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02화 (102/201)

102화. Helter Skelter (6)

악마.

세상의 이치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존재.

‘라플라스의 악마’나 ‘데카르트의 악마’처럼, 과학과 철학의 역사에서는 예로부터 ‘악마’라는 가상의 존재를 빌어 특이한 이론에 대해 논의하곤 했다.

하지만 우리 마법사들에게 있어 ‘악마’는 조금 다른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일단 우리들의 악마란 라플라스나 데카르트의 것과 같은 가상의 개념이 아니다.

악마는 실존한다.

허면, 그들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냐?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악마란 그저 술사 개인이 지닌 죄의식의 실체적 발현일 뿐이라고도 말한다.

….

….

필자는 최근 흑마법을 각성한 지인을 만나 가벼운 담소를 나눴다. 그는 악마에게 심장을 바친 것치고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유머가 넘치는 인물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그 유명한 워털루 전투에서 그 유우우며어엉한 나폴레옹의 엉덩이에 <가장 어두운 부름>을 때려 박아 프랑스 제국의 전 황제를 영구 치질 환자로 만들어 버린 사악한 흑마법사가 바로 자기라고.

어쨌든 그는 틈만 나면 자신이 계약한 악마의 아티팩트 ‘카인의 단도’를 자랑스럽게 꺼내 들곤 했다.

카인.

성경에 기록된 인류 최초의 살인자.

악마가 그에게 준 첫 번째 힘은 보잘것없었으나, 두 번째 힘인 <가장 어두운 부름>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오로지 무언가를 죽이는 것에 특화된 마법이었다. 유기물이든 무기물이든 가림 없이 말이다.

“사실, 세 번째 힘도 있어요.”

그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악마가 선사한 세 번째 힘. 심지어 타인의 심장을 바치지 않고서 얻어냈다고 한다. 흑마법을 오랜 기간 연구한 나로서도 그런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그 힘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나에게 이렇게 답했다.

“비밀이에요.”

안타깝게도 그 비밀에 대해 알아내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어제 나는 그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흉흉한 이야기도 함께…….

***

야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카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일곱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카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

불쾌한 기시감.

버스터 캐논을 쏘기 위해 입을 벌린 그 순간, 자그말렉 피터스는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뭐지?’

그의 시선 끝에 있었던 것은 이제 전투 불능이나 다름없는 상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잔챙이.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불길한 예감이 휘몰아쳤다. 마치 곧 다가올 미래를 이미 보고 온 것처럼.

트롤은 육감의 경고를 쉬이 무시하지 못했다.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결국에는 망설였다. 1초만큼.

그 짧은 영겁의 틈에서,

유진이 무어라 속삭였다.

“―.”

그것은 아무도 듣지 못할 악마의 이름.

반드시 이루어지고 마는 필연적인 절망.

꿈틀―.

유진의 손끝에 기이한 일렁임이 생겨났다.

보랏빛 악몽. 괴기스럽게 피어난 아지랑이.

화아악―!

불꽃이 유진의 전신을 뒤덮었다.

이글이글 뿜어져 나온 자색의 화염은 곧 정면에 서 있는 자그말렉 피터스에게까지 마수를 펼쳤다.

“……?!”

트롤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사실 고작 그 정도의 허약한 불꽃으론 자그말렉 피터스의 피부를 데게 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허나 위력은 둘째치고, 눈에 보이듯 선명하게 전해지는 기묘함에 그는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다음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자그말렉 피터스는 이번에도 과장적으로 반응하며 어깨를 움츠러뜨렸다. 상당히 거센 폭발에 휘말렸음에도 역시나 그의 몸은 멀쩡했다.

‘…….’

그런데 왜인지,

트롤은 떨고 있었다.

‘마법……?’

<버닝 샷>. 그리고 <폭렬파>.

언제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아케인 파괴 마법. 유진이 쓴 것은 분명히 마법이었다.

‘이상하군. 마나 바큠은 그대로일 텐데.’

공기 중에는 붉은 에테르가 떠다니고 있다.

진공의 고압을 버티지 못하는 자색 마력으론 외부 방출이 불가해 마법을 쓸 수 없는 환경이거늘.

‘게다가, 방금 그 불꽃과 폭발은…….’

평소 유진이 사용하는 마법은 이른바 가짜 마법.

자색 마력과 <강화>를 조합하여 그 응용으로써 만들어낸 억지스러운 재현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이건…… 그냥 마법이 아니야…….’

뭐랄까, 아예 근본부터가 달랐다.

발밑에서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는 보랏빛의 잔불을 보고서, 자그말렉 피터스는 확신했다.

유지력 면에서 한참 뒤떨어지는 자색 마나의 불꽃은 금방 사그라들기 일쑤다. 때문에 본래의 자색 마력이라면 이런 현상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마나의 성질은 불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우주의 근간이 되는 법칙을 깨부수는 일.

이런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

‘마도魔導.’

마법을 초월한 마법.

술사로서의 경지가 극한에 다다른 자만이 비로소 엿볼 수 있는 술식 너머의 세계. 신의 영역.

‘어떻게 저 녀석이……?’

자그말렉 피터스는 상대를 보았다.

보랏빛 불꽃에 휩싸인 유진의 얼굴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는 검은 그늘만이 서려 있었다.

―얼굴 없는 자.

그걸 본 순간.

전율에 가까운 공포가 찾아왔다.

‘큭.’

식은땀이 흘렀다.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에는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녹아 있었다.

‘위험하다.’

마도를 깨우쳤다는 것은 단순히 조금 강해지는 수준에 그치는 각성이 아니었다.

아직 본인이 무얼 해냈는지도 깨닫지 못한 지금이 기회였다. 더 늦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망설일 때가 아니다.

자그말렉 피터스는 두꺼비처럼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지체 없이 아광속 버스터 캐논을 발사했다.

파아아아아―!!

하얀 섬광이 트롤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마도를 각성했다고 한들 본체의 체력은 이미 바닥나 있다. 더는 피할 여력도 막을 방도도 없으므로, 플로지스톤 빔에 맞아 흔적도 없이 녹아내릴 터.

입에서 캐논을 발사하는 동안, 자그말렉 피터스는 실눈을 뜨고서 상대의 최후를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러나―

‘아.’

막상 눈 앞에 펼쳐진 것은,

그가 원하던 광경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검은 구체가 있었다.

공간 그 자체가 지워진 흔적.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블랙홀.

버스터 캐논의 광선은 그 자그마한 흑색 공간 속으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갔다. 아니, 광선은 그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단지 거기서 없어졌을 뿐이었다.

‘저건, 분명…….’

텅 빈 구멍은 언제까지고 비어 있을 뿐.

자그말렉 피터스는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기시감은 여전히 눈알 근처에서 아른거렸다.

‘암귀의…….’

치직―.

그즈음.

빠루가 꽂힌 전두엽에 저릿한 충격이 전해졌다. 어지러운 노이즈와 함께, 십수 년 전의 기억이 차츰 되살아났다.

“아아.”

뇌를 짓누르는 통증이 가신 뒤,

비로소 트롤은 진실을 깨달았다.

“너였구나.”

모든 것을 알게 된 그가 내보인 것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미소였다.

“그래. 결국 네 계획대로 됐군.”

“…….”

“나는 잊지 않았다. 너희 남매가 벌인 짓거리를.”

얼굴 없는 자가 트롤에게 다가왔다.

자그말렉 피터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약속은 지켰다.”

일순 자색 섬광이 번쩍이며,

검은 구체가 그를 집어삼켰다.

***

고요했다.

적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

길었던 싸움의 종지부가 찍힌 뒤.

나는 모았던 숨을 한꺼번에 내뱉었다.

“후우우.”

끝났다.

드디어 끝난 것이다.

이겼어. 내가 이긴 거야.

살아남았어. 살아남았다고!

내 손으로 이룩한 평화.

마침내 도달한 밝은 미래.

진실된 감정이 막 북받쳐 올랐다.

기쁨의 눈물을 쏟아내기 직전이었다.

파르르 떨리는 왼손으로,

살며시 얼굴을 감싸 쥔 찰나.

….

….

그그극―.

카가가가각―.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오른손에서,

벌레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군체의 상태는 명백히 이상했다.

좁쌀 하나하나가 소름 끼치게 꿈틀거리며 사방팔방 날뛰었다. 쇠사슬이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뭐야, 왜……?”

곧 벌레들은 마구 몸부림치며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먹은 만큼 몸집을 불리고, 다시 또 먹어 치우는 것을 반복하여 시나브로 거대해져 갔다. 그렇게 자색 군체는 어느덧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가 되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벌레는 굶주림에 괴성을 지르더니, 급기야 스스로의 몸까지도 뜯어먹었다. 탐욕스러운 포식은 끝도 없이 계속됐다.

“제기랄, 그만……!”

나는 그게 더 이상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벌레 놈들과의 씨름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이쯤에서 내 말을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완전한 통제 불가 상태.

<부름>의 벌레는 커지고, 또 커졌다. 우로보로스처럼 자기 자신을 잡아먹으며 내리 증식했다.

그때쯤이 돼서야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녀석의 살집을 불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내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한한 양의 마나란 것을.

바닥, 벽, 잔해, 거대해진 벌레는 자기 몸체가 닿는 곳 전부를 순식간에 새까맣게 부식시켰다.

크기는 이제 터널 한쪽 면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심지어 불어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이거, 설마…….”

순간.

무서운 상상을 했다.

이게 끝까지 계속된다면,

대체 어디까지 커지는 걸까?

심장의 마나는 무한이니까, 아마.

<부름>의 벌레도 무한대로 커진다.

계속 불어난다. 멈추지 않고. 무한하게.

도시. 대륙. 지구. 이 땅을 전부 집어삼킨다. 그리고 우주에까지 퍼져나간다. 이 죽음의 바이러스가.

세상을 멸망시킨다.

“……안 돼…….”

나는 빌어먹을 오른손을 붙잡았다.

어떻게든 벌레들을 없애야 했다. 이빨로 손모가지를 물어뜯어서라도, 이 재앙을 막아야만 했다.

‘내 심장을 부숴 버린다면.’

왼손을 명치에 대고 고정시켰다. 가용 최대 출력의 <폭렬파>를 장전하고, 그대로 마법을 발사했다.

카가가가각―!

허나 벌레가 그걸 가만두지 않았다.

흐물거리면서 뿜어져 나온 자색의 거품 덩어리가 내 몸뚱이와 얼굴을 촉수처럼 빙빙 둘러 감쌌다.

“욱……!”

숨이 막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근육에서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의식을 유지하려 애를 썼지만, 그마저도 너무나 벅찼다.

안 돼, 안 돼, 안 돼, 나는 힘껏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내지르는 소리마저 새어 나오지 못했다.

……끝이다.

……모든 게 끝이 난다.

악마에게 심장을 바친 대가란 결국 이런 건가.

내가 저질러 버린 실수가, 곧 파멸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외칠 수 없는 입으로 수도 없이 악마의 이름을 외쳐 부르면서, 벌레를 내 안으로 거둬들이려 했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

….

….

내 눈에 보인 것은,

학생복을 입은 소년.

블랙 대거즈의 보스.

토마의 뒷모습이었다.

***

벌레가 내 손을 떠났다.

나는 원인 모를 괴상한 반동에 치여 뒤쪽으로 뻥 하고 튕겨져 나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휴우. 큰일 날 뻔했네요.”

몸을 추스르고 앞을 보자, 거기에는 벌써 집채만 해진 <부름>의 벌레를 뒤집어쓴 소년이 있었다.

“이건 좀 이상한데요. <서로의 존재를 지우는 능력>이 제대로 먹히질 않아요. 어떻게 중간에서 버티고는 있지만, 솔직히 계속 잡아둘 자신은 없네요.”

“…….”

“그래도 대충 알았습니다. 이 녀석은 유진 씨의 심장에 깃든 마나를 양분으로 증식하는 거죠? 이대로 두면 분명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지만…….”

토마가 입을 열어 말했다.

“방법이 있어요.”

어울리지 않게도,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