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End of the Day (1)
「……다음 소식입니다.」
「그동안 의혹만 분분했던 윌슨앤코 그룹과 레드 마피아 조직 간의 유착 관계가 경찰 수사 결과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최근 윌슨앤코 그룹은 고위층 인사들의 수억 달러대 횡령, 금지품 밀수 및 주가 조작 정황 등이 드러나면서 큰 진통을 겪고 있는데요. 노스네스트에서 활동하는 12개 이상의 범죄 단체들이 윌슨앤코의 이러한 불법 행위에 관여했다고 합니다.」
「지난 일요일 사내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졌던 횡령과 배임 등의 범죄 사실을 공식 석상에서 고백한 윌슨앤코 인터내셔널 VP 존 렘브란트 버미어 또한 기자회견에서 이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83.7%라는 역대 최고 득표율로 시에라시티 시장직에 당선된 캐서린 스트로베리는 자신의 SNS를 통해 ‘범죄자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부자라도 거지라도 예외는 없다.’라고 기업 범죄에 대한 반응을 올려 많은 시민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연방검찰은 버미어를 포함, 범행에 가담한 윌슨앤코의 주요 인물들을 기소할 예정입니다…….」
***
일요일. 6월의 마지막 날.
시에라시티 경찰국 중앙본부.
“후우.”
지원팀의 여형사 한태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주말을 맞아 대부분이 비어 있는 책상들 사이에, 그녀만은 굳건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이.”
다시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무렵, 수사팀의 아서 깁슨이 책상으로 다가와 말을 붙였다.
“아, 경위님.”
“수고. 뭐 하고 있었어?”
“내일 재판 준비요.”
“뭐야, 그게 벌써 내일이었냐?”
“시간 참 졸라 빠르죠. 안 그래도 일정 촉박한데 하필 재판일도 월요일이라 이렇게 일요일에 나와서 뻘짓 하고 있잖아요. 경위님은 당직이신가 봐요?”
“엉. 심심하니까 옆에서 구경 좀 한다.”
“맘대로요.”
아서 깁슨은 옆 책상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한태경은 모니터 화면에 문서 파일을 하나 띄운 뒤 그것들을 천천히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흠.”
아서 깁슨은 그게 뭔지 알고 있었다.
“익명의 제보자가 보낸 편지구만.”
3주 전, 경찰국에 날아온 누군가의 메일.
거기에는 주식회사 윌슨앤코가 벌인 범법 행위들에 대한 세부 정황과 증거, 그리고 주범으로 지목된 ‘유진 연’을 고발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인과 관계 설명과 타임라인 등이 놀라울 정도로 자세했고, 확실한 단서까지 여럿 제시함으로써 신빙성이 꽤나 높았기에, 경찰은 해당 메일의 내용이 진실이라 판단. 당일 밤 그를 긴급 체포했다.
‘유진 연’은 A급 전과자로, 한창 뒷세계를 떠들썩하게 달군 신흥 빌런 ‘카이트’와 관련한 사건에 엮여 경찰의 보호 대상에 들어가 있던 인물.
“하여간에 그놈 진짜, 처음에 한두 번 봤을 땐 되게 순박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범죄자 놈들은 결국 다 똑같나 봐. 하긴 도둑놈 근성이란 게 어디 가겠어.”
“…….”
“뭐어, 네 입장에선 그래도 속 시원하겠네. 그렇게나 싫어했던 양아치 새끼가 도로 빵에 처박히게 됐으니깐. 그치?”
한태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유진의 사회 복귀 프로그램 담당자로서, 이번 사건과 그간의 전말에 관해 다시 한번 유심히 체크하는 중이었다.
“……이상하지 않아요, 경위님?”
한태경이 슬쩍 물음표를 띄웠다.
아서 깁슨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뭐. 근신 끝나자마자 황금 같은 일요일에 당직 서야 하는 지금 이 상황이 이상하지 않냐고?”
“……아뇨. 그, 제보 메일 말인데, 몇 번 읽어 보니까 약간, 뭔가 말하는 태도가 좀 께름칙하다고 해야 하나. 예를 들면 여기, 이런 부분 말이에요.”
한태경은 마우스 스크롤을 올려 문서에 적힌 글줄들을 강조했다. 가리킨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단순한 처벌로는 부족할 것이다…….
……죄인은 죽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속죄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지어니…….
“뭐랄까, 이건 마치…… 유진 연이 곧 죽을 거라 가정하고 쓴 글 같지 않아요? 아예 자기 손으로 직접 유진 연을 죽이겠다는 선언처럼도 보이고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익명의 제보자는 유진 연에 대한 강한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정보의 출처도 수상해요. 수사 진행 상황까지 아는 걸 보면 경찰 내부 자료를 훔쳐본 게 틀림없잖아요. 내통자가 있거나 해킹을 했거나 둘 중 하난데, 어느 쪽이든 이 녀석도 선의의 고발자 같은 건 절대 아니란 얘기죠. 고발 의도 자체가 의심된다고요. 어쩌면 증거들도 전부 조작된 걸지도…….”
“어이. 한태경이. 그건 너무 갔다, 인마.”
“알아요. 윌슨앤코 총수도 전부 인정했다면서요. 유진 연도 절대 떳떳하지는 않겠죠.”
“범죄자 옹호는 그만하고 일이나 해라, 그럼.”
“옹호하는 거 아니거든요. 그냥…… 찝찝해서요.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것 같다고요.”
한태경은 도통 그 찝찝함을 무시할 수 없었다.
파고들기 꺼려지면서도 본능적으로 호기심이 들었다. 어쩌면 이게 ‘경찰로서의 감’이란 녀석인 걸까.
“……분명히, 뭔가 있어…….”
자신의 감이 옳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선―
당사자를 직접 만나 보는 수밖에 없었다.
***
웨스트록 13구역.
서부 구치소 면회실.
“……이상이 앞으로의 일정과 주의사항입니다. 궁금한 점이나 다시 듣고 싶은 부분 있나요?”
철창 너머의 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핼쑥해져 있었다. 창백한 낯빛 탓에 흡사 백혈병 환자처럼 보였다.
“내일 아침 8시에 이송차가 올 겁니다.”
“예.”
“외부 연락은 금일 오후 6시 이후부터는 금지되니까, 전화 걸 사람 있으면 미리 해 두세요.”
“알겠습니다.”
“아픈 곳은 없죠?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준비가 덜 됐다면 재판일 연기를 신청할 수도 있어요.”
“괜찮습니다. 그대로 진행해 주세요.”
유진은 거리낌 없이 쭉 그렇게 말했다.
“…….”
한태경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기요.”
“예?”
“저는 딱히 당신 적이 아니에요.”
그녀의 시선이 찌릿 하고 유진을 찔렀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아군에 가깝죠. 아까 얘기했다시피, 내일 있을 재판은 사법 재판이 아니라 명목상 당신의 사회 복귀 적합 여부를 점검하는 집행회의이기 때문에, 변호사를 대동할 수 없어요. 다시 말해, 내일 그 자리에 당신 말고 당신을 변호할 권한을 가진 사람은 저밖에 없다는 얘기예요.”
유진은 묵묵히 한태경의 말을 들었다.
“당신은 사회 복귀 부적합자로 판정받을 거예요. AA급 전과자로 등급이 올라갈 테고, 그렇게 되면 평생 이 도시에서 사람답게 살기란 불가능해지죠.”
“…….”
“이건 모두 당신에게 원한을 가진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벌인 짓거리예요. 그러니까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으면 제발 좀 털어내 보라고요. 충분히 사법 거래를 시도할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꼬리 자르기 당하는 신세가 된 게 분하지도 않아요?”
한태경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유진은 시선을 떨구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담당관님은 의외로 성격이 좋은 분이셨군요. 처음 뵀을 때는 절 엄청 싫어하시는 줄 알았는데.”
“맞아요. 저 당신 별로 안 좋아해요.”
“그럼 왜 저한테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시는 건가요?”
“그건…….”
당신이 다 포기한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으니까.
내일 죽어도 상관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
“……그냥 답답해서 그러는 거예요. 답답해서.”
심경이 복잡했다. 한때는 인간쓰레기라고 매도했던 녀석인데, 어쩐지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묘한 동정심까지 들었다. 연민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한태경은 입술을 꽉 문 채 시선을 피했다.
유진은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10시간 넘게 잤어요. 여기 처음 온 날.”
그는 추억을 떠올리듯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다음 날이랑, 그다음 날도요. 3일 연속 두 자릿수로 자고 일어난 건 진짜 오랜만이었어요. 일과도 엄청 편했죠. 식사 시간 빼고는 거의 터치가 없더라고요. 책도 벌써 다섯 권이나 읽었어요.”
“…….”
“어차피 여기선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매일 아무 걱정 없이 푹 자고, 아무 생각 없이 대충 지냈어요.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죠. 얼레, 이렇게 사는 것도 그렇게 나쁘진 않은데?”
하루가 멀다고 찾아오는 온갖 종류의 트러블. 죽을 기세로 살았던 그동안의 나날들.
구치소에서의 생활은 지옥 같던 일상과 완전히 반대되는 심신의 평화를 유진에게 가져다주었다.
“처음부터 핀트를 잘못 잡았던 걸지도 몰라요. 그렇게 미칠 듯한 고생을 하면서까지, 제가 가진 일상을 영위할 필요는 사실 없었던 거죠.”
게임 속 세상에 떨어지고 3개월.
반쯤 게임 하는 기분으로 살아왔다.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도.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목적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암만 힘들어도 즐길 수 있었다.
게임이니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허나 어느새부턴가―
현실감이 밀려 들어왔다.
“어린애가 죽었어요. 제 욕심 때문에.”
“…….”
“결국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죠. 차라리 다 포기하고 순응했더라면, 죄책감만은 없었을 텐데…….”
미래를 바꿔 보려고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처참하게.
윌슨앤코 그룹은 이제 붕괴 직전에 놓였으며, 회사 사람들은 뒷세계 갱단의 보복 대상이 되었다.
자신은 곧 유죄 판결을 받아 수용소에 처박힐 것이다. 최소 10년 이상 징역살이를 하게 되겠지.
그렇게나 노력했는데, 전부 물거품이 되었다.
결국 찾아온 것은, 그저 오롯이 절망뿐인 현실.
“끝내고 싶어요. 그냥 다. 여기서.”
이대로 끝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했다.
유진은 언제든지 종료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어요.”
허나―
그는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까.”
유진의 눈동자에 진한 생기가 돌아왔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미래를 향해 있었다.
“……할 일이 남았다고요?”
“예. 그 아이가 부탁했거든요.”
유진은 토마가 남긴 마지막 말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때 한태경은 유진이 죽은 여동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어렴풋이 짐작하고 말을 아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제가 담당관님한테 숨기고 있는 것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
“음, 그래도, 얘기 나누고 나니까 계획을 살짝 변경해도 괜찮을 것 같군요. 원래는 담당관님보고 저 도와 달라고 협박할 생각이었는데 말이죠.”
“……협박이라고요?”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이 아니었다. 이미 협박 수단까지 여럿 마련돼 있었다. 상황을 보니 쓸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역시 그때 살려두길 잘했네.
유진이 속삭인 말을,
한태경은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