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I’m Only Sleeping (4)
우리는 수석교수실에서 나왔다.
교수의 연구실은 학교 내부에 있지 않았다. 그가 연구를 진행하는 곳은 그의 자택이라고 했다.
“주소상으로는 이스트포레스트로 되어 있지만, 교외 쪽으로 꽤 멀리 나가야 한다네.”
멜리에스는 시끄러운 것을 싫어했고, 평범한 주택가 또한 그의 기준에는 매우 부산스러운 축에 속했기 때문에, 일부러 시내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도시 외곽의 외딴 지역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자랑은 아니네만,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독수공방하는 신세라, 강의가 있는 날을 빼면 종일토록 혼자 집에 있는 경우가 잦아서 말이야.”
“그래서 연구실도 집 안에 두신 거군요.”
“먼 길 오가기 힘들다고 연구생 녀석들은 불평이 참 많았지. 자네는 괜찮은가 몰라.”
“멀어 봤자 차로 한두 시간 거리 아닙니까. 비행기 타고 가야 할 정도만 아니면 됩니다.”
사람이 드문 곳일수록 좋았다.
그를 암살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신관 건물을 빠져나오자, 멜리에스 주위로 줄지어 서 있던 경호원들의 행렬이 조금 뜸해졌다.
주차장에는 은회색 마이바흐 한 대가 서 있었다. 무뚝뚝한 인상의 운전수가 차 문을 열어주었다.
멜리에스는 왼편 뒷좌석에 들어갔고, 나는 오른편 뒷좌석에 들어가 앉았다.
자동차 내부는 리무진처럼 널찍하여 다리를 쭉 뻗어도 공간이 몇 뼘 이상 남았다.
부릉―.
이윽고 차가 출발했다.
시에라시티의 밤은 낮보다도 눈부셨다. 새하얗게 반짝이는 마천루 숲속. 우리가 탄 차는 이스트포레스트의 야경을 배경으로 한참을 내달렸다.
테마파크처럼 화려하게 빛나던 거리를 뒤로한 채, 어느샌가 수더분한 1차선 도로로 접어들었다.
투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 건 그쯤부터였다.
보슬비는 점차 굵어져 가랑비가 되었다.
차창에 부딪혀 유리 밑으로 가라앉는 빗줄기의 흐름들을 무던히 감상하고 있었을 즈음.
“시끄럽게도 울어 대는군.”
돌연,
멜리에스가 말을 꺼냈다.
“예?”
“미안하군. 혼잣말일세.”
“아, 주무시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
“사실 잠에 못 든 지 꽤 됐어. 암만 자려고 노력해 봐도 헛일이야. 가만히 누워서 눈을 감아 봤자, 그대로 아침까지 눈만 감은 채로 있곤 해.”
“저도 비슷합니다. 밤샘이 일상이라.”
“자네랑 나랑은 공통점이 많구먼.”
멜리에스 역시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의 옆모습은 우울해 보였다. 어쩌면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고맙네. 이런 늙은이를 따라와 줘서.”
“아뇨, 저야말로 감사를 드리는 게 맞죠.”
“솔직히 의외였어. 자네가 이렇게 선뜻 내 제안을 받아들여 줄 거라곤 생각 못 했거든.”
교수는 뜸 들임 없이 말했다.
“그 왜, 안 좋은 소문들이 있지 않은가.”
“어떤 소문이요?”
“모르는 척하지 말게. 여기저기서 나에 대해 떠드는 얘기들을 자네도 들었을 것 아닌가.”
나는 바로 대꾸하지는 않았다.
물론 시치미 떼는 것도 그만뒀다.
“혹시…… 교수님이 연구생들을 괴롭혀서 자퇴까지 하게 만들었다는 소문 말씀이신가요.”
“그것보다 더 끔찍한 얘기도 많았지. 내가 학생들을 데려다 인체 실험을 한다느니, 요리해 먹는다느니 하는, 싸구려 도시전설 같은 얘기들 말일세.”
“저런.”
“해명할 가치도 없어 입 꾹 닫고 있었더니, 천치 같은 놈팡이들이 그게 진짠 줄 알았는지 언젠가부터 아무도 내 연구생이 되려 하지 않더군.”
멜리에스는 씁쓸하게 웃음 지었다.
“그나마 있던 녀석들도 죄다 금방 빠져나가서, 지금 연구실에는 한 사람도 없는 실정이라네.”
“교수님 혼자서 많이 힘드셨겠네요.”
“나 혼자 연구하는 건 익숙하니까 괜찮아. 애초에 일개 학생에게 큰 도움을 바라지도 않으니 말일세. ……그래도 말이야, 연구 도중에 어쩌다 엄청난 발견을 한 순간에, 그 기쁨을 함께 나눌 동료가 옆에 아무도 없을 때, 그때는 조금 쓸쓸해지지.”
교수의 우울한 감정이 표정으로 드러났다.
나는 화제를 돌려 분위기를 바꿔 보고자 했다.
“요즘은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시나요?”
“흠? 아아, 최근에 하는 연구 말이지. 그거는 그, 예전에 발표한 논문의 연장선상인데…….”
멜리에스는 들뜬 어조로 말했다.
자기 자식을 자랑하듯 자랑스럽게.
“<타락 마법>에 대해 연구 중일세.”
타락 마법, 즉― 데모닉.
금지된 술식을 사용하는 모든 종류의 마법을 뜻하며, 명실상부 ‘사악함’을 표하는 마법이다.
죽은 시체를 되살려내는 <부두 차일>.
끝없는 고통의 저주를 거는 <낙인: 아이게르>
그리고 ‘가장 위험한 마법’이라고도 불리는 역사상 최악의 마법, <죽음이 부르는 소리>.
예시를 보면 알겠지만, 타락 마법은 시전의 방향성이나 결과물이 단어 그대로 타락해 있다.
국제마법규범에 의거해 사용 금지된 술식은 모두 타락 마법으로 규정. 현대마법전서를 포함한 모든 마법 관련 문서에서 언급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참고로 흑마법은 타락 마법이 아니다.
술식의 작동 원리가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미지 마법― 미스틱 계통으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금 무서운 연구를 하고 계시네요.”
“다들 꺼리는 분야이긴 하지. 허나 그렇기에 더욱더 연구할 가치가 있지 않겠나.”
연구자란 곧 탐험가다.
험險한 길을 헤쳐 나가는 것이야말로 탐험探險이지 않느냐고, 멜리에스는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들은 내가 많은 것을 이뤘다며 칭찬하고 떠받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연구자로서도 마법사로서도, 나는 아직 한참 멀었어.”
“굉장히 훌륭한 마음가짐 같은데요. 저도 사람은 언제라도 성장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나도 마찬가지일세.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든지 영원히 성장할 수 있지. 영원히 말이야.”
그 말을 하고서 교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자네랑 나랑은 공통점이 많은 것 같군, 하고.
투둑, 투두둑―.
빗줄기가 거세졌다. 이제 도시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까지 와 있었다. 어둑한 오솔길 사이에 헤드라이트만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
그 무렵,
왜인지 묘한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멜리에스 교수 밑으로 들어간 연구생 중에 마커스란 선배가 있는데, 그 사람한테 물어보면 괜찮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제 분명 비너스가 그런 말을 했었지.
녀석이 나한테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한다면, 현재 멜리에스 교수의 연구실에는 최소 한 명의 연구생이 적을 두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나마 있던 녀석들도 죄다 금방 빠져나가서, 지금 연구실에는 한 사람도 없는 실정이라네.”
헌데 교수는 방금 전에 그렇게 말했다.
자기 연구실에는 아무도 없다고 말이다.
……뭔가 이상하다.
……두 발언은 아무래도 모순된다.
“소문이 있어요. 멜리에스 교수에 대한.”
“멜리에스 교수가 연구생들에게 무시무시한 짓거리를 서슴지 않고 벌인다고 하더라구요.”
그냥 소문이라고 생각했다.
교수의 말마따나, 그저 근거도 뭣도 없는 싸구려 도시전설 같은 얘기에 불과하다고.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불길한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그것보다 더 끔찍한 얘기도 많았지.”
“내가 학생들을 데려다 인체 실험을 한다느니, 요리해 먹는다느니 하는.”
“주소상으로는 이스트포레스트로 되어 있지만, 교외 쪽으로 꽤 멀리 나가야 한다네.”
“여기서는 못 하는 실험이 많으니까.”
“<타락 마법>에 대해 연구 중일세.”
끼익―.
차가 멈춰 섰다.
“도착했군.”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멜리에스는 차 안에 있던 검은 장우산을 내게 건넸다. 그도 같은 것을 가지고 차 문 밖으로 나왔다.
곧이어 차의 시동이 꺼졌다.
그런데 운전수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저기, 운전기사분은……?”
“걱정 말게. 안드로이드라네. 충전은 자급식이고, 보안 시스템인가 뭔가가 적용돼 있어서 하루마다 메모리가 자동으로 삭제된다고 하더군.”
교수가 사는 곳은 시골집 같은 장소였다.
들판 한가운데에 조그마한 동산이 있었고, 그곳 언덕 위에 세워진 2층짜리 주택이 보였다.
주변은 두려울 정도로 음산했다.
이웃이라고는 달과 풀잎뿐이었다.
“이런 외진 데서 혼자 사시는 건가요?”
“어쩔 수 없지. 내가 조용한 걸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주변에 민폐를 끼치면 안 되니까.”
“민폐요?”
“시끄럽기도 하고. 냄새도 나고.”
“…….”
“무어, 가서 보면 알 걸세.”
나는 거기서 더 묻지 않았다.
우산을 쓴 멜리에스 교수가 앞장섰다. 같은 우산을 쓴 내가 그의 뒤를 따라 동산을 올랐다.
빗물에 젖은 흙길은 팬케이크 반죽처럼 질퍽했다.
마당의 한구석에 볼록 튀어나온 무덤 같은 것이 있었다. 최근에 뭔가를 묻은 듯했다.
멜리에스는 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틱―. 조명이 켜졌으나 집안은 여전히 어두웠다. 일부러 그렇게 설계해 놓은 것 같았다.
“이쪽이네.”
교수는 계단 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이었다. 두꺼운 철문은 그보다도 더 두꺼운 자물쇠로 꽁꽁 잠겨 있었다.
“한 가지만 당부해도 되겠나.”
“…….”
“이 안에서 뭘 보든, 소리만 지르지 말아 주게.”
뒷목이 섬뜩해졌다.
나는 조용히 침을 삼켰다. 멜리에스는 낡은 열쇠로 자물쇠를 돌려 잠금을 해제했다.
철컥,
끼이익―.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리면서,
지하실의 내부가 훤하게 드러났다.
늙은 교수의 어깨 너머로 그것이 보였다.
좁지 않은 방안에 가득 들어찬 온갖 존재들.
문이 열리자마자, 그들이 동시에 울부짖었다.
수십 개의 울음소리가 귀를 찔러왔다. 이어서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릿한 냄새가 코를 감쌌다.
“……!?”
나는 식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냐옹.
―미야아아.
―애오오오옭.
….
….
고양이였다.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이 거기에 있었다.
“이런, 욘석들. 아빠 기다렸구나.”
멜리에스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방 안에 있던 고양이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늙은 주인의 주위로 둥글게 몰려들었다.
“교수님, 이건……?”
“내가 키우는 아이들이야. 버려진 길고양이만 보면 가만두고 볼 수가 없어서, 한두 마리씩 데려오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많아졌지 뭔가.”
“그럼, 아까 소리 지르지 말라고 하신 건…….”
“소리 지르면 안 되지. 애들이 놀라지 않나.”
나는 맹한 눈으로 멜리에스를 쳐다봤다.
고양이들이 그의 뺨을 핥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도감에 가까운 허탈감이 스르륵 밀려왔다.
뭐, 어쨌거나.
적어도 멜리에스는 내가 상상한 것처럼 끔찍한 매드 사이언티스트 따윈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런, 그러고 보니 자네한테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는지 물어보는 걸 깜빡했군.”
“괜찮습니다. 저도 고양이 좋아해요.”
“오, 정말인가? 그럼 연구실에 가기 전에 잠깐 이 애들이랑 놀아줄 수 있겠나? 밥통이랑 물통을 갈고, 또 변소도 치워야 해서 말이지.”
멜리에스는 혹여나 바닥에 누워 있는 고양이 꼬리를 밟지 않으려 애쓰며 방안을 건너갔다.
“아이구야, 또 오줌을 여기에 싸 놨니……. 옳아, 내가 졌다. 패드 몇 장 더 깔아주마. 그래.”
그 모습은 영락없는 반려묘들의 집사, 고양이 돌보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인자한 할아버지였다.
“…….”
마음이 차분해짐과 동시에 착잡해졌다.
나는 지금부터 이 자를 죽여야만 했기에.
복잡한 맘으로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던 찰나.
문득, 고양이들 사이에 서 있는 멜리에스의 표정에 진한 근심이 어려 있는 것이 보였다.
“……?”
그의 눈가엔 눈물까지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교수님? 왜 그러세요?”
“아, 별것 아니네. 그게……. 실은, 키우던 아이들 중에 한 녀석이 어제 명을 달리해서 말일세.”
멜리에스는 눈물을 훔쳤다.
“매일 영양제를 먹이고 있는데, 버릇처럼 오늘도 27개를 챙겼어. 26마리뿐인데, 바보같이…….”
그가 슬퍼하는 모습에 내 마음은 또다시 복잡해져서, 억지로라도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려야 했다.
노인의 눈물 대신 나는 고양이들을 눈에 담았다. 귀여운 녀석들 덕분에 기분은 꽤 나아졌다.
“…….”
잠시 그러고 있던 와중.
불현듯 위화감을 느꼈다.
“저어, 교수님?”
“음?”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27마리인데요.”
“뭐?”
“여기 있는 고양이들, 다 합해서 27마리입니다.”
침묵.
짧은 정적이 흘렀다.
“아니, 무슨 소리인가? 원래 27마리였는데, 한 마리가 죽었으니까, 이제는 26마리여야지.”
“잘은 모르겠지만 제가 잘못 센 건 아닙니다. 몇 번을 세어 봐도 여기 있는 건 27마리가 맞아요.”
멜리에스는 당황해했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 직접 고양이들의 수를 셌다. 하나, 둘, 셋…… 외운 숫자는 27에서 멈췄다.
“정말로 27마리잖아…….”
“교수님께서 헷갈리신 게 아닐까요?”
“그럴 리가, 어제 분명히 묻어 줬는데…….”
흔들리는 시선 속에서,
그는 혼잣말로 중얼댔다.
“고양이가, 아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