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End of the Day (2)
재판은 공개적으로 진행됐다.
3명의 재판관. 10명의 배심원.
기자와 구경꾼들로 채워진 방청석.
이 많은 관람객들 가운데 공식적으로 내 편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그저 악덕 대기업의 소문난 개자식이 사회적으로 조져지는 모습을 구경 왔을 뿐이니, 이곳은 정의란 밧줄로 나를 매달기 위해 마련된 교수대인 셈이었다.
“지금부터 2024G-413호 사건 재판과, 피고인의 사회 복귀 적합 여부를 판별하는 논의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수갑을 찬 채 피고석에 앉아 있었다.
A급 전과자. 3등 시민. 경제 사범 용의자. 변호사 선임조차 불가능한, 불법 체류자 이하의 신세.
“피고, 앞으로 나오세요.”
재판장은 나에게 진술 거부권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렸다. 입 다물고 있어도 되는 걸 권리라 한다면 고문받는 포로한테도 그런 게 있기는 했다.
“이름이 뭡니까?”
“유진 연입니다.”
“직업은?”
“윌슨앤코 지주회사의 운영팀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형식적인 질문들은 빠릿빠릿하게 넘어갔다.
사는 곳이 어디인지 말한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나에게 진술을 할 기회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금세 다시 피고석으로 물러나 앉았다.
“피고는 윌슨앤코 인터내셔널 임원진의 기업 공금 횡령과 군용 장비 등 금지품 밀수 행위에 협조하여 이득을 취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
“담당관, 앞으로 나오십시오.”
재판장이 지명하자, 반대편에 앉은 정장 차림의 여성이 자리에서 걸어 나와 증언대 앞에 섰다.
“피고 유진 연 씨의 사회 복귀 프로그램 담당관을 맡고 있는 중앙본부 경장 한태경입니다.”
그녀는 이 미치도록 불합리한 가짜 재판의 검사이자 변호사였다. 지금부터의 내 운명은 오로지 저 사람의 혓바닥에 달려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피고는 올해 2월 윌슨앤코에 팀장으로 입사하고 이후 17주간 회사로부터 총 58만 4,800달러의 급여 외 수당을 본인 명의의 계좌로 지급받았습니다. 통장 입출금 기록으로 이를 확인하였습니다.”
“금품 수수 사실은 명백하군요.”
“예. 더하여 경찰 수사 결과, 피고가 이전에 슐츠텍과의 장비 위탁 생산 거래를 성사시킨 후, 윌슨앤코 인터내셔널에서 그 생산품 중 일부를 빼돌린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피고 또한 이 밀매 행위에 일조하였고, 그에 따른 대가성 수수였음이라 판단됩니다.”
곱지 않은 시선들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사람들은 마치 내가 민생을 착취해 자기 배를 처불린 더러운 자본주의의 악당인 양 보고 있었다. 사실 그게 뭐 그렇게 틀린 관점인 것도 아니었다.
내가 받은 돈은 전체 횡령액에 비하면 물론 새 발의 피였지만, 어쨌건 나는 일반인의 10년 치 연봉보다도 큰돈을 후루룩 잡숴 먹은 도둑놈이었다.
“피고는 이외에도 윌슨앤코 그룹 내에서 자행된 여러 불법 행위를 묵인 혹은 방조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정황들은 요주의출소자의 사회 복귀 적합도 판단 기준의 중대적 결격 사유인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 해당.”
“추가 형벌에 더해, 시민 등급 1단계 강등 및 출소 전 교육을 위한 재수감 처분 대상이 됩니다.”
담당관 한태경은 망나니의 도끼날처럼 날카로운 목소리로 살벌하게 내 목덜미를 조여 왔다.
여전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내 명운은 그녀의 손에 달려 있었다.
“지침상 권장 처분 내용은 그러하며, 피고를 관찰해 온 책임자로서의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한태경은 말하기 전, 잠시 뜸을 들였다.
“피고의 교화는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배심원단과 방청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재판장은 의사봉으로 나무판을 콩콩 두드려 소란을 진정시켰다.
“담당관이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수사 과정에서 피고의 주변 인물들과 면담을 하는 동안 피고에 대한 평가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증거로 제출한 녹취록을 낭독해 드리겠습니다.”
한태경은 준비한 자료를 꺼내 그것을 차분하게 읽어 내렸다.
“거주지 관리인, 페넬로페 베인스.”
“옛날에는 완전 별로였는데 지금은 뭐 괜찮아요. 나사가 좀 빠져서 그렇지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거래처 신타케미컬 대표, 아미르 쿠마르.”
“저희 쪽 과실로 중요한 거래를 망칠 뻔했는데 아무 대가 없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땐 정말 눈물 나게 감사했죠.”
“단골 식당 점원, 지나 드비토.”
“인사성도 좋으시고 진상 부리는 일도 없고 매번 팁도 많이 챙겨 주시는 무지 젠틀한 손님이에요.”
“동료 직원, 리타 스몰필드.”
“가끔 속을 알 수 없을 때도 있지만 팀장님은 좋은 분이세요. 항상 자기보다 남이 우선이고요.”
한 구절 한 구절 읽을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어쩐지 위로처럼 들렸다. 그동안 살아온 방식이 헛되지 않았다고,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피고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줬던 친절한 이웃이었습니다. 요주의출소자의 80% 이상이 주변과의 마찰을 일삼는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한 피고의 사회생활 능력에는 합격점을 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적응 기간 도중에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문제이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피고가 A급 전과자임을 차치하고서라도, 저지른 범죄 행위의 중대함은 결단코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태경은 한차례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곧이어 다시 다른 자료를 꺼내 들었다.
“윌슨앤코의 서류상 대표 에드먼드 하인즈의 증언에 따르면, 그간 그룹 내에서 이루어진 일련의 범법 계획에서 피고가 맡은 역할은 총알받이.”
“즉,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대외적인 책임을 몽땅 지게 되는, 이른바 총대를 메는 방패 역할이었으며, 금품 수수는 이에 대한 대가였다고 합니다.”
“피고는 출소 시점에서 60만 달러가 넘는 거액의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개인이 갚기 힘든 액수죠. 때문에 어떻게든 돈이 필요했습니다.”
“게다가 사회 복귀 프로그램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그럴싸한 일자리가 반드시 필요했기에, 피고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며 매주 3만 달러 이상의 주급을 받아 챙겼습니다. 앞으로의 인생을 담보로 한 생명 수당이었죠. 어쨌든 돈은 받았습니다.”
“총액 58만 4,800달러의 거금. 허나, 피고는 이 돈을 빚을 갚는 데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재판장이 의문을 표했다.
“아직 그 돈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겁니까?”
“아뇨. 받은 돈은 한 푼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럼, 피고는 그 돈을 어디에 썼단 말입니까?”
“거주지 근처 보육원에 전액 기부하였습니다.”
술렁이는 소리가 다시금 커졌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진 게 느껴졌다.
“전부 기부했다고요?”
“예. 계좌 입출금 내역과 해당 보육원 측의 자료를 증거로 제출하였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장내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피고는 분명히 범죄 행위에 가담해 금품을 수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돈은 자신을 위해 쓰이지 않았고, 대신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랄 갈 곳 없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쓰였습니다.”
“한때의 유혹으로 돈에 눈이 멀어 죄를 범하고 말았지만, 그는 끝까지 장님이진 않았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곧바로 반성하고 그 뉘우침을 행동으로 실천하였습니다. 이것이 제가 피고의 교화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송곳처럼 푹푹 찔러 오던 눈총들 사이에 아련한 연민의 시선이 섞이기 시작했다. 나는 돈이 필요해서 돈을 구한 바보였지만, 그 돈을 결국 갖다 버린 바보 중의 바보였다. 그리고 바보는 인기가 많다.
“요주의출소자를 대상으로 한 RTS 매뉴얼에 따라, 피고의 사회 복귀 적합 판정 시기를 무기한 보류. 기소유예 혹은 집행유예를 권장 드립니다.”
술렁이던 장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상입니다.”
한태경이 증언대를 떠났다.
판결은 일반적인 재판처럼 며칠씩 걸리지 않았다. 심리가 끝나고 5시간 뒤, 당일 오후에 치러졌다.
“혐의에 대한 판결은, 유죄.”
“징역 4년 6개월의 집행유예.”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한다.”
***
구치소에서 나왔을 때는,
벌써 꽤 늦은 저녁이었다.
“스읍. 하아.”
거의 3주 만에 맡은 바깥세상의 공기.
익숙한 미세먼지 맛이 난다. 까딱하면 이 텁텁한 감칠맛을 10년 넘게 못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순간 아찔해졌다가, 금방 편하게 웃어넘겼다.
……살았구나.
……진짜로. 살아 버렸네.
결국 이뤄내고 만 기적적인 생존.
허나 자축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할 일이 태산이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나 회사. 윌인터 쪽 재판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최악의 경우도 대비해야 할 거다.
노스네스트의 조직도 신경 써야 한다. 어차피 조직 관리는 주인장과 애런한테 맡겨 놓았지만, 그새 큼지막한 사건은 없었는지 괜히 걱정이 좀 된다.
할 일이 참 억수로 많구나.
앞으로도 미치도록 바쁘겠지.
일단,
지금은―
“집에 갈까.”
나는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도착할 때쯤은 식사 때가 완전히 지나 배가 무진장 고팠다. 역에서 바로 집에 가지 않고, 중간에 있는 간이식당 <호손 그릴 다이너>에 들렀다.
“어서 오세요~.”
점원이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나는 구석 쪽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손님이 적은 시간대에는 여기가 내 전용석이었다.
“…….”
반대편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문득 그 녀석 생각이 났다. 옛날 학생복을 입은 꼬맹이. 몇 번씩 서프라이즈로 나타나곤 했었지.
하지만―
이제 그럴 일은 없다.
“주문하시겠어요?”
점원이 다가와 물었다.
나는 메뉴판을 훑었다.
“치킨버거. 오믈렛. 시저 샐러드.”
메뉴를 하나씩 읊었고, 점원은 내가 주문하는 것에 맞춰 “으흠.” 하고 콧소리를 흥얼거렸다.
“더 필요한 건 없으신가요?”
점원이 물었고,
나는 바로 답했다.
“끝나고 잠깐 얘기 좀 하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점원은 여전히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를 띤 채였지만, 아까와는 달리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이러시면 곤란한데요, 손님.”
“맨날 팁 왕창 챙겨 주는 젠틀한 손님한테 애프터서비스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나는 점원의 이름표를 흘겨보며 말했다.
거기에는 아기자기한 글씨로 ‘지나’라고 쓰여 있었다. 이런데도 그동안 눈치 못 챈 내가 병신이지.
“아무튼 이따 보자고, 따봉맨.”
“…….”
“중요한 얘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