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One Shot at Glory (3)
죽음이 다가온 순간.
그때의 나는 자신이 죽음과 직면했음을, 실제로 죽게 될 시점보다 훨씬 늦게 깨달았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그저,
탄환에 눈알이 꿰뚫리기 직전.
―그그그그극.
허공에 피어난 보라색 거품이,
날아드는 총탄을 잡아먹는 광경.
그것은 틀림없이 <부름>의 벌레 떼였다.
나는 악마의 이름을 속삭인 적이 없었다. 당연하지만 그럴 틈 따위는 있지도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그 순간 <부름>이 발현됐다.
마치 내 안의 마나가 그 자체로 의지를 발휘하여, 술사의 본체를 지키려고 행동한 것처럼.
―파사삭. 파삭!
100분의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시간.
자색 군체는 무자비한 식탐으로 탄환을 먹어 치워 그 부피를 반의반으로 줄였다.
―피캉!
총알이 내 두개골을 뚫고 지나가는 대신 가면을 부수는 데 그친 것은 바로 그 덕분이었다.
“큭!”
나는 광대뼈에 다이렉트로 전해진 충격과 반동에 고꾸라지듯 뒷걸음질을 쳤다.
깨져 버린 가면 조각이 할퀴고 지나가 생긴 뺨의 생채기를 제외하면 달리 상처는 없었다.
“유, 유클리드 씨! 괜찮……?”
뒤에 서 있던 비너스가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그리고 깨진 가면 사이로 드러난 내 맨얼굴을 본 순간, 그녀의 놀람 수치는 제곱으로 늘어났다.
“힉.”
그야 물론 놀랄 수밖에 없겠지.
한때 자신이 심장을 노리고 접근했다가, 외려 통구이가 될 뻔했던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면 말이다.
“유, 유진 씨……?”
덜컥 막힌 호흡. 퍼렇게 쪼그라든 입술.
공포영화 속 괴물 살인마를 마주친 여자 엑스트라의 것처럼 큼지막하게 휘둥그레진 눈동자.
“오랜만이네, 비너스 님.”
나는 부서진 가면을 벗어 던졌다.
비너스는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
“아, 아하하. 맞구나. 세상에 이, 이런 데서 다 뵙네요? 시, 신기해라아…….”
그 와중에 철판 깔고 친한 척이라니.
뻔뻔함도 저 정도면 인정해줘야 할 성싶다.
“그, 그간 어떻게 자, 잘 지내셨나요……?”
“전혀 잘 못 지냈지. 그쪽 만나고 나서부터 매일같이 밤잠을 설쳤거든. 또 어디서 내 심장을 노린 마법사가 나타나지는 않을까 해서 말이야.”
“아, 앗, 크흠…….”
“그쪽은 의외로 별일 없이 지냈나 보네. 살인죄로 잡혀가서 교도소에 처박혀 있을 줄 알았는데.”
“그, 그거는 정당방위가 인정돼서…….”
“내가 지금부터 널 죽여도 정당방위겠군.”
“히엑.”
“쫄지 마. 의뢰를 마치기 전엔 안 죽여. 누구 말마따나, 현장에 같이 있을 동안은 동료잖아?”
정체를 들킨 이상 비너스는 살려둘 수 없다.
허나 당장은 약골 엘프 마법사 따위보다 훨씬 거대한 골칫거리가 저 창밖 너머에 있었다.
“너도 등신이 아니라면 알겠지. 지금 여기서 우리끼리 장난 놀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거.”
“…….”
“일단 상황부터 파악해 보자고.”
나는 묵묵히 건물 계단 쪽으로 움직였다.
겁에 질린 비너스는 서너 번씩 망설이다가, 결국 내 뒤를 멀리서 조심스럽게 쫓았다.
40층에서 다섯 층을 내려와 도착한 35층.
상대 스나이퍼의 저격에 당하여 이마를 꿰뚫린 미스 바렛의 시체가 그곳에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설마 그 미스 바렛이, 장거리 저격 싸움에서 졌다구요……?”
비너스는 기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로,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농구로 치자면 마이클 조던이 원온원에서 쪽도 못 쓰고 발린 꼴이라구요. 게다가 분명 저쪽 스나이퍼 위치까지 대강 파악하고 있었을 텐데…….”
“상대 저격수 솜씨가 더 좋았을 뿐이겠지.”
“그니깐 그게 말이 안 되는 거라니까요! 미스 바렛을 저격전에서 이기는 스나이퍼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예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짐작 가는 놈이 하나 있어.”
<사이버판타지> 세계관에서 최강급의 스나이퍼라고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캐릭터.
“화이트데스.”
‘하얀 죽음’이라 칭해진 괴물 저격수.
눈밭을 지배하는 겨울 평원의 사냥꾼.
게임에서 화이트데스와 마주치는 건 어스테이트 북부 설산지대를 방문했을 때다. 화이트데스는 플레이어의 레벨이 40 미만일 경우에만 등장한다.
설산지대 입구에는 ‘저격수 조심’이라 쓰여 있는 경고판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진입할 경우 플레이어는 캐릭터 능력치와 관계없이 어딘가에서 날아온 총알을 맞고 무조건 한방에 사망하게 된다.
40렙을 찍으면 해당 지역의 경고판과 저격수는 자동으로 사라진다. 레벨이 낮은 시점에 무리한 맵 이동을 막는 일종의 수문장 시스템인 것이다.
허나 그 외에 직접적인 등장은 전무한 맥거핀 격의 캐릭터. ‘화이트데스’라는 이름 역시 게임 데이터 파일을 뜯어봐야지만 알 수 있는 설정이다.
하여튼.
게임 초반엔 볼 일이 없는 놈일 텐데.
“…….”
저게 진짜 화이트데스라면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설산지대도 아니고 뜬금없이 시에라시티 외곽에?
―반 패튼을 죽이려는 저격수인가?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이버판타지> 메인 스토리가 시작되는 시점에 정치인 빅터 반 패튼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
화이트데스 정도 되는 스나이퍼가 암살을 시도했다면, 반 패튼이 살아있을 리는 결코 없다.
―의뢰비 탈취가 목적인 용병 사냥?
역시나 가능성은 없다.
애초에 이곳은 돈이 오가는 거래 현장이 아닐뿐더러, 재물이 목적이었다면 차라리 거물 정치가인 반 패튼을 습격하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그렇다면,
나오는 결론은 하나뿐.
“놈이 노리는 건 우리다.”
“뭐라구요……?”
“아마도 여긴 녀석이 만든 놀이터. 제 딴에는 그냥 쏴 맞힐 장난감이 필요했던 거야.”
“그 말은…….”
“애초에 우릴 고용한 게 저놈이었다는 얘기지.”
이제야 대충 알 것 같았다.
누워서 떡 먹기나 다름없는 이런 의뢰에 300만 달러나 되는 거금이 보수로, 그것도 성공 조건 따로 없이 착수금으로만 그만큼이 책정된 이유를.
―미끼였던 것이다.
한적한 오후의 저격 연습을 위한.
과녁이 되어줄 용병들을 낚을 미끼.
“아까 전에 미스 바렛이 그랬지. 자기는 고용주한테서 따로 추가 보수를 받았다고.”
“설마, 그녀가 메인 디쉬였다는 거예요……?”
“너랑 난 사이드 감자튀김쯤 되려나. 아무래도 놈은 접시를 싹싹 긁어먹을 셈인 모양이지만.”
나는 뺨에 난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를 손등으로 닦았다. 내가 죽지 않은 건 순전히 운 덕이었다.
“어, 어떡해야 돼요, 그럼……?”
“건물 어디로 나가든 놈의 저격 사정권 내야. 도망친다면 뒤쪽 절벽으로 뛰어내려야 해. 그런 다음 사우스아치까지 헤엄쳐서 가든가 해야겠지.”
“저기요? 잠깐만, 잠깐만요. 120km나 되는 거리를 맨몸으로 헤엄쳐서 돌아간다니, 무슨 돌고래도 아니고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난 잘하면 될 것 같은데.”
“객기 좀 부리지 마요. 저녁에 폭풍우가 온단 얘기 못 들었어요? 지금 바다로 점프하는 건 그냥 자살 행위라구요! ……아, 그렇지! 차라리 여기서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두워지면 그때 탈출하는 건 어때요?”
“그건 안 돼.”
“아니, 왜요?”
“도로에 미스 바렛이 죽인 용병들 시체가 남아 있잖아. 이따 반 패튼이 지나갈 때 경호원들이 그걸 보면 매복을 의심하겠지. 그랬다간 건물에 숨어 있는 우리가 도리어 암살범으로 몰리게 될걸.”
“그, 그럼…….”
아군 저격수는 사망.
이곳은 도시에서 100km 넘게 떨어진 외딴 장소일 뿐 아니라, 저격수가 자리를 잡고 있는 이상 외부로부터의 지원은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나와 비너스.
둘이서 해결해야만 한다.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뿐이야.”
“…….”
“저격수를 잡고, 여기서 탈출한다.”
비너스는 어이를 상실한 듯 보였다.
“……무슨 수로요? 유진 씨가 총 들고 저격이라도 하게요? 그게 가당키나 해요? 저쪽 스나이퍼가 있는 위치는 여기서 5km는 떨어져 있다면서요?”
“내가 하는 게 아냐.”
나는 말했다.
“네가 한다.”
잠시 침묵.
정적이 흘렀다.
“제가 한다구요?”
“그래.”
비너스는 완전히 벙찐 표정이었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네가 쓸 수 있는 가장 센 마법이 뭐냐?”
“……?”
“멍청히 있지 말고 대답이나 해. 그쪽이 쓸 수 있는 마법 중에, 제일로 강력한 마법이 뭐야?”
녀석은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하나만 꼽으라면, <페이탈 볼텍스>요.”
25레벨에 배울 수 있는 아케인 파괴 마법.
비너스의 레벨은 25 언저리쯤이라 봐야겠군.
“<파이어볼> 쓸 수 있지?”
“당연하죠.”
“만약에 네가 <파이어볼>을 연속으로 쓴다 하면, 최대 몇 회까지 구사 가능해?”
“한 30회 정도려나요.”
“30회가 맥시멈인가?”
“아마도요.”
<파이어볼>의 소비 마나는 28.
마법 숙련도에 따라 소비량의 배율은 약간씩 늘어나지만, 이 녀석은 찌끄레기 마법사라서 딱히 드라마틱한 배율 증가는 없을 것이라 추론.
28 곱하기 30은 840. 올려치기 하면 900.
비너스의 최대 MP는 약 900쯤이라 가정하자.
그건 그렇고.
MP가 꼴랑 900이라고?
“너 마나통 진짜 좆만 하구나.”
“…….”
웬만큼 초기 스탯이 망하지 않은 이상, 25레벨을 찍은 마법사라면 최소 2000에 가까운 MP를 보유하고 있어야 정상이다. 비너스는 게임 캐릭터로 치면 거의 망캐인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내 심장을 탐낸 이유가 있었구만.”
“…마나통 딸려서, 뭐 불만이라도 있어요?”
“아직은 없어. 혹시 포션 같은 건 챙겨 왔나?”
“엘릭서 토닉 100미리짜리 한 병은 있는데요.”
“미리 마셔 놔.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마법 중에, 쓸 줄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말해.”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천리안>.”
“…….”
“<할루시네이트 미러>.”
“…….”
“<컨센트레이션>.”
“…….”
“<다중 술식 중첩>.”
“…….”
“<화산정령의 가호>.”
“…….”
말을 쭉 이어갈 동안, 대꾸는 일체 없었다.
비너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했다.
“잠깐, 다 쓸 수 있다고?”
“일단은요.”
“내가 말한 마법들 전부 다?”
나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녀석은 같은 질문에 두 번 답하는 대신 고개를 앞뒤로 끄덕였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놀랐다.
범용 마법인 <컨센트레이션>을 제외하면, 앞서 언급한 마법들은 모두 중급 레벨 이상의 마법.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중급 마법부터는 특기 마법 두세 개에, 끽해야 서너 개의 보조 마법을 추가로 익히는 데 그친다. 많아 봤자 그 정도다.
헌데 중급 마법들 중에서도 배우기 까다롭다는 <할루시네이트 미러>를 포함해서, 엘리멘탈 계열인 <화산정령의 가호>까지 쓸 수 있다고?
“의외로 부릴 줄 아는 재주가 많군.”
“뭐어, 실력은 잔챙이 수준이지만요.”
“그치. <강화>밖에 못 쓰는 나한테도 처참하게 발렸을 정도니까. 함정까지 파 놨던 주제에.”
비너스는 모른 척 휘파람을 불었다.
재주가 얼마나 많든, 이 녀석이 레벨에 비해 극도로 허접한 마법사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오케이. 아무튼 잘 알았어.”
하지만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계획을 설명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