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97화 (97/201)

97화. Helter Skelter (1)

본 적 있는 글씨체였다.

바로 어제, 스몰필드 씨와 아리엘, 그리고 토마를 데리고 천체 박물관에 놀러 갔을 때.

청소년 입장객을 위한 경품 추첨 이벤트가 있어, 아리엘이 자기 이름으로 직접 응모권을 작성했다.

그때 보았던 삐뚤빼뚤한 손 글씨.

유치원생이 쓴 것 같은 못난이 글자.

“…….”

인형에 묻은 피는 아직 덜 마른 상태였다.

하얀 테디베어의 붉은 핏자국에서 스멀스멀 뿜어져 나오는 피비린내가 숨을 덜컥 막히게 했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블랙 대거즈의 연락망으로 통화를 시도했다. 연결음이 몇 번이고 들려왔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

피투성이가 된 빨간 머리 소녀의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아이를 구하러 가야만 했다.

나는 스몰필드 씨가 방 안에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린 채, 현관문을 닫고 모텔 밖으로 뛰쳐나왔다.

부르릉―!

머플러를 쪼갤 듯한 엔진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갓길에 세워진 검은색 오토바이와 헬멧을 쓴 바이커가 있었다.

“너는……?”

블랙 대거즈의 따봉맨이었다.

이 친구와는 마주치는 일이 꽤나 잦았다. 그저께 자그말렉 피터스에게 꼼짝없이 죽을 뻔했을 때 구해준 것을 포함해 여러 번 신세를 졌었지. 다행히 그때 그 괴물 트롤 손에 죽진 않았던 모양이다.

“…….”

바이커는 평소처럼 아무 말도 없었다.

녀석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그저 조용히 바이크에서 내렸다.

그 뒤 엄지로 자기 바이크를 가리켰다.

이걸 타고 가라는 의미의 손동작이었다.

나는 곧장 바이크에 올라탔다.

지체 없이 바로 출발하려던 찰나.

“함정이야.”

바이커가 말했다.

약간 낮았지만, 분명 여자 목소리였다.

“설마 문 앞에 인형을 가져다 둔 게 아리엘이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그 꼬맹이의 능력은 자기 시야에 인형이 보일 때만 사용할 수 있어. 원격 조종 같은 건 불가능해.”

“…….”

“놈의 목적은 당신이야. 당신이 제 발로 나타나도록 판을 짠 거지. 지금 가면 100% 죽을걸.”

진실이나 다름없는 충고였다. 물론 나라고 해서 그 정도도 눈치 못 챌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단지―

“너 의외로 말이 많구나.”

“…….”

“오토바이 빌려줘서 고마워. 수고비는 나중에 챙겨줄게.”

그걸 알면서도 사지로 뛰어드는,

그런 종류의 바보일 뿐이다. 나는.

“또 보자고, 따봉걸.”

부아아앙―!!

엑셀을 힘껏 당기자, 바이크는 우렁찬 고함을 내지르며 드센 바람과 함께 도로 위를 달려 나갔다.

달리는 동안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할 궁리만을 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블랙 대거즈의 아지트.

웨스트록 13구역의 쓰레기 저택.

10킬로미터 가까운 거리를 5분 만에 주파했다.

저택 문을 두드리는 대신 냅다 부숴 버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지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일부러 거기 놓아둔 것처럼, 휴대전화 같은 어떤 기계가 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주워들었다.

작은 단말기의 화면에는 거리와 방향을 알려주는 단위와 표식이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었다.

―위치 추적기?

도시 어딘가에 전파를 보내는 발신기가 있고, 이 단말기는 그 발신기의 위치를 알려주는 듯했다.

……틀림없이 이건 함정이다.

따봉걸의 말대로, 내가 아리엘을 구하러 오리란 것을 알고, 이렇게 나를 유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걸려주마.

단말기에 표시된 위치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았다. 방향과 거리로 짐작건대 웨스트록 안이다.

나는 저택을 나와 다시 바이크에 올라탔다. 그리고 위치 추적기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질주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웨스트록 A구역 외곽.

시에라시티에서 노스네스트 이외의 유일한 알파벳 구역― 레드존으로 지정되어 있는 이곳 A구역은 과거 에테르 발전소와 마법공학연구단지가 있었던 지역이다.

자연 생성된 마나의 찌꺼기인 에테르를 이용한 발전은 원자력을 능가하는 효율과 친환경적인 발전 방식 덕에 일찍이 미래 에너지로써 각광받았다.

그러나 10년 전, 미국 중부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버린 아이오와 사태, 그 원흉이 되었던 초대형 타르타로스 게이트의 발생 원인이 인공 에테르와 연관이 있음이 확인되었고, 이후 에테르 발전은 완전히 사장되어 대부분의 발전소가 폐쇄됐다.

웨스트록 A구역에는 그때 폐쇄된 발전소와 연구단지만이 홀연히 남아 있다. 공기 중의 에테르 농도가 높은 지역이기에, 출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삑, 삑, 삑―.

발전소 근처에 다다르자, 위치 추적기가 신호음을 내기 시작했다.

사실 추적기가 없어도, 여기까지 왔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뿐인 이곳에,

불이 켜져 있는 하나의 건물.

발전소 굴뚝들 앞에 자리한 유리 궁전.

관광지로 기획된 에너지 테마파크 빌딩.

나는 바이크를 타고 그리로 이동했다. 밤하늘 아래 노란빛으로 번쩍거리는 건물 안에 들어섰다.

1층.

로비는 넓고 휑한 공간이었다.

준공되기 한참 전에 발전소가 폐쇄된 탓에, 건물은 이제 막 골조만 완성되었을 뿐. 내외부의 마감은 진행되지 않아 칙칙한 회색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형광등 같은 기본적인 전기 설비는 갖춰져 있었다. 전기를 어떻게 연결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건물 전체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위치 추적기는 이제 필요 없었다.

땅바닥에 친절히 표시돼 있었으니까.

↑올라가는 계단 앞에 그려진 화살표.

나는 그게 시키는 대로 계단을 올랐다.

↑↑↑화살표는 세 번 더 있었다.

총 네 개의 층을 올라갔다.

5층. 건물의 최상층.

1층과 구조는 엇비슷했다. 휑한 공간에, 벽과 천장은 시멘트와 먼지 냄새만을 풀풀 뿜어댔다.

그곳에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텅 빈 층의 중앙에 놓인 빨간 플라스틱 의자, 그 옆에 쌓인 수많은 모니터들, 바닥에는 벽의 콘센트까지 이어진 케이블들이 줄줄이 늘어져 있었다.

….

….

그리고,

놈이 있었다.

“왔군.”

반대편 의자에 앉은 괴물.

머리에 빠루가 꽂힌 트롤.

“반갑다. 나는 자그말렉 피터스.”

“…….”

“너는 나를 알고 있겠지. 물론 나도 너를 알고 있다. 암귀라 자칭하는 자, 카이트. 혹은 유진 연.”

이틀 전에 봤던 놈과는 완전히 달랐다.

언행 하나하나에 느껴지는 지성과 압력……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자그말렉 피터스의 모습이었다.

“거기 앉아라.”

놈은 뚱뚱한 손가락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의자에 무슨 장치가 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군말 없이 놈의 지시에 따랐다.

탁―.

의자에 앉았다. 반대편에 앉은 놈과 시선을 마주했다. 자그말렉 피터스의 눈은 암흑처럼 검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아리엘은 어디 있지?”

놈의 답을 기다렸다.

“걱정 마라. 살아는 있으니.”

“어디 있냐고 물었다.”

“보고 싶나?”

자그말렉 피터스는 자기가 앉은 의자 앞 바닥에 있던 리모컨을 들어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팟―.

모니터 중 하나에 전원이 들어왔다.

“제일 끔찍한 건 나중에 보여주려고 했는데 말이지.”

……모니터 화면에 비춰진 것은,

……의자에 묶인 빨간 머리 소녀.

“인형술사를 찾아간 건 어젯밤이었다.”

“…….”

“대화를 시도했는데 응하지 않더군. 그녀의 비협조적인 태도에는 책임을 물어야 했어.”

“…….”

“도망치려 했기에 한쪽 다리를 부러뜨렸다. 그러고 나서도 폭력적으로 저항을 했기에 이번에는 한쪽 팔을 부러뜨렸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날더러 못생겼다고 말했기에…… 한쪽 눈알을 뽑았다.”

“…….”

“그것 말고도 제압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손상을 입힐 수밖에 없었다만, 죽이진 않았다. 보다시피. 아직 살아는 있거든.”

나는 화면 속의 소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몸을, 생기를 잃은 눈동자를.

“……원하는 게 뭐냐?”

분노를 잠식시킨 채, 놈에게 질문했다.

“나의 목적은 하나뿐이다.”

자그말렉 피터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그것은, 블랙 대거즈를 되찾는 것.”

“……되찾아?”

“블랙 대거즈는 원래 내가 우두머리로 있어야 하는 조직이다. 10년 전, 초대 보스와 맺은 약속이지.”

블랙 대거즈의 초대 보스.

나는 그게 누군지 모른다. 그런 설정은 <사이버판타지>의 공식 설정집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블랙 대거즈는 테러리스트 놀이를 하는 모질이들의 모임, 한마디로 말해 쓰레기다. ‘마법사들의 악몽’이란 칭호에 조금도 걸맞지 않아. 너희는 전혀 그들의 악몽이 되지 못하고 있어.”

“…….”

“이제는 내가 보스가 되어, 우선 이 도시를 마법사들의 지옥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장차, 언젠가 지구상에서 마법이란 개념 그 자체를 없애 버리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마법은 이 세상 모든 악의 축. 사라져 마땅할 더러운 죄악이니까.”

놈의 목소리가 성난 듯 일그러졌다.

허나 잠시뿐, 이내 감정을 일축했다.

“나는 이 지역의 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정부의 비공식 생물병기 프로젝트. 그 실패작이 바로 나다.”

“…….”

“드래곤에 준하는 신체 능력과 더불어 슈퍼컴퓨터급의 지능을 갖췄지만, 너무나도 높은 아이큐가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자신을 보호하고자 두뇌가 스스로 기능에 제한을 걸어 버렸던 것이지. 그 탓에 나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천치로 살아왔다.”

“설마, 머리에 꽂힌 그 빠루가…….”

“그래. 이것이 정수리에 박힌 영향으로 뇌가 데미지를 입어, 추정 아이큐가 300 이하로 떨어졌다. 덕분에 평범한 천재가 되었지.”

놈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계속 말했다.

“그 연구실에서 내가 만들어진 이유는, 마법 능력이 없이도 강력한 생물을 탄생시키는 것. 그저 과학으로 마법을 이기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했어.”

“…….”

“마법은 인류를 좀먹는 바이러스다. 50년 전 이미 달을 정복한 인류가 어째서 아직까지 지구에 발을 붙인 채로 머물러 있는가? 과학이 제대로 된 발전을 하지 못하는 것은, 마법이란 악마가 충치균처럼 우리 사이에 스멀스멀 끼어 있기 때문이다.”

장황한 연설이었다.

트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놈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본인은 정의라 믿는 신념을.

“마법을 없애기 위해, 마법사들을 죽인다. 마법사들을 죽이기 위해, 블랙 대거즈를 되찾는다.”

“……그래서 날 여기에 부른 거냐? 블랙 대거즈의 보스를 찾아내려고? 아니면 너는 혹시 내가, 실질적인 블랙 대거즈의 보스라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묻자, 놈은 큼지막한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가 오해하고 있군.”

“……?”

“너를 이 장소에 데려온 것은 내 목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다.”

자그말렉 피터스는 말했다.

“지금부터 나는 너에게, 네가 저지른 짓들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빌어먹게도 단호한 어투로.

“넌 여기서 죽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