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Space Oddity (3)
“별로 놀라신 표정은 아니네요.”
녀석의 말대로 나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넌 매번 등장 타이밍이 뻔하니까.”
“그런가요? 제 딴엔 서프라이즈였는데 말이죠.”
“서프라이즈도 한두 번이어야지. 네가 나타나면 놀랄 거란 걸 알고 있으니까 놀랄 리가 없잖냐.”
토마 녀석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오늘은 아리엘이랑 시간을 보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의외로 즐거워 보이시던데요.”
“설마 계속 감시하고 있었던 거냐?”
“감시라는 표현은 제 입장에서 너무 서운한걸요. 저는 그냥 걱정되는 마음에 따라다닌 거니까요.”
“나를 걱정했다고?”
“아리엘은 아직 유진 씨를 용서하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은 아마도 미워하는 마음보다 좋아하는 마음 쪽이 더 크기 때문에 꾹 참고 있을 뿐이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에요, 그 아이는.”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보았다.
다만 개인적으로 조금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도대체 누가 누굴 걱정한다는 건지, 원.
“어제 있었던 일, 너도 알고 있지?”
토마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보고는 받았습니다. 죽을 뻔하셨다면서요?”
“그래. 너희가 도와주러 온 덕분에 간신히 살았지. 일단 그 부분은 진심으로 고맙다. 그저께 렘브란트 납치를 도와준 것도 그렇고.”
“뭘요. 서로 돕고 사는 거죠.”
“그건 그렇고, 네가 가진 초능력의 정체가 뭔지는 아직도 말해줄 생각이 없는 거냐?”
“제가 굳이 실토할 필요도 없이, 유진 씨라면 슬슬 감을 잡으셨을 것 같은데요. 아닌가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100% 확실히 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아예 1도 모르겠다고 한다면 그것 역시 거짓말이었다.
“어제 나 도와주러 온 그 친구들은 무사한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 트롤은? 해치웠나?”
“아쉽지만 놓쳤습니다.”
아쉬울 것도 없었다. 그 정신 나간 괴물을 상대로 멀쩡히 살아 돌아간 것만 해도 기적이었으니.
“놈은 나를 노리고 있어.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너희처럼 마법사를 뼈저리게 증오하고 있거든. 아마 가까운 시일 내로 다시 날 죽이러 올지도 몰라.”
“그렇다면 반드시 제거해야겠네요.”
“……죽일 거라고? 그놈을?”
“네. 필요하다면요.”
토마 녀석이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곳을 찌르고 들어갔다.
“왜지?”
물음표를 띄운 직후.
짧은 정적이 지나갔다.
“방금 내가 한 얘기를 들었을 텐데. 그놈도 너희와 같은 족속이야. 그 끔찍하게 강한 트롤도 너희 블랙 대거즈와 마찬가지로 마법사를 증오하고 있어.”
“……그게 어쨌다는 거죠?”
“이상하잖아. 아무리 지금 내가 너희와 동맹을 맺은 관계라지만, 결국 너희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마법사를 죽이는 것’ 아닌가? 그런데, 함께 마법사를 죽이고 다닐 만한 최강의 동료감이 나타났는데, 마법사인 나를 살리기 위해서 그놈을 죽일 거라고? 이거는 앞뒤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지 않나?”
“…….”
“마법사를 죽이는 흑마법사, 암귀인 나를 앞세워, 기어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사를 모조리 다 죽이고 났을 때. 언젠가 그렇게 된 후에, 너희가 마지막으로 죽일 대상은― 바로 나잖아.”
토마는 침묵했다.
긍정의 뜻도, 부정의 뜻도, 꾹 다문 그 입에는 슬어 있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순수한 침묵이었다.
“하나만 묻자.”
입을 열지 않는 녀석을 나무라듯이, 나는 질문을 던졌다.
“너는 왜 블랙 대거즈에 있는 거냐?”
질문을 던지고서, 대답을 기다렸다.
묵비의 시간은 빌어먹게도 길쭉했다.
인고의 기다림 끝에―
비로소 녀석이 입을 열었다.
“모르겠어요.”
그 대답은 대답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있는 힘껏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나랑 장난하냐?”
“죄송합니다, 유진 씨. 하지만 저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에요. 제가 왜 블랙 대거즈에 있는지, 그렇게 물으신들…… 정말로 모르겠어요.”
슬프게 웅얼거린 녀석의 목소리가,
어째서인지 거짓처럼은 들리지 않았다.
“레오노프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어요. 아리엘은 가족을 잃었죠. 그 두 사람이 블랙 대거즈에 들어온 건 마법사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어요. 지나는 돈을 위해, 체스터는 살기 위해 블랙 대거즈에 들어왔어요. 그렇지만 저는…… 대체 무엇을 위해서였는지, 이제 와서는 기억조차 나지 않아요.”
소년의 떨리는 눈동자는 무의식에 갇혀 버린 기억을 어떻게든 꺼내 보려 안간힘을 쓰는 듯 보였다.
“저는 무얼 하려고 했던 걸까요.”
“…….”
“지금은, 무얼 하고 싶은 걸까요.”
뻔한 질문이었다.
나는 답을 말해주었다.
“그건 네가 정하는 거지.”
토마는 침묵했다.
그저 순수한 침묵이었다.
“하핫. 맞는 말이네요.”
소리 내어 웃었다.
물론, 순수한 웃음이었다.
“전에 소원을 이뤄주시겠다고 했었죠.”
“뭐?”
“처음 만났을 때 거래하자면서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것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아니, 그건 어디까지나 블랙 대거즈의 목적을 이루는 걸 도와주겠다는 얘기였는데…….”
“하지만 제 소원은 블랙 대거즈와는 조금도 관련이 없는걸요.”
“……네 소원이 뭔데?”
녀석은 말했다.
바보처럼 웃으며.
“우주에 가보고 싶어요.”
바보 같은 소리를 했다.
“우주?”
“네.”
“나보고 뭐 너를 우주에 데려가 달라는 거냐?”
“혹시 가능하신가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뭐라 말해줘야 하나 고심되던 그때, 화장실에 갔던 아리엘과 스몰필드 씨가 자리에 복귀했다.
“미안, 오빠. 언니 화장 고치느라 늦었어.”
“저, 저기! 그런 얘기는 굳이 꺼낼 필요가……!”
역시나 그녀들의 눈에는 내 앞자리에 앉아 있는 토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소년은 미소를 간직한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떠나려는 모양이었다.
어째서였을까.
순간 반사적으로.
“잠깐. 기다려.”
녀석을 붙잡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뒤를 돌아 떠나려던 토마가 멈칫했다.
“팀장님? 왜 그러세요?”
스몰필드 씨가 내 목소리에 반응했다.
나는 토마의 뒷모습과 그녀를 번갈아 보았다.
“그게, 실은 가고 싶은 곳이 있어서요.”
“네?”
“미안한데, 전망대는 나중에 가면 안 될지…….”
갑작스러운 의견에 아리엘과 스몰필드 씨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응. 난 괜찮아, 오빠.”
“뭐어, 저도 상관없어요.”
나긋나긋한 미소.
참 고마운 배려였다.
토마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녀석을 향해서 말했다.
“가자.”
***
검은 세계였다.
그곳은 텅 빈 암흑의 공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허나 어느 순간.
깜깜한 방의 중앙에 놓인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하며, 어둠뿐이었던 곳에 차츰 빛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별들이 피어났다.
둥근 천장을 무수히 수놓은 새하얀 광점들.
푸른 형광에 물든 플라네타리움의 우주였다.
“예쁘다아…….”
아리엘의 눈이 반짝였다. 스몰필드 씨 역시 생각보다 화려한 비주얼에 꽤나 감격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들의 뒤에 선 채 위를 올려다보았다.
내 옆의 소년도 나와 같은 풍경을 보고 있었다.
“어때.”
토마는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고개를 내저으면서 입을 열었다.
“가짜잖아요.”
“진짜보다 멋있잖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녀석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렇긴 하네요.”
이토록 아름다운 가짜 우주를,
우리는 기억에 새겨두기로 했다.
언젠가는,
진짜 우주에 갈 수 있겠지.
투웅―.
플라네타리움 기계의 회전이 멈췄다.
곧 내부에 환한 조명이 밝혀졌고, 스피커에서 재생 종료를 알리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나는 아리엘과 스몰필드 씨를 데리고 천체 박물관을 나왔다. 오후 5시. 밤이 올 때까지는 아직 조금 남았지만, 이른 시간이 아님은 분명했다.
“아리엘, 또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
“으으응. 이제 충분히 놀았어.”
“메이슨 타워 안 들러도 돼?”
“응.”
그렇게 말하더니, 아리엘은 나와 스몰필드 씨의 손을 한 쪽씩 자기 손에 붙잡고 가운데에 섰다.
“오늘 놀아 줘서 고마워.”
우리 세 사람은 서로의 손에 손을 이은 채로, 꽤 오랫동안 늦은 오후의 거리를 걸어 나갔다.
“이러고 있으니까, 언니랑 오빠가 꼭 엄마랑 아빠 같다.”
아리엘이 의미심장한 소리를 하자, 스몰필드 씨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면 그냥 노을 탓일까.
“있지, 다음에도 같이 놀자?”
하여간 바라는 것도 참 많은 녀석이다.
피로에 지친 나로서는 어쩔 수도 없었다.
“그래.”
약속했다.
다음에도 같이.
“같이 놀자.”
***
웨스트록 13구역.
어둠이 자리한 밤의 골목길.
“……헤엑, 하윽…….”
소녀는 거칠게 숨소리를 냈다.
콧속에 비릿한 냄새가 났다. 시멘트 먼지에 섞인 피의 냄새. 목구멍에서부터 진한 쇠 맛이 올라왔다.
철퍼덕―.
비틀거리던 소녀가 기어이 쓰러졌다.
새하얀 드레스는 핏물과 검댕에 사정없이 더럽혀져 있었다. 여기도 저기도 상처투성이였다.
쿵. 쿵―.
안 돼. 놈이 오고 있다. 가까워지고 있다.
도망쳐야 했다. 허나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토마……어디 있어…….”
소녀는 울먹이며 동료들의 이름을 불렀다.
“……지나……체스터……레오…….”
그러나 누구 하나 응답해 오는 이는 없었다.
“……오빠…….”
소녀는 차가운 돌바닥에 쓰러진 채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누군가의 온기가 간절했다.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까.
“……살려줘…….”
쿵. 쿵. 쿵―.
놈의 발소리가 더욱 가까워진다.
다리는 여전히 말을 듣지 않는다.
쿠웅―!
그 울림을 마지막으로, 발소리가 멈췄다.
놈은 드디어 쓰러진 소녀를 눈앞에 두었다.
틀렸다. 늦었다. 이젠 도망칠 수 없다.
그렇다 한다면, 하다못해 최후의 발악을!
소녀는 쓰러진 몸을 뒤쪽으로 돌렸다.
이곳에 매복시켜 둔 8체의 인형들이 소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소녀가 명령하자, 지붕들 사이의 폭탄 인형들이 한꺼번에 놈의 머리 위로 낙하했다.
퍼퍼퍼퍼펑―!!
자신이 휘말릴 것까지 상정에 둔 자폭 공격.
허나 그 결심이 무색하게도, 놈에게는 상처 하나 없었다. 폭발을 직격으로 맞았음에도 말이다.
“끝인가?”
놈이 동굴 같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흐끅…….”
소녀는 눈물과 핏물이 섞인 딸꾹질을 했다. 겁에 질린 탓에 울음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라. 너는 죽이지 않는다.”
“…….”
“다치게 할 생각도 없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한 책임을 물었을 뿐.”
놈은 계속해서 말했다.
“앞으로 할 일들에 너의 협조가 필요하다.”
“…….”
“어찌할 텐가? 블랙 대거즈의 인형술사여.”
소녀는 목에 차오른 것들을 전부 꿀꺽 삼켰다.
이후 가능한 한 모든 힘을 다해 가까스로, 줄곧 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몽땅 다 뱉어냈다.
“꺼져. 못생긴 게.”
놈은 머리의 빠루가 꽂힌 부분 근처를 긁적였다.
“남의 콤플렉스를 건드리면 쓰나.”
그러고 나서―
소녀에게 다가갔다.
“책임을 물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