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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60화 (60/201)

60화. One Shot at Glory (2)

나와 비너스는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유리 없이 휑하게 뚫린 창 너머, 호텔 앞에서 기역 자로 꺾이는 일자 도로의 먼발치 수평선 근처에 아주 희미하게 일렁이는 사물의 윤곽이 보였다.

“자기들 눈엔 잘 안 보이려나?”

저격총의 스코프에 눈을 갖다 대고 있는 미스 바렛이 우릴 향해 가볍게 약을 올리듯 말했다.

나는 말없이 오른손을 들어 가면의 측면에 탑재돼 있는 소형 노브를 살며시 돌렸다.

끼릭, 지이잉―.

그러자, 모양조차 구별하기 힘들었던 물체의 실루엣이 눈앞까지 가까워지며 뚜렷하게 내보였다.

“승합차군. 검은색 르노 마스터.”

“오? 정확한데?”

꼬맹이 쥬가 만들어준 이 가면에는 최대 18배율까지 확대 가능한 망원 기능이 내장되어 있었다.

나는 렌즈를 통해 차량을 세세히 살폈다

“차량 표면에 미약한 마나 흐름이 있어.”

“용케 그것까지 봤네. 맞아. 아마 저쪽 법사 친구가 차에다 방호 마법을 깔아놓은 거겠지.”

“이 정도 거리에서는 마탄을 써도 제대로 먹히기 어려울 텐데. 접근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자기?”

미스 바렛은 피식 웃었다.

“이 거리에서라면 난, 탱크라도 문제없어.”

그녀는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분 뒤,

거치된 저격총을 여유롭게 고쳐 잡았다.

첫 번째 격발이 이뤄지기까지, 정확히 3초.

타아앙―!!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흡사 포탄이 터지는 소리였다.

<물리 관통 술식>을 적용시킨 대구경 마탄.

발사된 순간, 번쩍이는 마나의 섬광이 육안으로도 얼핏 보였을 만큼 강력한 에너지가 담겨 있었다.

당연하지만 중급 레벨의 마나 배리어를 걸친 정도로 그 흉악한 일격을 막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목표 지점에 도달한 탄환은 그대로 승합차 차체의 절반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두 짝의 바퀴에 의지하여 굴러가던 차는 관성 속에서 결국 중심을 잃고 도로 중간에 고꾸라졌다.

이후 반쪽만 남은 차량의 잔해 사이로 목숨을 부지한 세 명의 용병들이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50% 확률을 뚫고 살아남은 것은 충분히 기적 같은 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100%로 확정된 헤드샷이었다.

탕, 탕, 탕―!

약 2초쯤의 간격을 두고서, 세 발의 일반 총격이 연속으로 가해졌다.

각각의 총알은 차량 밖으로 기어 나온 생존자들의 머리통을 착즙기 속의 오렌지처럼 부숴 터뜨렸다.

“OK. 전원 사살 완료.”

그렇게―

상황은 단 30초 만에 싱겁게 정리됐다.

“이걸로 끝인 건가?”

마탄 발사의 영향으로 파르르 떨리던 주변 공기가 비로소 진정할 때 즈음, 내가 물었다.

“글쎄, 우리가 들은 정보대로라면 그렇겠지만, 저 차에 타고 있던 녀석들은 단순히 선발대일지도 모르니까. 후속이 올 가능성도 고려는 해야겠지.”

미스 바렛은 바닥에 떨어진 탄피를 주웠다.

“VIP 통과까지 앞으로 4시간 30분. 못해도 4시간은 여기서 셋이 죽치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

“보기보다 프로 의식이 투철하군.”

“뭐, 사실 이쪽은 고용주한테 따로 떡값까지 챙겨 받은 입장이라, 대충대충 처리할 수는 없거든.”

그녀는 느긋하게 탄창을 교체했다.

“어쨌든 난 여기서 정찰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을 테니까, 자기들은 가서 현장 뒷정리 좀 해줄래? 아까 말한 것처럼 테러단의 후속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고, 무엇보다 우리 잘나신 의원님 행차 길에 장애물이 있으면 곤란하잖아. 그치?”

나는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비너스는 딱히 이견이 없는 모양인 듯, 한차례 어깨를 으쓱하고는 군말 없이 완드를 챙겼다.

저격수는 자리에 남았고,

우리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나는 바이크의 시동을 걸었다. 박살 난 자동차는 여기서 최소 3km 이상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바로 출발하려는데, 문득 등짝 부근에 따뜻한 체온과 인기척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

고개를 돌아 뒤를 보자,

거기엔 비너스가 있었다.

“응? 출발 안 해요?”

천진난만한 표정의 초록 머리 엘프는 아주 당당하게도 바이크 좌석 뒷부분에 붙어 앉아, 내 허리춤에다 자기 양손을 넌지시 얹어 놓고 있었다.

“내려.”

“에엥? 왜요?”

“같이 타기 싫으니까.”

“그럼 저 혼자 걸어서 가라구요?”

“저쪽에 네 차 있잖아.”

“아하, 그게, 실은 여기 오기 전에 기름 넣는 걸 깜빡했는데, 지금 차에 있는 기름 더 써 버리면 저 이따 끝나고 집까지 못 갈 것 같아서 말이죠.”

“그건 네 사정이지. 내려.”

“에이, 그러지 마시구―. 여기서 저한테 잘해주면 돌아오는 보답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비너스는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미인의 미소만큼 악랄한 것은 없다고들 하나, 이미 한 번 심장을 뜯길 뻔했던 입장에선 예쁘장하게 올라간 입꼬리를 보아도 오히려 적대감만 부추겨질 뿐이었다. 그냥 당장 죽여 버릴까도 싶었다.

“같이 가도 괜찮죠? 유클리드 씨.”

그렇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만 한다.

이 녀석을 죽인다고 해도 그건 일을 다 끝마치고 나서다. 의뢰 수행 중에 동료를 살해해 버리면 용병으로서의 신뢰도와 명성에 악영향만 미칠 뿐이니.

“쯧.”

나는 짧게 한 번 혀를 찬 뒤, 더 이상 아무 말도 않은 채 클러치를 잡고 기어 단수를 올렸다.

스로틀을 당기자, 부아앙―! 머플러에서 우렁찬 배기음이 뿜어지며 시원한 질주가 시작됐다.

야마자키 시노비의 빠릿빠릿한 스피드 덕에 목적지에는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우와, 머리 터진 것 좀 봐. 징그러워라…….”

비너스는 식겁한 대사와 대조되는 덤덤한 얼굴로 현장을 돌아봤다. 턱주가리 윗부분이 그로테스크하게 쪼개진 세 구의 시체와, 반으로 갈라져 아스팔트 바닥에 널브러진 자동차의 조화는 마치 90년대 B급 슬래셔 무비의 클라이맥스 장면처럼 보였다.

“일단 가벼운 것부터 먼저 처리해야겠네요. 유클리드 씨, 시체들 좀 저기 옆에다 모아 줄래요?”

“한꺼번에 모아서 태우려고?”

“아뇨. 그건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 연기도 나고, 암튼 별로예요. 그보다 바로 옆이 바다잖아요. 편한 방법이 있는데 뭣 하러 귀찮은 짓을 해요?”

그렇군. 바다에 빠뜨릴 생각인가.

나는 비너스가 시킨 대로 했다. 마나가 드러나지 않도록 최소한으로 <강화>를 사용. 피 칠갑이 된 주검들을 질질 끌어 절벽 앞까지 옮겼다.

“수고했어요. 나머진 제가 할게요.”

비너스는 내가 모아 놓은 시체들 앞에 섰다.

그녀가 무어라 중얼거리자, 곧바로 손에 쥔 나무 완드에 녹색으로 빛나는 불꽃이 자리 잡았다.

“<강철비>.”

불꽃은 날카롭게 깎여 여러 개의 송곳이 되었다.

푸슈슉―. 송곳들은 다각도로 내리꽂혀 죽은 자들의 피부에 무수한 바람구멍을 뚫었다.

“<포스 그래비티>. <에어로키네시스>.”

다음 영창.

한순간 땅바닥에 묵직한 모래바람이 일더니, 공처럼 둥글게 말린 시체들이 두둥실 떠올랐다.

“자아, 잘 가렴. 물고기 밥들아.”

비너스가 완드를 휘둘렀고, 시체들은 바다 쪽으로 날아갔다. 절벽 너머로 추락한 그것들은 풍덩 소리와 함께 깊은 바닷물 아래에 영원히 갇혀졌다.

“이걸로 이제 불어 터진 시체가 둥둥 떠올라 사우스아치 앞바다에서 발견될 일은 없을 거예요. 저녁쯤에 폭풍우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어차피 그전에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겠죠.”

“시체 처리를 자주 해 본 모양이군.”

“뭐어, 그쵸. 저는 전투 같은 것보다는 아무래도 이런 잡일 쪽이 주특기라서요.”

여기서도 내가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비너스는 다양한 마법을 사용해 도로의 승합차 잔해, 그리고 바닥의 핏물 등을 정리했다.

사용한 마법들은 낮은 위력에 마나 소모가 적은 것들뿐이었지만, 어쨌거나 중급 수준은 됐다.

게다가 녀석은 여러 가지 마법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꽤나 익숙한 듯했다.

마나통은 작은 대신 쓸 수 있는 마법은 많은 트릭스터Trickster 타입인가. 나랑은 정반대로군.

“좋아요. 이제 돌아가죠.”

우리는 바이크를 타고 호텔 건물로 돌아왔다.

40층에 오르자 비너스는 헉헉대며 기둥 앞에 쓰러졌다. 미스 바렛은 여전히 스코프에 한쪽 눈을 갖다 댄 채 쭉 창가 쪽에 있었다. 나는 대충 시멘트 바닥에 앉았다. 다시 시간 때우기가 시작됐다.

그렇게 한 시간여쯤 뒤.

미스 바렛의 말대로 후속이 나타났다.

탕, 타앙―!

이번에는 두 발만으로 충분했다.

처음 날아간 마탄 한 발에 반파된 놈들의 차량이 이리저리 흔들리다 바위에 처박혔고, 간신히 살아서 기어 나온 운전수는 다음 한 발에 머리를 잃었다.

“그럼 저희는 뒷정리 다녀올게요―.”

비너스가 옷을 털며 일어났고, 나 또한 앉았던 몸을 일으켜 계단 아래로 향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쉿. 잠깐 기다려.”

미스 바렛이 우릴 멈춰 세웠다.

그녀는 잠시 정지 상태로 가만히 있더니, 이내 스코프에서 눈을 떼고 천천히 창가에서 떨어졌다.

“왜 그러지?”

“저격수가 있어.”

미스 바렛의 한마디에, 여태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긴장감이 단번에 흘러나와 고조됐다.

“어디에?”

“5km 앞 민둥산 풀밭. 길리슈트를 입고 숨어 있는 것 같아.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격수가 있는 건 확실해?”

“햇빛에 단망경 반사광이 비쳐 보였어. 실력 없는 아마추어라 뻔한 실수를 한 건지, 아니면 일부러 불리한 위치에 자리를 잡을 정도로 저격전에 자신이 있는 건지……. 어디 한번 알아봐야지.”

라고 말하며, 미스 바렛은 씩 미소를 지었다.

“이쪽 위치는 발각됐으니 자리를 옮겨야 해. 자기들은 여기서 사람 있는 척 좀 하고 있어 줄래?”

“우리더러 미끼가 되라고?”

“저기 내 총 갖고 총알에 안 맞을 위치에서 까딱까딱 움직여만 줘. 그거면 되니까.”

그녀는 방 안쪽에 둔 더플백에서 다른 총을 꺼내 들었다. 창가에 있는 것보다는 사이즈가 작았다.

“이따 보자구, 친구들.”

저격수는 유유히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나와 비너스는 서로를 마주 봤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창가 아래에 바짝 엎드려 저격총을 까딱거리는 일뿐이었고, 그 미끼 역할을 맡는 것은 당연히 오늘 하루 가장 한가했던 나의 몫이었다.

“<마나 배리어> 정도는 걸어 줄게요.”

“그것참 눈물 나게 고맙네.”

돌팔매도 못 막을 듯한 허약한 방호 마법에 목숨을 맡긴 채, 나는 저격수 대신 저격총을 들었다.

….

….

고요했다.

저격수끼리의 결투는 원체 무한한 침묵 속 단 한 발의 총성이 승부를 결정 짓는 세계라고 했던가.

“그 여자, 설마 당하진 않겠지?”

“너무 걱정 마세요. 아까도 말했지만, 미스 바렛은 시에라시티 최고의 장거리 저격수니까요.”

비너스는 걱정 말라고 말했다만.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상대 저격수가 있는 곳은 5km 떨어진 지점.

그곳에 위치를 잡았다는 건, 적어도 반 패튼을 저격하려는 의도가 아님은 분명하다. 머리가 있는 저격수라면 좀 더 도로에서 떨어진 장소를 택했겠지.

그렇다면 상대 저격수의 목표는, <톤토 파라다이스 호텔>에 있는 우리라고 보는 편이 올바르다.

“스나이퍼들은 보통 저격 거리가 어느 정도지?”

“으음, 글쎄요. 평균치는 잘 모르겠네요. 저번에 듣기로 미스 바렛은 3천몇백 미터까지는 무리 없이 맞힐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비너스가 말했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상상이 든다.

“…….”

5km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건…….

이 거리에서 맞힐 수 있다는 얘기인가……?

그런 의문이 들었을 찰나.

곤두선 청각이 뭔가를 포착했다.

―타아앙!

그것은 총성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울린 격발음. 미스 바렛의 것이 틀림없었다. 먼저 방아쇠를 당긴 쪽은 그녀였다.

그때까지는.

그런 줄만 알았다.

―푸슉.

총성에 이어 들려온 소리는,

귀뼈에 꽂히는 불길한 파열음.

그 소리 역시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미스 바렛의 총성이 울린 곳과 같았다.

투웅―. 먼 곳에서부터 메아리가 닿았다.

상대 저격수가 발사한 총성의 메아리였다.

그러고 나서 잠잠해졌다.

허나, 적막은 길지 않았다.

“아.”

일순 반짝인 하얀 섬광과 함께―

총탄이 내 눈을 향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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