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It’s a Sin to be Rich (3)
항상 의존해 왔다.
처음에는 경계했다. 인간이 던져 준 먹이를 섣불리 입에 대려고 하지 않는 야생 동물처럼.
그러나 호기심에 두어 번 집어먹고 나니 어느샌가 냉철함은 사라지고 굶주림만이 남았다.
<부름>을 쓰는 일에 망설임은 없었다.
마법보다도 마법 같은 주문이었다. 단지 부르는 것만으로 눈앞의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더 강한 힘이 필요했다.
어쩌면 그것조차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다른 방법이 분명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맹목적인 믿음만을 가지고서, 결국 저지르고 말았다. <부름>에 <강화>를 써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세상을 끝장낼 뻔했다.
아이가 죽었다. 나 때문에.
내 손으로 죽인 거나 다름없었다.
그날 이후로 핑계와 믿음을 전부 버렸다.
다시는 <부름>을 쓰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하아, 후욱…….”
나는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벽 쪽에 붙어 섰다.
체력이 완전히 바닥났다. 다행히 적은 이제 없는 듯했다. 장시간의 전투로 인해 엉망진창이 된 건물 내부는 철거 직전의 쓰레기장처럼 보였다.
“큭…….”
움켜쥔 옆구리에서 벌건 핏물이 새어 나왔다. 깊은 상처는 없었지만 자잘한 데미지가 꽤 많았다. 간부급 인원 몇몇이 예상보다 강했던 탓이었다.
“으으음, 피는 멎었는데 봉합이 잘 안 붙네. 미안해요. 치유 마법 쪽은 특기가 아니라서.”
“……됐어. 나머진 내가 할게.”
나는 가면과 윗옷을 벗어 던지고 상처 난 자리에 붕대를 감았다. 통증은 가실 기미가 없었다.
“당신, 그러다 죽을 거예요.”
그즈음.
나를 지켜보던 비너스가 말했다.
“<부름>을 아예 안 쓰려는 거죠? 당최 무슨 심경의 변화로 그런 객기를 부리는 건진 모르겠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유진 씨는 마법사 중에서도 평균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밖에 안 돼요.”
“…….”
“출력빨은 있으니 잔챙이들 상대하는 건 쉬워도, 방금처럼 쪼까 실력 있는 녀석들이 다수로 덤벼 오고 그러면 일일이 대응하는 것만도 무지 벅차잖아요?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녀는 차갑게, 그리고 냉정하게 쏘아붙였다.
나는 녀석이 하는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부름>을 안 쓰는 흑마법사라니. 3점 슛을 안 쏘는 스티븐 커리 아닌가요. ……솔직히, 지금의 당신이라면 저라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쯤 내가 눈을 부릅뜨고 자기를 노려보자, 비너스는 화들짝 놀라더니 깨갱 하고 뒤로 물러났다.
“너, 넝담~.”
“…….”
“그, 그래도 틀린 말은 안 했잖아요? 쨌든 계속 그런 식으로 가면 유진 씨만 손해예요. 뭣보다 싸움 방식이 너무 터프하다구요. 세상에 무슨 마법사가 칼잡이랑 무투가를 상대로 냅다 근접전을 걸어요? 무기도 없으면서 <강화> 하나 믿고?”
일리는 있었다.
아니, 오히려 정론이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부름>을 쓰지 않는 나는 뒤지게 약해 빠졌으니까.
“하여간에 오늘은 제가 뒤에서 보조해 줬기에 망정이지. 나 없었으면 유진 씨 지금 옆구리 긁힌 정도로 저얼대 안 끝났거등여?”
“너 지키다가 다친 거잖아, 인마.”
싸우기 전에도. 싸우는 때에도. 싸우고 나서도.
손가락 사이에서 벌레가 꿈틀거리는 감촉이 때때로 아른거린다. 일종의 금단 증상처럼 나타난다.
<강화>는 내 심장을 바쳐 얻은 정당한 대가.
허나 <부름>은 악마의 심장으로부터 비롯된 뇌물이자 사악한 요술. 결코 나의 힘이 아니다.
그 이름을 부르면 부를수록 흑마법의 저주에 침식된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악마의 벌레들은 이미 내 정신마저도 갉아먹었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부름>의 대가는 절망이었다.
이대로라면 분명히 언젠가,
다시 똑같은 절망을 겪게 되겠지.
뒤지게 약해 빠진 나는 결심했다.
더는 악마의 속삭임을 듣지 않기로.
그러니까 강해져야 한다.
이제부터는, 온전히 내 힘만으로.
***
어젯밤은 비너스와 함께 <언더도그마 브라더후드>의 소굴을 습격해 거기 있던 크레딧 서버를 털었다.
예전에 <데스트루퍼>가 그랬던 것처럼, 노스네스트에는 갱단들이 조직 자금을 모아둔 기지― 게임에서는 앵벌이 장소로 쓰이는 던전이 몇 군데 있었고, 최근 우리 조직원끼리 그런 곳을 차례차례 습격하며 돈이 궁한 상황에 꽤나 재미를 보았다.
입수한 크레딧은 암호화폐 복호화 전문업체에 맡겨 수수료를 떼어주고 달러로 환전.
조직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 돈을 가져가서 기부금으로 장부에 기록. 깨끗한 돈으로 둔갑시킨다.
세탁한 자금 중 일부를 페이퍼 컴퍼니에 물품 구매 형식으로 옮기고, 다시 또 윌슨앤코와 거래. 합법적인 루트로 돈을 회사까지 최종 전달시킨다.
그렇게 생긴 현금으로 회계 손실을 메꾸고 에어컨을 고치는 등 급한 불을 끌 수는 있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로군.”
이러한 계책은 어디까지나 임시변통.
현재로서는 페이퍼 컴퍼니를 정상적으로 운용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실제 세탁 가능한 금액은 최대 10만 달러 이하의 소액에 불과했다.
게다가 윌슨앤코는 공식적으로 불량 기업이란 낙인이 찍힌지라 경찰과 국세청 등지에서 시시각각 주시를 받고 있어, 거액의 돈세탁과 같은 불법 행보를 벌일 때는 가급적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윌슨앤코를 살리려면 회사 자체에서 어떻게든 회생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어디 숨겨진 땅문서 같은 거 없나…….”
돈이 될 만한 부동산 따위의 물건들은 벌써 대부분 정리했지만, 아직 회사 소유의 재산이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공휴일임에도 혼자 이렇게 사무실에 나와 컴퓨터 앞에서 머리를 싸매며 끙끙대는 중이다.
「주인님.」
그즈음.
타이퍼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어, 왜?”
「우편물들을 가져왔습니다.」
“으응, 일단 네 책상에 놔둬.”
「알겠습니다. 혹시 고지서 이외의 우편들은 제가 읽어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든가.”
타이퍼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주인님. 주인님.」
녀석이 다시 나를 불렀다.
상당히 급해 보이는 템포로.
“또 왜? 뭔 일 있어?”
「있습니다. 이것 좀 보십시오.」
로봇 녀석은 새하얀 플라스틱 팔을 뻗어 자기 손에 쥔 종이를 불쑥 내게 건넸다.
나는 그걸 받아 살폈다. 뜯어진 우편 봉투와 편지. 편지를 보낸 이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게 대체 뭐길래 그러는 걸까.
편지를 꺼내 천천히 읽어 내렸다.
“……오……?”
그 편지의 내용은,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델핀 부인.”
웨스트록 1구역.
정오 무렵 번화가의 한 카페에서, 나는 편지를 보낸 인물과 만날 수 있었다.
“아녜요. 제가 더 빨리 찾아뵀어야 했는데, 경황이 없어서 그만…….”
그녀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금발의 아리따운 여성이었다. 다만 시종일관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어 쳐다보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그으, 전화로 말씀드렸다시피, 편지에는 다 못 적은 이야기가 많아서요…….”
“괜찮습니다. 편하게 얘기해 주세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델핀 부인은 여전히 다소의 경계심을 보이긴 했으나, 부디 내 미소가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신뢰를 주었길 바랐다.
“네, 그럴게요…….”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됐고,
나는 경청할 준비를 마쳤다.
“저희 남편은 작은 투자 조합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금융 쪽에서 일하던 시절의 지인들과 자금을 모아서 재개발 예상 지역에 주로 투자를 했죠.”
“남편분께서 최근에 투자하신 곳이…….”
“아우터필드 북쪽 끝자락의 ‘던스타’라는 마을이 있는 지역이었어요. 카이젠 테마파크 건설 계획이 그곳 주변까지 확장된다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델핀 부인은 사뭇 차분하면서도 왠지 모를 불안감을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발성과 음색이 너무 좋아 본업이 성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전에 남편은 동료와 함께 토지 측량을 하러 그곳에 갔어요. 하지만…….”
“돌아오질 않았군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까지 모두 끊겼어요.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지만 아우터필드 지역은 경찰국 관할이 아니라서 FBJ로 넘어간다고 하더군요. 수사에 들어가려면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릴 거라고…….”
“그래서 부인께서는 남편분의 투자 컨설팅과 토지 관리를 맡았던 <윌슨앤코 프로퍼티스>로 찾아가신 거군요.”
“네. 그런데 또 거기서는 지주회사 쪽에 지적측량에 관한 권리가 옮겨졌다고 하더라고요.”
회사로 보낸 편지는 당일 특급 등기우편으로, <윌슨앤코 프로퍼티스> 명의의 소유증명서와 토지매매 위임장 등의 문서들이 동봉돼 있었다.
“즉, 실종된 남편분을 찾기 위해 저희 쪽에서 조사원을 파견해 달라는 말씀이시죠.”
델핀 부인은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지고 온 문서들을 차차 살폈다. 그녀의 남편이 투자한 해당 지역의 땅은 대략 1,000평. 윌슨앤코 몫으로 떨어지는 건 그중 20%인 200평.
아무리 못해도 평당 1만 달러로 땅값을 받는다 치면 최소 200만 달러. 지금 우리 회사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천금과도 같은 엄청난 액수의 돈이다.
“도움을 주실 수 있을까요, 팀장님……?”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
공짜로 땅을 안겨 준다는데.
“알겠습니다. 저희에게 맡겨 주시죠.”
나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델핀 부인을 돌려보내고 카페에서 나와 곧장 사무실로 돌아갔다.
우선 ‘던스타’란 마을에 대해 조사해 보았다.
인터넷에 지명을 검색했지만, 포털사이트 지도에는 나오지 않았다. 가장 최근 기록이 200년 전쯤 루퍼트 홀게이트라는 작가의 여행기에서 언급된 정도.
“잘 안 알려진 곳인가 본데…….”
외딴 지역의 고립된 마을. 편견이긴 하나, 그런 곳은 대개 조직적 범죄의 온상이 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마을 위치가 현대의 야만인들이 모여 사는 도시인 밤비타운 근처란 것도 신경 쓰였다.
델핀 부인의 남편이 실종된 것은 아마도,
무언가 심한 범죄에 휘말렸기 때문이겠지.
아무래도 위험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역시 돈 냄새 쪽이 더 진했다.
“타이퍼. 나 외근 좀 다녀올게.”
「네. 주인님. 언제쯤 돌아오십니까?」
“내일이나 모레. 더 늦을 수도 있어.”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겠다.
바로 렌터카를 빌려 출발했다.
토지증명서에 기록된 던스타의 위치는 시에라시티에서 무려 300km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오후 2시쯤에 출발했으니 잘하면 해가 지기 전까지는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도심을 지나, 외곽으로 나와, 아우터필드의 텅 빈 도로를 쭉 내달리다, 산길로 접어들었다.
내비게이션도 없이 지도에 의존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중간중간 쉬기도 하면서.
오후 6시 무렵.
차선 하나뿐인 도로를 따라 안개 속을 꾸역꾸역 헤쳐나가고 있었다. 안개가 어찌나 짙은지, 앞 유리 너머 5미터 이상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한 손으로는 운전대를, 다른 손으로는 지도책을 잡은 채, 곁눈으로 페이지를 살펴보고 있던 그때.
쿠웅―!!
뭔가 큰 소리가 났다.
그리고 충격이 느껴졌다.
“……!?”
앞쪽 범퍼에 부딪힌 사물이 튕겨져 나갔다.
끼이이익―!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멈춰 세웠다. 그대로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아…….”
….
….
좆됐다.
사람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