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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08화 (108/201)

108화. It’s a Sin to be Rich (2)

월요일 아침.

‘출근하기 싫다…….’

리타 스몰필드는 주말 이틀간 아주 잠시 해방되었던 감정을 속으로 되뇌며 현관 밖을 나섰다.

거리에 나오자, 불현듯 쨍하게 내려오는 아침 녘의 다이나믹한 햇살이 피부를 뜨스하게 데웠다.

‘사무실 에어컨 아직 안 고쳤었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늘도 남쪽 바다의 습기를 머금어 후덥지근한 공기가 출근길 내내 함께였다.

덜컹거리며 달려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녀는 문득 두 달 전의 일을 떠올렸다.

―모텔 앞에 늘어선 경찰차들.

―눈앞에서 경찰에 체포된 팀장님.

―마피아 스캔들로 뒤집어진 회사.

그때는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사무실 압수 수색에, 참고인 조사에, 인터뷰 한 번 잘못했다가 뉴스에까지 얼굴이 나올 뻔했다.

‘우리 회사, 망하는 줄 알았어…….’

회사가 망해 버리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하긴 했지만, 정말로 망해 버리는 걸 바라진 않았거늘.

다행히 윌슨앤코는 망하지 않았다. 잡혀갔던 팀장님과 사장님도 별일 없이 금방 풀려났다.

다만―

회사는 예전처럼 멀쩡하지만은 못했다.

사건 이후 윌슨앤코 그룹이 통째로 공중분해 되면서, 지주회사 윌슨앤코는 독립 기업이 되었다.

대형 범죄와 연루됐다는 이력에 윌슨앤코의 기업 신용도와 가치는 말 그대로 바닥을 쳤다.

기존의 거래가 전부 다 끊겼음은 물론이요, 신규 거래를 트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었다.

마땅한 자본금도 한 푼 없는 마당에 앞으로는 잔여 벌금 4억 달러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즉,

윌슨앤코는 지금 도산 직전에 놓여 있다.

‘이러다 진짜 망하는 건 아니겠지……?’

새로 옮긴 사무실은 끔찍한 곳이었다.

처음 왔을 때는 에어컨조차 없어 최근에야 중고로 하나 달아 놨으나 3일 만에 고장.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아직 고쳐지지 않았다. 회사에 수리 기사를 부를 돈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좋은 아침이요.”

나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사무실 내부의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확 덮쳤다.

“좋은 아침입니다, 스몰필드 씨.”

“팀장님 그, 에어컨은……?”

“미안해요. 며칠만 선풍기로 버텨 봅시다.”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출근한 지 10초도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부터 기력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헬렌 씨는요?”

“화장실 변기가 막혀서 뚫어뻥 사러 갔어요.”

“변기가 막혔다구요……?”

“5층 화장실은 수압이 약해가지고 휴지 몇 장만 넣어도 그렇게 된다나 봐요. 잘못 막히면 하수관 터진다니까 스몰필드 씨도 조심하세요.”

“아, 네…….”

체포되었던 유진과 하인즈 사장이 복귀하고 나서, 회사는 다시 정상적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허나 앞서 말했듯 윌슨앤코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도산 직전이란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어라, 팀장님. 서류 잘못 주셨는데요.”

“아, 그거 이면지예요. 뒷면에 있을 겁니다.”

“저쪽에 달력은 왜 모아 두셨어요?”

“잘라서 이면지로 쓰려고요.”

매일같이 억 단위의 거래에 자연스럽게 관여하던 몇 달 전의 일상이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요즈음에 맡는 업무들은 그야말로 하찮기 짝이 없었다.

「주인님. 부탁하신 이면지 제작을 모두 완료했습니다.」

“오, 수고했다. 타이퍼.”

「이것이 재정 확보에 도움이 되었습니까?」

“어. 300원 정도.”

「현재 남아있는 달력을 모두 이면지로 제작한다면 3,300원의 재정 확충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본 기체의 배터리 충전 비용을 고려하여도 약 883원의 이익을 내는 셈입니다.」

“(그냥 널 파는 게 더 이득일 것 같은데.).”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동네 소상공인 수준의 자질구레한 거래나, 여기저기 싹싹 빌고 다녀 겨우겨우 받은 중소 규모 하청 따위로 근근이 매출을 올리고 있는 마당.

“저기, 팀장님? 구매 신청 내역에 골프채 세트가 있던데, 이거 혹시…….”

“사장님 거예요. 주말에 접대 골프 치는 데 필요하다고 하셔서요.”

“그렇다 쳐도, 너무 비싼 브랜드 아닌가요……?”

“어쩔 수 없습니다. 이번에 사장님이 그쪽서 일 못 받아오면 이번 여름 내론 에어컨 못 고쳐요.”

게다가 그런 것들마저도 하인즈 사장의 인맥에 크게 의존한 일회성 비즈니스가 대부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회사에서 가장 쓸모없었던 인물 덕에 지금 회사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저희 월급은 나오는 거 맞죠? 아하하.”

“…….”

“팀장님?”

물론 버틴다는 것은 그저 버티는 것에 불과했다. 단순 업무량은 예전보다도 훨씬 늘어났으나 매출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영업이익도 간신히 마이너스를 면하는 지경.

“월급, 나오는 거 맞죠……?”

“노력해보겠습니다.”

“노력까지 해야 할 문제인가요, 그게……?”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해야만 했다.

기껏 살려 놓은 회사가 돈이 없어서 망해 버린다면 그간의 고생이 의미가 없어지지 않는가.

‘돈을 벌어야 해.’

유진은 생각했다.

어떻게 돈을 버는가?

윌슨앤코는 무역 회사다.

무역 회사는 물건을 거래해서 돈을 번다.

그리고 물건을 거래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쓰읍.’

짤막한 고찰은 당연한 진리로 귀결됐다.

지금의 윌슨앤코가 도산 위기에 처해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본의 부재였다.

어쩌다 기적적으로 성사 가능한 아이템을 만들어 봤자 거래를 실현시킬 밑천이 없어 흐지부지됐다.

그 어떤 은행에서도 불량기업 윌슨앤코에게는 일정 금액 이상의 신용장을 개설해주지 않았다.

이는 무역 회사로서 사실상의 사형 선고.

돈이 없기에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이 없으므로 돈을 벌 수 없다. 돈을 벌 수 없으니 돈이 없다.

반복되는 악순환. 뫼비우스의 띠.

무한히 이어지는 빈익빈의 굴레였다.

‘후우.’

지금으로서는 그저 버티기만 할 뿐이었다.

당장은 버티는 것 이외의 해답은 없었기에.

‘별수 없군.’

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반대편 책상으로 향했다.

“어이.”

방금 막 화장실 변기를 뚫고 와서는 냄새가 나지는 않나 자기 소맷자락을 킁킁대고 있던 비너스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 건드리며 조용히 속삭였다.

“오늘 밤에 알바다.”

***

월요일 밤.

노스네스트 B구역.

“에휴, 내 팔자야.”

비너스는 손에 든 완드를 땅바닥 위에서 휘적거리며 탄식했다. 나더러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저기요, 유진 씨. 계속 생각한 건데, 나 이제 그쪽 회사에 있을 필요 없지 않아요? 윌슨앤코랑 관련된 깡패 녀석들은 대충 정리 끝났다면서요?”

“아니. 앙심 품은 몇몇 갱단에서 보복을 해 올 가능성이 아직 있어. 게다가 가뜩이나 치안이 좀 떨어지는 곳으로 이사해 버렸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뭣보다 최저시급 받는 노예를 놓아줄 순 없지.”

“노동청에 신고해도 돼요?”

“뒤지고 싶음 하든가.”

걷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가 코앞이었다.

B구역을 지배하는 로컬 갱스터 <언더도그마 브라더후드>의 관할에 있는 한 오래된 폐공장.

“엑, 설마 여기예요?”

“그래.”

비너스는 뭔가 아니다 싶은 표정으로 공장 입구를 살폈다. 무장한 인원이 대략 서른 정도 눈에 띄었다.

“경비가 좀 많은 것 같은데요…….”

“안에는 더 많을걸. 여기가 놈들의 제2 아지트니까.”

“진짜 무지성이다. 정면에서 이걸, 하아…….”

“나불대지 말고 싸울 준비나 해. 우리 쪽에서 먼저 간다.”

공장 입구를 지키는 녀석들도 슬슬 자기네 앞까지 접근한 두 불청객의 존재를 눈치챈 듯했다.

“광역기부터.”

“알고 있다구요.”

비너스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볍게 완드를 휘두르며, 마나의 진을 그렸다.

“<체인 라이트닝>.”

연쇄 번개를 일으키는 광역 파괴 마법.

나는 그것에 마력을 감싸 <강화>를 더했다.

비너스의 본래 능력으로는 최대 4명 정도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고작이었겠지만.

무한한 마나로부터 비롯된 <강화>에 그 위력은 한순간에 고위 마법 레벨로 진보.

파지지지지직―!!

거대한 벼락처럼 뻗쳐 나간 전류는 서른에 달하는 입구의 경비병들을 몽땅 감전시키고도 남았다.

몇몇은 상당히 강인했다. 서너 명쯤의 적이 번개 사슬을 뿌리쳐내고서 각자의 무기를 들었다.

탕. 타탕. 타타탕―!

곧 수십 발의 총알이 우리 쪽으로 날아왔다.

“<포스 디펜더>.”

허나 탄환들은 마나의 방벽을 뚫어내지 못했다. 단단한 벽에 부딪히자마자 운동량을 잃고 부서져 버리거나 힘없이 바깥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적들은 싸울 의지를 잃었다.

이제 마무리를 지을 차례였다.

“<페이탈 볼텍스>.”

허공에 그린 마법진으로부터 자색과 녹색의 불꽃이 소용돌이처럼 피어올랐다.

회전하는 불꽃은 로켓처럼 하늘로 솟구쳤다. 이어 송곳의 빗줄기가 되어 그대로 땅에 내리쳤다.

콰과과과과광―!!

그야말로 하늘에서 떨어진 재앙이었다.

단 한방의 마법으로 가히 운동장만 한 너비의 공장 지대가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다. 이번 공격은 공장 건물까지 일부 무너뜨렸기에, 안쪽에 있는 적들 중에서도 꽤나 많은 사상자가 나왔을 터였다.

“꺄하하하하하핫!! 맛이 어떠냐아아!!”

비너스는 고성을 지르며 격하게 좋아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일하기 싫어 똥 씹은 표정이었던 녀석이 지금은 어쩐지 매우 신나 보였다.

“재밌냐?”

“완전 재밌어여! 아우, 이 손맛 진짜 끝내준다니까아! 유진 씨랑 저랑은 진짜 궁합 최고네요! 진심 이 정도면 거의 대마법사급인데, 저희 둘이 같이 싸우면 드래곤도 이겨 버리는 거 아녜요?”

“착각하지 마. 너도 알겠지만 사전에 미리 합을 맞춰두지 않으면 <강화>는 제대로 적용 안 돼.”

확실히 다양한 마법을 쓸 수 있는 비너스와 무한한 마나를 가진 나, 이렇게 나사 빠진 두 마법사끼리의 콤비는 꽤나 괜찮은 상성을 발휘했다.

단점은 즉석에서의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점.

타인이 시전한 마법에 효과적으로 <강화>를 부여하려면 미리 그 술식을 상정해 둬야만 했다.

그럼에도 사전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다는 전제하에서라면, 우리는 아주 잠깐이나마 대마법사 수준의 퍼포먼스를 발휘할 수 있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서부턴 내가 앞장설 테니 넌 일단 뒤로 물러나. 후방에서 보조해 줘.”

“넹!”

우리는 쑥대밭이 되어 버린 공장 입구를 지나 폐공장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안에 들어서자, 아닌 밤중에 별안간 습격을 당한 것에 제대로 빡친 깡패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놈들이 총을 들어 발사하려던 그때.

나는 입을 벌렸다가, 순간 움찔했다.

“카…….”

턱 끝까지 올라온 그 이름에 멈칫.

……젠장.

어금니를 꽉 깨물고서, 열었던 입을 도로 닫았다. 대신 손을 뻗어 있는 힘껏 마력을 뿜었다.

푸샤아아아악―!

손끝에서 뿜어져 나간 자색 마나의 불꽃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내 마나에 닿은 총 따위의 무기들은 <기능 강화 실패>의 영향으로 고장이 났다.

“저기, 유진 씨?”

“왜.”

“<부름>은 안 써요……?”

뒤에서 비너스가 물었다.

나는 숨을 짧게 내쉬었다.

“안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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