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Helter Skelter (3)
자그말렉 피터스에게 있어 ‘아프다’라는 것은 무척이나 생소한 감각이었다.
하물며 거기에 ‘두렵다’라는 감정까지 드는 경우는 드물다 못해 아예 있지도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트롤의 두뇌는 침착하게 상황을 살폈다.
마나 진공 상태를 구축함으로써, 유진이 사용하는 자색 마나와 <강화> 간의 상당한 시너지가 발생하리란 것쯤은 진작 상정해 두고 있었던 바다.
하지만,
방금 전 공격의 위력은―
‘나보다 강하다. 명백하게.’
단 한 방만으로 확실히 체감됐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의 파워. 상정해 두었던 100배가량의 시너지를 월등히 초과하는 괴기적 강함.
이전의 전투에서 직접 확인한 유진의 마나 출력량은 웬만한 가이우스급 마법사 이상이었다.
자그말렉 피터스는 방심하지 않았다.
이 싸움이 벌어지기 전, 그는 유진의 최대 출력이 소위 ‘대마법사’라 칭해지는 단계인 티베리우스급에 도달했을 것이라 짐작했다.
허나 그마저도 내려치기였다.
실제 출력은 어쩌면, 한 시대에 많아야 서너 명쯤 존재했다 전해지는 아우구스투스급과 대등.
‘계산이 틀렸다.’
유진을 상대하기에 앞서, 자그말렉 피터스가 가장 경계했던 것은 <부름>의 힘.
<부름>을 억제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패배하는 경우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유진이 <부름>을 사용할 수 없도록 마나 진공 환경을 만들었으나, 이는 치명적인 악수惡手.
상대의 포텐셜을 100% 이상 끌어올릴 수 있는 홈그라운드로 초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환경을 조성한 것은 실수였어.’
마나 진공은 공간의 잔존 마나량이 0에 가까울 때, 에테르 자기장이 해당 범위 내 새롭게 방출되는 마력 에너지의 공명을 방해함으로써 유지된다.
발전소 시설 지하의 마나 원자로를 긴급 가동하여 A구역 일대에 에테르 자기장을 발생시켰다.
원자로 가동을 중지한다면 필히 마나 진공 상태에서 벗어날 테지만…….
‘불가능.’
유감스럽게도―
자그말렉 피터스는 방심하지 않았다.
이미 비상 정지 시스템까지 망가뜨려,
원자로 가동은 절대로 중지할 수 없다.
‘위험해졌군.’
자승자박. 완벽한 자충수.
빠져나갈 구멍을 막아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아 버린 그 구멍이 본인의 탈출구였을 줄이야.
최강의 트롤은 이 순간,
틀림없이 핀치에 몰렸다.
‘하지만.’
예상하고 있었다.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날 것쯤은.
‘아직까지는 계획대로다.’
자, 그럼.
어떻게 하면 저 괴물을 이길 수 있을까―.
***
힘.
생물로서의 원초적인 강함.
자그말렉 피터스는 그 분야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단연 ‘지상 최강의 생명체’ 중 하나였다.
그동안 신체 능력으로 밀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맨몸만으로도 누구든지 죽일 수 있었다.
힘이 모자란 이들은 장비에 의존한다.
화기. 냉병기. 배틀기어. 임플란트 바디…….
당연하지만 싸움꾼 자그말렉 피터스는 그런 자질구레한 물건들과는 아주 조금의 인연도 없었다.
그 어떤 놀라운 성능의 장비라 해도, 그에게는 그저 거추장스러운 잡동사니에 불과했다.
피지컬 싸움에서 진 적은 없었다.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신체 능력에서 밀릴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경우를, 자그말렉 피터스는 배제하지 않았다.
“미리 준비하길 잘했군.”
그가 누더기 같은 옷자락을 슥 걷어붙이자,
양팔에 부착된 배틀기어 보조기가 드러났다.
“전원 시동.”
장치에 불이 들어오고, 접이식 프레임이 복구되며 금속끼리 맞물리는 소리를 냈다. 어느덧 트롤의 양쪽 팔은 기계화 장갑으로 덧씌워져 있었다.
스테이트 아머리 MT-44 ″마이크 타이슨″.
출력으로 승부하는 고성능 일체형 전투철완.
“도핑 실시.”
철완의 약물 주입 장치를 통해,
체내에 직접적으로 강화제를 투입.
이내 핏줄들이 튀어나올 듯이 달아오르며, 원래부터 거대했던 근육이 더욱더 거대하게 팽창됐다.
장비와 약물로 강해진,
지구상 최강의 생명체.
“덤벼라.”
자그말렉 피터스의 도발과 동시에,
유진이 한 발짝 걸음을 앞으로 디뎠다.
….
….
아니.
코앞에 있었다.
“……!?”
빠르다.
실로 비정상적인 스피드.
하지만―
이번에는 움직임이 보였다.
공격이 오기 전에, 먼저 휘두른다.
자그말렉 피터스는 정면에 다가온 상대에게 거친 환영을 표하듯 일심전력의 주먹을 뻗었다.
파카아아아아아앙―!!
바로 그 순간을 기념하듯이,
시원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그 펀치는 정확히 명중.
제대로 들어간 일격이었다.
….
….
아니.
닿지도 않았다.
자그말렉 피터스가 주먹을 뻗은 순간.
들렸던 소리는 자기 얼굴이 부서지는 소리.
공격이 오기 전에, 먼저 휘둘렀다.
노림수는 앞섰다. 자신이 주먹을 휘두른 지 한참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상대가 공격을 시작했다.
그런데도.
당한 쪽은 자신이었다.
상대의 공격은 분명히 보였다.
다만, 보이기만 했을 뿐이었다.
노림수는 한 타이밍 빨랐으나,
스피드에서 열 타이밍 모자랐다.
게다가―
‘더 강해졌다……?’
최초의 일격보다도 묵직하게 들어온 데미지.
이는 약물을 투약한 것으로 인해 자그말렉 피터스의 감각이 예민해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나 진공 환경에서 마법사의 신체란,
엔트로피란 개념이 무의미해진 고립계.
마력 에너지가 전부 소모되지 않는 한, 마법은 일회성으로만 작용하지 않고 계속해서 중첩된다.
체내의 자색 마력이 100%의 효율로 순환하며 <강화>를 중첩시킨다. 끊임없이. 무한하게.
뼈. 근육. 피부. 신경. 두뇌.
최고조까지 강화된 신체가 생물적 한계점에 이르면, 끝없이 반복되는 <강화>가 세포의 구조와 시스템까지 갈아엎고, 다시 또 강화를 이어간다.
그것은 이미 강화가 아닌,
진화에 가까운 극단적 성장.
<익스트리미티 오버드라이브>
무한한 <강화>로 이룩한 초월적 경지.
지금 유진의 몸은 오로지 상대를 때려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파괴신의 육체나 다름없었다.
철완과 강화제 따위로는,
신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뻐억! 빠악! 콰드득―!!
유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거의 하늘을 날듯이 움직이며, 육중한 트롤의 몸을 마치 셰퍼드의 장난감처럼 엉망진창으로 가지고 놀았다.
자그말렉 피터스는 어퍼컷 한 방에 천장까지 박혔다가 축 늘어지며 바닥에 내리꽂혔다.
명치를 강타한 일격에 이어,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연격이 온몸 구석구석에 가해졌다.
쿠구구궁―!
그 여파로 건물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4층에 떨어지고도 유진은 주먹을 멈추지 않았다. 바닥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또다시 박살 났다. 3층. 2층. 마침내 1층 로비에까지 떨어졌다.
쿠우우우우웅―!!
텅 빈 회색 공간의 한가운데에 자그말렉 피터스의 몸뚱이가 추락했다.
트롤이 검붉은 피를 토했다. 이제 최후의 한방을 급소에 꽂는다면,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트롤의 인중을 노리고,
주먹을 내지르려던 순간.
멈칫―.
유진이 주춤했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있었다.
곤죽이 된 입술 사이로 피 섞인 가래를 질질 흘리며, 자그말렉 피터스가 힘겹게 목소리를 냈다.
“……왜…… 멈췄지……?”
짧은 정적 후에.
유진이 입을 열었다.
“원자로.”
“…….”
“지하에 있다고 했지.”
자그말렉 피터스의 노림수를,
그가 알아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내가 핫바지로 보이냐?”
지하에는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아까 한 말을 그대로 돌려줘 볼까.
“넌 여기서 죽는다.”
유진은 트롤의 등을 발로 힘껏 걷어찼다.
미사일처럼 날아간 3미터의 장대한 몸뚱이는 기둥에 쾅 하고 부딪히며 힘없이 튕겨져 나갔다.
“죽을 때까지 패주마.”
쓰러진 상대에게 성큼성큼 걸어가던 그때.
유진의 눈이, 무언가 거슬리는 것을 포착했다.
스윽―.
트롤의 한쪽 손에,
리모컨이 들려 있었다.
5층에서 모니터를 조작한 것과는 다른 종류의 물건이었다. 지금 것은 스위치가 하나뿐이었다.
“……지하까지 내려갈 생각은 없었다…….”
그 무렵 자그말렉 피터스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목적은, 처음부터 1층에 있었으니…….”
꾹―.
놈이 스위치를 눌렀다.
….
….
그러자,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
“……?!”
유진은 전에 이것을 본 적이 있었다.
마나 분열의 잔여물, 에테르였다. 공기 중의 에테르 농도가 높아지면 이렇게 붉은빛을 띠었다.
에테르는 마나를 소모시킨다. 허나 마나 보유량이 무한한 유진이라면 이 정도 농도의 에테르에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눈만 조금 피곤할 뿐.
달라진 건 없다. 할 일을 계속하면 된다.
지금 할 일은 상대를 마구 패버리는 것이다.
유진은 포착하기 어려운 스피드로 돌진했다.
여태 계속 그래왔던 것처럼, 자그말렉 피터스가 감히 대처하지 못할 공격을, 주먹에 날려 보냈다.
파아아아아앙―!
바로 그 순간을 기념하듯이,
시원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그 펀치는 정확히 명중.
제대로 들어간 일격이었다.
….
….
아니.
완전히 막혔다.
전력으로 날린 주먹이,
트롤의 손에 가로막혔다.
“원자로를 가속시켜 에테르 발생량을 늘렸다. 진공 상태는 유지되지만, 압력은 많이 약해지지.”
그때
자그말렉 피터스가 말했다.
“너는 이제 마법을 쓸 수 있다.”
“…….”
“대신 <무한 강화>는 끝난 것 같군. 지금도 인간 기준으로는 상당히 강한 축에 속한다만…….”
놈이 유진의 손을 꽉 붙잡았다.
벗어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보다는 약하다. 명백하게.”
자그말렉 피터스는 손아귀에 붙잡은 팔을 휙 돌려 유진의 몸뚱이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빠아아악―! 꼬리뼈부터 뒤통수까지 척추 전체가 딱딱한 콘크리트에 그대로 처박혔다.
퍼버벅―!
이어서 복부에 꽂힌 주먹의 연타.
연속돼서 가해진 충격에,
순간적으로 호흡이 끊겼다.
“……컥……!”
가히 미친 수준의 공격력이었다. 자그말렉 피터스는 지금껏 입은 데미지가 무색하게도 완력과 체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상황이 역전되었음에도,
유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원자로를 가속시켜 에테르 발생량을 늘렸다. 진공 상태는 유지되지만, 압력은 많이 약해지지.”
“너는 이제 마법을 쓸 수 있다.”
똑똑히 들었다.
마법을 쓸 수 있다면―
“……카인…… 나호르……!”
유진은 손을 뻗으며 가까스로 외쳤다.
주인이 부르는 소리에, 벌레 떼가 뛰쳐나왔다.
….
….
그러나,
손가락 끝자락에서 멈췄다.
“……아…….”
마나 진공 상태는 계속 유지되고 있었기에,
자색 마나의 방출 한계는 겨우 그 정도였다.
“그래. 절망해라.”
지옥보다도 낮은 목소리로,
자그말렉 피터스가 읊조렸다.
“절망 속에서 죽는 것 또한, 너의 업보일지니.”
유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다른 수를 떠올렸다.
‘……제기랄…….’
하지만 없었다.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진짜로, 이렇게 죽는 건가…….’
최후의 순간.
그의 눈에 마지막으로 비친 것은, 자기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자그말렉 피터스의 주먹.
….
….
그리고
학생복을 입은 소년.
“……어……?”
블랙 대거즈의 보스―
토마의 뒷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