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Helter Skelter (5)
눈앞에서 적이 사라진 바로 그 직후.
자그말렉 피터스는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손끝에 전해지는 감각에 오롯이 집중했다.
‘또각거리는 구둣발의 압력.’
‘무게는 대략 70kg 내외인가.’
‘다른 쪽은 그보다 더 가볍다.’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적들은 분명히 이곳에 있었다. 트롤은 그 사실을 똑똑히 알았다.
둥둥 울리는 잔진동을 따라 그 발원지를 천천히 뒤따라갔다. 그가 멈춰 선 곳이 적들의 위치였다.
‘반응이 없다. 움직임의 변화가 미약해.’
‘당황하거나 서두르는 기색도 전혀 없어. 내가 코앞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결코 부릴 수 없는 여유.’
춤을 추듯 이어지는 논리적 추론.
‘놈들에게도 나는 보이지 않아.’
빠루가 꽂힌 트롤의 머릿속에서는 마치 선문답이 이루어지듯, 최소한의 단서만으로 해답이 쏟아졌다.
‘걸음의 울림이 조금 변했다.’
‘도망칠 셈은 아닌 것 같군.’
‘뭔가 노림수가 있나 본데.’
그렇게 다다른 진실은 곧,
그에게 승리를 확신케 했다.
‘난장판을 만들어 주마.’
괴물 트롤의 뱃속에는 무기가 있었다.
그의 두뇌가 초고도 지능을 버티지 못하던 시절, 핫도그인 줄 알고 삼켜 버린 지향성 버스터 캐논.
자체 내장된 미니 핵분열 장치를 이용해 아광속 플로지스톤 빔을 발사하는 에너지 웨폰이었다.
그는 평소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마다 딸꾹질과 트림이 동시에 나오는 해괴한 버릇이 있었는데, 이때 버스터 캐논의 트리거가 건드려지며 빔이 뿜어졌다.
자그말렉 피터스는 아무래도 그걸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쓰고 나면 속이 굉장히 쓰렸으니까.
입을 크게 쫙 벌리고,
횡경막을 힘껏 친 다음,
위장 속 공기를 슥 꺼내면,
번쩍―.
눈부신 하얀 빛과 함께,
버스터 캐논이 발사된다.
콰과과과과과광―!!
자그말렉 피터스의 입속에서 뿜어져 나온 광선이 콘크리트 바닥과 천장을 수직으로 갈랐다.
이어서 시작된 것은 무차별 난사. 트롤이 광선을내뿜는 채로 머리를 마구 흔들자, 이리저리 휘둘러지는 캐논 빔이 기둥과 벽을 엉망진창으로 부서뜨렸다.
“뭐, 뭐야?!”
유진은 당황했다.
그와 토마에게는 자그말렉 피터스가 발사한 버스터 캐논의 광선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시점에서는 단지 건물이 저 혼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을 뿐.
쿠구구궁―!
천장의 부서진 잔해들이 유진과 토마의 머리 위로 와르르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바닥이 갈라졌다.
“아.”
콘크리트의 균열이 찢어발겨지면서,
그들은 곧 부서진 땅 밑으로 추락했다.
***
시설의 지하는 거대한 터널이었다.
도시 각 지역의 무수한 소형 발전기들로부터 연결된 마나 케이블이 지나가는 땅 아래의 샛길.
“큭…….”
터널 바닥에 착지한 나는 빠르게 몸을 추스른 다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함께 추락한 소년이 무너진 잔해들 사이에 깔려 들어가 있었다.
“토마!”
나는 황급히 소년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떨어진 높이는 약 10미터. 내 몸은 <강화> 덕에 멀쩡할 수 있었지만, 토마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괜찮냐? 야!”
불러 봐도 대답이 없었다.
다만 죽은 것 같지는 않았다.
자세히 보니, 토마는 콘크리트 더미에 깔린 게 아니라 그것과 겹쳐진 상태로 있었다. 물리 엔진이 그다지 사실적이지 못한 게임의 3D 폴리곤처럼.
<서로의 존재를 지우는 능력>으로 잔해의 존재를 지워, 깔려 죽는 것까진 막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
마냥 낙관할 때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시야가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다. 이는 공기 중에 고농도의 에테르가 함유되어 있을 때 일어나는 현상.
토마의 능력이 일부 해제된 것이다.
돌아온 것은 아마, 에테르만이 아니라…….
“거기 있었군.”
그럼 그렇지.
빌어먹을 트롤 자식까지도 돌아왔다.
“이제 도망칠 곳은 없다.”
“…….”
“마무리를 지어 볼까.”
한걸음. 그리고 또 한걸음.
자그말렉 피터스가 내가 있는 곳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왔다. 이제 다섯 걸음 정도가 남았다.
―이길 수 있을까?
컨디션은 최악. 온몸이 상처투성이.
<부름>마저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황.
결말은 뻔했다. 얇아빠진 허무주의 예술 영화처럼.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그저 하릴없이 발버둥만 치다가, 끝내 맞이하는 최후는 무던한 죽음뿐이겠지.
무의미한 싸움이 시작됐다.
예측은, 안타깝게도 들어맞았다.
급소를 노린 <폭렬파>. 통하지 않았다.
거리를 벌리고 <버닝 샷>. 통하지 않았다.
카운터로 받아친 <부름>도. 통하지 않았다.
역부족이었다. 그럴싸한 발악조차 할 수 없었다.
피지컬. 전략. 경험. 센스…… 모든 능력치에서, 나는 자그말렉 피터스에게 상대도 되지 않았다.
곧 만신창이가 되었고,
이제 일어설 힘도 없었다.
“약한 주제에 오래도 버텼군.”
손가락 사이에서 벌레 떼가 초라하게 자글댔다.
<부름>을 어떻게든 먹여 보려 했지만, 끝까지 닿지 못했다. 결국 트롤의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끝이다. 흑마법사.”
자그말렉 피터스가 입을 크게 벌렸다.
아광속 버스터 캐논. 맞으면 죽는 즉사기.
한차례 눈을 깜빡이자,
번쩍이는 광선이 보였다.
―아. 이건 죽겠네.
눈을 감았다. 모든 감각이 사라졌다.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기도 했고,
잠깐 1초 정도 멍하니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앞에 누군가 있었다.
“안녕.”
그것은 소녀였다.
검은 머리를 한 소녀.
“너는 죽었어.”
***
소녀는 웃고 있었다.
쓰러진 나를 내려다보며.
“뭐……?”
내가 물음표를 띄우자, 소녀는 가만히 속삭이듯이 말했다. 나지막이 지은 미소를 유지한 채로.
“꼴사나운 죽음이었지. 이야깃거리조차 되지 않을, 당연하고 하찮은 한 생명의 상실. 내가 보고 싶었던 너의 죽음은 그런 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나는 슬며시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별빛 하나 없는 새까만 밤하늘. 텁텁한 붉은 빛의 황무지. 하얀 원피스를 입은 검은 머리의 소녀.
어쩐지 예전에 와본 적 있는 장소 같았다.
하지만 뭔가 그때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그거 알아? 어느 아프리카 부족의 전설에 의하면 세상에는 두 명의 신이 있는데,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는 그들이 달리기 시합을 해서 정하는 거래.”
“…….”
“불쌍하게도, 이번에 너를 살리기 위해 달린 신님은 느림보 굼벵이였나 봐.”
소녀는 그리 말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녀 역시 전에 만났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왜인지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뭐,
달라졌든 어쨌든.
“야.”
지금 이 순간에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 좀 살려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소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말도 안 되는 부탁을 다 하네.”
앞뒤 재지 않고 냅다 던진 말에,
검은 머리의 소녀가 흥미를 보였다.
“넌 할 수 있잖아. 악마니까.”
“그야 물론. 할 수는 있지.”
그녀는 노래하듯이 말했다.
“삶이란 시간. 죽음은 그 시간을 빼앗는 것. 나는 네가 빼앗긴 시간을 돌려줄 수 있어.”
“…….”
“하지만 그것뿐이야. 나의 힘은 과거를 없던 일로 할 수는 있어도, 미래를 바꾸지는 못해.”
소녀의 보랏빛 눈동자가 나를 직시했다.
“나머진 네 몫이야. 항상 그랬듯이.”
붉은 황무지에 모래폭풍이 휘몰아쳤다.
“잊지 마.”
“우린 서로 심장을 나눈 사이란 걸.”
“너는 아직 내 소원을 이뤄주지 않았어.”
하늘 위의 죽은 별들이 대지로 떨어졌다.
“그때까지는.”
“계속 나를 불러줘.”
“네가 원할 때면 언제든.”
“나는 네 곁에 있을 테니까―.”
곧 세상은 영원한 암흑에 잠식됐다.
허나 검은 구덩이 속에, 빛이 있었다.
나는 그 빛을 움켜쥐었다.
그렇게 한 번 더. 눈을 떴다.
눈을 뜬 나는 만신창이였다.
일어설 힘도 없는 상태였다.
그렇지만,
살아있었다.
아직 죽지 않았다.
여전히 싸울 수 있다.
“약한 주제에 오래도 버텼군.”
손가락 사이에서 벌레 떼가 초라하게 자글댔다.
지금 낼 수 있는 <부름>은 이 정도가 한계였다. 3cm 남짓의 군체로는 괴물 트롤의 피부에 생채기 하나 입힐 수 없었다. 놈이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좌우지간.
이걸로는 못 이긴다.
이대로라면 죽는다. 아까랑 똑같이.
다시 같은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무슨 짓을 한다 해도,
미래를 바꾸지 못한다.
“끝이다. 흑마법사.”
미래를 바꾸고자 한다면,
무슨 짓을 해야 하는 걸까.
***
해서는 안 되는 짓이란 게 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위험한 행동.
펄펄 끓는 기름 속에 손을 담그는 것.
날카로운 송곳에다 눈알을 갖다 대는 것.
고속으로 달려오는 트럭에 몸을 던지는 것.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부름>에 <강화>를 쓴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이번에 처음 떠올린 생각은 아니었다.
<부름>을 쓸 수 있게 됐을 때부터 줄곧 두뇌 한구석에서 틈만 나면 그런 생각이 윙윙 맴돌곤 했다.
허나 실행에 옮긴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건 이론적으로 불가능했다.
<강화>를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대상이 되는 물체에 마나를 깃들게 해야 한다.
하지만 <부름>의 군체는 모든 것을 집어삼켜 없애 버린다. 나 자신의 마력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는 내가 <부름>을 쓸 때마다 동시에 다른 마법을 제대로 구사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름>을 <강화>한다는 공포스러운 상상이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그극. 카가가각―.
손가락 사이에서 벌레 떼가 초라하게 자글댔다.
왜인지 그것들이 나에게 부추기는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손에는 칼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칠흑처럼 빛나는 날을 가진 검은 단검이.
악마를 부르는 금지된 성물.
흑마법 아티팩트. 카인의 단도.
……뭐지?
……이게 왜 여기에 있지?
환각 따위가 아니었다. 거친 표면과 묵직한 질량이 느껴지는 실체. 단검은 분명히 오른손에 있었다.
두근―.
그때. 심장의 고동이 느껴졌다.
내 가슴속에서 울린 것이 아니었다.
고동의 진원지는…… 오른손의 단검.
지옥불처럼 욱신거리는, 악마의 심장.
나는 그것에 조심스럽게 마력을 흘려보냈다.
….
….
깃들었다.
단검 속에 자색 마나가 또렷이 간직됐다. 마치 내 신체의 일부인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
해서는 안 되는 짓이란 게 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위험한 행동.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나는 모른다. 내가 알 턱이 없다.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것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면.
“카인 나호르.”
설령 지옥이 펼쳐진대도.
몇 번이라도 저지를 것이다.
“<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