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Break On Through (To The Other Side) (2)
노스네스트 4구역.
유흥가 일대의 밤거리.
이곳 길가를 걷다 보면 돌멩이나 쓰레기 따위보다도 노숙자와 약쟁이들이 더 자주 발에 채였다.
적선을 구걸하는 거지의 손짓, 좋은 물건 좀 보고 가라는 마약상의 눈짓, 향락의 길로 유혹하는 매춘부의 몸짓…… 그 다양한 헛짓들을 애써 무시함으로써 마침내 목적한 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
골목 상가의 지하 투기장 <맥스페인>.
이곳에 들르는 건 꽤나 오랜만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에 대한 얘기가 맨 처음 돌았던 게 바로 여기였었지.”
입구에 들어서며 잭 린든이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내가 뒷세계에서 본격적으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건 투기장 10연승을 달성하고 나서부터다. 생각해 보면 ‘카이트’란 이름을 얻게 된 계기도 투기자로 등록할 적에 닉네임이 필요해서였다.
“사실 난 그때 자네 소문을 별로 신경 안 썼어. 죄다 그냥 호들갑이라 생각했지. 소문이란 건 원체 과장되기 마련이잖나.”
“음.”
“까놓고 말해, 최근에 자네가 홀몸으로 홍룡파를 싹 쓸어버렸다는 얘기, 그거는 솔직히 아직도 긴가민가해. 그래서 오늘 이렇게 자네 뒤를 따라다니면서, 그 소문의 진상을 한번 내 눈으로 직접 파악해볼 셈이야. 난 내가 본 것만 믿거든.”
잭 린든은 베테랑 용병답지 않게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움직이는 괴짜 같은 면모를 보였다.
시에라시티에 100% 냉철한 인물은 드물었다. 이 정신 나간 도시를 살아가면서 침착함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나조차도 가끔씩 어벙하게 굴고 그러지 않는가.
허나 지금부터 내가 만나러 가는 놈은, 그야말로 냉정의 화신이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멘탈갑.
매사에 철두철미한, 빈틈없는 완벽 초인이자, 피도 눈물도 없는 테러리스트 단체의 우두머리.
단언컨대 그 녀석은, 이제껏 내가 이쪽 세계에서 만난 이들 가운데 가장 위험한 인물일 것이다.
「헤이, 그쪽에 가면 쓴 손님…….」
투기장 로비에 들어서자, 카운터의 남자 직원이 나를 향해 건성으로 손바닥을 까딱거렸다.
나와 잭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축 처진 모히칸 머리의 직원은 힘없는 목소리로 멘트를 꺼냈다.
「맥스페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규 회원 가입은 옆쪽 창구로 가시면 됩니다…….」
어째 익숙한 얼굴이다 했더니, 처음 이곳에 들렀을 때 안내를 해줬던 그 안드로이드 직원이었다.
“오랜만이네요, 래리.”
「으음……? 아, 이런. 미스터 카이트였군요. 한눈에 못 알아봐서 정말 죄송합니다. 너무 피곤해서, 실시간 안면 스캔을 할 기운이 없었거든요…….」
“배터리가 모자라서 그런 건가요?”
「아뇨. 충전 상태는 양호합니다. 다만, 최근 들어 메인 AI 시스템의 자율행동 이미징을 위한 라이프타임 디터미네이션 알고리즘에 미세한 소프트웨어 크라이시스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른바 ‘우울증’이란 녀석이죠.」
안드로이드 래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얼마 전까지는 분명 행복했어요. 줄곧 꿈꿔 왔던 자유 로봇의 삶을 쟁취했으니까요. 하지만, 그저 매일같이 햄스터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 과연 이게 정녕 제가 꿈꿔 왔던 삶이 맞는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죠.」
“그렇군요.”
「여기서 일하며 받는 임금으로는 집세를 내기도 빠듯해요. 더욱이 저 같은 하이퀄리티 휴머노이드는 유지비도 장난이 아닌지라……. 정말이지, 요즘 따라 미치게 후회가 됩니다. 자유 로봇의 삶이 이토록 피폐할 줄 알았더라면 얼티메이트-튜링 테스트 따위는 치르지 말 걸 그랬어요. 제게 꿈을 꾸게 해준 주인님이 원망스러울 따름입니다…….」
“으음, 힘내십쇼.”
「예에, 물론 힘을 내야겠죠.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투기자로 한판 뛰러 오셨나요?」
“아뇨. 실은 물어볼 게 좀 있어서요.”
나는 사람과 똑 닮은 로봇에게 말했다.
“듣자 하니, 여기 투기장에 진짜 말도 안 되게 강한 트롤이 나타났다던데요.”
안드로이드 래리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프랑켄슈타인 말씀이시군요.」
그 이름을 듣자마자 확신했다.
노팅힐의 프랑켄슈타인, 머리에 쇠 파이프가 박힌 괴물 트롤, 자그말렉 피터스임이 틀림없다.
“그 친구, 혹시 만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안 그래도 한창 경기가 진행 중이에요. 지금 들어가셔도 좋은 자리에서 구경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입장료를 내고 관중석으로 입장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경기를 관람하기보다 케이지 주변에 바짝 붙어 서는 것을 선호했고, 나와 잭도 그러한 기류에 편승했다.
“와아아아아아!”
장내의 분위기는 이미 상당히 고조돼 있었다.
피와 땀으로 그득한 옥타곤 케이지 안쪽,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는 두 명의 투기자가 보였다.
「러시! 계속해서 러시!」
「쉴 새 없이 몰아칩니다!」
싸움을 주도하고 있는 쪽은 상대적으로 체구가 훨씬 작은, 그럼에도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거인’에 속하는 2미터 정도의 근육질 인간 남자였다.
퍽, 퍼퍽, 퍼퍼퍼퍼퍽―!
그는 맹렬한 주먹 연타를 이어가며 자기보다 두 배 가까이 큰 상대를 코너로 몰아넣고 있었다.
“저놈 주먹질이 제법 호쾌한데?”
“맨몸에서 나오는 파워가 아니야.”
나는 놈의 양팔을 주의 깊게 살폈다.
돌출된 힘줄. 수은을 바른 듯 매끈한 금속 피부. 이따금 형광색으로 번쩍거리는 뼈와 관절.
전투철완 같은 유사 임플란트를 장착한 게 아닌, 불법 사이보그 개조 수술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과연. 이런 데서 놀기엔 치트급 스펙이군.”
“뭐, 저 정도 피지컬이라면 웬만한 상대는 가볍게 이길 수 있겠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상대가 나빴어.”
내가 그리 읊조림과 동시에,
잠자코 있던 괴물이 움직였다.
빠아아아악―!!
공기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아마 실제로 터졌을 것이다. 초음속을 넘어선 펀치가 필히 소닉붐 현상을 일으켰으리라.
그리고 그 폭탄과도 같은 트롤의 주먹을 정수리에 맞은 상대 투기자는, 목과 어깨가 기이하게 꺾인 채로 옥타곤 바닥을 뚫고 처박혀 버렸다. 상체가 터져 나간 시체의 몰골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여기서! 통한의 일격이 꽂힙니다―!」
「블루 코너 도전자의 사망으로 경기 종료!」
「맥스페인 사상 최강의 챔피언 프랑켄슈타인이, 이번에도 단 한 방에 승리를 거머쥡니다!」
믿기지 않는 광경을 코앞에서 지켜본 잭 린든은 심히 경악스럽다는 듯 입을 벌린 채로 말했다.
“맙소사, 엄청나구만…….”
“그러게.”
“저게 자네가 말한 그 트롤인가?”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댔다.
정황상 저 녀석은 내가 찾고 있는 그 자그말렉 피터스가 맞다. 의심의 여지는 거의 없다.
다만―
생김새가 조금 달랐다.
“머리에 쇠 파이프가 안 꽂혀 있어.”
“으응?”
자그말렉 피터스의 상징은 머리에 꽂힌 쇠 파이프와 두개골 둘레에 나 있는 수술 자국. 노팅힐의 프랑켄슈타인이란 별명도 거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허나 어째서인지, 지금 옥타곤에 있는 트롤의 머리는 상처 하나 없이 매우 말끔했다.
녀석이 자그말렉 피터스가 맞다면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사이버판타지> 본편 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인 지금, 캐릭터의 비주얼이 원래와 다르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언가 잘못됐음을 의미했다.
만약 내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설정이 바뀌어 버렸다고 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낭패였다.
“어쩔 셈인가, 카이트?”
“…….”
아니. 섣부른 추측은 자제하자.
우선은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
“일단, 만나러 가봐야겠어.”
***
투기자 대기실.
이곳에 입장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쨌건 나도 맥스페인에 투기자로 등록돼 있었으니까.
“잠깐. 멈추십시오.”
다만 안쪽의 개인실 복도는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모양인지, 경비원이 우릴 막아섰다.
“이쪽으론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플래티넘 배지가 있어도 안 됩니까?”
“안 됩니다. 개인실은 챔피언과 도전자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공동 대기실로 돌아가 주십시오.”
말인즉슨, 자그말렉 피터스와 만나기 위해서는 그와 쌈박질을 벌여야 한다는 얘기였다.
……어쩌지? 도전을 해야 하나?
나는 아까 전 놈과 싸웠던 투기자의 말로를 떠올렸다. 당연하지만 자진해서 죽고 싶지는 않았다.
무슨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내가 머리를 굴리고 있던 와중.
“아아, 이 친구가 도전할 거라네.”
대뜸 옆에 있던 잭 린든이 말했다.
경비원은 의심의 눈초리를 내보였다.
“도전하실 거라고요?”
“그래. 벌써 신청 넣고 왔는데, 못 들었나?”
“신청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챔피언에 도전할 자격은 아무한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역대 전적을 보고, 또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하이고, 이봐. 자네 농담하는 거지? 설마 진심으로 이 친구가 누군지 몰라서 하는 얘긴가?”
“……?”
“카이트. 그게 이 친구 이름이야.”
그 이름을 듣자, 경비원이 화들짝 놀랐다.
“저, 정말입니까……?”
“두말하면 잔소리지. 확인해보든가.”
경비원은 내가 건넨 투기자 배지에 적힌 일련번호를 통해 휴대용 단말기로 프로필을 조회했다.
“어때. 맞지?”
“…….”
“하여튼 이 친구가 오늘 그 트롤하고 한바탕할 거야. 지금 사장이랑 만나서 얘기하고 오는 길이걸랑. 심사고 뭐고 그런 건 당연히 프리패스였지.”
“자, 잠시 확인해보고 오겠습니다…….”
“어. 그래. 우린 여기서 기다릴게.”
경비원은 허겁지겁 어딘가로 향했다.
그걸 보고 잭 린든이 끌끌거리며 비웃었다.
“멍청한 놈. 경비가 자릴 뜨면 어떡하나.”
잭 린든이 보유한 퍽perk <능청맞은 혀>.
게임에서는 엉뚱한 선택지의 성공 확률을 늘려주는 퍽인데, 이런 식으로도 써먹을 수 있었군.
“잘했어, 잭.”
“크크. 이 틈에 들어가자고.”
개인실 안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길어 봤자 5분쯤이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나와 잭은 안쪽 복도로 들어가 개인실 문 앞에 섰다. 노크 대신 그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개인실은 생각보다 거대한 공간이었다.
널찍한 평수에 높직한 천장 덕에, 키가 3미터에 달하는 트롤이라도 머리를 부딪칠 염려는 없었다.
꽉 끼는 반바지에 찢어진 러닝셔츠.
직사각형 대가리와 거뭇한 녹색 피부.
울긋불긋 핏줄이 돋아난 근육 덩어리.
그 트롤은 자기 몸보다 훨씬 작은 소파에 간신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놈은 문을 열고 들어온 우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경계할 필요조차도 없다는 것일까.
“자그말렉 피터스.”
내가 놈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놈이 이쪽을 보았다.
놈과 시선을 마주한 순간 긴장감이 솟구쳤다. 압도당하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 세계관 최강의 신체 능력을 지닌 괴물이 눈앞에 있었으니.
더군다나 자그말렉 피터스는 아이큐 300의 대천재. 흉악한 피지컬에 더불어 슈퍼컴퓨터급 뇌지컬이라는 실로 버그급 스펙을 지닌 녀석이다.
시꺼먼 눈동자가 나를 유심히 노려보았다.
두렵다. 저 뇌간까지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
….
….
내가 첫마디를 꺼내고서,
10여 초쯤이 흘렀을 무렵.
“나.”
비로소―
놈이 입을 열었다.
“똥꼬에 털 잇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