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Crazy Mama (4)
내가 말하자, 남자는 비소를 지었다.
“하핫, 미친놈이라.”
씁쓸한 웃음에 이어 그는 짧게 혀를 찼다.
“확실히. 그런 것 같군.”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잠깐 내 소개를 하자면, 나는 <신월교단> 소속의 괴이 사냥꾼일세. 괴물을 사냥하는 것이 내가 맡은 책무지만, 가끔씩 인간을 사냥해야 할 때도 있어. 뱀파이어의 권속이 되었거나, 늑대인간의 광랑병이 옮았거나, 렙틸리언의 아이를 임신했다거나 하는 경우지.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경우가 아니야.”
“…….”
“무슨 말인지 알겠나?”
그때.
다시 위험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건 그냥 살인일세.”
썩은 시체 냄새보다도 지독한―
코앞까지 다가온 살기의 냄새가.
“자네는 내 고해 성사 소재가 될 거고.”
남자는 작살총을 똑바로 세웠다.
그는 지체 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바로 그 순간에, 나 역시 오른팔을 몸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투슉―!
살벌한 크기의 작살이 내 머리통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것은 총탄만큼 빠르진 않았으나, 일류 투수가 던진 강속구만큼의 스피드는 지니고 있었다.
요컨대,
일류 타자라면 반응할 수 있단 얘기다.
―피하는 대신에, 받아쳐서 막는다.
마나를 방출. 오른팔의 둘레를 토시처럼 감쌌다.
그런 다음 신체와 의복과 공기를 동시에 <강화>.
얇은 종이를 접고 또 접어 두껍게 만들면, 겹겹이 겹친 종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단단해진다.
비슷한 원리를 <강화>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
뼈-근육-피부-옷-공기로 이어지는 5겹 강화. 거기에 마나 장막들을 촘촘히 겹쳐 가며 거듭 강화한다.
이로써 자색 마력의 태생적 한계인 처참한 수준의 마나 강도를 일부 개선.
<마나 배리어>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한 고효율 방호 마법 <포스 디펜더> 재현 성공이다.
파캉―!
작살이 날아오는 타이밍에 맞춰, <포스 디펜더>를 두른 오른팔을 휘둘러 그것을 받아쳤다.
타격 결과는 투수 강습 타구. 작살은 부메랑처럼 팽글팽글 돌며 주인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남자는 튕겨진 작살을 어렵지 않게 피했지만, 곧이어 달려든 내 공격을 피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폭렬파>.”
영창을 가미한 오늘의 두 번째 <폭렬파>.
위력은 첫 번째 것에 비례해 정확히 두 배.
콰아아아아앙―!
거센 폭발이 일었다.
저택의 한쪽 벽면은 방금 폭발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나중에 집주인이 알게 되면 꺼이꺼이 통곡을 할까. 아니면 철거 비용이 굳었다며 좋아라 할까.
남자는…… 유감스럽게도 멀쩡했다.
생각보다 놈의 반응이 매우 잽쌌다. <폭렬파>를 안면에 먹였다고 내가 확신한 찰나에, 이미 놈은 내 공격을 간파하고 안전한 방향으로 피신한 뒤였다.
“괜찮은 출력이군. 움직임도 나쁘진 않아.”
저택의 뒷마당, 혹은 드넓은 황무지.
남자는 멀찌감치 떨어진 위치에서 흥얼대듯이 말했다. 나더러 들으라 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경험이 압도적으로 부족해. 우악스럽게 힘으로만 밀어붙이려 하고 있지. 접근한 뒤 공격. 그게 다잖아? 일단 들이받고 보려는 멧돼지야, 자넨.”
“…….”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센스까진 있지만, 그 이상이 없어. 단순하고 뻔한 공격만 되풀이할 뿐. 그래서야 자기보다 빠른 상대는 어찌 이기려고 그러나?”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기분 나쁠 정도로 정확한 평가였기에.
“그쪽은 주둥이로 싸우시나?”
그래서 그냥 시비나 걸기로 했다.
저쪽이 먼저 시비를 건 셈이니깐, 뭐.
남자는 재차 나를 비웃듯이 웃었다.
놈은 나를 곁눈으로 흘겨보며 말했다.
“처음 한 번. 그리고 방금 전 한 번. 내 앞까지 접근했던 그 두 번이 자네의 마지막 기회였네.”
주머니에 한쪽 손을 집어넣었다.
잘그락,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제 나랑 가까워질 일은 없을 거야.”
이윽고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내, 손에 쥐고 있는 무언가를 휙 던져 바닥에 뿌렸다.
구슬이었다.
개수를 일일이 파악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구슬들이 뒷마당 흙밭에 흩뿌려졌다.
“저건…….”
나는 그 구슬의 정체가 뭔지 금세 알아챘다.
비즈트랩. 마석 성분이 함유된 유동성 함정 아이템으로, 충격에 반응하여 에테르 폭발을 일으킨다.
또한 인챈트시킨 마법의 종류에 따라 단순한 폭발 대신 화염이나 연막을 일으키거나, 전류 혹은 독가스를 발산하는 식으로 다양하게 제작이 가능했다.
이번 경우는 감전형 비즈트랩이었다.
파직―. 땅바닥을 구른 구슬들이 서로 부딪치며 여러 차례 푸른빛의 스파크가 튀는 게 보였다.
―밟으면 좆된다.
감전 자체는 큰 데미지를 입히지 않을 테지만, 전기가 흐른 순간 몸이 마비가 되어 버린다는 게 문제였다. 어느 게임이든 CC기는 사기 스킬 아니던가.
남자는 멀리서 작살총을 쏘아댈 것이다. 나는 구슬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놈이 쏘는 작살을 피하거나 막아야 한다. 동시에 놈에게 접근해야 한다.
―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원거리 공격 수단은 한정적이다.
자색 마력의 쓰레기 같은 유지력 탓에 거리가 멀어질수록 <강화>의 위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최고 출력의 <버닝 샷>을 쓴다 해도, 효과적인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한계 거리는 30미터 이내.
그마저도 내 느릿한 마법 공격을 날려 봤자 저 남자의 그림자조차 스치지 못할 게 분명했다.
―해야만 한다.
접근한 뒤 공격.
그것밖에는 없다.
“후.”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이제 와서 몸을 풀 필요까진 없었다.
남자의 작살총이 나를 향해 조준됐다.
그리고 곧 쇠침이 탄환처럼 발사됐다.
목숨을 건 탄막 슈팅 게임이― 시작됐다.
***
‘느리군.’
개활지에서의 본격적인 전투에 임한 지 3분.
감상은 별것 없이 오로지 그 3음절뿐이었다.
느리다. 그저 순수하게 느릴 뿐이다.
맨 처음에 기습할 때가 가장 빨랐고, 그다음 공격이 두 번째로 빨랐으며, 이후 계속해서 느려졌다.
이제는 거의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괴이 사냥꾼은 실제로 도중에 몇 번 정도 하품을 했다. 다만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전부 입속에서만. 초짜를 상대하는 와중의 나름의 배려였다.
괴이 사냥꾼은 별로 많은 일을 하지 않았다.
단지 이리저리 껑충껑충 뛰면서 작살총을 쏘기만 할 뿐이었다. 그 이상은 할 필요가 없었다.
유진은 날아오는 작살을 막거나 피하고, 바닥에 떨어진 비즈트랩을 밟지 않으려 필사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괴이 사냥꾼에게 접근하기 위해 거리를 좁히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허나 그가 아무리 애써도,
거리는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한 보. 가끔은 두세 보에서 서너 보까지.
매번 거리를 좁히려 할 때마다, 괴이 사냥꾼의 걸음이 유진보다 아주 조금씩 더 빨랐다.
그 차이 때문에, 오히려 둘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유진에게 있어서는 제논의 거북이를 쫓아가는 아킬레우스보다도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투슉, 투슉―!
작살이 발사되는 패턴도 점차 어지러워졌다.
친절하게 머리와 몸통만 노리지도 않았다. 이따금 변칙적으로 다리와 같은 허리 아래의 부위를 노려, 아까처럼 오른팔에 두른 <포스 디펜더>로 받아칠 생각을 하고 있던 유진을 적잖이 당황케 했다.
그동안 데미지와 피로는 착실히 누적돼 갔다.
이미 유진의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작살에 찔리거나 쓸려 생긴 자상과 찰과상이 군데군데 가득했다.
“젠장…….”
유진은 뼈저리게 깨우치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스피드로는 결단코, 무슨 일이 있어도 상대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모든 걸 집어삼키는 악마의 힘마저 근접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었다. 좌우지간 이대로는 아무것도 못 한다.
―지는 건가?
좋지 않은 결말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설마 여기서 이렇게 패배하고 마는 걸까.
―아니. 아직이야.
유진은 움직이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래, 아직이다. 힘이 다해 쓰러지지 않는 한 어쨌든 이 몸뚱이를 계속 움직여볼 작정이었다.
―끝까지 간다.
그리고.
유진의 판단은 옳았다.
상황은 변해가고 있었다.
본인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의 움직임은 분명히,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
부하 중에 애런이란 녀석이 있다.
애런 블런트. 인간 남자. 만으로 28세.
과거 <데스트루퍼>의 소대장으로 준 간부급 위치에 있었던 녀석인데, 지금은 내 밑에서 일한다.
직업은 무투가. 그중에서도 주먹 기술이 주력인 아이언피스트. 민첩성이 매우 뛰어난 클래스다.
스피드로 치자면, 글쎄.
일단 나는 쨉도 안 된다.
“아이고. 그만. 그만하자. 나 죽겠다, 야.”
나는 휴일마다 애런에게 격투 훈련을 받고 있다.
기본적인 체술을 익혀 둬서 손해 볼 건 없으니까.
“지치신 겁니까?”
“그래. 지쳤다. 그러니까 그만하자고.”
“알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물론 내 클래스는 마법사인 만큼 이쪽에 그리 큰 비중을 두진 않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건 체력 단련을 겸한 일종의 주말 피트니스인 셈이었다.
운동 삼아서 가볍게 하는 느낌이긴 하나,
아무래도 자존심이 뭉개지는 일이 잦았다.
“하, 진짜 어떻게 한 대를 못 치냐…….”
“그래도 많이 느셨습니다, 카이트 씨. 이젠 저도 전처럼 봐주면서 할 수가 없게 됐어요.”
“전에는 봐주면서 했단 거네, 시발…….”
풀스피드 <강화>로 잽을 날려도 애런은 그걸 쉽게 피해 버리고 그 와중에 카운터펀치까지 날린다.
애런과 스파링을 뜨고 나면, 내가 싸움에 있어 얼마나 느림보 거북이인지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
“너는 싸움 어디서 배운 거야?”
“따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그냥 어렸을 때부터 주먹다짐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혔죠.”
“아, 그래. 천재였구나.”
“천재라뇨. 그렇진 않습니다.”
“아니. 내가 보기엔 너 천재 맞아. 너보다 강한 놈들은 솔직히 많이 봤는데, 싸울 때 스피드만큼은 지금까지 만난 애들 중에 니가 최고야, 진짜로.”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한테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없다는 건 이미 확정된 사실이지만, 혹시나 무투가로서의 재능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헛된 기대에 불과했다.
“다른 건 몰라도 반사 신경은 진짜 타고나야 하는 거잖아.”
“카이트 씨도 반사 신경은 제법 준수하다고 보는데요.”
“내가? 어딜 봐서?”
“제 펀치를 어느 정도 보고 반응하시지 않습니까.”
“에이, 그건 <강화> 덕분에 몸놀림이라도 그나마 빨라진 덕분에 그렇게 보이는 거지. 실제론 거의 다 그냥 뽀록이야. 만약 네가 나처럼 <강화> 쓰고 다니면 완전 퀵실버나 플래시처럼 움직일 수 있을걸?”
내가 그렇게 투덜대자,
애런은 덤덤하게 말했다.
“저도 <강화> 쓰고 있습니다.”
“……뭐?”
“그러고 보니 제가 말씀을 안 드렸군요.”
뭐야. <강화>를 쓰고 있었다고?
세상에 그럴 수가. 눈치도 못 챘다.
“너도 마법 쓸 수 있었어?”
“일단은 적색 마력 보유자긴 합니다. 보유량이 너무 미미해서 색채 구분에 큰 의미는 없지만요. 그래도 약한 출력의 <강화>라면 30분 정도는 지속할 수 있습니다. 가끔 중요할 때만 써먹는 편이죠.”
듣고 보니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강화>는 원래부터 모든 클래스가 다 같이 애용하는 범용 마법이니까. 마력을 가진 무투가인 애런이 그걸 쓸 줄 안다고 해도 놀라울 건 딱히 없지.
“그럼 혹시, 나랑 스파링 할 때도……?”
“맞습니다. 요새 카이트 씨 주먹이 많이 매서워져서, 필요할 때마다 약간씩 쓰는 중입니다.”
“어쩐지. 가끔 갑자기 스피드가 확 늘어나는 순간이 있는 것 같더라니. 근육 같은 데에 강화 걸어서 순간적으로 파워랑 스피드를 늘렸던 거구나?”
애런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잉?”
“스피드와 반사 신경을 늘리기 위해 <강화>를 쓴 건 맞지만, 근육에다 마법을 걸지는 않았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마나 보유량이 많이 적어서, 마나를 많이 잡아먹는 근육 강화는 잘 맞지 않거든요.”
“뭐야, 그럼. 도대체 어떻게 빨라진 건데?”
“비결은 다른 부위를 강화시키는 겁니다.”
“어디를?”
녀석은 곧장 나에게 말했다.
자기 머리를 검지로 가리키면서.
“여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