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56화 (56/201)

56화. Dirty Deeds Done Dirt Cheap (1)

늦은 밤. 노스네스트 4구역.

스트립 클럽 <도나 도나> 입구에는 경찰차 한 대가 와 있었다. 네온사인 대신 사이렌이 반짝이는 건 도시 북쪽에서는 꽤나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신고를 한 사람은 클럽 매니저인 듯했다.

혼비백산 상태인 그는 출동한 경찰들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심드렁한 표정의 순경 두 사람이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 척만 하고 있었다.

그즈음.

경찰차 뒤쪽 갓길에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가 굴러와 주차했다. 거기서 내린 남자는 하품을 하면서 경찰들이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수고들 하십니다그려.”

경찰들 사이에 남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순경은 갸우뚱한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다.

“누구십니까?”

“중앙본부 형사팀 경위 아서 깁슨이오.”

남자, 아서 깁슨은 경찰 배지를 펼쳐 보였다. 그제야 순경들은 허겁지겁 예의를 갖추기 시작했다.

“출동 인원은 이게 전부인가?”

“옙, 근데, 본부에서 여긴 어쩐 일로……?”

“토니 웡이 뒤졌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기에 함 와 봤수다. 사실 확인만 하고 바로 갈 거요.”

아서 깁슨은 신고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클럽은 홍룡파의 비호를 받고 있는 곳인데, 오늘 여기서 그들이 다른 갱단과 중요한 거래를 할 것이란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토니 웡을 포함해 장장 82명에 달하는 홍룡파 단원들이 이곳에 왔었는데…….

“놈들이 다 사라졌다고?”

클럽 매니저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 홍룡파 분들이 지하로 들어가고, 갑자기 총소리가 났어요. 그래서 다들 도망갔죠. 저는 계속 밖에 숨어서 보고 있었는데…… 들어갔던 홍룡파 사람들 중에 단 한 명도 건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어요. 나중에 들어가 봤더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요.”

해괴망측한 이야기였다.

아서 깁슨은 눈살을 찌푸렸다.

“클럽에 다른 출입구는 없나?”

“뒷문이 하나 있지만, 자물쇠로 계속 잠겨 있었어요. 누가 건드린 흔적도 없었고요.”

“흐음, 건물에서는 아무도 안 나왔단 게지?”

“아, 누구 한 명이 나오긴 했는데, 그때쯤에 어떤 헬멧 쓴 사람이 들어가더니 막 총소리가 들렸거든요. 그래서 숨어 있느라 자세히는 못 봤어요.”

“CCTV는?”

“그, 실은 홍룡파 사람들 명령으로 입구랑 로비에 있던 건 아예 꺼 놨어가지고……. VIP룸 근처를 찍고 있는 거 하나만 영상이 남아 있습니다.”

클럽 매니저는 아서 깁슨을 데리고 건물 관리실에 가서 CCTV로 녹화된 영상을 보여주었다.

오후 11시 18분.

건장한 남성들이 VIP룸에 입장한다. 토니 웡과 그 일당들이다.

오후 11시 30분.

후드와 가면을 쓴 남자가 VIP룸에 들어선다.

오후 11시 35분.

폭발. 문이 부서지고, 가면 쓴 남자가 튕겨져 나간다. 토니 웡과 홍룡파 단원들이 걸어 나온다.

오후 11시 37분.

거센 불꽃이 화면을 장악한다.

노이즈가 끼고.

영상은 종료된다.

“여기서부터는 녹화가 안 됐어요. 아마 아까 폭발 때문에 CCTV가 고장이 난 것 같아요.”

클럽 매니저는 난처한 듯이 말했다.

그리고 아서 깁슨은 곧바로 알아챘다.

보라색 마력.

가면을 쓴 남자.

“그놈이다.”

상하이맨을 쫓아서 여기 왔건만.

설마 이놈 꼬리를 밟게 될 줄이야.

“카이트.”

대충 던진 그물에―

대어가 잡혀 버렸다.

***

오전 1시경.

<호손 그릴 다이너>.

야심한 밤, 식당 구석 자리 테이블에 새까만 복장을 갖춰 입은, 머리에는 붕대를 칭칭 싸맨 척 보기에도 수상한 남자가, 햄버거와 감자튀김과 프라이드치킨을 며칠 굶은 사람처럼 퍼먹어 대고 있었다.

그건 바로 나였다.

지금 막 80명의 깡패들을 학살하고 온 살인마이자, 이따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평범한 회사원.

내 먹는 모습에 식사 예절 따위는 없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가게 안은 손님은 그닥 많지 않았기에, 남들 시선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애초에 신경 쓸 생각도 없었지만.

“……하아아.”

40달러어치 음식을 모조리 비우고 나서야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쟁 같은 식사를 마친 나는 보통의 손님들처럼 커피를 주문했다. 콜라를 1리터 정도 마시긴 했지만, 거기 든 카페인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했기에.

“커피 더 드릴까요?”

커피 한잔을 꿀꺽 비웠을 무렵.

웨이트리스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피곤해 쓰러지기 직전인 와중에도 아무런 문제 없이 능숙하게 비즈니스 미소를 띠었다.

점원도 나를 따라서 활짝 웃는 얼굴을 지어 보이며 내 커피잔을 한가득 채워 주었다.

“자주 오시네요.”

“예?”

“아침에 주로 오시죠? 제가 본 것만 거의 일주일에 네다섯 번은 오시는 것 같던데.”

“아아, 어쩌다 보니 자주 들르게 됐네요.”

“후훗, 단골손님이시니까 커피 리필쯤은 서비스로 몇 번 더 챙겨 드릴게요.”

“고맙습니다.”

“필요하신 거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웨이트리스가 테이블에서 멀어졌다.

나는 주방으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짤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부질없는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 방전된 체력이 더 줄어 버렸다.

순간적으로 몰려온 졸음이 눈을 괴롭혀,

눈꺼풀을 잠시 한차례 길게 껌뻑인 순간―

“성격이 참 좋으시네요.”

소년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앞에서였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블랙 대거즈의 보스. 토마.

어느새 정면에 녀석이 있었다.

아무도 없었던 반대편 의자에, 원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앉아 있었다.

“굉장히 피곤하실 텐데 갑자기 건 대화도 잘 받아주시고. 짜증 좀 낼 만도 할 텐데 말이죠.”

“…….”

점원이 몇 번인가 주위를 왔다 갔다 했지만, 그동안 토마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마치 나 말고는 아무도 녀석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항상 그렇게 모두에게 친절하신가요?”

“……친절은 무슨. 그냥 ‘이 새끼가 싸가지가 없지는 않구나’ 할 수준으로만 얘기했을 뿐이야.”

“그 정도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다들 행복한 척하는 일에 지쳐 버린 게 아닐까 싶어요.”

녀석은 복고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학생모와 옛날 교복 차림이었다. 정말로 학생이 맞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생김새는 고등학생쯤으로 보이긴 했다.

이렇게 어리고 여려 보이는 소년이,

정녕 테러 단체의 수장이 맞는 걸까.

“나한텐 왜 온 거냐?”

나는 쓸데없는 잡설을 떠들며 공연히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토마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빙그레 웃고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맡길 일이 있어서요.”

녀석은 주머니에서 컬러로 된 사진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사진 속에 찍힌 인물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년의 인간 남성이었다.

“이게 누군지 아시나요?”

“몰라.”

“스테파노 멜리에스. 샌제이비어 마법학교의 이사장이자, 국제신성마법학회의 학회장이죠. 마법계를 떠받치고 있는 저명한 원로 중 하나예요.”

역시나 누군지 모르겠다.

뭐, 당연한 거다. 게임 속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 인물을 내가 알 턱이 없지. 나라고 게임 설정을 100%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지는 않으니까.

“이 사람을 없애 줬으면 해요.”

토마가 말했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

“왜 그러시죠? 혹시 못 하시겠나요?”

“아니, 못 할 건 없는데……. 이게 굳이 내가 나서서 해야만 하는 일인가 싶어서.”

“원래는 레오노프가 처리할 안건이었어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신이 그를 죽이고 말았죠.”

“그러니까 나한테 책임을 물겠다는 얘기군.”

“유진 씨가 바쁘신 건 알아요. 회사 쪽에도 신경 쓰실 게 많고, 조직 키우는 일에도 한창 집중하고 계시는 시점이잖아요.”

“빠삭하네. 역시 니들 나한테 스토커 붙였지.”

“죄송해요. 저희 목적은 당신의 신변을 보호하는 거니까, 그 점은 헤아려 주셨으면 해요.”

토마는 싱긋 웃었다.

해로움이라곤 전혀 없는 미소였다.

“하실 수 있겠나요?”

그런 깨끗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을 죽여 달라 말하고 있다.

“…….”

이제 더 이상 헷갈리지 않았다. 역시나 이 녀석은 테러리스트들의 우두머리가 틀림없었다.

“나한테 선택권은 없지 않나?”

“그렇지 않아요. 누굴 죽일지 정하는 건 당신이에요. 암귀는 제가 아니라 유진 씨니까요.”

토마란 놈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내 판단은 이성과 합리만을 기반으로 내려졌다.

블랙 대거즈와의 관계를 지속해 나가기 위해선, 최소한의 신용도 관리는 필수 불가결하다.

살인귀의 이름을 빌리고 다니는 이상 늙은이 한 명을 죽이는 일에 망설일 필요는 없다. 더욱이 이 도시에서 노인 공경이란 우스운 미덕일 뿐이니.

“그래. 내가 하지.”

원하는 대답을 들은 토마는 아까 전보다 좀 더 선명해진 미소를 지었다.

“멜리에스는 강한 마법사란 걸 알아 두세요. 뒷골목에 널린 양아치들이랑은 다를 겁니다.”

“불안하면 나한테 맡기지 말고 니들이 하든가.”

“레오노프를 잃은 지금 추가적인 인력 손실은 되도록 피하고 싶어요. 부끄러운 말이지만, 우리들 중에 멜리에스를 죽이고도 무사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거든요.”

나는 무사할 수 있을 거란 얘기인가.

상당한 고평가였다. 괜히 기분 나쁠 정도로.

“좋은 성과 기대할게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토마는 사라졌다.

지난번에도 그랬듯,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주변 어디에도 녀석의 기척은 존재하지 않았다.

“…….”

녀석은 분명 에스퍼일 텐데.

도대체 무슨 능력을 가진 걸까.

“스읍.”

의문을 계속 잡아두기엔 너무 피곤했다.

집에 가서 잠이나 자자. 아침에 출근해야지.

“연차 쓰고 싶다…….”

신음 같은 혼잣말을 뱉으며,

나는 에덴파크 모텔로 귀가했다.

***

오전 6시.

나를 깨운 것은 노크 소리였다.

―똑똑.

그 두 번의 노크는 여기 살면서 으레 들을 수 있는 과격한 두드림과는 사뭇 격이 달랐다.

듣기 편안한 데시벨로 울리는 부드러운 똑똑 소리. 위화감이 느껴져 오히려 잠이 확 달아났다.

누구지? 관리인 아가씨인가?

아니, 페니의 노크 소리도 얌전한 편이긴 하지만 이보다는 좀 더 경박하게 볼륨이 울린다.

그리고 모텔 이웃 중에는 이런 세심한 노크를 할 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외부인이란 얘긴데…….

나한테 찾아올 만한 사람이 있던가?

―똑똑.

다시금 노크가 울렸다.

이번 역시 아까랑 판박이.

“예, 갑니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옷을 챙겨 입으려 했다가, 간밤에 옷도 안 갈아입고 그대로 잠이 들었단 사실을 깨닫고 곧장 현관 쪽으로 향했다.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복도에 서 있었던 사람은,

완전히 뜻밖의 인물이었다.

“좋은 아침이군. 팀장.”

희끗한 장발. 잿빛 피부의 다크엘프.

싸구려 모텔의 저렴한 정경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맞춤 정장 차림의 귀인.

“……렘브란트 씨?”

존 렘브란트 버미어. 윌슨앤코 인터내셔널의 물류사무책임자 겸 VP, 사실상 기업의 총수다.

“이른 시간에 미안하네.”

“…….”

“안에 들어가도 되겠나?”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도무지 속셈을 알 수 없는 미소였다.

“……들어오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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