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74화 (74/201)

74화. Crazy Mama (3)

정적.

불편한 침묵이 오갔다.

“……그 여자한테 볼일이 있다고요?”

“그래. 자네 방에 들어가는 걸 봤거든.”

남자는 신문을 펄럭거리며 고쳐 쥐었다.

“나는 그 여자를 한참 동안 찾고 있었지. 그리고 어젯밤에 이 주변 골목에서 드디어 그녀를 발견했어. 헌데 웬 반반한 사내놈이랑 같이 있더군.”

“…….”

“그게 바로 자네야. 둘이 손 꼭 잡고 이 모텔로 들어오는 걸 보았지. 암, 나는 다 보았단 말일세.”

고개를 연신 까딱거리는 남자.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그 여자 남편분이라도 되십니까?”

그는 껄껄 소리를 내며 요란스럽게 웃었다.

“뭣이라? 내가 사랑하는 집사람의 충격적인 불륜 장면을 목격한 서글픈 바깥양반 되시냐고? 허어, 그렇게 보였다면 정말 웃기는 일이로군.”

“…….”

“난 딱히 그런 게 아닐세. 내가 그 여자를 찾는 것에는 감정적인 이유가 전혀 없고, 앞으로 법적인 공방을 펼칠 일 또한 일체 없을 거야.”

“그럼, 대체 목적이 뭡니까?”

“이미 말했지 않나. 그 여자가 목적이라고.”

덜커덩, 덜커덩―.

다시금 시작된 두 사람의 침묵 사이에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만이 고고하게 울려 퍼졌다.

“여자가 필요하신 거라면 역전 쪽에 콜걸 전단지가 많이 붙어 있습니다. 가서 함 살펴보시죠.”

“미안하지만,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다른 여자가 아닌, 자네 방에서 자고 있는 바로 그 여자라네.”

“아는 사람인가요?”

“자네보다야 잘 알지.”

“제 눈에 당신은 젊은 여자 쫓아다니는 변태 스토커로 보이는데요.”

“자네는 그 여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나?”

“…….”

“보아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

남자는 신문을 서서히 내렸다.

그의 예리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말해 보게. 그 여자가 뭐라고 생각하나?”

고민할 여지조차 없는 질문.

나오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그냥 미친 여자요.”

남자는 또다시 껄껄 하고 웃었다.

그러고는 신문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고 하나 하지, 젊은 친구.”

“…….”

“오늘 밤은 늦게까지 돌아다니지 말게나.”

그 말은 왠지 협박이 아니라 충고처럼 들렸다.

“달빛이 옅어, 위험한 밤이니 말이야.”

남자는 그대로 세탁실을 떠났다. 나는 문을 열고 나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끝까지 응시했다. 이후 빨래를 모두 마치고서 내 방으로 돌아갔다.

여자는 여전히 내 침대에서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 세탁실에서 만난 남자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곤히 잠든 그녀를 깨우는 것은 조금 꺼려졌다.

뭐, 내일 아침에 물어보면 되겠지.

“후우.”

시간은 어느덧 11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나는 어제처럼 소파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시멘트처럼 딱딱한 뼈대, 패브릭 방석에 찌든 꿉꿉한 냄새, 잠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수없이 많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잠자리가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같은 공간에 다른 누군가가 함께 잠들어 있다―.

아마도, 거기서 오는 안정감 덕분이 아니었을까.

오랜만에 깊이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새벽 2시경.

주변을 서성이는 기척에 문득 눈이 떠졌다.

“……?”

캄캄한 시야 속에 아른거리는 검은 실루엣.

여자였다.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던 그녀는 왜인지 한밤중에 깨어나 소파 맡에 서 있었다.

그리고 내가 눈을 뜬 바로 그 직후.

돌연 그녀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휘잉―.

열린 문틈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꼭 그래야만 한다는 판단도 없이, 그저 무의식적으로, 집 밖에 나간 여자의 뒤를 슬그머니 쫓았다.

여자는 홀로 모텔을 나와 거리를 거닐었다.

실밥 한 오라기 안 걸친 나체였지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이 시간의 7구역 거리는 한여름의 스키장보다도 사람이 적었으니까.

그녀는 맨발로 뛰듯이 걸으며 어딘가로 향했다.

중간에 몇 번씩 주춤거리며 방황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분명한 목적지가 있어 보였다.

10미터에서 20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나는 계속해서 여자를 따라갔다. 그동안 여자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걷고 또 걷다 보니, 어느새 모텔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곳에까지 와 있었다.

그곳은 버려진 주택가였다.

한때 재개발 소문에 펄펄 들끓어 올랐던 이곳 일대의 부동산은, 그 소문이 단지 소문에 불과했다는 소문으로 인해 얼마 못 가 차갑게 식어, 이제 다시는 녹지 않을 정도로 꽝꽝 얼어 버리고 말았다.

여자는 텅 빈 택지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오래된 튜더 양식 저택 앞에 멈춰 섰다.

‘임대인 구함’이란 푯말이 잡초로 무성한 마당에 박혀 있었으나, 관리 상태를 보아 집주인조차 이 집의 존재를 아주 오래전에 잊어버린 듯했다.

저택의 문은 반쯤 부서진 채 열려 있었다.

여자는 문을 통과해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 무렵부터 위험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불안했다. 망설여졌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편이 현명하리라, 자꾸만 그런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불길한 징조를 어리석게도 무시하고서, 나는 걸음을 옮겼다. 여자를 쫓았다.

끼익―.

저택 현관의 입구 계단을 오르자, 나무로 된 바닥이 압력에 짓이겨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마치 지금이라도 당장 걸음을 멈추고 돌아가라는 마지막 경고음처럼 들렸다.

물론, 나는 멈추지 않았다.

저택 현관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작은 빛줄기 하나 없는 완전한 암흑.

잘착잘착―.

으적, 으적―.

암흑 속에서,

희한한 소리가 들렸다.

찐득한 흡착음. 질깃한 소음.

생고기를 쩝쩝거리는 듯한 소리.

이어서 코를 찌르는 고약한 악취가 났다.

부패한 음식물에 시궁창의 암모니아가 섞인 냄새…… 썩은 시체 냄새였다. 저택 바깥에서부터 풍겨 왔던 위험한 냄새와 같은 냄새였다.

그때쯤.

밤하늘에 뜬 그믐달의 미약한 빛이 저택 천장의 유리창으로 들어와, 집 안을 희미하게 밝혔다.

핏물로 적셔진 바닥.

내장이 드러난 시체.

그리고―

시체의 팔을 뜯어 먹고 있는 여자.

그녀는 등을 보인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이내 문 앞에 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

여자의 입 주변은 새빨간 핏빛이었다.

“아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시체의 팔을 놓쳤다.

“아, 아니야, 이건, 아니야, 나는……!”

고개를 양옆으로 마구 휘저으며 온몸을 달달 떨었다. 목소리와 몸짓에는 혼란만이 가득했다.

일단은 그녀를 진정시켜야 했다.

허나 내가 그럴 생각을 품기도 전에.

정면에서 날아온 강철 작살이,

여자의 목 가운데 부분에 꽂혔다.

“……하윽…….”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다.

그녀는 마치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신음 소리를 내며, 핏물 고인 나무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내 말을 듣지 않았군. 젊은 친구.”

작살이 날아온 방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몇 시간 전에 대화를 나눈 남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뚜벅―. 중절모와 트렌치코트 차림의 중년 남자가 내 옆을 유유히 스쳐 지나갔다.

“오늘 밤은 밖에 싸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을 텐데.”

“…….”

“말을 들었어야지. 괜히 안 좋은 꼴 구경했잖나.”

그는 쓰러진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작살에 뚫린 목을 부여잡은 채 고통스러운 듯 켁켁대고 있었다.

“편하고 보내주고 싶지마는 말이야.”

남자는 손에 든 작살총을 아래로 조준했다.

콰직―.

잔혹한 파열음. 여자의 머리에 두꺼운 쇠침이 꽂히자, 비로소 괴로워하는 소리가 멈췄다.

“이래도 안 죽는다니까, 이 괴물들은.”

여전히 움찔거리며 경련하는 여자의 머리를 발로 툭툭 건들면서, 남자는 질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여자는…….”

“보면 모르겠나? 뱀파이어일세.”

뱀파이어.

피와 시체를 탐하는 흡혈귀.

‘괴이종’이라 불리는, 종족 취급을 받지 못하는 현대 인류의 아종亞種 중 하나.

“발견한 지는 한참 됐는데, 그동안 도통 사냥 기회를 못 잡았거든. 어제 드디어 좋은 타이밍이 왔건만 하필 자네가 나타나서 일을 그르쳐 버렸지.”

“…….”

“자네는 운이 좋았어. 뱀파이어한테 홀릴 일은 없었으니까. 이 녀석 같은 레서 뱀파이어는 권속도 못 만드는 쓰레기라, 따지고 보면 구울이나 다를 바 없지. 썩어빠진 시체도 잘만 처먹고 있었잖나.”

뱀파이어 헌터는 재미지다는 듯이 웃었다.

나로서는 뭐가 재미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아, 이제부터 이 흡혈귀 년을 죽여야 일이 끝나는데……. 그게 사실 물리적으로는 많이 어렵단 말이지. 순도 높은 은탄을 심장에 박는 방법이 제일 확실하지만 그건 상당히 비싸서 말이야. 나는 은가루 섞은 파라핀 오일로 불태우는 방법을 선호하지.”

남자가 말했다.

“이봐, 젊은 친구. 괜찮으면 이 녀석을 뒷마당까지 옮기게 좀 도와주겠나? 시체 태우다가 남의 집까지 홀라당 태워 먹으면 곤란하니까. 응?”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어째 표정에 불만이 그득하신데.”

“…….”

“혹시 날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건가?”

남자가 물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발 치워.”

그는 바닥 쪽을 내려다보았다. 남자의 발은 쓰러진 여자의 머리를 내내 밟고 서 있었다.

“어이쿠. 미안하군. 밟고 있는지 몰랐어.”

남자는 능청스럽게 웃더니 발을 슥 치웠다.

그러고는 다른 쪽 발을 들어, 여자의 머리에 꽂힌 작살을 잘근잘근 눌러 밟았다.

“이건 어때? 알면서 밟은 건데.”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즉시 바닥을 박차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빠지직―!

발을 구를 때마다 나무 바닥이 쪼개졌다.

<강화>로 재현한 가속 마법 <엑셀러레이션>.

남자는 이미 한참 전부터 돌진을 대비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내 속력이 예상 이상으로 빨랐다.

오른손에 <폭렬파>를 압축시켜 장전.

애매한 방어 태세를 갖췄을 뿐인 남자를 향해, 장전된 마법을 그대로 방출.

투콰아아아앙―!!

기습 공격 시도는 성공.

허나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남자는 충돌 직전 내 오른손이 움직이는 걸 보고 그에 반응해 몸을 뒤로 굴려 회피했다.

내가 날린 <폭렬파>는 벽으로 부딪혀 거기에 사람이 통과할 만한 크기의 구멍을 내는 데 그쳤다.

“이런, 설마 정말로 공격해 올 줄이야.”

뱀파이어 헌터는 저택 벽에 뚫린 구멍을 돌아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후 그는 나를 향해 말했다.

“이해가 안 되는군. 무슨 이유로 이러는 거지? 하룻밤 새 그 괴물이랑 정이 통하기라도 한 건가?”

“…….”

“말해 봐. 넌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놈이 물었다.

그러게. 무슨 이유로 이러는 걸까.

어제 처음 만난 여자를 구하기 위해서?

아니, 그런 시답잖은 이유는 결코 아니다.

아마도,

저녁에 먹은 비프스튜가 맛있어서.

어쩌면,

부둥켜안았던 품이 너무 따뜻해서.

모르겠다.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냥.”

생각 없이 움직여졌다.

단지 그랬을 뿐이다―.

“그냥 미친놈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