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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55화 (55/201)

55화. Chinese Democracy (5)

―그그극. 그그그극.

상하이맨의 시체를 갉아먹는 벌레들의 쩝쩝거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공허하게 번져 나갔다.

이 녀석들은 식사 시간을 방해받는 걸 제일 싫어한다. 때문에 나는 녀석들이 야식을 다 해치울 때까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기다렸다.

……곧 조용해졌다.

살아남은 자는 없었다. 시체 또한 없었다.

나는 벌레들을 거둬들였다. 오래간만에 배불리 먹은 녀석들은 군소리 없이 내 명령을 따랐다.

<부름>을 익힌 지 어느덧 한 달째. 이 끔찍한 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방금 사람들을 죽였다. 80명 정도.

이상할 정도로 별로 아무렇지도 않다.

로션을 모르고 두 번 겹쳐 발랐을 때랑 비슷하게, 그냥 살짝 찝찝한 기분이다.

감각이 무뎌졌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레오노프를 죽였을 때도, 데스트루퍼 놈들을 죽였을 때도, 느낌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원래부터 이런 인간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후우.”

나지막이 한숨을 뱉었다.

그래, 내 생각이 틀렸다. 죽이는 것은 현실에서도 어렵지 않았다. 흑마법사라면 더더욱.

어쨌든 이걸로 상황은 종료된 듯하다.

홍룡파 놈들을 죄다 쓸어버리는 데 10분도 쓰지 않았으니, 느긋하게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시야는 어둠에 적응해 꽤나 밝아져 있었다.

나는 구석에 던져둔 돈 가방을 챙겼다. 안에 들어 있는 돈은 기적적으로 전액 멀쩡했다.

수인종 꼬마한테 받아온 임시 가면은 아까 전 내가 쓴 <강화 실패>에 휘말려 고장 나 버렸다.

기능이 많다길래 기대했는데 정작 써먹지도 못했다. 이런 부분은 대책을 강구해 봐야겠지.

좌우지간 돈도 챙겼으므로.

더는 여기에 볼일은 없었다.

나는 클럽 플로어에서 나와 계단 쪽으로 향했다. 홍룡파 놈들이 벌인 소란에 직원까지도 다들 도망쳐 버린 건지 가는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클럽 1층 로비로 나가는 입구에 화려한 문이 있었다. 나는 그 문을 열어젖혔다.

―스윽.

문틈이 서서히 벌어지는 동안,

왜인지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불길함의 정체는 금세 드러났다.

문 너머에, 우뚝 선 채로 있었다.

“……?”

금테로 된 보잉 선글라스를 낀 남자였다.

키는 나랑 비슷한 동양인. 꾸밈없이 대충 뒤로 넘긴 반곱슬머리. 회색 정장 바지와 셔츠.

처음에 나는 그가 누군지 몰랐다.

구세대 도트 게임 속에서 보았던 비주얼만으로 그 캐릭터를 알아본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었으니까.

“아.”

그럼에도 나는 알았다.

내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홍룡파>와 대적하는 <신제천>의 보스.

<사이버판타지>의 대표적인 뉴비 절단기.

―불사신 장제광.

너무 늦게 알아채고 말았다.

마주친 지 벌써 1초나 지나 버렸으니까.

상황을 미처 파악할 틈조차 없이,

놈의 빠루가 내 머리를 후려쳤다.

***

….

….

어지럽다.

두개골 안쪽이 웅웅 울린다.

눈을 떠보려 했지만 잘 되지가 않았다. 간신히 눈꺼풀을 밀어 올렸지만, 반고리관이 사정없이 흔들거려 시야를 회복하는 데만 30여 초가 걸렸다.

나는 계단 아래 바닥에 굴러떨어져 있었다.

뚜벅뚜벅―. 위쪽에서 누군가 털털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장제광이었다.

놈이 입은 셔츠에는 여기저기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내 머리통에서 튄 게 전부는 아닌 듯했다.

……어째서 놈이 여기에 있는 거지?

사실 그런대로 짐작은 갔다.

<사이버판타지>에서도 장제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출귀몰한 NPC였다.

일반적으로 <사이버판타지>의 보스급 몹들은 던전의 마지막 방 근처에 자리해 있거나, 확률 낮은 랜덤 인카운터로 가끔씩 출몰하는 정도였다.

허나 장제광은 달랐다.

놈은 지가 무슨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인 마냥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게다가 놈의 출현은 어째서인지 쪼렙 시절에 자주 들락거리는 구역에 빈도가 집중돼 있었다. ‘뉴비 절단기’라는 별칭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었다.

그 어떠한 전조도 복선도 없이, 갑작스럽게 뿅 등장하는 것이야말로 장제광의 트레이드마크.

한때 북미 쪽 게임 커뮤니티 등지에서 아무 게시글에다가 문답무용 장제광의 합성 이미지를 댓글로 올리는 밈이 있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홍룡파와의 거래 장소에 뜬금없이 신제천의 보스가 쳐들어왔다? 장제광이라면 이상할 것 없다.

상대 진영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인 행동 따위는 결코 아닐 것이다. 놈은 그저 한밤중의 심심풀이로 가볍게 운동이라도 하러 나온 게 분명하다.

그냥 다 패려고 온 거다. 저 미친놈은.

이유 같은 건 없다. 그게 장제광이니까.

“으윽…….”

머릿속이 저릿했다. 미약한 뇌진탕 증세 탓에 정신을 차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전신에 항시 <강화>를 쓰고 있었던 덕에 뇌진탕으로 끝난 게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지금쯤 머리뼈가 쪼개져 뇌수가 바닥에 쏟아져 있었을 테지.

장제광은 쓰러져 있는 내 곁을 휙 지나쳤다.

관심은 저 멀리 떨어진 철가방에 있는 모양이었다. 그걸 주워들고는 케이스를 열었다.

안에 들어 있는 500만 달러를 보고 찬찬히 감상하는가 싶더니, 다시 케이스를 닫았다.

놈은 가방을 가지고 돌아섰다.

볼 장은 이미 다 봤다는 걸까.

“야.”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장제광에게,

나는 낮은 목소리로 위협을 가했다.

“그거 내려놔라.”

놈은 우뚝 멈춰 섰다.

그대로 뒤를 돌아 나를 향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버틸 만했다.

먼저 달려든 것은 장제광이었다.

계획 따윈 없었다. 놈은 본능대로 움직여, 다시 한번 내 머리통을 노리고 빠루를 냅다 휘둘렀다.

그리고 나는 놈의 돌격을,

고출력의 <폭렬파>로 받아쳤다.

―콰아아아아앙!!

건물을 무너지게 하지 않으면서, 사람 하나를 작살내기에는 충분한 화력의 폭발이 터졌다.

바로 코앞에서 그 폭파에 직격당한 장제광의 몸뚱이는 그대로 1층 로비까지 날아갔다.

“큭…….”

다만 나에게도 반동이 꽤 심했다.

머리에 빠루를 맞은 충격. 장시간 <부름>을 사용한 여파. 계단을 굴러 상처투성이가 된 몸에 이 정도 출력의 <폭렬파>는 상당한 무리로 다가왔다.

신음하는 몸을 꾸역꾸역 끌고서 1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는 것마저도 힘에 부쳤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1층 로비의 중앙에는, 당연한 것처럼 멀쩡히 서 있는 장제광이 있었다.

“쯧.”

이럴 줄 알았다.

놈은 ‘불사신’이니까.

게임에서 장제광은 레벨 35의 싸움꾼Brawler.

블랙 대거즈의 일반 단원 몹과 같은 수준인, 갱단의 보스치고는 그다지 높지 않은 레벨.

쓰는 무기도 맨손 아니면 노멀급의 둔기뿐. 다른 장비도 보잘것없어 얼핏 약캐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함정이다.

멋모르고 시비를 걸었다간 지옥을 맛보게 된다. 놈이 괜히 ‘뉴비 절단기’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장제광의 특징은 바로―

무지막지하게 높은 체력.

기본 능력치는 죄다 평범한 주제에, 체력 스탯 하나만큼은 괴랄하게 높다. 게임 내 모든 NPC들을 통틀어 체력 바 크기가 독보적인 1등이다.

제작자가 수치를 잘못 입력했다고 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인지라, 이걸 게임 내 오류 혹은 버그로 판단하여 모드로 너프시키는 유저도 많았다.

물론 난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런 엉성하고 불합리한 부분들이야말로 <사이버판타지>란 게임의 진정한 매력이라 생각한 변태였기 때문이지.

하여간에 장제광은 쉬운 상대가 절대 아니다.

‘불사신’이란 별명에 걸맞게, 놈은 죽지 않는다.

뭣보다 나는 지금 놈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홍룡파의 보스 토니 웡을 죽인 것부터가 애당초 계획에서 한참 어긋난 일이었다.

<사이버판타지>의 본편 스토리라인이 시작되기까지 앞으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

여기서 장제광까지 죽여 버렸다간 미래가 너무 많이 바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알고 있는 게임 속 정보들이 말짱 도루묵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500만 달러를 포기할 수도 없다.

저울질을 한다면 지금은 돈 쪽이 우선이다.

만약 장제광이 끝까지 내 돈에 욕심을 부린다면, 나는 놈을 죽일 수밖에 없다. <부름>을 써서라도.

“이봐. 난 싸우고 싶지 않아.”

“…….”

“나는 네 적이 아니야. 그냥 돈만 돌려달라고.”

장제광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저 빠루를 짊어 들고 싸울 태세를 취했다.

“제기랄. 말이 안 통하네.”

놈을 죽이지 않고 무력화시킬 수 있을까?

내 체력은 바닥. 서 있는 것도 겨우. 뇌진탕 탓에 의식이 흐릿해 금방이라도 기절해 버릴 것 같다.

“좋다, 한판 해 보자 그래.”

장기전은 불가능.

싸운다면 최대한 짧게.

효율적인 방법은,

언제나 하나뿐이었다.

“덤벼.”

놈이 접근하는 순간 <부름>을 먹인다.

제아무리 불사신이라도, 모든 것을 갉아먹는 벌레들에게는 단지 양 많은 포식 대상일 뿐이다.

나는 장제광이 덤벼들기를 기다렸다.

손끝에 <부름>을 장전한 채로, 대기했다.

….

….

어째서인지.

놈은 다가오지 않았다.

괴상한 일이었다. 장제광이라면 지금쯤 물불 안 가리고 멧돼지처럼 돌격해 왔어야 했다.

거의 1분이 넘도록, 놈은 그저 가만히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접근할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왜지?

……어째서 덤비질 않지?

마치 보이지 않는 위험을 감지한 것 같다.

설마 불사신의 동물적인 육감이, 그에게 정지 명령을 내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윽…….”

그 무렵 머리 한쪽이 욱신거리며 아파 왔다.

빠루로 맞은 부분이었다. 피를 꽤 많이 흘린 듯했다. 의식이 점점 위험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제기랄. 이대로라면 싸우기도 전에 쓰러진다.

차라리 내가 접근해야 하나? 단숨에 거리를 좁혀야 할 텐데, 잘못했다간 오히려 이쪽이 당할 거야.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수많은 잡생각들이 두뇌의 틈바구니에서 튀어나와, 어느새 나는 지금 굳이 싸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지경에까지 와 있었다.

긴장감을 머금은 공기가,

서서히 폭발을 앞둔 그때.

―콰앙.

문을 부수는 소리가 났다.

클럽 현관의 입구 쪽이었다.

“……?”

나와 장제광의 시선이 동시에 그리로 향했다.

발로 문을 부수고 클럽 로비로 들어온 이는, 두꺼운 재킷 차림에 헬멧을 뒤집어쓴 바이커였다.

“아.”

내가 아는 녀석이란 사실을 깨달았을 즈음.

바이커는 기관단총을 꺼내 장제광에게 겨눴다.

그리고 발사.

―투타타타타타탕!

총알 세례가 빗발쳤다.

탄창 하나를 다 쏟아부었고, 그 많은 총알들이 전부 장제광의 몸뚱이에 후두둑 날아가 박혔다.

풀썩―.

장제광은 쓰러졌다. 홍콩 영화의 총격전에서 주인공에게 당해 죽게 된 엑스트라처럼.

“…….”

바이커는 쓰러진 장제광에게 다가가 바닥에 있던 돈 가방을 들었다. 그걸 열더니, 안에 있는 돈뭉치 중 하나를 꺼내 자기 주머니에 쏙 집어넣었다.

그러고 나서는 내 쪽으로 걸어왔다.

일단 돈 가방을 내려놓은 뒤, 자기가 매고 있던 파우치에서 약품과 붕대를 꺼냈다. 그걸로 내 머리에 난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어, 저기…… 고맙다…….”

바이커는 엄지를 척 올렸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저번에 내가 슐츠텍과 거래할 때 일을 도와줬던 바로 그 친구인 듯했다.

“블랙 대거즈 맞지?”

“…….”

“너네 보스가 보낸 거냐?”

“…….”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건데?”

“…….”

“설마 맨날 내 미행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

“그래. 나도 대화 즐거웠어.”

따봉맨은 그대로 별말 않고 자리를 떠났다.

장제광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죽은 거려나. 어쨌든 나는 지금 놈과 싸울 필요가 없어졌다.

“……좋게 좋게 끝났네…….”

정말이지.

빌어먹게도 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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