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Peace Sells… But Who’s Buying? (4)
물고문.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고문이다.
사람은 숨을 못 쉬면 죽는다.
허파에 산소를 공급하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한 위협이 아닌 생명과 바로 직결된 위기.
숨이 막히는 고통이란 본능에서 오는 통증. 손톱을 들어내는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아픔이다.
고문을 당했던 사람은 대개 ‘얼마나’ 아팠는지를 기억하게 되나, 물고문의 경우엔 그렇지 않다.
‘어떻게’ 아팠는가―.
그것이 뇌리에 똑똑히 새겨진다.
새겨진 아픔은 영원토록 남아,
‘트라우마’라 불리는 것이 된다.
“흐읍, 허어어업……!”
렘브란트는 87초 만에 드디어 공기 속에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기관지에 흘러든 물줄기를 토해내느라 기껏 마셨던 숨을 곧장 도로 뱉어야 했다.
“켈륵, 케헤윽……!”
숨을 고를 시간은 2초도 주어지지 않았다.
풍덩―. 두꺼운 헝겊으로 싸인 그의 얼굴이 다시금 물속에 처박혔다. 그 상태로 92초가 흘렀다.
‘여긴 어디지?’
의식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벅찬 상황에서, 렘브란트는 희박한 산소로 두뇌를 굴리고 있었다.
‘기침할 때마다 메아리가 울렸다.’
‘공기에 바다 냄새가 섞여 있었어.’
‘그렇다는 건…….’
‘사우스아치 어딘가의 창고로군.’
그는 이런 상황에 익숙했다.
어릴 때 으레 겪은 일이었으니까.
‘납치에 가담한 인원은 최소 둘.’
‘여기 있는 놈은 많아야 셋인가.’
납치를 자주 당해본 건 아니었다.
옛적의 자신은 그런 거물이 못 됐다.
‘고문 방식이 너저분해.’
‘행동에 감정이 느껴져.’
다만―
납치를 하는 쪽에 있어 봤을 뿐.
‘놈들은 프로가 아니야.’
물론 다 옛날얘기였다.
지금의 렘브란트는 늙고 힘없는 평범한 노인에 불과했다. 겉모습은 중년으로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보이는 것보다 갑절의 갑절의 갑절보다도 많았다.
현재로서는 그저 가만히, 형편없는 고문에 힘겨워해 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물속에 얼굴이 빠뜨려지기를 여섯 번.
“그만.”
맞은편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가 말했다.
이곳에 온 뒤 처음으로 들은 목소리였다.
“이제 됐어. 너흰 나가서 망이나 봐.”
“예, 형님.”
남자의 명령에 고문하던 녀석 둘이 자리를 떴다. 멀찌감치서 철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났다.
“살아있나?”
렘브란트는 푹 젖은 헝겊의 수분 사이로 어떻게든 바깥의 공기를 빨아들이려 안간힘을 썼다.
“물고문 같은 거 해본 적 없는 애들이라, 중간에 잘못해서 죽여 버리면 어쩌나 걱정을 좀 했어.”
그즈음.
내내 숨을 헐떡이던 렘브란트가, 입을 열었다.
“……나와 같이 있던 남자는, 어디 있지……?”
바람 빠진 풍선에서 나는 듯 허약한 목소리.
렘브란트의 물음에 남자는 건조하게 답했다.
“그 노란 머리 동양인 말인가? 글쎄, 그놈은 우리 말고 다른 팀 친구들이 따로 옮겼어. 지금쯤 사우스아치 앞바다에 던져 버렸겠지.”
“…….”
“볼일이 있는 쪽은 당신이거든. 상황 파악 정돈 됐겠지? 자, 이제부터는 대화의 시간이야. 부디 우리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길 바라.”
렘브란트는 몇 차례 더 숨을 골랐다.
그러고 나서, 다시금 입을 열어 말했다.
“너는…… 발음이 평범하군.”
의미 불명의 한마디.
남자는 물음표로 반응했다.
“뭐?”
“<로스 세타스>나 <텔냐쉬카>는 아닌 모양인데. 말투에 백인 인간 특유의 껄떡거림이 있어.”
“…….”
“이런, 찍었는데 정답인가? 그렇다면 아시아인은 아닐 테니, <홍룡파>나 <유성회>도 아니겠군.”
남자는 말이 없었다.
렘브란트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스트포레스트, 그것도 에버그린 파크 한복판에서 당당하게 납치를 감행하여 성공시킬 정도면 분명 꽤나 실력이 있는 녀석들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스럽다는 느낌이 너무 강해. 경험이 부족하거나, 몇몇 외에는 잔챙이거나,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겠지.”
“…….”
“너희는 신흥 갱단이로군. 간부급 이상의 일부 실력자들에게 의존한 소규모 폭력 단체.”
남자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헝겊을 뒤집어쓴 렘브란트에게는 보이지 않았으나, 필히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을 터였다.
“그러고 보니 나와 대화를 하자고 했던가. 나를 죽이지 않고 살려뒀다는 건, 뭔가 특별한 목적이 있다는 얘기지. 돈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그렇다면…… 너희가 원하는 건 아마도, 기업인으로서의 내 지위를 이용하는 것.”
렘브란트는 말했다.
“날 뒤에서 조종할 셈이군.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되도록 말이야.”
묵직한 정적이 흘렀다.
“무어, 설득력이 없지는 않았어. 이 정도로 목숨의 위협을 느낀 것은 정말 오랜만이거든.”
“…….”
“허나 협박이란 건 말이야. 그 공포가 오랫동안 지속돼야만 비로소 의미가 있는 법이지.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너희의 협박은 실패했어.”
렘브란트는 보이지 않는 미소를 띠었다.
침묵을 유지하던 남자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실패했다고?”
“그래.”
“웃기지도 않는 허세를 부리는군. 보아하니 물을 덜 먹은 것 같은데. 밖에 놈들 다시 불러 볼까?”
“얼마든지. 어차피 너희는 날 죽이지 못해. 그러니까 난 구조가 올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되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구조는 오지 않아. 당신이 여기로 끌려왔다는 걸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아니. 없지는 않지.”
“뭐?”
렘브란트는 조용히 읊조렸다.
“너흰 큰 실수를 했어. 이리 간 큰 짓을 저지를 거였으면 상대가 누군지 정도는 제대로 파악했어야지.”
“허, 우리가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줄 알아? 당신은 존 렘브란트 버미…….”
“멍청하긴. 날 얘기한 게 아니야.”
자그마한 메아리가 울렸다.
“나랑 같이 있던 친구 얘기지.”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놈이 뭐라도 되나?”
“하핫. 천상 애송이들이란 것쯤은 진즉 알았지만, 그렇다 쳐도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
“그 친구를 처리하기로 한 다른 팀 동료한테 지금 한번 연락해 보게.”
어쩐지 명령하는 듯한 어투.
남자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뚜르르―. 통화를 시도했으나, 아무런 응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슬슬 감이 잡히지 않나. 사우스아치 앞바다에 던져진 건 과연 어느 쪽일지.”
“…….”
“다시금 말하지만, 너흰 큰 실수를 했어.”
그때.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혀, 형님!”
“뭐야? 무슨 일이야?”
“지, 지금 밖에 뭔가가……!”
상당히 급박한 목소리였다.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일단은 렘브란트를 홀로 거기에 두고 창고 밖으로 서둘러 나갔다.
철컹―.
문이 닫혔다.
그대로 깊은 고요가 찾아왔다.
렘브란트는 정적 속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러나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
….
….
그리고.
문이 열렸다.
뚜벅, 뚜벅―.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
이어서, 우뚝―.
렘브란트 앞에 멈춰 섰다.
그의 얼굴을 감쌌던 헝겊이 스르륵 풀렸다.
세상이 단번에 밝아졌다. 유리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렘브란트의 눈을 신명나게도 괴롭혔다.
“이런.”
차분해진 시야에 들어온 것은,
역광에 비친 한 남자의 실루엣.
“뭐가 이리 오래 걸렸나.”
유진이었다.
그는 반가운 듯이 웃어 보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별일 없으셨나요?”
“별일은 없었지. 헌데 요즘 것들은 손님맞이가 참 변변찮더군. 대접받은 거라곤 찬물뿐이었어.”
“확실히 물은 실컷 드신 것 같네요. 돌아가기 전에 먼저 화장실부터 들르셔야겠어요.”
유진은 의자에 묶인 렘브란트의 결박을 풀었다.
“놈들은? 처리는 다 끝났나?”
“예. 상황 종료입니다. 이젠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렘브란트는 유진의 상태를 살폈다. 그는 상처는커녕 땀 한 방울 흘릴 기색조차도 없어 보였다.
“와줘서 고맙네. 자네 덕에 살았어.”
“뭘요.”
“그런데 혹시, 습격자들의 정체는 파악했나?”
“아뇨. 급하게 오느라 그것까지 알아볼 재간은 없었습니다.”
“내가 잡힌 위치는 용케도 알았군.”
“전화로 얘기하는 걸 들었거든요.”
“여러모로 꽤나 허술한 놈들인 것 같은데, 그런 것치고는 저지른 짓거리가 상당히 대담해.”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대낮에 에버그린 파크에서 납치라니,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 아닙니까.”
“어찌 됐건 자네 주장이 맞은 셈이군.”
렘브란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상해. 뭔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할까. 왠지 모르게 작위적이란 느낌이 조금씩 들어.”
“…….”
“어쩌면 지금 이 상황이, 전부 자네가 벌인 자작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말이지.”
유진은 그대로 침묵을 지켰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있으려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득력이 있었어.”
렘브란트는 혼잣말하듯이 말했다.
그러고서는 빙긋 입꼬리를 올렸다.
설령 이 모든 것이 속임수였대도,
그냥 껌뻑 속아 넘어가 주기로 했다.
이스트포레스트 한복판에서 렘브란트라는 거물을 납치. 그런 짓이 가능한 놈들이 얼마나 있을까.
유진은 자신의 주장이 옳았음을 증명함과 동시에, 자신의 가치까지도 증명한 셈이었다.
“자네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겠네. 팀장.”
그는 반드시 아군으로 둬야 한다.
그것이 렘브란트의 판단이었다―.
***
노스네스트 D구역.
갱단 <스커미셔> 은신처.
소위 ‘스캐빈저’라 불리는 생계형 범죄자들이 모여 만든 갱스터 그룹인 <스커미셔>는 현재 D구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위험한 갱단으로 꼽혔다.
그들의 최대 난적이자 구역 라이벌이었던 <데스트루퍼>가 얼마 전 싸그리 궤멸한 덕택에, 이제 D구역의 실권은 <스커미셔>의 독차지나 다름없었다.
다만 D구역에 데스트루퍼 대신 새로 입성한 쪼끄마한 단체, ‘카이트’란 놈의 조직이 골칫거리였다.
원래대로라면 스커미셔는 D구역에서 보란 듯이 활개를 치고 다녀야 했지만, 같은 동네 사는 카이트의 따까리 녀석들이 그것을 방해했다.
하필이면 놈들은 라이벌 데스트루퍼의 잔당들이 여럿 섞인 단체라, 스커미셔의 깽판질을 그냥 두고 보려 하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D구역에서 스커미셔의 영향력은 오히려 하락. 강도 수입도 전보다 훨씬 더 줄게 되었다.
재정 상황이 열악해진 그들로서는 당장 푼돈이라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디 강도짓 벌이기 좋은 곳 없으려나, 그런 걱정을 하고 있던 무렵.
“너희들, 돈 필요하지 않나?”
그들의 은신처에,
한 노인이 찾아왔다.
“나 물류창고에서 경비로 일하는데.”
어디서 일하냐고 물었다.
“윌슨앤코의 <우드게이트 웨어하우스>.”
윌슨앤코라 하면, 망할 카이트 놈과도 적잖은 연관이 있다 전해지는 그런 회사였다.
“혹시 거길 털 생각이라면, 내가 좀 도와주지.”
그리 달콤한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