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73화 (73/201)

73화. Crazy Mama (2)

세실리아 화이트럼. 이명 백주白酒마녀.

유명 인터넷 블로그 <마녀일기>의 주인장.

그녀는 약 5년 전부터 활동을 시작한 블로거로, 주로 마법과 관련된 정보글 등을 게시해 왔다.

의외로 전문적이면서도 재미있게 풀어쓴 알찬 내용 덕에 그동안 인터넷에서 꾸준한 인기를 끌었다.

세실리아 화이트럼의 블로그는 마법서를 살 돈이 없거나 그것을 읽어도 이해할 머리가 없는 초짜 마법사들에게 있어 한 줄기 빛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이 세계에 와서 처음 마법 쓰는 법을 익힐 때도 <마녀일기> 블로그의 도움을 받았었다.

마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한 번쯤은 그녀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을 것이다.

“세실리아 화이트럼? 당연히 알죠. <마녀일기> 블로그의 마녀님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역시나 생각대로, 마법 상점의 여주인 역시 그 블로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제가 묻고 싶은 건, 세실리아 화이트럼의 ‘정체’에 관해서입니다.”

“정체요?”

“예. 과연 그 마녀님이 어디 사는 누구인지를요.”

수상할 정도로 마법에 빠삭한 인터넷 블로거.

허나 그녀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세실리아 화이트럼의 정체는 베일에 휩싸여 있었다.

얼굴이나 프로필을 공개한 적은 없으며, 자기 일상이나 생활에 관해 얘기한 적도 극히 드물었기에, 추리를 하려고 해도 단서가 너무 적었다.

“혹시 뭔가 알고 계신 게 있나요?”

“흐으으음……. 마녀님의 정체라…….”

여주인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왜인지 그 모습은, 자기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나와 공유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뭔가 아는 게 있군요.”

“흐흥, 아주 모르는 건 아니에요.”

여주인은 빙그레 웃었다.

“확실히 마녀님은 비밀스러운 존재이긴 하죠. 마법에 있어서는 샌마대 교수 수준으로 아는 게 많고, 아우구스투스급 대마법사 몇 명이랑 친분까지 있고……. 블로그에서 하는 이야기들만 보면 엄청난 인물임이 분명해 보이잖아요? 그런데도 정작 정체에 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

“그나마 있는 단서로 추측을 해보자면― 마녀님은 아마 <나인서클>의 일원이라 봐야 할 거예요.”

나인서클Nine Circle.

마공의 극極에 달한 아홉 명의 대가.

국가가 공인한, 현존 최강의 마법사들.

어스테이트에는 괴물 같은 존재들이 수두룩하지만, 그중에서도 <나인서클>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아예 궤를 달리하는, 괴물들의 괴물이었다.

그 강함은 한마디로― 차원이 다르다.

한 명 한 명이 세계구급 위협. 마음만 먹으면 나라 하나를 무너뜨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존재들이었다.

정부는 그러한 통제 불가능 존재를 <나인서클>로 지정. 공식적인 ‘깍두기’로 임명했다.

<나인서클>에 소속된 마법사에게는 중세 왕족이 받았던 대우 이상의 온갖 특혜가 주어진다.

천문학적인 단위의 평생 연금 지급 보장.

불체포 특권과 면책 특권을 포함한 온갖 법적인 특권들에 더해, 사적인 공권력 이용까지도 묵인.

괴물들의 기분이 나빠져 역정을 부리는 일이 없도록, 국가 차원에서 비위를 맞춰 주는 셈이었다.

“<나인서클>의 마녀라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떠오른 이름을 읊조렸다.

“천년마녀 슈이.”

<나인서클>의 초대 멤버이자 제1원圓.

천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신비로운 마녀.

“맞아요. 세상에 ‘마녀’라 불리는 이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천년마녀 슈이가 바로 세실리아 화이트럼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죠.”

“…….”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여주인은 말했다.

“나인서클에는 마녀가 한 명 더 있잖아요?”

또 한 명의 마녀라면…….

나는 아, 하고 반응했다.

“알리시아 벨카폴리아.”

나인서클의 제5원. 아르카나 마법의 계승자.

‘벨카폴리아의 마녀’라 불리는 고귀한 하이엘프.

“그녀가 마녀님이라는 가장 큰 증거는 바로 ‘세실리아 화이트럼’이란 이름 속에 숨겨져 있어요.”

“……이름이요?”

“세실리아. 벨카폴리아. 둘이 ‘리아’가 겹치죠?”

“……그게 다예요?”

“‘화이트럼’이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뭐가 떠오르나요? 흰색 술병에 들어 있는 럼주― 즉, 바카디죠. 바카디 상표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 뭔지 아세요?”

“……박쥐 그림 아닌가요?”

“그렇죠. 박쥐 그림. 박쥐 하면 떠오르는 히어로는 배트맨. 1997년 조엘 슈마허 연출작 ‘배트맨과 로빈’에서 배트걸로 출연하는 여배우의 퍼스트 네임이 뭘까요?”

“……설마, 알리시아?”

“딩동! 정답!”

“…….”

“후훗, 어때요? 그럴싸하죠?”

그럴싸하긴 했다.

다만 세상에 떠도는 대부분의 음모론들이 단지 그럴싸한 수준에 그친다는 점이 문제였다.

“어쨌거나 세실리아 화이트럼의 정체는 천년마녀 슈이, 아니면 알리시아 벨카폴리아라는 게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결국 인터넷 잡썰 정도에 그치는 건가.

“마녀님을 직접 만날 방법은 없는 거겠죠?”

“뭐어, 그녀가 정말로 나인서클 소속의 마법사라면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죠. 특히 천년마녀 쪽은 대외 활동은 고사하고,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세간에 알려져 있지 않으니까요.”

게임 속에서도 나인서클은 전인미답의 존재.

메인 스토리 최후반 파트에나 조금 엮이는 정도로, 일반적으로는 레벨 60 가까이 찍기 전까진 아예 관련 NPC를 만나볼 일도 없다.

……여전히 미스터리다.

타이퍼(가짜)가 정말로 나인서클의 마법사라고 한다면, 어째서 그동안 나한테 마법을 가르쳐준 걸까?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그 녀석이, 내가 무한한 마력을 가진 흑마법사란 걸 알고 있다는 점이 심히 마음에 걸렸다.

만약 녀석이 마법사라면.

내 심장을 노리고 습격해 온다면.

<사이버판타지> 세계관에서 나인서클 소속의 마법사에게 목숨이 노려진다는 건, 크툴루 세계관에서 크툴루에게 목숨이 노려지는 것과 진배없었다.

뭐, 아직까진 나에게 그런 코즈믹 호러스러운 웅장한 위협은 찾아오지 않았다. 다행인 일이지.

나는 회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바쁘게 일했다. 언제나처럼.

하루하루는 지독하리만치 따분하고 소중했다.

과연 이런 일상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언젠가 불행한 결말로 끝나 버린다 해도,

그게 오늘이나 내일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

그날은 조금 일찍 퇴근했다.

일찍이라고 해 봤자 오후 7시였지만.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한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성급했다.

현관문 앞에 도착할 즈음엔 원인을 알 수 없는 초조함까지 가세해 있었다.

……그 여자.

……아직 있으려나?

철컥―.

잠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부엌에 서 있는 검은 머리의 여자.

“……?”

그다음 코에서 느껴진 것은,

식욕을 자극하는 향긋한 냄새.

복도에서부터 조금씩 풍겨 온 냄새다.

옆방에서 나는 냄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냄새의 출처는 208호. 내가 사는 방이었다.

“아들 왔어?”

부엌의 여자가 나를 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가스레인지 위 냄비 속에선 뭔가가 끓고 있었다. 보글보글 맛있는 냄새를 온 방 안에 퍼뜨리며.

“저기, 그거……?”

“비프스튜.”

“냄비랑 재료는 어디서……?”

“옆집에서 빌렸어.”

그녀의 말에 나는 심히 벙쪘다.

옆방 209호에 사는 오르테가 부부는 금실 좋은 노년 커플로, 이 모텔의 장기 투숙객들 중에서는 가장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몇 번인가 내 방에 찾아온 적도 있었는데, 음식을 너무 많이 했다며 수프나 찜 요리 같은 것을 나눠주곤 했다.

“배고프지? 금방 다 되니까 앉아 있어.”

“…….”

“손 씻는 거 잊지 말고.”

그녀는 진짜 엄마보다도 엄마처럼 말했다.

잠시 후, 식탁에는 냄비와 접시와 수저가 차례대로 놓여졌다. 비프스튜는 상당히 먹음직스러웠다.

먹어도 되는 건가, 그런 의문도 있었다.

하지만 오후부터 내내 공복 상태였던 나는 결국 냄새와 비주얼에 패배하고 말았다.

냠―.

고기와 국물을 같이 떠서, 입 안에 넣었다.

……맛있다.

제대로 만든 요리 같다.

“맛있어?”

“…….”

“천천히 먹어.”

나는 정신없이 스튜를 퍼먹었다.

태어나서 집밥으로 비프스튜 같은 것은 먹어본 적 없는 토종 한국인이었음에도, 어쩐지 그리운 맛이라 느꼈다. 추억 속의, 어머니가 만들어준 그런 맛.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아침에 나가 저녁에 돌아왔을 때, 자신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묘한 기분이었다.

편의점에서 사 온 도시락이나 24시간 카페테리아의 패스트푸드가 아닌, 집에서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 또한 너무나도 이상한 느낌을 주었다.

그릇을 전부 비우고 났을 때는,

왜인지 눈물이 나기 직전이었다.

“배 많이 고팠구나. 우리 아들.”

“…….”

“씻을 거면 설거지는 나중에 할게.”

나는 말없이 화장실에 들어갔다.

내가 샤워를 하고 나오자, 그녀는 설거지를 빠르게 마쳤다. 이후 자기도 화장실에 들어가 씻었다.

씻고 나서 수건도 안 걸친 맨몸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왔을 때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기, 옷 좀…….”

그녀는 알몸인 채로 침대에 들어가 누웠다.

곧 전원이 꺼진 장난감처럼,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하아…….”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즈음 화장실 문 앞 바닥에 그녀가 벗어 던져 놓은 옷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건 잠옷이라기보다도 거의 넝마였다.

냄새는 심하지 않았지만, 세탁을 똑바로 안 한 건지 하얀 옷감에 얼룩이 꽤 묻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빨랫감이 좀 쌓였던가.

나는 빨아야 할 옷들과 여자의 잠옷을 세탁 바구니에 챙겨, 모텔 1층에 있는 세탁실로 향했다.

덜컹덜컹―.

돌아가는 세탁기 앞에서 멍하니 멍을 때렸다.

“…….”

나를 자기 아들이라 생각하는 여자.

내가 암귀라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

모르겠다.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지금은 그런 피곤한 고뇌들보다도, 그저 아까 먹었던 비프스튜의 맛이 참 좋았다는 생각뿐이다.

세탁기를 돌리기 시작한 지,

아마도 10분쯤 지났을 무렵.

“오늘 밤에 무슨 달이 뜨는지 알고 있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를, 양옆으로 펼쳐진 신문을 쥔 채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였다.

“……예?”

“오늘은 그믐달이 뜨는 날이네. 망까지 차올랐던 달이 마지막 달빛을 비춰주는 밤이란 걸세.”

남자의 얼굴은 신문의 그림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가 베이지색 중절모와 트렌치코트 차림의 중년 신사란 점만은 뚜렷이 알 수 있었다.

“내일은 신월新月. 달이 뜨지 않는 밤은 아니야. 달은 하늘에 분명히 있지만, 보이지 않을 뿐이지.”

모텔 투숙객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빨래를 하러 온 사람 같지도 않았다.

“……저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내가 볼일이 있는 건 자네가 아니야.”

그는 말했다.

능글맞은 어조로.

“볼일은, 자네 방에 있는 여자 쪽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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