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One Shot at Glory (4)
저격수는 잠들어 있다.
방아쇠를 당기기 전까지는.
무한히 연속된 시간의 흐름 속.
단 한 순간에만 존재하는 ‘타이밍’.
저격이란 그 타이밍을 낚아채는 예술이다.
타이밍은 어디에나 있고 또한 어디에도 없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저격수란 존재는 자신의 광활한 시야를 스스로 단망경 안쪽의 터럭만 한 범위로 밀어 넣는다. 직경 75mm야말로 그의 세계, 그의 우주다.
목표물이 있는 곳은,
<톤토 파라다이스 호텔>.
대상까지의 거리는 약 5,100미터. 바람은 남쪽 바다로부터 초속 4미터로 불어오고 있다. 온도, 습도, 총탄의 무게, 코리올리 효과까지 고려해 탄착 지점을 예측해야 한다. 저격수에게 있어서는 지하철 환승 루트를 짜는 것보다도 쉬운 일이다.
저격수는 스코프를 통해 호텔 건물을 살폈다.
첫 번째 목표물이었던 여자 스나이퍼의 시체가 35층의 창가에 그대로 있었다.
아직 처리하지 못한 두 명이 건물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 아까 전 40층에 있었던 가면 쓴 남자를 쏘았음에도 그는 살아남았다. 한 발로 못 끝낸 것은 저격총을 잡고 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두 발의 실수는 용납할 수 없다.
저격수는 타이밍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동안 정지해 있던 풍경 속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둥실―.
호텔 옥상 위에 떠 오른 풍선 같은 물체.
물론 그것은 풍선 따위가 아니었다.
마법으로 만들어낸 제3의 눈동자. 수 킬로미터 멀리까지도 탐색할 수 있다는 <천리안>이었다.
―정찰 용도인가.
쏴서 맞히면 위치가 들통날지도 모르지만, 이대로 계속 엿보기를 허용하는 것 역시 불쾌한 일.
저격수는 망설임 없이 <천리안>을 노려 조준했다. 그러고 나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알이 발사됐다. 사선을 그리며 날아간 탄은 <천리안>의 동공을 정확히 꿰뚫어 터뜨렸다.
“흐끼야아아악!! 내 누우우우운!!”
“엄살 부리지 마.”
“아우우욱…… 엄살 아니거든요! 이거 감각이 연결돼 있어서 진짜로 실감 나게 아프다구요!”
“저격수가 있는 위치는 파악했나?”
“끄응, 대충은요. 언덕마루 부근인 것 같아요.”
“좋아.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저기, 이 계획 정말 가능한 건 맞죠……?”
“당연하지. 너만 잘하면 돼.”
“부담 줘서 참 고맙네요…….”
슬슬 목표물들이 움직이는 모양이다.
모든 도주 경로는 파악 완료. 언제든지 대응 가능하다. 이제부터의 고민거리는 과녁의 머리를 맞힐지, 아니면 심장을 맞힐지 하는 정도다.
도주하지 않고 역공을 시도하는 경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저들 중 원거리 전투가 가능한 자는 마법사 한 명뿐. 그마저도 평범한 중급 마법사에 불과하기에, 5km 이상의 거리에서 저격수에게 유효한 공격을 먹일 방도는 없다.
그들이 저격을 피해 바다로 뛰어들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되면 양쪽 모두에게 재미가 없었다. 해상에 어뢰를 잔뜩 깔아 놓았으니까 말이다. 부디 멍청한 선택을 하는 일만은 없기를 바랐다.
저격수는 격발하는 순간의 반동.
짜릿하게 전해지는 손맛을 원했다.
세상 모든 낚시꾼과 사냥꾼이 그러한 것처럼, 저격수 역시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었다.
해야 하는 일은 애초부터 정해져 있다.
그저 한사코, 존재감과 기척을 모조리 죽인 채, 언젠가 반드시 다가올 타이밍을 기다릴 뿐이다.
저격수는 기다렸다.
기다림의 보답은 금세 나타났다.
―스윽.
36층의 창가에 실루엣이 비쳐 보였다.
엘프 마법사, 비너스였다. 그녀는 마치 다 포기한 것처럼 아주 당당하게도 제 모습을 드러냈다.
비너스는 완드를 든 팔을 고정시켰다.
척 봐도 마법을 시전하려는 분위기였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뭔가를 하도록 놔둘 생각은 없었다.
저격수는 조준경을 옮겼다.
36층 창가의 비너스를 맞힐 수 있는 위치에 조준점을 갖다 놓고, 곧장 방아쇠를 당기려던 순간.
그는 발견했다.
43층 창가의 비너스를.
“……!?”
저격수는 당황했다.
가면 쓴 남자를 한 발에 죽이지 못했을 때도 이 정도로 당황하지는 않았었다.
사물의 형상을 복사하여 다른 위치에 그것이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통상적인 환시술.
비너스가 사용한 마법은 비전 환영 마법 <할루시네이트 미러>임이 틀림없었다.
36층과 43층에 두 명의 비너스가 모습을 나타낸 것은 마법이 일으킨 환각. 둘 중 하나는 가짜일 테니, 당황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저격수 또한 그 정도는 물론 알고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할루시네이트 미러>로 건물의 다른 창가에다 디코이를 만들 거야. 가능한 한 많이.”
“저어, 시전 규모를 최대로 해 봤자, 만들 수 있는 환영은 겨우 7개 정도인데요……?”
“문제없어. 1개만 만들어도 충분해.”
왜냐하면―
두 명만이 아니었으니까.
“네가 환영 마법을 쓰면, 내가 거기에 <강화>를 걸어서, 환영의 개수를 무한히 늘린다.”
10층부터 49층까지. 도합 450개의 객실.
호텔 건물 전면을 빼곡하게 채운 창가 앞에, 수도 없이 많은 비너스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너랑 다르게, 난 마나가 무한이거든.”
450명의 비너스들이 동시에 마법 시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환영 마법으로 인해 450배 이상 부풀어 오른 초록빛 마나 불꽃의 흐름은 그 크기가 실로 거대하여 5km 밖에서도 눈이 아플 정도였다.
설마 했던 역공 시나리오.
사냥감 주제에 사냥꾼을 잡겠다는 건가.
―그렇게 놔둘쏘냐.
저격수는 총을 고쳐 잡았다. 이어서 창가의 비너스들을 노려 쉴 새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타앙―!
한 명의 비너스를 맞힐 때마다 총알은 그대로 허공을 통과하여 그것이 가짜임이 드러났다.
다섯 발을 쏘고 나면 빈 탄창을 빼낸 뒤 재빠르게 삽탄을 마쳤다. 그리고 다시 다섯 발을 쐈다. 이를 끝없이 반복했다. 그 엄청난 움직임을 묘사하는 것에는 ‘기민하다’란 표현만으론 부족했다.
“아까 놈이 미스 바렛을 저격했을 때, 연속으로 나까지 저격했어. 그 간격이 2초도 안 됐지.”
“그러니까 상대 저격수는, 5km 거리서 2초 간격으로 두 명을 정확히 맞히는 실력자라는……?”
“디코이 개수는 450개. 놈의 사격 스피드를 감안하면 분당 30개씩은 사라질 거야. 재장전 시간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것까지 고려해서 그보다 더 느릴 거라 보는 건 너무 희망적인 관측이겠지.”
유진의 계산은 얼추 들어맞았다.
저격수는 재장전 시간을 포함해 2초에 1개꼴로 디코이를 명중시켰다. 대략 분당 30개였다.
“놈이 환영이랑 씨름하고 있을 동안 본체는 마법 시전을 준비한다. 확실하게 성공시키려면 술식 중첩과 영창 주문에 최소 5분은 써야 해.”
“저어, 유진 씨?”
“왜?”
“그게, 5분이면…… 저쪽 저격수가 미끼 450개 중의 150개는 쏴서 맞히고도 남겠네요……?”
“근데 뭐?”
“그렇다는 거는 그, 도중에 제가 저격을 당해 버릴 확률이, ⅓은 된단 얘기 아닌가요……?”
“맞아.”
“⅓ 확률로 죽는다는 건데요, 저……?”
“나한테 100% 확률로 죽을래, 아님 66%씩이나 되는 엄청난 확률에 목숨 한번 걸어 볼래?”
“…….”
비너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지금의 그녀는 타율 3할 3푼 3리짜리인 타자를 상대하는 구원 투수였다. 제발 이번 한 타석만 저놈이 범타로 물러나기만을 애써 기도할 뿐.
“자, 그 다음부터는 단순 노가다야. <컨센트레이션>에 <다중 술식 중첩>으로 시전할 마법의 파괴력을 극대화시켜. 마지막에 <화산정령의 가호>도 빼먹지 말고. 마법 한방에 모든 걸 거는 거지.”
“그래서, 그 한방은 뭘로 날릴 건데요?”
다수의 중급 마법을 한꺼번에 시전한다면 비너스의 MP는 필히 간당간당해질 것이다. 중간에 마나가 단 1이라도 모자란다면 계획은 실패한다.
필요한 것은―
단순함의 극치.
“<파이어볼>.”
최소 마나 소비량. 파괴 마법의 정석.
이보다 더 안성맞춤인 마법은 없었다.
탕, 탕, 탕―!
저격수의 사격은 계속됐다.
탄약은 모자라지 않았다. 저격수는 방탄복 대신 줄줄이 매단 총탄들로 짜인 갑옷을 입고 있었기에.
모자랐던 게 있다면 그것은 시간이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서 흘러갔지만, 그동안 바라마지않던 타이밍은 모습을 결국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5분이 지났다.
―타닥.
술식이 지은 결계의 틈에서,
마침내 첫 불꽃이 피어올랐다.
초록빛 불씨는 점차 몸집을 키워나갔다.
<컨센트레이션>과 <다중 술식 중첩>, <화산정령의 가호>가 이를 부추겼다. 또한 그 각각의 마법들에 유진의 <강화>가 무한하게 더해졌다.
유진이 계산한 대로라면, <강화>를 최대 출력으로 첨가하였을 때 최종적으로 <파이어볼>의 위력이 약 30배가량 증가할 것이라 보았다.
당초 그의 계획은 그렇게 강화시킨 <파이어볼>로 스나이퍼를 공격해 저격 포지션을 방해하고, 그 틈에 얼른 건물을 빠져나가 도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진이 간과한 점이 있었다.
평상시 그가 사용하는 <강화>는 본인의 마력, 즉 자색 마력이 중점이 되어 이루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비너스가 구사한 마법에 자신이 <강화>를 끼얹는 입장. 때문에 중점이 되는 마력은 유진의 자색 마력이 아닌 비너스의 녹색 마력.
자색 마력은 마나로서의 성질이 매우 허약하여 술식 구사 효율이 전 색채 중 최악을 달린다.
말하자면 유진이 평소 쓰는 <강화>는 무한에 가까운 보유량에서 나오는 무지막지한 출력으로 쓰레기 같은 연비를 간신히 커버하고 있는 셈이다.
허나 이 순간.
<강화>는 끔찍한 효율의 자색 마력 대신 평범한 효율의 녹색 마력을 주체로써 가해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유진이 간과한 점이었다.
<컨센트레이션>, <다중 술식 중첩>, <화산정령의 가호>, 그리고 무엇보다도 <파이어볼> 그 자체에 무한으로 가해진 끝없는 출력의 <강화>.
강화된 <파이어볼>의 위력은, 대략 3,000배.
녹색 마력과의 시너지가 일으킨 <강화>의 영향력은, 이미 그의 계산을 아득히 초월한 뒤였다.
―고오오오오오오.
황무지 위에 작은 태양이 떠올랐다.
그것은 이미 <파이어볼> 따위가 아니었다. <버닝 샷>과도, <헬플레임>과도 비슷하지 않았다.
구태여 부른다고 한다면, 그것은 <메테오 스트라이크>에 필적하는 최상급 비전 파괴 마법.
<소돔의 불꽃>
곧 자색과 녹색이 뒤엉킨 업화의 지옥이―
저격수가 있는 산에 유성이 되어 도래했다.
***
같은 시각.
어둑한 공간의 책상에 앉은 한 여자가, 수십 개의 모니터 사이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어라, 죽어 버렸네.”
모니터 화면 대부분이 비정상적으로 지직거렸다. 연결이 통째로 끊어진 것이었다.
“뭐, 됐어. 차피 데이터는 다 먹었고.”
여자는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러자 한쪽 모니터에서 영상이 재생됐다. 화이트데스와의 연결이 끊기기 직전 녹화된 영상의 복사본이었다.
“그보다 이건, 흐음.”
호텔 창가에 나타난 수백 개의 환영.
그리고…… 정확히 5분 후에 구사된 비이상적으로 강력한 <파이어볼>.
“단순 규모만 봐도 가이우스, 아니 티베리우스급은 가뿐히 넘겠는데, 이거. 도대체 누구지?”
같은 영상이 느린 속도로 반복 재생되다가, 이내 호텔 창가 부분이 수십 배로 확대됐다.
“얘구나.”
화면에는 초록머리 엘프가 비쳤다.
여자는 다시 키보드를 몇 번 두드렸다. 그러자 다른 모니터에 무수한 정보가 주르륵 늘어섰다.
“비너스.”
여자의 시선은 재차 영상을 쫓았다.
역시나. 구사한 마법들의 출력이 하나같이 예사롭지가 않다. 술사가 마나를 무한대로 지니고 있는 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되는 수준이다.
“흐으음.”
특히나 그녀가 주목한 부분은, 녹색 마력과 자색 마력이 얽힌 <파이어볼>의 비주얼이었다.
무한에 가까운 마나.
두 가지 유채색 마력.
“그렇구만. 그렇구만.”
진실을 알아챈 것처럼,
여자는 고개를 끄덕댔다.
“이 녀석한테 있었군. 노웨어맨의 심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