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71화 (71/201)

71화. Who Are You (3)

어쨌거나.

그날 우리 사무실의 주인공은 타이퍼였다.

“크으, 정말이지 감격이구만. 고물상 출신 로보트가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다니!”

“역시 그땐 쓰레기장에서 주워 오신 거였군요.”

“무어……. 그래도 공짜로 가져오진 않았네.”

“그럼 돈 주고 사 오신 건가요?”

“아니. 폐휴대폰 석 대랑 바꿨지.”

“무슨 아나바다 장터입니까.”

사장님도 웬일로 아침 일찍 출근하더니 그대로 무려 세 시간씩이나 회사에 머물렀고, 스몰필드 씨 역시 안드로이드 오타쿠답게 내내 타이퍼 근처에 달라붙어 있었다. 물론 할 일은 다 하고서 말이다.

「(⊙.⊙)」

「( ̄_ ̄)」

「(◕ㅅ◕)」

“아하하, 표정 바뀌는 거 봐. 진짜 귀엽다아.”

“확실히 얼굴 부분이 많이 나아지긴 했네요.”

“TYPE-R 기체는 아무래도 외형이 좀 별로긴 하죠. 극초창기 안드로이드라 어쩔 수 없지만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 사람이랑 완전 똑같이 생긴 안드로이드를 본 적 있는데요. 혹시 타이퍼는 그렇게 못 만드나요?”

“으음, 아마 어려울걸요. 휴머노이드 커스터마이징은 아담5 이상만 지원하는데, 타이퍼에 탑재된 전용 디스크는 구형 ATA2 규격이라서 신식 기체랑은 호환이 안 되거든요. 메모리 데이터 확장자 이전에 실리콘 파츠 호환성 개선 정비까지 받으려면 돈이 엄청나게 깨질 텐데. 그럴 바에야 최신 모델을 새로 구입하는 편이 돈을 훨씬 더 아낄 거라서요.”

“결국 비용이 문제란 얘기군요.”

“전에도 말했지만, 요즘 안드로이드 가격은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집값 단위니까요. 업그레이드 비용이 그거보다 비싸다 하면 말 다 했죠, 뭐.”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오후 6시 30분.

다들 퇴근했지만, 나는 회사에 남았다.

평소처럼 업무가 밀렸기 때문은 아니었다.

금요일 밤에 타이퍼 Mk-I이 남기고 간 총합 80쪽 어치의 학습지. 그 숙제를 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졸라 어렵네, 이거…….”

생각만큼 잘 되진 않았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공부에 임하려니 이 100% 수제 교재의 미친 학습 난이도가 그것을 전심전력으로 방해했다.

시작부터 막히고 중간쯤 막혔다 끝에 또 막혀서 무지막지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이거는 뭐 거의 초등학생한테 양자역학 논문을 던져준 셈 아닌가. 차라리 멜리에스의 강의가 몇 배는 더 이해하기 쉬웠다.

하여튼 간에.

독학으로는 절대 무리였다.

“어이, 타이퍼?”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응. 잠깐 이리 좀 와 봐.”

나는 옆자리의 안드로이드를 불렀다.

업그레이드 이후 배터리도 짱짱해져서 녀석은 이제 한 번 완충에 10시간 이상 활동이 가능했다.

“여기, 이 부분이 이해가 잘 안 가는데.”

「…….」

“위상술식이라는 건 결국 가상차원 개념에서의 가역적 엔트로피라는 허수를 도입시킨 계산식이 주가 되는 거잖아. 근데 왜 정작 위그너-클리퍼드 곡률을 계산할 때는 복소수체의 근을 아예 안 따지는 거야?”

녀석이라면 당연히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설명을 해줄 터였다. 이번에 업그레이드까지 됐으니 아마 더 훌륭한 선생님이 되어 있을 거란 기대도 있었다.

허나―

들려온 것은 뜻밖의 한 마디.

「모르겠습니다.」

정적.

짧은 침묵이 흘렀다.

“……뭐?”

나는 구겨진 눈으로 로봇을 보았다.

「죄송합니다. 모르겠습니다. 주인님.」

「(ㅇ﹏ㅇ)」

녀석의 표정은 어쩐지 머쓱해 보였다.

“아니. 뭔 개소리야, 지금. 네가 쓴 건데 네가 모르면 어떡하냐.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있어.”

「…….」

“장난치지 말고. 어? 빨리 알려달라니까?”

타이퍼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나와 녀석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타이퍼?”

「네. 주인님.」

“……너 혹시, 진짜로 모르는 거야?”

「안드로이드 행동 강령에 의거하여 제 바디에는 거짓말을 하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뭔가 이상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녀석은 분명히 타이퍼가 맞다. 겉모습은 싹 다 바뀌었대도 말투나 이런 걸 보면 내가 아는 그 깡통 로봇임이 확실하다. 100%다.

그렇지만.

뭔가가 이상하다.

“…….”

마법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누구야, 너……?”

내게 마법을 알려줬던 스승님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

잠깐 나가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돌아왔다.

오후 7시. 늦은 저녁의 사무실에는 타이퍼와 나만이 남아 있었다. 상당히 어색한 분위기 속에.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한테 마법을 가르쳐준 녀석은 네가 아니란 얘기지?”

위웅―. 타이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처럼 삐걱거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상세 주소는 삭제돼서 없지만, 외부 IP에서 제 브레인 컴퓨터에 무선 접속한 흔적이 네트워크 로그에 남아 있습니다. 연결 횟수는 총 48회입니다.」

“즉, 누군지도 모를 한량 자식이 매일 밤마다 네 몸에 들어가서 나랑 신나게 떠들었단 거군.”

마법 선생의 정체는 타이퍼가 아니었다.

로봇 행세를 하며 나를 놀린 누군가였을 뿐.

“근데 너, 내가 아는 타이퍼랑 말투가 완전 똑같은데. 로봇들 말투는 원래 다 그런 거냐?”

「아닙니다. 이것은 시뮬레이션 AI가 그동안의 회화 기록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율 학습하여 완성시킨 저만의 고유한 말투입니다.」

나랑 대화한 그놈을 따라 했다는 얘긴가.

말투에 위화감이 없었던 까닭은 그래서였군. 얘가 날 계속 주인님이라 부르는 이유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그놈은 이제 안 나타나는 거야?”

「메인보드를 변경하면서 LAN 기능에 업데이트가 이루어져, 전자 서명이 없는 외부 네트워크 연결 시도에는 자동으로 락이 걸리게 됩니다.」

“뒷문에 빗장 잠겨서 토꼈다 이거지.”

나는 놈의 행적에 관해 정리해 보았다.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고물 로봇에 침입해, 남의 사무실에서 모르는 사람한테 마법을 가르쳐준 놈.

정말로 알 수가 없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일까?

「한 가지 정정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때 대뜸.

타이퍼가 말했다.

「놈이 아니라 년입니다.」

“뭐?”

「전체 회화 기록을 빅 데이터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외부 접속자의 생물학적 성별은 83.9%의 확률로 여성입니다.」

“그런 것도 알 수 있어?”

「남성일 확률은 15.8%. 양성구유일 확률은 0.1%. 제3의 성별일 확률은 0.1%입니다.」

“제3의 성별은 뭐야…….”

녀석의 정체는 여자인 걸까?

아무래도 확실치는 않다. 일단은 그럴 확률이 높다는 것만 기억해 두도록 하자.

“회화 기록이 있다는 건, 그 녀석이랑 내가 나눈 대화들을 너는 전부 알고 있다는 거네?”

「맞습니다.」

“그러면 뭔가 단서가 될 만한 데이터 같은 건 없을까? 그 왜, 말버릇이나 뭐 그런 거 말이야.”

「굉장히 빈번히 반복된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뭔데?”

「‘나니니시마스까’가 28회.」

“이 시팔 내 그럴 줄 알았지.”

타이퍼 심문은 대충 끝이 났다.

그러나 미스터리는 풀릴 기미가 없었다.

“하아.”

누구지? 누굴까? 누구란 말인가?

어떻게든 녀석의 정체를 알아내고 싶지만 주어진 단서가 없어도 너무 없다. 정보라곤 고작 두 개뿐.

마법에 빠삭한 인물.

성별은 아마도 여자.

….

….

그 순간.

머릿속이 번뜩였다.

“잠깐만.”

어쩌면, 설마?

나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거기서 금요일 밤에 타이퍼(가짜)가 뽑아준 프린트를 모두 꺼냈다.

그러고 나서 컴퓨터 전원을 켰다.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어, 한 사이트에 접속.

<마녀일기>

~세실리아 화이트럼의 마법 연구소~

블로그였다.

내게 처음으로 마법 쓰는 법을 알려준 블로그.

나는 블로그의 포스트들을 하나둘씩 살폈다.

창을 여러 개 띄우고, 게시글의 내용과 프린트의 내용을 서로 찬찬히 훑으며 비교해 보았다.

“……역시. 비슷해…….”

글을 쓴 문체에 있어 상당 부분이 흡사하다.

표현이 완전히 동일한 부분까지 몇몇 존재한다.

“……최근에 올린 게시글은 거의 없어…….”

주인장은 여태껏 꾸준히 글을 써서 올려 왔지만, 언젠가부터 포스팅이 올라오는 간격이 뜸해졌다.

<마녀일기>의 블로그 활동이 저하된 날짜는 3월 말. 타이퍼가 우리 회사에 들어온 시점과 겹친다.

이것은 단지 우연일까?

그러고 보면 이 블로그의 주인장은, 그동안 내가 쓴 질문글에 단 한 번도 답변을 달아 준 적이 없다. 다른 애들의 질문에는 잘만 답해 줬으면서 말이다.

마치.

내가 누군지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설마, 진짜로……?”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금 블로그를 살폈다. 그러던 중, 블로그 상단에 업데이트 표시가 생겨난 것을 발견했다.

방금. 포스팅 하나가 올라왔다.

따끈따끈한 1분 전 게시글이다.

포스팅 내용은 단순한 근황 보고였다.

알맹이는 없다. 그냥저냥 쓴 일기 느낌.

나는 로그인을 하고,

거기에 댓글을 달았다.

○ yjy343

야너 타이퍼지

엔터 누르고.

잠시 기다렸다.

“…….”

무슨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지금쯤이면 댓글을 봤겠지.

나는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다.

꾹―.

그러자.

튀어나온 메시지 창.

[ ※ 방문 불가 ※ ]

[ 블로그 관리자로부터 차단되었습니다 ]

….

….

“하.”

그걸 보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너였구나.”

마녀일기 블로그의 주인장.

네 녀석이 타이퍼(가짜)렷다.

「찾으신 겁니까, 주인님?」

“그래. 아주 제대로 얻어걸렸다.”

나는 확신했다.

정황 증거가 이토록 뚜렷한 마당에 블로그 차단 타이밍까지. 이건 뭐 확인 사살이나 다름없었다.

“어쨌든 이 블로그 주인장이 네 몸속에 들어갔던 녀석이랑 동일 인물이란 건 거의 확실해.”

「정말 대단하십니다. 주인님.」

「진심으로 놀랐습니다.」

「(⊙0⊙)」

“다만 지금으로선 그게 전부야. 녀석이 인간인지 오크인지 안드로이드인지. 아무것도 몰라.”

가짜 타이퍼가 블로그의 주인이라는 단서를 얻었다 한들, 여전히 실제 정체는 알 길이 없었다.

녀석의 목적은 무엇인지.

어떻게 알고 나에게 접근한 건지.

인터넷을 더 뒤져 본다면 뭔가 나올지도 모르지만, 당장은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했다.

―일단 퇴근이나 할까.

잔여 업무도 마법 선생도 더는 있지도 않은 마당에 사무실에 남아 있을 이유는 추호도 없었다.

“후우. 난 이제 집에 간다.”

「안녕히 가십시오. 주인님.」

이 녀석이랑은 뭐…….

그냥 평소처럼 지내면 되나.

“그래. 내일 보자.”

나는 뉴 타이퍼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서 회사 밖으로 나왔다. 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집 근처 역에 도착해 내렸다. 7시 40분 즈음이었다.

사람 하나 없는 웨스트록 3구역의 외진 밤길을 걷고 있는 와중에 드문드문 졸음이 밀려왔다.

집에 들어가면 또 바로 곯아떨어져 버리겠는데, 이거. 웬만해서는 씻고 자야 할 텐데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닥을 보며 걷던 중.

―스윽.

인기척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어딘가 싶었다.

….

….

바로 앞쪽이었다.

내 앞에 무언가 있었다.

새까만 그것은…… 그림자였다.

가로등 아래 뻗은 누군가의 그림자.

시선을 바닥에서 위로 올렸다.

어느 순간 내 시야를 장악한 그림자의 주인은, 나신에 가까운 누더기 파자마 차림의, 여인.

소름이 끼쳤다.

귀신인가 싶었다.

―부릅.

그녀가 나를 보았다.

나 역시 그녀를 보았다.

검은 머리.

보라색 눈동자.

붉은 피로 물든 입술.

순수한 공포로 뒤덮인 고요가 흘렀다.

비명을 지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누구야. 당신.”

비명 대신에 질문을 던졌다.

대답을 듣고 싶지 않은 질문을.

그러자.

그녀가 응답했다.

유혹하려는 듯이.

배시시 미소 지으며―

“엄마야.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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