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Dirty Deeds Done Dirt Cheap (3)
“아, 이런. 아니지. 잘못 말했어. 암살 의뢰가 아니라, 암살당할 사람을 지키는 의뢰야. 맞아.”
다행히 내가 속으로 질겁하기 직전.
주인장이 서둘러 자기 말을 정정했다.
“경호 의뢰라는 얘긴가?”
“그래, 그래. 내가 지금 알코올이 좀 들어가서 약간 헤까닥이라, 말이 헛나왔구만. 헛헛.”
주인장의 자조적인 헛소리는 무시한 채, 나는 이전에 받았던 밀항자 호위 의뢰를 떠올렸다.
그때는 상당히 위험했었다. 하필이면 의뢰인을 데리고 레드존을 통과해야 하는 루트였던지라.
결국 현상금 사냥꾼들의 습격에 의뢰인은 사망.
처음으로 수행한 용병 임무였음에도 착수금만 받고 만족해야 했던, 영 찝찝한 결말이었다.
“보수는?”
“300만 달러.”
“나쁘지 않네. 누굴 지키면 되는 건데?”
3등급 의뢰임을 감안하면 경호 대상은 필히 어딘가의 높으신 분, 아니면 돈 많은 졸부일 터.
“정치인. 그것도 현직 제1야당 의원이야.”
당연스럽게도,
내 예상은 들어맞았다.
“빅터 반 패튼. 누군지 아나?”
“자유당 의원이잖아.”
“맞아. 이번에 시장 후보로 출마하는 양반인데, 10년 넘게 이종족 차별 관련 법안들을 꾸준히 미는 뚝심을 보여서 젊은이들한테 인기가 많아.”
“그런 분이 어쩌다 암살당할 위기에 처했대?”
“네오나치들 때문이지. 휴먼우월주의에 빠진 얼간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당장 주변만 해도 엘프라면 학을 떼는 인간들이 수두룩하잖나.”
나는 주인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따금 있었다. 다른 종족들을 비하하는 멸칭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인간들이.
엘프는 쪽잎귀.
다크엘프는 썩은 쪽잎귀.
오크는 돼지코. 드워프는 난장이.
고블린은 진딧물. 수인종은 털뭉치.
시에라시티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인간이었기에, 인간들의 도시를 살아가는 이종족들은 자연히 멸시와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다음 주 금요일, 반 패튼이 유로피아와 샌제이비어 순방을 마치고 시에라시티로 돌아오는 길에, 헤테로포비아 단체가 고용한 용병들이 그가 탄 자동차를 습격할 거야.”
“암살 의뢰를 받은 용병들을 역으로 족치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겠군.”
“정확해. 말하자면 이번 일은 경호 의뢰라기보다 소탕 의뢰에 가깝다 할 수 있겠지.”
그때쯤.
작은 의문이 들었다.
“근데, 반 패튼쯤 되는 거물 정치가라면 끼고 다니는 경호원들만 해도 한 트럭은 되지 않나?”
“거야 그렇겠지.”
“암살 계획을 알고 있다면 경찰의 도움을 받거나 자기네 사람을 보내서 해결하는 편이 훨씬 깔끔하잖아. 굳이 이렇게 뒷골목 프리랜서 용병을 모집할 필요는 없을 텐데?”
내 말에 주인장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 임무 의뢰인은 반 패튼이 아니거든.”
“그럼 누군데?”
“익명 희망. 내 최고의 단골손님이시지.”
살짝 미스터리한 뒷사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당장에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하나.
<사이버판타지> 본편 시작 시점에, ‘빅터 반 패튼’이란 인물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
플레이 도중 알게 되는 잡스러운 이모저모다.
그는 한 달 후 시장 후보로 출마하고, 선거에서 패배한다. 이후 게임 속에서 언급은 일체 없지만, 어쨌든 선거 전에 죽거나 하는 상황은 없었다.
즉, 내가 아는 미래대로라면―
빅터 반 패튼은 암살당하지 않는다.
암살당하지 않는 자의 암살을 막는 의뢰.
이번 일은 그야말로 개꿀 미션이란 얘기다.
“나 말고 참여하는 인원은 몇 명이지?”
“두 명 더 있어. 원래는 그 녀석들만으로 착수하려 했던 일인데, 내가 자네까지 껴주려고 억지 부려서 갖고 온 거야. 고마운 줄 알라고.”
“뭐, 보수 나누는 걸로 불평은 못 하겠군.”
300을 셋이서 나눈다면 각자 100씩.
100만 달러를 꽁으로 먹고, 겸사겸사 3등급 의뢰를 완수했다는 명성까지 챙길 수 있는 기회.
“오케이. 할게.”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할 일이 많긴 했지만, 어차피 멜리에스와 엘리엇 건은 처리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터였으니.
“좋아, 좋아. 작업 날짜는 담주 금요일. 자세한 건 의뢰인한테 알아보고 나서 연락 줄게.”
“그럼 나는 내일 다시 오지.”
“나도 인제 옆 동네 술집으로 돌아가 봐야겠구만. 자네는 바로 들어갈 건가?”
“잠깐 10구역에 들러야 돼. 기껏 사 온 가면을 벌써 망가뜨려 버려가지고.”
“<끈적한 용암 공방> 말이지? 그쪽 골목 근처는 조심하라고. 밤이 되면 위험한 놈들이 많으니깐. 뭐어, 카이트 자네라면 아무 문제도 없겠지만.”
“충고 고마워, 주인장.”
“아, 혹시 볼일 끝나고 시간 남으면 내 쪽으로 와서 같이 한잔하지 않겠나? 잭 그 친구가 그날 이후로 자네를 엄청 보고 싶어 하던데.”
“미안하지만 오늘은 패스. 어젯밤에 미치게 무리해서 지금 죽도록 피곤하거든.”
“참, 어제가 홍룡파 놈들이랑 거래하는 날이었지. 근데 돈 받아오는 데 무리할 게 뭐가 있남?”
“일이 좀 틀어져서 다 죽여 버렸거든.”
“……전부 다? 상하이맨까지?”
“그래.”
“크핫! 자넨 진짜 농담 실력이 형편없군!”
“진짠데.”
***
늦은 밤.
노스네스트 10구역.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토니 웡이 죽었대.”
허름한 간이식당 안, 구석 테이블에 앉은 두 남녀가 부질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죽었다고? 상하이맨이?”
“상하이 가본 적 있어, 자기?”
“아니, 없어. 그보다 젠장할, 그 짱꼴라 아재가 도대체 어쩌다 죽은 거래? 사스라도 걸렸나?”
남자는 여자에게 들은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휘적거렸다.
“살해당했대. 카이트란 녀석한테.”
여자는 식당 창밖으로 보이는 어두운 거리를 향해 데굴데굴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케이트?”
“아니, 카이트.”
“무슨 씨발 트랜스젠더 닉네임 같네.”
“난 트랜스젠더가 좋아. 어감이 멋있잖아.”
“이름도 처음 듣는 놈인데, 그런 좆도 아닌 애새끼가 상하이맨을 죽였다니. 존나 말도 안 돼.”
“내 친구들이 그러던데, 걔가 그 ‘암귀’래.”
“개소리. 암귀는 죽었어. 그놈은 분명 가짜야.”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말라붙은 감자튀김을 한 움큼 입에 집어넣고는 우적우적 씹었다.
“상하이맨이 죽었으면, 홍룡파는 어떻게 됐지?”
“토니 웡 아들이 새로운 보스가 됐다나 봐. 자기 아빠 죽인 녀석 목에 현상금을 걸었다던데.”
“현상금? 얼마나?”
남자가 묻자, 여자는 말했다.
“3,000만 달러.”
그러자 남자는 픽 웃었다.
“구라겠지. 3천만씩이나 줄 리가 없어.”
“3백만 정도는 줄지도 모르잖아?”
“그치. 3십만만 줘도 그게 어디야.”
“우우, 돈 갖고 싶다―.”
“카이트란 놈을 조지면 되는 건가. 뭐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라도 알면 좋을 텐데…….”
“까만 마스크랑 후드를 쓰고 다니는 남자래.”
순간.
남자가 멈칫했다.
“나 그놈 알아.”
“정말?”
“아까 전에 2번가에서 봤어. 어깨를 부딪쳤는데, 나한테 사과를 하더라고. 미안합니다― 하고.”
“그게 뭐야. 완전 병신 샌님이잖아.”
“물론 거리에 마스크랑 후드 쓴 놈은 널리고 널렸지. 근데 뭐랄까, 그놈은 분위기가 이상했어. 꼭 뒤로 걷는 펭귄을 보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어색해 보였다는 거야?”
“맞아, 그거야.”
남자는 고개를 끄덕댔다.
“그놈 본 게 언제쯤이야, 자기?”
“여기 오기 바로 전이니까 20분 전쯤. 맞아, 분명히 난장이 공방으로 들어가는 걸 본 것 같아.”
여자는 앞니부터 어금니까지 치아 교정기가 훤히 드러나도록 활짝 웃어 보였다.
“우리가 죽일까?”
남자는 재차 고개를 앞뒤로 움직였다.
“그거 좋은 생각인데.”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덮치자. 내가 다가가서 총을 쏠게. 자기가 멀리서 칼로 마무리 지어.”
“지난번이랑 같은 계획이군. 아주 완벽해.”
“놈을 죽여서 중국인들한테 바치는 거야. 그리고 돈이 생기면 둘이 같이 여행을 가자.”
“어디로 갈래? 샌제이비어?”
“더 멀리 가고 싶어. 바다 건너 멀리.”
“그래, 좋아. 상하이든 어디든 가보자고.”
두 남녀는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사랑해, 펌킨.”
“나도, 범블비.”
한바탕 진하게 입을 맞춘 뒤, 그들은 일어섰다.
남자, 펌킨이 카이트를 목격한 곳 근처의 골목길로 들어가 음습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그 골목은 상점가에서 지하철역으로 통하는 지름길이긴 했으나, 펌킨과 범블비가 노리고 있는 ‘카이트’가 그곳을 지나가게 될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오늘의 그들은,
운이 꽤 좋은 편이었다.
“저기 온다.”
범블비가 속삭였다.
골목길에 들어선 한 남자, 검은 가면과 후드를 쓴 유진이 그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계획대로 가는 거야, 펌킨.”
“그래. 총소리가 들리면 바로 뛰쳐나갈게.”
나쁜 위치. 나쁜 타이밍. 무엇보다도 가장 나빴던 것은 바로 그들의 계획 그 자체였다.
허나 그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계획으로, 펌킨과 범블비는 지금껏 수십의 강도질을 성공시켜 왔다.
총을 든 범블비가 유진을 향해 나아갔다.
칼을 든 펌킨은 벽 뒤에 숨은 채 대기했다.
범블비가 총을 쏴 재끼면,
그때가 바로 나설 순간이다―.
….
….
시간이 꽤 흘렀다.
10초 정도. 어쩌면 그 이상.
……이상하다.
……왜 총소리가 들리지 않지?
범블비가 나선 지 한참이 지났다.
지금쯤 대여섯 발 정도는 쏘고도 남았을 텐데, 어째서인지 주변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펌킨은 조심스럽게 벽 너머를 보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매우 기묘한 광경.
“어?”
윗부분이 통째로 사라진 범블비의 하반신이, 흐물거리는 벌레 떼에게 먹히고 있는 모습이었다.
“제, 제니퍼?”
땡그랑―.
펌킨이 손에서 놓친 칼이 돌바닥에 튕겼다.
그때 울린 소리는 지금 막 펌킨의 연인을 세상에서 없애 버린 자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검은 가면이 그를 보았다.
최악의 살인마. 얼굴 없는 자.
―암귀였다.
“흐엑.”
숨이 덜컥 막혔다.
공포가 그의 다리를 옭아매기 직전, 펌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달려 도망쳤다.
“헉, 헉, 허어억……!”
뛰고 또 뛰었다. 멈춰서는 안 됐다.
어떻게든 저 악마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사람 하나 지나지 않는 어두컴컴한 골목길.
겁에 질린 펌킨이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그 길을 홀로 내달렸다.
그의 뜀박질을 멈추게 한 것은,
밤하늘에 울려 퍼진 외마디 총성.
타앙―!
그리고 그의 아킬레스건에 박힌,
357구경 매그넘탄의 탄환이었다.
“끄으으아악!”
바닥에 넘어진 펌킨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다시 일어서 뛰려고 했으나, 힘줄이 통째로 잘려 나간 발목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뚜벅―.
쓰러진 그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오토바이 헬멧. 두꺼운 블루종 재킷. 배기 바지. 한손에는 스미스 앤 웨슨을 들고 있는 바이커.
탕, 탕, 타앙―!
이어서 세 발의 총성이 더 울렸다.
골목 바닥이 검붉은 피로 얼룩졌다. 고통스러워하던 남자는 안락한 죽음을 선사 받아 잠들었다.
뒤늦게 그곳에 유진이 도착했다.
바이커는 유진과 가만히 마주 봤다.
“…….”
“…….”
유진은 지갑에서 1,000달러짜리 칩카드를 몇 장 꺼냈다. 그러고는 그걸 바이커에게 휙 날렸다.
바이커는 그걸 공중에서 낚아챘다. 이내 엄지를 척 올리고는 유유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또 보자고, 따봉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