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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82화 (82/201)

82화. Peace Sells… But Who’s Buying? (2)

지난주 목요일.

슐츠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사우스아치에서 불의의 습격을 당했다.

습격자들의 정체는 홍룡파가 고용한 주먹꾼들.

신경 쓰였던 부분은, 놈들이 노린 대상이 내가 아닌 우리 회사― <윌슨앤코>였다는 점이다.

홍룡파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이 없다.

토니 웡의 사망으로 인해 그들의 조직력은 일찍이 박살 난 시점. 지난번 차이나타운에서 벌어진 교전 이후로는 완전히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빠르면 이번 주 안으로 홍룡파는 갱단으로서의 동력을 상실하여, 지역 패권 싸움에서 신제천에게 밀려날 터였다.

문제는, 홍룡파 말고도 <윌슨앤코>를 노리는 깡패 녀석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점.

알다시피 윌슨앤코는 뒷세계의 조직들과 유착 관계가 매우 깊은 회사다. 애초에 설립된 목적부터가 깡패들의 불법 자금 세탁을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그동안 나는 <데스트루퍼>처럼 윌슨앤코와 관련 있는 조직들을 샅샅이 조사하여, <브로콜리트리>와 같은 놈들의 돈세탁 수단들을 전부 차단시켰다.

돈줄을 잃어 개빡친 깡패들이 언제 우리 사무실을 뒤집어엎으러 찾아와도 이상치 않다는 얘기다.

“널 고용한 이유는 그것 때문이야.”

“네네, 알아요. 경비원 역할이란 말이죠.”

비너스는 보험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놈들이 회사에 쳐들어올 경우를 대비해 이 녀석을 이곳에 두기로 한 것이다. 말하자면 집 지키는 개 역할이다.

“넌 졸라게 약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마법사니까. 양아치 몇 놈쯤은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겠지.”

“……분에 넘치는 평가 참 고맙네요.”

일단은 블랙 대거즈의 호위도 요청해 놓은 상태지만,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현장에 상주하는 인원이 한 명쯤 있는 편이 좋았다.

“회사일도 시키긴 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둬.”

“보수는요? 공짜로 부려 먹을 건 아니죠?”

“최저시급은 챙겨 줄게.”

“…….”

“야근도 자주 해야 할 거야. 가끔 스몰필드 씨 혼자 남는 날에는 무조건 너도 남아야 하고.”

“……추가 근무 수당은 줘요?”

“인턴한테 그런 게 어디 있어.”

***

그날 아침.

“자아, 이쪽이 오늘부터 우리 회사에서 함께 일하게 될 신입 사원― 헬렌 스미스 씨.”

유진이 비너스를 소개하고 있었던 바로 그때.

리타 스몰필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때 그 여자잖아…….’

그렇다. 그녀는 분명히 눈앞의 초록머리 엘프를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회사 앞 카페에서 유진과 함께 있었던 여자.

반차를 낸 유진을 차에 태우고 갔던 그 여자다.

“스몰필드 씨도 인사하세요.”

“…….”

“스몰필드 씨?”

리타 스몰필드는 혼란에 빠졌다.

유진과 신입 사원, 두 사람은 과연 무슨 관계일까. 답은 그야 고민할 필요도 없이 명확했다.

‘여자 친구.’

틀림없다. 자기 애인을 인턴으로 고용한 것이다.

사적 채용까지는 눈감아줄 수 있다. 애초에 한낱 계약직인 자신이 인사 문제로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그렇긴 하지만…….

“팀장니임? 혹시 지금 잠깐 면담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면담이요? 예, 뭐, 그럽시다.”

유진과 비너스가 나란히 회의실로 들어갔다.

닫힌 문 너머에서 시끌시끌한 말소리가 오갔다.

“여기까지 오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알아요? 아침에는 도로 엄청 막혀갖고, 9시까지 출근하려면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단 말이에요. 설마 저보고 이 짓거릴 맨날 하라는 거예요? 겨우 최저시급 받자고?”

“할머니들은 다들 일찍 일어나는 거 잘하던데.”

“그리고 이름은 또 이게 뭐냐구요. 헬렌 스미스라니, 완전 할머니 이름이잖아요!”

“딱이구만, 뭘.”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굳이 저렇게 숨어서 이야기하는 걸 보면 남들에게 못 들려줄 만한 말들을 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회사에서 대놓고 꽁냥대는 거야……?’

잠시 후.

두 사람이 회의실에서 나왔다.

리타 스몰필드는 얼른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황급히 엑셀 문서를 하나 띄우고, 마우스와 키보드를 바쁘게 번갈아 만지작대며 일하는 시늉을 했다.

“스몰필드 씨.”

유진이 다가와 그녀를 불렀다.

“네, 네?”

“신입은 스몰필드 씨 옆자리에 배정하기로 했어요. 괜찮으시죠?”

“아, 네에. 저는 괜찮아요…….”

“일단 오늘은 첫날이고 하니, 인트라넷 쓰는 법이랑 간단한 매뉴얼만 조금 가르쳐 주세요.”

“제, 제가요……?”

“저는 이따 바로 외근을 나가 봐야 해서요. 중간에 애매할 때 바톤 넘기느니 처음부터 스몰필드 씨가 사수 역할을 해주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

“스몰필드 씨니까 믿고 맡기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씩 웃어 보이는 유진.

정말이지 얄밉기 짝이 없는 훈훈한 미소였다. 리타 스몰필드는 뾰로통해진 얼굴을 애써 숨겼다.

“그리고 느낌상 왠지 스몰필드 씨가 저보다 훨씬 잘 가르치실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대학도 교육학과 쪽으로 나오셨다고 하지 않았나요?”

“……유아교육과요. 2년제지만.”

“이 친구가 제법 똘똘한 편이긴 한데, 약간 애새끼 같은…… 아니, 애기 같은 면이 좀 있긴 하거든요. 유아교육과 나오셨다면 문제없겠네요. 하하.”

‘애기 같다’라는 표현이 무지하게 신경 쓰였다.

‘울 애기’라든가 그런 말은 연인끼리나 쓰는 말 아닌가.

역시나 두 사람은 범상치 않은 사이임이 분명했다.

“헬렌, 이쪽은 리타 스몰필드. 앞으로는 스몰필드 씨 옆에서 회사 일을 배울 겁니다.”

그녀들은 서로를 어색하게 마주 봤다.

“자, 잘 부탁드려여. 리타 선배님.”

“아, 넵…….”

겸연쩍은 인사 뒤에, 각자 책상에 앉았다.

리타 스몰필드는 짐짓 눈치를 살피다가, 옆자리의 비너스를 스리슬쩍 곁눈으로 흘겨보았다.

에메랄드처럼 반짝이는 머릿결.

흠잡을 데 없는 미형의 이목구비.

날씬한 몸매와 모델 같은 스타일.

‘되게 예쁜 사람이네…….’

과연 순혈 엘프다운 수려한 미인이었다.

유진이 흠뻑 빠졌다 해도 이해는 갔다. 사람이란 결국 다른 것보다도 외모에 넘어가기 마련이니까.

리타 스몰필드는 다시금 시선을 돌려 책상 한켠의 거울, 거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필요 이상으로 큼지막한 동글이 안경.

비루한 화장 실력에 묻힌 수수한 얼굴.

멋이라곤 전혀 없는 무지 티셔츠 차림.

‘윽…….’

자존감이 뚝 떨어졌다.

원래부터 외모에 큰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바로 옆에 있는 연예인급 미녀와 비교를 해 버리니 아무래도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대학생이라니까 나보다도 어리겠지…….’

뭐 하나 이기는 부분이 없구나.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자기가 왜 한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그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럼, 저는 외근 다녀오겠습니다.”

유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떴다.

비너스는 그가 나가자마자 혀를 쭉 내밀었다.

“으이씨, 망할 인간 같으니. 메롱이다. 쨔샤.”

그러고는 연신 문 쪽을 향해 뻐큐와 주먹감자를 날려 댔다. 상당히 조속한 태도 변화였다.

여하간 유진이 떠난 이후, 이제 사무실에는 (타이퍼를 제외하면) 두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

괜히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상대는 신입 사원, 직장 동료가 아니던가.

그래.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인트라넷 쓰는 법 먼저 알려주자.

“치, 친하신가 보네요.”

….

….

아차.

이게 아닌데.

“친하냐구요?”

리타 스몰필드가 자기도 모르게 꺼낸 속말에 옆자리의 비너스는 눈썹을 찡그러뜨리며 반응했다.

“아, 아니, 그…….”

으아, 큰일이다.

뭐라고 둘러대야 하나.

어쩔 수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

허겁지겁 주워 담을 바에야 아예 더 엎질러 버리는 편이 자연스러울 터. 그리 생각하기로 했다.

“두 분, 아는 사이신 것 같아서요…….”

물론 자기 합리화에 불과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추궁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으리라.

“뭐어, 아는 사이인 건 맞죠. 사실 면접도 안 보고 들어왔어요. 걍 막무가내로 꽂아 주더라구요.”

“아, 그런가요…….”

“왜요. 낙하산이라 맘에 안 드세요?”

“앗, 아뇨, 그럴 리가요! 애초에, 그, 이런 말 해도 되는진 모르겠지만, 실은 팀장님도, 처음에 낙하산으로 들어왔다고, 그렇게 알고 있어서…….”

비너스는 관심 없는 화제에 관심 있는 척을 하듯 건성으로 고개를 까딱댔다.

“어쨌든, 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에요.”

“네?”

“솔직히 말하자면 악연이죠. 여기도 억지로 끌려온 거예요. 협박에 공갈까지 당했다니까요. 아우, 처량한 내 신세. 어쩌다 저딴 인간한테 걸려서는…….”

“저어, 두 분 사귀시는 것 아니었나요?”

“사귀어요? 푸핫!”

비너스는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것만큼은 절―대로 아니거덩요. 세상에 누가 미쳤다고 저런 남자랑 사귀고 싶어 하겠어요?”

“…….”

“그야 뭐, 얼굴은 그럭저럭 괜찮고? 또 능력도 그리 아주 없으신 건 아닌 모양이지만…… 그런 거 다 집어치우고, 인성이 글러 먹었잖아요. 인성이.”

그녀는 너스레를 떨면서 말했다.

“사람한테 막 대하고, 틈만 나면 욕하고 놀리고, 뭐든지 다 지 맘대로에, 시키는 건 드럽게 많으면서, 정작 중요한 건 말 안 하고 숨기기나 하고…… 하여튼 저렇게 성격 나쁜 인간은 처음 봤다니까요. 제가 뭐 그렇게까지 오래 산 건 아닌데, 여태 살아오면서 만난 악당들 중에 손에 꼽힌다구요, 진짜.”

리타 스몰필드는 선뜻 부정하지 못했다.

비너스의 말은 대부분이 맞는 말이었기에.

“같이 회사 다녔으면 잘 아실 거 아녜요? 유진 연, 저 인간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 인간인지.”

옛날부터 그녀는 생각해 왔다.

빌어먹을 상사 자식의 뒷담화를 함께 나눌 직장 동료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아니요.”

허나.

그건 다 옛날얘기.

“팀장님은 그런 분 아니에요.”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은 바뀌기 마련이니까.

“확실히 예전에는 조금 쓰레기 같은 면도 있었어요. 아니, 조금이 아니라 많이요.”

“…….”

“그래도, 처음 팀장님을 봤을 때는 상냥한 사람 같다고 생각했어요. 요즘도 그렇게 보이고요. 저는 이쪽이 팀장님의 진짜 모습이라 생각해요.”

리타 스몰필드는 쉬지 않고 말했다.

“저희 팀장님은요, 숨기는 것도 엄청 많고, 제대로 얘기해 줬으면 하는 건데도 끝까지 말을 안 할 때도 있어요. 평소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진짜 이상한 사람이에요.”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녀는 마무리를 지었다.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

….

그렇게.

일장 연설을 마치고 난 직후.

“아.”

뒤늦게 리타 스몰필드는 깨달았다.

본인이 지금 상당히 부끄럽고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소리를 구구절절 길게도 내뱉었음을.

“에, 아니, 그게, 제 말은 그러니까, 가, 같이 일할 사람들끼리, 뒷담 같은 건 안 좋다고 봐요!”

“…….”

“마, 맞다, 헬렌 씨 오늘 첫날이니까, 뭐더라, 그, 아, 신입 교육! 인트라넷 쓰는 법부터 알려드릴게요!”

부랴부랴 사태를 정리하려는 그녀에게,

“저기요, 선배님.”

비너스가 넌지시 운을 띄웠다.

“혹시 그 인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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