판에서 사람이 찔렸다잖아.」

「광장에 보안관 말고 누구 있는 거 봤어?」

「아무도 없었어. 구경꾼도 한 명 없었다고.」

「뭔가 일이 벌어질 거야. 아주 끔찍한 일이.」

「교회는 들어가지 마. 거긴 정말 위험하니까.」

***

다음 날 아침.

나는 던스타 마을의 부동산 중개와 토목 측량 설계를 겸하고 있는 사무소를 찾아갔다.

“제임스 델핀? 아, 저번 주에 왔었던 그 친구?”

델핀 부인의 실종된 남편에 관해 소장에게 묻자, 그는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것을 털어놓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쪽 기사랑 같이 측량 끝내고 나서는 어째 감감무소식이구먼. 어젠가 그젠가 누가 어디 술집에서 봤다는 얘길 듣기는 했는디.”

“그 술집이 어디 있는 곳인가요?”

“광장 앞에 있수. 것보다 거 팀장님도 여기 땅 재러 오신 것 아니오? 오후엔 비 온당께 앵간하믄 지금 오전 중에 끝내는 것이 나을 틴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토지 측량부터 의뢰했다.

델핀 부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곳을 방문한 1차 목적은 어디까지나 땅문서를 위해서였으니까.

“참고로 그쪽 땅은 저번에 벌써 다 끝내가꼬 다시 재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을 거요. 뭣하믄 기냥 전에 잰 거 복사해 줄 테니 가져 가실라우?”

“아뇨. 어차피 분할 측량도 해야 하고, 나중에 원본이 필요해질 수도 있어서요.”

“뭐, 우리야 돈 더 받으니 좋지요.”

“그래도 지난주에 델핀 씨가 의뢰한 측량성과의 복사본도 받을 수 있을까요? 대조도 해볼 겸.”

“알겠수다.”

윌슨앤코 몫의 땅은 마을 외곽에 있었는데, 수풀 사이 야트막한 언덕에 교회가 세워진 곳 옆이었다.

소장의 말대로 측량은 금방 끝났다. 정오 무렵에 사무소에서 바로 결과부를 받을 수 있었다.

“응?”

그걸 살펴보던 중에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지난주의 측량 기록과 오늘 한 측량 기록이, 어째서인지 서로 수치가 많이 어긋나 있었다.

“소장님, 기록이 잘못된 것 같은데요.”

“……으잉? 이게 대천지 뭔 일이랴?”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 소장도 숫자를 보더니 안경을 몇 번씩 고쳐 쓰며 황당해했다.

결국 측량은 재시작. 두어 시간 뒤에, 나는 새롭게 나온 기록을 다시금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

아까 전 기록과 달라진 부분이 없었다.

새로 한 측량의 수치는 거의 그대로였다.

“숫자가 이렇게까지 다른 걸 보니, 아무래도 지난주에 측량할 때 뭔가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네요.”

소장은 자기네 사무소 기사들이 실수를 할 리가 없다고 말했지만, 그것 말곤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왜냐하면―

“땅이 줄어들었을 리는 없지 않습니까.”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지진이 난 게 아닌 이상, 멀쩡한 땅의 지형이 그렇게까지 드라마틱하게 바뀌었을 리는 없었다.

어쨌거나 측량은 끝났다.

약간의 소동이 있기는 했으나, 원초 목적이었던 땅문서를 획득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좋아, 그럼.”

이제 이 보물 지도를 내 손에 가져다준 델핀 부인에게 보답할 차례였다.

나는 먼저 델핀 부인의 남편이 목격됐다는 광장 앞의 술집을 찾았다.

“글쎄. 누군지 잘 모르겠는뎁쇼.”

“으으음, 그런 사람은 본 적 없네요.”

“경찰도 아닌데 내가 어떻게 압니까?”

술집 말고도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럴싸한 단서는 전혀 찾지 못했다.

경찰서에서도 인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사건 접수만 해주고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외지인에게 큰 관심이 없었고, 나는 추리 소설의 유능한 탐정 같은 게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델핀 부인에게서 받아온 남편의 사진을 마을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혹시 어디서 본 적 있지 않냐 물어볼 뿐.

그렇게 수 시간을 보냈고,

해가 저물기 시작했을 무렵.

“나 이 사람 알아요.”

공원 근처 벤치에서 막대 사탕을 물고 있던 꼬맹이로부터, 드디어 실마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

“진짜?”

“네.”

“언제 봤어? 어디서 봤는데?”

“어제.”

꼬맹이는 내게 말했다.

사탕을 와그작 깨물면서.

“교회에서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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