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Crazy Mama (1)
어두컴컴한 공간. 촛불이 켜진 부엌.
다홍색 머리의 소녀, 스칼렛이 식탁 위에 음식 그릇을 내려놓았다. 땡그랑―. 하는 소리가 났다.
“야, 먹어.”
민트색 머리의 소녀, 시안은 의자에 앉은 채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그릇의 내용물을 살폈다. 태평양처럼 흥건한 국물에 윗부분만 걸쭉한 잡탕죽이었다.
“이게 뭐야.”
“미트볼 스파게티.”
스칼렛은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시안은 포크숟가락으로 ‘미트볼 스파게티’를 한입 떠서 먹었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표정을 찡그렸다.
“……맛없어.”
“기껏 만들어 줬더니 밥투정하고 지랄이야.”
“스파게티란 건 원래 이렇게 국물이 많은 거야?”
“몰라. 난 라면밖에 안 끓여 봤어. 라면처럼 소스랑 면이랑 같이 끓이면 되는 줄 알았지.”
“나 이거 못 먹겠어, 스칼렛.”
“씨바,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고?”
“능력 써 줘. 맛있게 먹을 수 있게.”
“오늘 세 번 다 썼거든, 븅신아. 이젠 못 써.”
“그럼 호손 그릴이나 맥도날드 갔다 오면 안 돼? 치즈버거랑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데.”
“안 돼. 우리가 집 비운 사이에 마더가 돌아오면 또 저번처럼 가출한 줄 알고 난리 부릴 거 아냐.”
더는 협상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시안은 하는 수 없이 그것을 꿀떡꿀떡 억지로 먹어 삼켰다. 11년 인생 최악의 저녁 식사였다.
“우으, 마더가 해준 밥 먹고 싶다…….”
“좀만 참아. 오랜만에 지 아들내미 만나고 온다잖냐. 아마 그놈을 집에 데려올지도 몰라.”
스칼렛이 말하자, 끔찍한 식사 탓에 잠시간 생기를 잃었던 시안의 눈이 초롱초롱 반짝였다.
“그럼 이제, 우리 오빠 생기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스칼렛은 피식 웃었다.
사상 최악의 살인귀와 가족이 된다, 라…….
“카핫. 그랬으면 좋겠네.”
***
나는 숨을 죽였다.
꽤 오랜 정적이 흘렀다.
“……엄마라고?”
여자는 멀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
가로등 불빛을 등진 채 서 있는 그녀는 여전히 나를 향하여 핏빛으로 물든 미소를 내보이고 있었다.
“……설마, 당신이 내 엄마라는 소리야?”
여자의 얼굴을 살폈다.
외모는 아무리 봐도 20대. 서른 살인 나의 모친이라 주장하기엔 과도할 정도로 어려 보였다.
의구심과 경계심이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
여자가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나는 제때 반응하지 못하고 움찔했다.
눈치도 못 챈 사이에, 거리가 좁혀졌다.
와락―.
그녀가 나를 껴안았다.
바로 맞닿은 맨살의 차가운 감촉.
그럼에도 포근한 따스함이 느껴졌다.
“보고 싶었어. 정말.”
여자는 내 와이셔츠 가슴팍에 이마를 갖다 대고는 흐느끼듯이 말했다. 한동안 그 상태로 있었다.
“혼자 둬서 미안해. 엄마가 옆에 있어 줄게. 두 번 다시는 우리 아들 곁을 떠나지 않을 테니까.”
“…….”
“그러니까, 우리 이제 같이 살자. 알았지?”
그녀의 북받친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나는 내내 머뭇거리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저기요.”
“응?”
“저는 당신 아들이 아닌데요.”
여자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대로 눈을 두어 번 끔뻑였다.
“무슨 소리야, 아들?”
……아. 그냥 미친 여자인가.
슬슬 상황이 파악됐다.
아무래도 정신 나간 약쟁이한테 잘못 걸린 듯하다. 분명 어디 골목 구석에서 약 빨다가 취해서 헤롱헤롱 뛰쳐나온 걸 테지. 입가에 묻은 것도 자세히 보니 피가 아니라 그냥 립스틱 잘못 칠한 거였다.
긴장이 풀리며 한숨이 튀어나왔다.
퇴근길에 이게 무슨 봉변인지, 원.
“이봐요. 미안한데 내가 오늘 좀 많이 피곤하거든? 웬만하면 적당히 하고 비키…….”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이래도 물러나지 않는다면 좀 더 직접적인 제재를 가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곧 생각이 바뀌었다.
“암귀.”
그 말을 들은 이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들은 암귀야.”
***
‘유진 연’에게 가족은 없다.
태생은 천애고아. 웨스트록의 보육원에서 10살까지 길러졌고, 이후 한 이주민 가정에 입양됐다.
‘연’이라는 성씨는 그때 생긴 것이다.
다만 이름을 물려준 아버지는 5년 후 아들을 버리고 돌연 잠적해 버렸다. 이유는 모른다.
‘유진 연’은 그 이후로 악착스레 살아갔다.
여러 해 동안 꾸준히 잡다한 범죄들을 저질렀다가, 결국엔 기소돼 8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줄곧 혼자였다.
부모도, 형제도, 다른 친족도 없었다.
때문에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제 와서 ‘유진 연’의 가족이, 하물며 어머니라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은―.
“들어와요.”
나는 그녀를 집 안에 들여보냈다.
렘브란트 이후 두 번째 방문객이었다. 다만 내 쪽에서 초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기서 사는구나.”
여자는 방안을 한 바퀴 둘러보는가 싶더니, 갑자기 흐느적거리며 침대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고는 매우 자연스럽게 이불 위에 홀라당 엎어졌다. 그녀는 베개에 얼굴을 몽땅 파묻었다.
“아들 냄새. 좋다.”
행복한 듯이 그렇게 말하고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움직임마저 없어졌다.
그리고,
쌕, 쌕―.
숨소리가 들려왔다.
잠이 든 모양이었다.
“…….”
나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
아까 전에 들은 말을 떠올렸다.
“암귀. 우리 아들은 암귀야.”
그녀는 나를 알고 있었다.
내가 암귀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를 자기 자식이라 생각하고 있다.
단순히 미친 여자일 수도 있겠지만,
뭔가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예를 들면―
‘진짜 암귀’의 정체라든가.
사실, 그런 걸 알아서 얻다 쓰겠는가도 싶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를 집에 데려왔다. 이런저런 이유를 덕지덕지 붙여 가면서.
모르겠다.
왜 그랬을까.
“엄마야. 아들.”
“보고 싶었어. 정말.”
어쩐지…… 내가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처음에 그녀의 눈, 보랏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았을 때부터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쩌면 꿈에서 보았던가.
지금 꿈을 꾼다면 확인할 수 있을까.
가만히 눈을 감고, 몽롱한 의식을 무의식의 저편으로 보내, 시작될 꿈을 기다리고 있었을 즈음.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지그시 눈을 떴다. 창문 커튼 사이로 밝은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침이었다.
그리고 다시 들려온 노크 소리.
똑똑똑―. 나는 그 소리만 듣고도 노크의 주인이 누군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예, 나가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역시나 거기 있었던 것은 모텔 관리인 아가씨. 껄렁한 금발 소녀 페니 베인스였다.
“욥. 굿모닝, 아저씨.”
“좋은 아침이에요, 페니. 무슨 일이죠?”
“별건 아니구, 이따 오후에 가스 검침 있어서 동의서 미리 받아두려구요. 여기다 사인하면 돼요.”
페니는 내게 종이와 펜을 건넸다.
나는 사인을 마치고 그것들을 돌려줬다.
“땡큐요, 아저ㅆ……?”
순간.
그녀의 표정이 확 굳었다.
“페니?”
“…….”
“갑자기 왜 그래요?”
왠지 얼굴까지 새빨개졌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내 등 뒤였다.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아.”
그러자, 모텔 방 가운데 벽 쪽에 놓인 더블 침대와, 거기 누워 자고 있는 나체의 여성이 보였다.
“……우리 모텔. 콜걸 부르는 거 금지인데요.”
“오해예요, 페니. 저 사람은 콜걸이 아니에요.”
“……아저씨 여자친구예요?”
“아니요. 애인 같은 것도 아닙니다.”
“……그럼 뭔데요?”
―엄마예요.
라고 말하는 건 당연히 안 되겠지.
―자기가 내 엄마인 줄 아는 미친 여자예요.
글쎄, 이렇게 말하는 것도 역시 좀 병신 같다.
―놀러 온 동생이에요.
오, 이건 좀 괜찮은 것 같은데.
“동생이라구요?”
“예.”
“근데 왜 다 벗고 있어요?”
침묵이 흘렀다. 식은땀도 동시에 흘렀다.
그리고 그때쯤이 돼서야 뒤늦게, 이 상황을 굳이 애써 둘러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안해요. 사실 콜걸 맞아요.”
“……이번 한 번만 봐 드릴게요. 다음부터는 얄짤없이 할머니한테 이를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관리인 아가씨는 볼멘 표정으로 복도를 떠났다.
게임이었으면 방금 걸로 카르마 포인트랑 관계도가 깎였겠지. 실제로 호감도는 조금 깎였을지도.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며 현관문을 닫았다.
침대의 여자는 도통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
내 정체를 알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
허나 적어도 나에게 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다. 근거는 없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 뿐이다.
……우선 회사에 갈까.
그래. 지금 당장은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없어져 있을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우리 이제 같이 살자.”
뭐,
그럴 일은 아마 없을 것 같진 않지만.
***
화요일 점심.
마법 상점 <마제스틱&도메스틱>.
“어서 오세요.”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종소리와 여주인의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와아, 손님. 오랜만이네요?”
“지난주에도 책 사러 들렀었는데요.”
“그치만, 저는 일주일씩이나 손님 얼굴을 못 봐서 무지 섭섭할 따름이었는걸요?”
“일주일 동안 찾아온 손님이 저밖에 없었나요?”
“어머, 예리하셔라.”
여주인은 매력적으로 웃어 보였다. 싼티 나는 선전 문구 대신 여주인이 웃는 사진을 가게 앞에다 걸어 놓으면 손님이 꽤나 늘어나지 않을까 싶었다.
“찾으시는 물건 있으신가요?”
“마법학 이론서를 좀 사고 싶은데요.”
“저번에도 대학 전공서 찾으시더니. 마법 공부에 맛 들이셨나 봐요. 혹시 마법학교 입시 준비라도?”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취미예요.”
“흠흠, 그냥 취미군요. 알겠어요. 그런 걸로 칠게요. 어디 보자, 정석대로 살펴보자면― 마법계의 살아있는 역사 귄터 사지타리우스가 장장 400년에 걸쳐 집필했다는 현대 마법 이론의 바이블 ‘마법론’이야말로 입문서로는 두말할 것 없이 제격이고. 수백 년 넘도록 이어진 아케인 중심의 왕도적 흐름에 정면으로 맞섰던 초대 디바인 마스터 코넬리우스 킹의 ‘실존마술이상학’도 물론 훌륭한 교재가 될 거예요. 드래곤을 때려잡은 무투가로 유명한 올티그르 포크워스는 본인의 다른 필명으로 저술한 ‘비술특서’에서 엘리멘탈 분야에 의외의 지성을 뽐내기도 했었고…….”
나는 여주인의 추천을 받아 책을 몇 권 구입했다. 바리바리 싸 들고 가기엔 양이 너무 많아서, 이번에도 전처럼 회사 앞으로 배달을 요청했다.
“매번 감사드립니다, 사장님.”
“후훗. 더 필요한 건 없으신가요?”
“실은, 여쭙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사실―
오늘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세실리아 화이트럼이 누군지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