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Crazy Mama (5)
시상視床.
두뇌의 가장 안쪽 중심에 위치한 뇌 속의 뇌.
청각과 시각을 포함한 체감각 전반의 신경을 대뇌 피질과 연결하는 중계핵으로서, 인체의 생리학적 시스템과 운동 능력에 지대한 관련이 있다.
―만약 이 ‘시상’에 <강화>를 부여한다면?
시상 기능의 강화는 곧 신체의 운동 능력을 강화시킨다. 그것은 개개의 근육에 <강화>를 거는 것보다도 움직임 발전에 있어서는 훨씬 효율적일 터.
다만 이는 이론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사물의 구조와 하는 일이 복잡할수록 <기능 강화>는 효과를 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술사가 자신의 신체를 강화할 경우, 첫 전제인 구조 이해의 필요성은 면제된다.)
‘근육’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 몸의 근육이 하는 일은 단순히 강한 힘을 내는 것. 당연히 <기능 강화>에 어울린다.
그렇다면 ‘두뇌’는 어떨까?
두뇌가 하는 일에는 뭐가 있을까. 인지, 학습, 기억, 생리, 행동, 감각…….
너무 많다. 게다가 그 모든 기능들이 하나같이 복잡하고 난해한 메카니즘으로 이루어진다.
두뇌는 <강화>가 효용적인 부위가 아니다.
두뇌 전체에 <강화> 마법을 부여한다 해도, 큰 효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오히려 쓸데없는 과부하만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두뇌의 일부인 시상 또한 마찬가지.
시상만을 집중적으로 강화하여 효과를 보겠다는 것은, 수프를 끓이지 않고서 수프 속에 든 당근만 콕 집어 익힌다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유진은 괴이 사냥꾼과의 전투 개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시상 강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허나 바란 만큼의 효력은 나오지 않았다. 도리어 움직임을 방해받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부위에 가한 <기능 강화>.
강화 상태를 유지하느라 집중력이 분산됐다.
싸우는 동안에 유진의 움직임이 눈에 띌 정도로 점차 느려졌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상대와의 거리는 멀어지고, 또 멀어졌다.
이대로 영원히 닿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전투가 시작된 지 10분여 뒤.
‘…….’
괴이 사냥꾼은 이변을 감지했다.
‘보폭이 줄었어.’
유진의 달음질이 유독 부산스러워졌다.
발이 지면을 박차는 횟수가 늘어난 것이다.
보법은 겉보기에는 완전히 엉망이다.
쓸데없이 걸음의 숫자만 늘어난 것일까?
….
….
아니. 그렇지 않았다.
아까 전보다 명백히―
속력이 빨라져 있었다.
‘싸우는 와중에 성장했다고?’
스피드란 본디 불변의 재능.
각자에게 주어진 한계에 다다르고 나면, 그 이후는 아무리 뼈 빠지게 훈련을 거듭한다 한들, 결코 의미 있는 성장이 불가능한 그런 스탯이다.
‘설마, 그럴 리가 없지.’
괴이 사냥꾼의 생각대로였다.
유진은 성장을 한 적이 없었다.
단지―
<시상 강화>에 드디어 몸이 익숙해졌을 뿐.
그것을 성장이라고 부르는 데는 어폐가 있었다. 유진의 입장에서는 그저 원래 당연히 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을 이제야 성공해냈을 뿐이니까.
<시상 강화> 터득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애런 블런트 역시 그 기술을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만드는 데만 3년 이상의 훈련을 거쳐야 했다.
이에 반해 유진은 어떠한가.
그가 <시상 강화>란 개념을 알게 된 것도 고작해야 일주일 조금 전이다. 열흘밖에 지나지 않았다.
유진은,
10일 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시상 강화>를 유지해 왔다.
정말로, 너무나도 오래 걸렸다.
“……!?”
달려든 유진이 뻗은 손이,
괴이 사냥꾼의 품에 닿았다.
열흘만의 결실이었다.
***
잡았다, 라고 생각한 순간.
“……!”
옷깃을 잡힌 놈은 그렇게 될 걸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능숙하게 코트를 벗어 던져 빠져나갔다. 이어서 발을 뒤로 굴려 다시금 나와 거리를 두었다.
“아차.”
내가 바닥에 흩뿌려진 비즈트랩들을 발견한 것은 그때쯤이었다. 피하기엔 이미 늦어 있었다.
착지한 순간, 발굽이 구슬을 건드리고 말았다.
파지직―!
전류가 온몸에 엉켰다.
“으크윽!?”
프레임 단위로 마구 떨려오는 진동.
혈관을 걸레처럼 쥐어짜는 듯한 통증.
몸이 마비되어 가는 와중에도, 나는 괴이 사냥꾼이 발사한 작살이 날아오는 것을 용케 감지하고, 왼팔에 <강화>를 실어 가까스로 작살을 튕겨냈다.
하지만 그건 놈이 바라던 바였다. 작살에는 사슬로 된 줄이 묶여 있었고, 그게 튕겨져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내 어깨와 팔꿈치에 칭칭 감겨 얽혔다.
곧이어, 팔에 묶인 작살을 통해서 또다시 엄청난 세기의 전류가 흘러오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지지직―!!
고강도로 인챈트 된 전격 마법.
내게 가해진 데미지는 확실했다.
“……큭……!”
그즈음부터는 비명조차도 잘 나오지 않았다. 기절하여 쓰러지지 않은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의식이 흐려져 가는 가운데, 나는 괴이 사냥꾼의 손에 플린트락 피스톨이 들려 있는 것을 보았다.
타앙―!
놈이 권총을 격발했다.
오른팔에 <강화>를 실어 총탄을 막으려 했지만, 신경이 마비된 탓에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운 좋게도 탄알은 내 머리에 명중하는 대신 턱뼈를 살짝 비껴 나갔다. 천만다행이었다.
“이거, 왼손이라 조준이 힘들군.”
남자는 능청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놈의 오른손에는 작살총, 왼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비싼 은탄을 사람한테 쓰는 게 아깝긴 하지만, 슬슬 이 짓거릴 끝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
“그럼, 잘 가게나. 젊은 친구.”
놈이 권총으로 나를 겨냥했다.
이번에는 빗나가지 않을 듯하다.
―이걸로 끝이야?
마음속 깊은 곳에서.
누군가 내게 속삭인다.
―아직 방법이 있잖아.
―어째서 망설이는 거야?
유혹하는 목소리.
듣기 싫은 목소리다.
―그걸 써. <부름>을 쓰라고.
흑마법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래. 타이퍼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걔는 사기꾼이야.
―마녀가 너를 속였어.
―흑마법은 하나도 안 위험해.
제발 좀 닥쳐 주라.
절대 안 쓸 거야. 악마의 힘 따위.
―너의 힘이야.
―네가 가진 힘이라고.
듣기 싫다.
들으면 안 된다.
―써도 돼.
―망설이지 마.
의식이 멍해진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말해.
그럼에도 들리고 있다.
그 목소리는 멎지 않는다.
―말하는 거야.
―그 이름을.
―어서.
맞아. 이건 내 힘이야.
입술이 저절로 움직인다.
―그래.
―착하지.
부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카인 나호르.”
….
….
―하하. 바보.
―아주 잘했어.
***
<부름>의 벌레 떼가 나온 순간.
두 남자의 싸움은 거기서 끝났다.
보랏빛의 가스처럼 퍼져 나간 군체는 곧 자신의 주인을 옭아맨 작살과 구슬들을 먹어 치웠다.
그것들의 안에 내장되어 있던 마석의 마력까지도 원 없이 집어삼켜, 배부름에 미쳐 날뛰었다.
괴이 사냥꾼은 유진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다.
악마의 힘을 마주한 공포로 인해 몸이 마비된 까닭도 있었으며, 이제는 유진이 그보다 더 빨랐다.
“크, 흐윽…….”
목을 붙잡힌 괴이 사냥꾼이 신음했다.
그는 눈앞의 상대를 꼬나보며 읊조렸다.
“……암귀 카이트…….”
유진은 무표정으로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래, 들은 적 있어. 네놈이 그 흑마법사였군. 악마에게 심장을 바친, 인간이길 포기한 귀축…….”
“…….”
“뭐가 문제였나? 약자로 태어난 인생이 불만이었나? 그렇게도 강해지고 싶었나?”
유진의 오른팔은 짐승의 이빨에 수도 없이 물어뜯긴 듯 검붉은 핏자국들로 가득했다. 피부 이곳저곳에 거뭇한 녹처럼 물든 멍까지 슬어 있었다.
“네 팔을 봐라. 제어하지도 못하는 악마의 힘을 감히 제 능력인 마냥 부려 보려다가, 외려 자기 팔을 뜯어 먹힐 뻔한 꼴을 보라고. 정말이지 한심하기 짝이 없군그래. 크흐하핫……!”
“…….”
“넌 이미 괴물과 다를 바 없어…….”
유진은 묵묵히 있었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알아.”
고통을 느끼거나 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괴이 사냥꾼은 군체의 먹이가 되어 사라졌다.
가느다란 달빛이 밤하늘 아래를 비췄다.
없는 거나 다름없는 희미한 불빛이, 아스라이.
내일은 신월.
달이 보이지 않는 밤이었다.
***
여자는 지그시 눈을 떴다.
은은한 피부 냄새. 그리고 약간의 땀 냄새.
등 쪽을 덮은 트렌치코트와, 그립고도 포근한 사람의 온기가, 그녀의 몸을 덥혀 주고 있었다.
유진은 여자를 등에 업은 채 밤거리를 걸었다.
여자는 유진의 어깨와 목을 팔로 안아 감싸며, 그의 등에 얼굴을 푹 눌러 기댔다.
“…….”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있었다.
터벅터벅 발걸음 소리만 들려왔다.
“나는 유진이에요.”
어느 즈음에 슬쩍.
유진이 말을 꺼냈다.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
그가 물었고,
여자는 답했다.
“메리.”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왔다.
유진은 피투성이가 된 메리의 몸을 씻겨 주었다. 괴이 사냥꾼에게 당한 상처는 벌써 아물어 있었다.
“불 끌게요.”
“…….”
“잘 자요.”
유진은 메리를 침대에 눕히고 나서 자기는 소파에 가서 잘 준비를 했다.
“같이 자면 안 돼?”
그때 메리가 말했다.
아주 간곡한 목소리로.
“그래요. 그럼.”
틱―.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유진은 누운 채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피곤해 죽을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눈은 감기지 않았다.
“미안해.”
메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때문에. 죽을 뻔했지.”
“신경 쓰지 마요.”
“미안해. 내가 괴물이라서.”
유진은 잠자코 있었다.
“나 말이야. 애들을 집에 두고 왔어. 아들 만나러 간다고 하고, 거기 그냥 두고 와 버렸어.”
“…….”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애들인데, 그러면 안 됐는데,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래서, 나는…….”
메리는 흐느끼면서 말했다.
조금 뒤에야 겨우 진정한 듯했다.
“있잖아. 나 여기 또 와도 돼?”
그녀가 물었다.
유진은 천장을 보며, 넌지시 말했다.
“비프스튜. 맛있었어요.”
“…….”
“다음에 또 만들어주세요.”
메리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응.”
만족감이 들어서였을까.
유진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었을 때.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
침대에는 희미한 온기와 잔향이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기억들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흐릿흐릿한 감각으로만 남아 떠오를 듯 말 듯 아리송했다.
유진은 모두 잊어버리기로 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분명.
그리고 그때,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예. 나가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익숙한 실루엣이 거기 서 있었다.
검은 머리.
보라색 눈동자.
붉게 칠한 입술.
사라졌던 그녀― 메리였다.
“……?”
뭐지.
재회가 너무 빠른데.
“냄비.”
“예?”
“놓고 갔어.”
파자마 차림의 메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방안으로 슥 들어왔다. 부엌으로 가더니 찬장에서 냄비를 챙기고 돌아섰다.
“갈게. 아들.”
아, 이번에야말로 작별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떠나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엇, 잠깐, 이봐요? 나가는 길은 왼쪽……?”
메리는 유진의 말을 무시하고 복도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옆옆집. 210호 문 앞에 섰다.
끼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달칵―.
문이 닫혔다.
이내.
잠잠해졌다.
“…….”
유진은 한참 벙찐 채로 서 있었다.
냄비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이웃이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