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Helter Skelter (2)
나는 눈을 치켜뜬 채로 놈을 응시했다.
서로가 앉은 의자 사이의 거리는 적어도 8미터는 되었으나, 그보다 훨씬 가까운 것처럼 느껴졌다.
“이틀간 너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다.”
“…….”
“10년의 공백을 지나 다시 돌아온 암귀, 가면 쓴 흑마법사 ‘카이트’라는 인물의 정체가 ‘유진 연’이라는 사실을 알아내는 것은 무척이나 간단했지.”
자그말렉 피터스는 내 정체를 파악하기까지의 경위를 발표 시간의 우등생처럼 또박또박 설명했다.
첫 번째 타겟이었던 갱단 <데스트루퍼>와, 그곳의 자금을 관리하던 돈세탁 업체 <브로콜리트리>.
<홍룡파>와 무기 거래를 할 때 쓰였던 사우스아치의 물류창고 <우드게이트 웨어하우스>.
그리고, 수하 조직이 주도했던 밀항 사업을 양지에서 적극 보조한 <윌슨앤코 인터내셔널>까지.
“네가 벌인 모든 행각에는 기업 <윌슨앤코>가 중심에 있었다. 지당히 너는 그 회사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된 인물일 터. 기업 서버를 해킹해 DB를 털어 살펴보니, 주식회사 윌슨앤코의 실질적인 사원은 단 세 명뿐이더군. 그중에서도 8년 전 수감되어 올해 출소한 A급 전과자인 ‘유진 연’이 나를 찾아왔던 흑마법사 ‘카이트’란 것을 나는 확신했다.”
트롤의 시선이 나를 위압적으로 깔아뭉갰다.
“너는 순전한 심욕을 채우기 위해 암귀의 이름을 훔쳤을뿐더러, 그의 조직을 제멋대로 가지고 놀았다. 나는 암귀의 의지를, 블랙 대거즈를 계승하는 자로서― 너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잠깐. 지금 그 말은 설마, 암귀가 블랙 대거즈의 초대 보스였다는 얘긴가?”
“아아, 그것조차도 모르고 있었나.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의 이름을 자처한 것인가. 하긴, 그를 알고 있다면 감히 그런 짓거리를 할 수는 없겠지.”
놈은 고통에 신음하듯이 말했다.
“무지無知의 업은 작지 않다.”
“…….”
“이미 말했듯이, 나는 너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너의 신상은 물론…… 주변 인물들의 신상마저도.”
삑―.
놈이 리모컨 스위치를 누르자, 옆에 쌓인 모니터들의 전원에 일제히 전원이 들어왔다.
치직, 치지직―.
노이즈 낀 화면들이 곧 정상적으로 변했다.
화면에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에덴파크 모텔 관리인, 페넬로페 베인스.”
“펍 미드나이트 주인장, 빈센트 오브라이언.”
“직속 부하이자 조직 행동대장, 애런 블런트.”
“느슨한 용암 공방의 수인종, 쥬 화이트테일.”
“잭 린든. 저스틴 S. 도노반. 프레야 앤더슨. 존 렘브란트 버미어. 에드먼드 하인즈. 리타 스몰필드. 로봇.”
각자의 사진이 붙어있는 프로필과,
흑백으로 재생 중인 카메라의 영상들.
모텔 카운터에 앉아 하품을 하고 있는 페니와, 이자카야에서 실컷 마시는 중인 사장님과 비너스를 보고, 나는 그게 실시간 영상이란 사실을 눈치챘다.
“너는 항상 합리적인 척을 하지만, 실제로는 심성이 나약한 보통의 인간에 불과하지. 자기 주변의 누군가가 상처 입는 것을 극도로 꺼려 해.”
“…….”
“폭탄을 설치하고 암살자들을 고용했다. 네가 지금 이곳에서 도망치려 한다면, 그들은 죽는다.”
자그말렉 피터스가 말했다.
놈은 여기서 끝장을 볼 셈이다.
“설명은 끝났다.”
트롤이 서서히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만으로도 바닥에 큰 진동이 느껴졌다.
“이제부터, 너의 책임을 묻겠다.”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뚫고 올라오는 듯한 놈의 나직한 목소리는, 야생의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깃든 초저주파와 같이 오금을 저리게 했다.
최강의 육체를 가진 최강의 지성.
눈앞에 있는 것은 괴물을 능가하는 괴물.
도망칠 수는 없다. 그러려고 온 게 아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선택지는 오로지 하나뿐.
―싸운다.
놈이 다가오기 직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력을 손끝에 끌어모았다.
언제든 준비는 되어 있었다.
“카인 나호르.”
지체 없이 부른 악마의 이름.
손가락 사이로, 벌레가 꿈틀댄다.
….
….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기분 나쁜 감촉이 금세 사라졌다.
괴이한 울부짖음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오른손을 보았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력이 나오지 않는다.
있는 힘껏 마력을 방출해도, 마나의 불꽃은 피부 밖까지 뻗지 못하고, 마치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 꼼짝없이 안쪽으로 밀려나 체내에 갇혀 버렸다.
“당황스럽나?”
그때.
자그말렉 피터스가 나를 보며 말했다.
“이곳 발전소 시설의 지하에는 마나 원자로 설비가 갖춰져 있다. 폭발 위험이 큰 에테르 오비탈을 플랜트에 안전히 가두기 위한 마나 바큠 처리를 하기 위해서지.”
“…….”
“이 지역 일대의 공기 중 마력 에너지 함유량을 0으로 만들었다. 이런 극단적인 마나 진공 상태에서는, 특히나 유체 강도가 심하게 약한 ‘자색 마나’의 경우…… 방출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무슨 뜻인지 이해했나? 지금의 너는 마법을 쓸 수 없다.”
그 목소리는 무서울 정도로 차분했다.
“<부름> 또한 쓸 수 없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트롤은 천천히 내게로 걸어왔다.
“인정하마. 네가 쓰는 흑마법은 확실히 암귀의 그것과 매우 닮았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죽음의 블랙홀. 너의 그 기술만은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
“가장 최선은 <부름>을 아예 쓰지 못하게 하는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마나 진공 환경을 조성하고 이곳에 네가 오기를 유도했다.”
어느새.
놈은 내 앞에 있었다.
“와주어서 고맙군.”
우뚝 선 괴물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스산한 폭력의 기운이 콧잔등을 스쳤다.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러려고 온 게 아니다.
여기에 온 목적은, 처음부터 줄곧 하나뿐이었다.
“나야말로.”
놈이 들을 수 있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불러줘서 고맙다.”
꽈악―.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이 주먹 안에,
모든 힘을 담았다.
“<강화>.”
***
타이퍼가 깡통 로봇이었던 시절.
매일 밤마다 녀석은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었다. 뭐, 정확히 하자면 그건 녀석이 아니었고, 녀석인 척을 했던 수수께끼의 누군가였지만.
아무튼.
나는 강해지고 싶었다.
무한한 마력을 지녔음에도 기껏 <강화>밖에 쓰지 못하는 반쪽짜리 흑마법사.
하필이면 최악의 색채로 꼽히는 자색 마나 보유자였던지라, 반의반쪽이라 해도 칭찬일 수준.
나는 타이퍼(가짜)에게 물어봤다.
마나 수련을 꾸준히 한다면, 내가 가진 자색 마나의 성질을 지금보다 더 나아지게 할 수 있겠지?
「아니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녀석의 대답은 시원하리만치 단호했다.
「마나 성질은 유전자 같은 것입니다. 마나 수련을 거듭함으로써 나아지는 것은 마법적인 테크닉, 그리고 보유량 및 출력량의 상한 정도뿐. 이미 각인된 DNA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쩝, 그럴 줄 알았다…….”
「혹시 주인님께서는 자색 마력의 성질에 불만을 가지고 계신 겁니까?」
“당연하지. 보라색 마나는 완전 쓰레기 마나잖아. 어쩌다 이런 꽝이 걸려서는, 하…….”
「낙심하지 마십시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자색 마력과 <강화>의 조합은 이론상 만능에 가깝습니다.」
“그건 이론상의 얘기고. 실제 활용에 있어서는 한계가 있잖아.”
「주인님의 마나 보유량과 출력량은 과장 없이 말해 대마법사 수준입니다. 비록 자색 마나의 성질에 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주인님이 가지신 출력이라면 그 한계를 충분히 덮고도 남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 아쉽다는 거야. 대마법사급 출력을 가지고 있으면 뭐 하냐고. 뭘 어떻게 해도 효율이 최악이라, 출력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는데.”
한숨을 푹푹 내쉬며 그렇게 말했다.
“100% 효율을 낼 방법은 진짜 없는 거냐?”
한탄 대신에 던진 질문이었다.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있습니다.」
“……뭐……?”
「특수한 환경에서라면, 자색 마나의 마법 구사 효율을 100%에 가깝게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자기 정체를 함구한 것만 빼면, 타이퍼(가짜)는 그동안 내게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자색 마나의 효율과 유지력이 좋지 않은 이유는 마나 유체의 높은 엔트로피 이행력. 원자 상태로 무질서하게 흩어지려는 특성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님께서 신체에 <강화>를 사용하기 위해 100의 마력을 사용한다면, 그중 99가량의 마나는 해당 부위에 정상적으로 적용되지 않고 외부로 방전되어 그대로 사라집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마나 진공 상태를 조성해야 합니다. 자색 마나는 진공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외부에 방전되지 않습니다.」
「즉, 마나 진공 상태에서라면, 방전되어 사라졌을 99의 마력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겁니다.」
***
자그말렉 피터스는 알고 있었다.
유진이 보유한 마력은 자색 마력.
그는 악마와 계약한 흑마법사. 그러므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부름>을 제외하면 단 한 개뿐.
싸움에서 유진은 다양한 마법을 구사했다.
전부 <강화>의 응용임이 틀림없다. 어렴풋하게 남은 기억만으로, 자그말렉 피터스는 확신했다.
현재 이곳은 마나 진공 상태의 환경.
자색 마나는 방출하지 못한다. 때문에 <강화>를 쓴다고 해도, 시전 범위는 본인 신체에 국한된다.
다만 마나 진공 상태에서 자색 마나의 단점은 대부분 소실된다. 유진의 어마어마한 출력량이라면, 이곳에서 구사하는 <강화>는 굉장히 강력할 터.
자그말렉 피터스는 그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단지, 그 정도는 허용 범위 내에 있었을 뿐이다.
상대와의 무력 차이는 그야말로 압도적.
설사 유진이 100% 효율의 <강화>로 무장한들, 그것만으로 자신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때 드래곤조차도 그 튼튼함에 질려서 도망갔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괴물 트롤.
고작 평범한 완력의 인간이 겨우 1에서 100으로 강해져 봤자, 그를 이길 턱은 만무했다.
유진이 주먹을 쥐었다.
그 동작은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자그말렉 피터스는 공격을 막으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유진이 주먹을 휘둘렀다.
그 동작은,
보이지 않았다.
***
복부에 작은 충격이 있었다.
아직 주먹은 닿지 않았다. 주먹이 닿기 전에, 공기를 타고 온 파동이 먼저 전해진 것이다.
피부가 일렁이며, 근육을 파고들었다. 뱃속에 뭔가 넘실거리더니, 내장이 꼬이는 느낌을 받았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아직 주먹은 닿지 않았다.
또한 자그말렉 피터스는 그때까지도 유진이 주먹을 쥔 그 순간의 광경에 시야가 멈춰 있었다.
물론 유진이 주먹을 휘두른 것은 한참 전이었다. 다만 그 세계에, 자그말렉이 진입하지 못했을 뿐.
1프레임에서 2프레임 사이.
그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
비로소.
주먹이 닿았다.
여전히 자그말렉 피터스는 그 세계에 없었다.
그는 자기가 왜 땅바닥을 구르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입술 사이로 따뜻한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는 것도 어째서인지 몰랐다.
격통은 그보다도 뒤늦게 찾아왔다.
그것은 단순한 통증이 결코 아니었다.
맞은 곳보다도 뒷목이 섬뜩한 통증.
인생에서 처음으로 느낀― 공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