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Helter Skelter (4)
자그말렉 피터스가 주먹을 휘두른 순간.
그의 시야에서 돌연 유진의 모습이 사라졌다.
부웅―.
휘두른 주먹은 그대로 쓸쓸히 허공을 갈랐다.
트롤은 침착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
….
없다.
어디에도 없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없었던 것처럼,
눈앞에서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췄다.
‘눈속임 같은 게 아니야. 정말로 사라졌다.’
보고도 믿기 어려운 미스터리한 소실.
허나 이 기이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해답은 분명히 있었다.
‘어떻게 사라진 거지?’
아이큐 300에 달하는 초고도 지능을 가진 자그말렉 피터스의 두뇌가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했다.
―아티팩트? 환시성 장치?
아닐 것이다. 그런 걸 쓰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요. 애초에 이 장소를 고른 것은 자신이다.
그렇다면―
‘마법?’
유진이 사용 가능한 마법은 <강화>와 <부름>뿐. 더구나 이곳 일대는 현재 마력 방출에 한계가 있는 마나 진공 환경.
다른 마법사가 개입했다면 마나의 흔적이 있어야 하지만, 주변에 그런 것은 없다.
‘마법보다 좀 더 그럴싸한 대답은…….’
마법이 아니라고 한다면,
가능성은 하나로 귀결된다.
‘초능력.’
자그말렉 피터스는 유진이 사라진 찰나의 장면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그것을 찬찬히 되새겼다.
그때 상대는 무언가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휘두른 주먹을 보고 놀란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거기에 누군가가 있었다.’
유진 연을 구하러 온 동료이자,
에스퍼라 칭해지는 초상 능력자.
‘블랙 대거즈의 보스로군.’
베일에 싸인 수수께끼의 인물.
자그말렉 피터스조차도 블랙 대거즈의 현 보스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다. 그나마 숙지한 정보라곤, 그가 초능력을 가진 에스퍼라는 것 정도.
어쨌건 상황은 대충 알았다.
초능력을 써서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능력인 걸까?
―투명화?
―순간이동?
―환각 작용?
에스퍼의 초능력은 대개 성질이 복잡하다.
염동력이나 독심술과 같이 마법과 크게 다르지 않은 대중적이고 간단한 능력은 오히려 소수.
‘주어진 단서만으로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며 불필요. 불확실한 추측은 외려 해가 될 수 있다. 수수께끼를 애써 풀려 하지 말고, 상황에 집중할 것.’
모든 것을 파악할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은 승리를 위한 정보뿐.
‘놈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있다. 걸리적거리는 내음이 모래알처럼 콧속을 누비며 떠다니고 있다.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자그말렉 피터스는 무릎을 꿇어 땅바닥에 손을 짚었다.
눈을 감고, 그저 가만히, 손바닥에 전해지는 촉각에 오롯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
….
진동.
미약한 떨림.
둥―.
콘크리트 바닥의 거친 돌기로부터,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는 파동이 느껴졌다.
초인적으로 예민한 감각을 가진 자그말렉 피터스이기에 겨우 느낄 수 있는 자극.
둥. 둥―.
이것은 분명히,
발걸음의 압력이다.
‘…….’
틀림없다.
누군가 바닥 위를 걷고 있다.
‘그렇군.’
그 진동은 분명히,
두 사람분의 무게감.
‘아직 여기에 있다.’
***
나는 똑똑히 보았다.
바닥에 쓰러진 나를 향해 자그말렉 피터스의 주먹이 날아오고 있었을 즈음, 토마가 나타났다.
그 순간.
트롤의 주먹이 토마의 몸을 관통했다.
……아니. 표현이 조금 틀린 것 같다.
관통했다기보다도, 통과했다고 해야 하나.
마치 그 자리에 토마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주먹은 그대로 공간을 휑 뚫고 지나가 버렸다.
내 눈에는 자그말렉 피터스의 팔뚝과 토마의 몸뚱이가 일순 비현실적이게 겹쳐진 상태로 보였다.
그리고 그때.
토마가 뻗은 손이 내 가슴팍을 살며시 밀쳤다.
….
….
그러자,
자그말렉 피터스가 사라졌다.
고농도의 에테르로 인해 새빨갛게 물들었던 시야 또한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휴우. 큰일 날 뻔했네요.”
학생모를 쓴 검은 머리 소년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녀석은 바닥에 있는 나를 돌아보았다.
“무사하신가요, 유진 씨?”
“……그럭저럭…….”
나는 아픈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아리엘은…….”
“지나가 구하러 갔어요. 폭탄도 용병도 전부 처리했습니다. 저는 발이 굼뜬데다 요령이 없어서 시간이 좀 걸렸어요. 늦게 와서 정말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며, 토마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
사과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미래를 바꿔 보겠답시고 괜히 자그말렉 피터스를 건드린 바람에 녀석들까지 휘말리게 해 버렸으니.
물론―
지금은 자책이나 하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재차 상황을 살폈다.
아까 전에 토마가 내 몸을 터치한 순간, 자그말렉 피터스와 공기 중의 에테르가 갑자기 사라졌다.
사실은 꽤나 익숙한 광경이었다.
토마는 항상 아무도 없었던 자리에 갑자기 뿅 하고 마술사의 비둘기처럼 나타났다가, 도로 다시 관심병사의 탄피처럼 없어지곤 했으니까.
“초능력을 쓴 거지?”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의 존재를 지우는 능력>이에요.”
“존재를 지워……?”
“제 능력은 대상 A와 B가 서로를 관측하지 못하게 만들어요. 능력이 작용하는 동안 A와 B는 서로에게 그 어떤 직접적인 영향도 주지 못하죠.”
“…….”
“발동 조건은 A 혹은 B 둘 중 하나와 저의 신체가 접촉하는 것. 그러니 저 자신이 능력의 대상으로 설정된 경우에는, 객체 대상에 제한이 없어요.”
A: 토마 / 유진
B: 자그말렉 피터스
A의 세계에는 B가 없다.
B의 세계에는 A가 없다.
A는 B를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다.
B도 마찬가지다. A와의 접촉은 불가능.
서로의 존재를 지운다…….
과연, 이해하고 보면 무시무시한 능력이었다.
우선은 생존력. 총이나 마법으로는 녀석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다. 총알이든 파이어볼이든, 그 존재를 지워 버린다면 맞을 일이 없을 테니까.
사람을 죽이는 것도 매우 간단하다.
가령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 ‘암살 대상’과 ‘비행기’를 능력의 대상으로 설정한다면?
이 세상의 어디든지, 누구에게든 들키지 않고, 무엇이든 가지고서, 아주 손쉽게 잠입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무궁무진한 활용이 가능하며, 생존력과 살상력을 동시에 겸비한 사기급 초능력.
“네가 내 편이라 참 다행이네.”
그런 능력을 가진 녀석이 심지어는 테러리스트다. 블랙 대거즈가 최악의 테러 단체로 악명이 자자한 것에는 필히 토마의 능력도 한몫했을 터.
“아무튼 덕분에 살았다. 고마워.”
“안심하기엔 일러요. 지금은 단지 강제 휴전에 돌입했을 뿐. 적은 아직 이곳에 있습니다.”
토마가 물었다.
“이제 어쩌실 건가요?”
일단,
몸 상태는 절망적이다.
전신의 근육이 터질 듯이 욱신대며 후들후들 떨리고 있다. 아마도 <무한 강화>의 반동이겠지.
<강화>의 반작용으로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에, 또다시 <강화>를 걸어 억지로 버티는 중이다.
이런 몸으로는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 없다.
도망치는 것이 맞다. 합리적인 판단은 그렇다.
하지만―
“싸워야지.”
이미 놈은 내 정체를 알고 있다.
도망친다고 해도 다시 나타날 거다.
나 또한 그렇지만, 상대 역시 적잖은 데미지를 입었다. 빈사 상태의 자그말렉 피터스를 상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다시없을 천재일우의 기회다.
정녕 미래를 바꾸고자 한다면.
지금 여기서, 끝장을 봐야 한다.
“계획은 있나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토마, 지금 네 능력으로 에테르를 없앤 거지?”
“예. 저는 마력이 없는 일반인이라 에테르의 독성에는 견디지 못하거든요.”
“그러면 혹시 이 공간에 있는 에테르 자기장이나 마나 진공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어?”
토마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무리예요. 능력의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는 건 제 눈에 보이거나 피부로 느껴지는, 제가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는 것뿐이라서요.”
“에테르 자기장은 아마 시설 지하 원자로의 플랜트에서 형성될 텐데…… 그걸 없애는 건?”
“소용없을 거예요. 제 능력은 간접적인 영향까지 없애지는 못해요. 예를 들어 불꽃의 존재를 지운다고 해도, 그 불꽃으로 인해 주변이 뜨거워지는 것까진 막을 수 없어요. 자기장의 원인을 제거한다고 해도, 생성된 자기장이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녀석의 말대로였다.
마나 순환을 방해하던 공기 중의 에테르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무한 강화>를 사용할 수 없었다. 에테르는 지워졌지만, 그것으로 인한 압력은 그대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극단적인 마나 진공 상태를 되돌리는 것도, 아예 진공 환경을 없애 버리는 것도 불가능.
“믿을 건 <부름>뿐인데…….”
나는 오른손을 내려다보며 마력을 집중시켰다.
손가락 틈으로 조그마한 군체가 꿈틀거렸지만 세력을 더 키우진 못했다. 애매한 진공의 압력이 마나가 뻗어져 나오는 걸 방해하고 있었다.
고작 3cm 남짓의 흑마법.
이걸로 놈을 해치울 수 있을까.
……다른 방법은 없나?
“유진 씨.”
내가 한숨을 짓던 그때.
토마가 입을 열어 말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뭐?”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어요.”
어울리지 않게도,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상대는 틀림없이 어마어마하게 강한 것 같지만, 제압할 수 있습니다. 제 능력이라면 가능해요.”
“어떻게 하려고?”
“지구에서 내쫓을 거예요.”
….
….
뭐지?
잘못 들었나?
“간단해요. ‘자그말렉 피터스’와 ‘지구’를 대상으로 설정하고, 능력을 발동하는 겁니다.”
토마는 자신만만한 어투로 말했다.
나는 순간 벙쪄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
그러니까.
이런 얘기지.
자그말렉 피터스의 세계에서,
‘지구’란 존재를 없애 버린다면.
놈이 디딜 땅은 사라지고,
말 그대로 우주로 쫓겨난다―.
“그렇게 하면 이길 수 있어요.”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이론에는 문제가 없지 않나요?”
“……지구를 없앤다니, 그 정도 스케일로 능력을 쓰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한 거야?
“으음, 잘하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자식도 정상은 아니구나 싶었다.
하긴 테러리스트니까. 정상일 리가 없지.
“뭐, 시도는 해볼 수 있겠지.”
당연히 나도 정상은 아니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생각이니.
“대상의 규모가 큰 만큼 확실하게 능력을 적용시키려면 두 대상에 모두 접촉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그말렉 피터스와도 접촉해야 한다는 얘기지?”
“틈을 만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잠깐 버티는 것 정도라면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저는 적당한 위치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을게요. 유진 씨가 신호를 주세요.”
우리는 즉석에서 간단한 계획을 세웠다.
제대로 통할지 안 통할지도 모르는 미친 계획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썩 마음에 들었다.
“그럼, 능력을 해제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작전에 돌입하기 직전.
….
….
진동.
미약한 떨림.
둥―.
뭔가 이상했다.
주변이 온통 불길한 기운에 잠식됐다.
곧 다가올 위험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저 멀리 떨어진 소년에게 전달하기 전에―
쿠구구구구궁―!!
바닥이 일렬로 뚫리며,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