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Chinese Democracy (4)
상하이맨의 으름장에 긴장감이 고조됐다.
놈은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에 어떠한 거리낌도 없어 보였다.
“여긴 너희들 구역이 아닐 텐데, 남의 동네서 난리 쳤다간 뒷감당이 좀 곤란하지 않을까?”
“네놈이 신경 쓸 일은 아니지. 돈 놓고 나갈 테냐, 아님 돈 갖고 뒤질 테냐. 그것만 정해.”
나는 돈 가방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가장 안전한 선택지는 물론 이 돈을 돌려주는 것이다. 여기서 나 혼자 홍룡파를 상대로 기 싸움을 벌여 봤자 놈들이 물러날 가능성은 희박하니까.
“좋게 좋게 끝내자고, 아메리칸 보이.”
홍룡파의 보스 토니 웡은 약하지 않다.
게임에서 그는 레벨 44의 건슬링어Gunslinger. 그가 보유한 고유 패시브인 <빠른 손>은 연사와 장전 스피드에 특대 보너스를 주는 스킬로, 사격술 관련 패시브 중에서도 거의 탑클래스로 쳐준다.
상대는 도시에서 손꼽히는 강자. 더욱이 내 주변은 15명의 홍룡파 단원들이 에워싸고 있다.
이런 상황에 분위기 파악 못 하고 깝죽대는 짓거리는 동물원 침팬지라도 안 할 짓이다.
“마지막으로 말하지. 돈 놓고 여기서 꺼져.”
그러니까,
지금은 차분하게.
알겠어요― 라고 말하자.
“차오니마.”
이런.
네 글자나 틀렸군.
“그래. 뒤져라.”
토니 웡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나는 한발 앞서 충전시켜 뒀던 마력을 손끝으로 발사했다.
슈욱―!
오른손에서 자색 마력의 빛줄기가 뻗어나갔다. 이 불꽃이 토니 웡의 권총에 닿는 순간, <강화 실패>가 작용해 권총을 단번에 고장 낼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보라색 불꽃이 권총에 닿기 직전, 토니 웡은 총을 쥔 오른손을 빠르게 거두어 그것을 피했다.
“……!?”
순식간이었다. 내가 날린 마력은 그대로 아무것도 못 한 채 허공으로 흩날려 사라졌다.
“傻屄.”
놈이 ‘샤삐’라고 중얼댔다.
중국어로 ‘병신’이란 뜻이다.
―타앙!
놈의 권총에서 총알이 발사됐다.
피할 새는 당연히 없었다. 애초에 나는 <강화 실패>가 불발이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기에, 총이 격발되는 것 자체를 상정해 두고 있지 않았다.
다행히도 반사 신경은 나보다 유능했다.
격발 직전, 손에 든 가방을 머리 쪽에 갖다 대고 케이스 외부에 고출력의 <강도 강화>를 시전. 날아온 총알을 늦지 않게 방어할 수 있었다.
허나 대가리가 뚫리지 않았다고 해서,
받은 데미지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투콰앙!!
놈이 발사한 총탄은 마력이 담긴 마탄魔彈.
피격 방어에는 성공했지만, 탄환에 깃든 술식이 일으킨 폭발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큭!?”
폭발의 충격파로 인해 몸이 뒤로 밀려났다.
등 뒤에 있던 문짝도 마력 폭발의 소용돌이와 함께 여지없이 박살 났다. 내 몸뚱이는 그대로 VIP 룸 밖까지 날아가 클럽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쓰읍.”
나는 잔해 사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클럽의 손님들과 스트리퍼들은 난데없는 폭발에 혼비백산이 되어 피난을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오히려 내 주변으로 모여드는 놈들도 있었다. 다들 한 덩치 하는 아시아인이었다.
“투기장에서 네놈과 겨뤘던 부하가 알려줬지. 네놈이 기계를 고장 내는 마법을 쓰는 것 같다고.”
그즈음 VIP룸 안쪽에서부터 중절모를 쓴 상하이맨, 토니 웡이 내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시답잖은 흑마법 지랄로 내 총에 장난질을 하려 했던 모양인데, 유감이구만. 아메리칸 이디엇.”
“…….”
“네놈 말대로 여긴 우리 사람 구역이 아니야. 하지만 그거 알고 있나?”
어느새 클럽 안은 덩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무기를 지닌 거한들. 족히 80명은 될 듯했다.
“중국인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는 거.”
과연, 이 정도 숫자는 꽤나 압박이 되었다.
물론 <강화>로 재현한 <폭렬파>나 <프로미넌스 스톰> 같은 광역 파괴 마법을 활용한다면 다수의 잡졸급 적들은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다.
문제는 여기가 건물 지하라는 점.
마법의 출력 조절을 잘못해서 건물이 무너지기라도 했다간 졸지에 나까지 깔려 버릴 것이다.
겨우 건물에 깔린 정도로 내가 죽지야 않겠지만, 소란이 너무 커지면 경찰이 들이닥칠지도 모른다. 레드존이 아닌 구역은 치안이 별로인 노스네스트라 해도 일단은 정부의 공권력 하에 있으니까.
게다가 방금 전 토니 웡의 총격과 홍룡파 놈들의 난입으로, 소란은 이미 벌어져 있었다.
어쨌든 무사히 탈출하려면,
제한 시간은 20분 정도일까.
저출력의 광역 마법과 <강화>를 쓴 육탄전.
그것만으로 80명을 일일이 쓰러뜨리는 방식은 시간 관리에 있어 아무래도 좋지 않아 보였다.
더군다나 토니 웡을 필두로 한 간부급 적들은 다른 따까리들처럼 <강화> 입힌 주먹 한두 방에 쉽사리 나가떨어져 주지는 않을 터였다.
생각해 보면 돈 가방도 지켜야 했다.
신명 나게 쌈박질을 벌이는 동안 가방까지 신경 쓸 여유가 있을까. 아마 없겠지.
최선의 선택지는 항상 정해져 있다.
가장 효율이 좋은 방식을 택하는 것.
시간을 아끼면서,
놈들을 쓸어버리고,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
당장에 생각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렇기에 망설여졌다.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왜인지 그 이름을 입에 담을 때마다,
천천히 병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기에.
그럼에도 나는 그만두지 못한다.
계속해서 그 이름을 외고 또 외운다.
마치 절망을 쌓아 올린 젠가와도 같다.
도막을 하나둘씩 빼다 보면, 언젠가는 무너져 내릴 게 분명한데도, 조금씩 파멸로 나아간다.
“카인.”
결국은 기나긴 침묵을 깨고 만다.
한꺼번에 쏟아질 절망을 기대하며.
“나호르.”
그렇게 또 한 번―
악마의 이름을 불렀다.
***
께름칙한 고요가 온 공간에 자리했다.
일순 토니 웡을 비롯하여,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홍룡파 단원들에게 동일한 증상이 나타났다.
―움직일 수가 없다.
쇄골과 오금이 중력에 짓눌리고, 전신의 관절과 근육이 가위에 눌린 마냥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호흡마저도 위태로웠다. 허파를 잠식하고서 기관지까지 차오른 공포에 익사해 버릴 듯했다.
정적은 오래간 지속됐다. 수십여 초가 흐르고 나서야 그들은 간신히 몸의 자유를 일부 되찾았다.
허나 공포의 원인은 그대로였다. 후드와 가면을 쓴 흑마법사, 유진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던 바로 그 찰나.
―푸샤아아아아악!!
유진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출력의 자색 불길이 세찬 돌풍을 일으키며 주위에 퍼져나갔다.
그 폭발은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았다.
다만, 전 방위에 <강화 실패>를 일으켰을 뿐.
―틱, 티디딕. 파사삭!
전기 스파크가 튀는 소리.
유리와 기판이 부서지는 소리.
클럽 내부의 조명이 모두 꺼졌다.
시끄러운 음악도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완전한 암흑. 한순간에 새까매진 시야.
총기, 에너지 웨폰, 임플란트 기어, 그 외 모든 전자 장비…… 모조리 다 먹통이 되었다. 당황한 홍룡파 단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 아무것도 안 보여…….”
“다들 섣불리 움직이지 마! 큰형님을 지켜!”
“어차피 놈은 포위됐어! 그냥 조지면 돼!”
의견이 엇갈리고, 소통이 뒤섞였다.
이대로라면 필히 아수라장이 될 터였다. 그들에게는 오합지졸인 자신들을 통제해줄 지휘관의 명령이 절실한 찰나였다.
“…….”
그러나,
토니 웡은 침묵했다.
“끄아악!!”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으, 으으으, 으아아아아악!!”
“뭐, 뭔가, 벌레 같은 게 있……?”
“떼 줘! 제발! 이것 좀 떼 달라고!!”
두 명. 세 명. 다섯 명. 열 명.
고통의 외침은 점차 늘어만 갔다.
낭자한 비명들 사이사이에,
불길한 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그그그극.
―카득. 칵. 카드드득.
사마귀가 자기 몸을 뜯어먹는 소리.
혹은 시체 껍데기가 불어 터지는 소리.
……무언가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끔찍한 무언가가.
‘아무래도 진짜였나 보군.’
암귀. 얼굴 없는 자. 언디파인드.
다양한 별칭들이 있었지만, 중국인들은 그를 더러 ‘파별성의 사신’이라 불렀었다.
미치광이 살인귀. 사상 최악의 흑마법사.
과거 그를 목격한 이들 중 살아남은 이는 아무도 없었기에, 그 누구도 암귀의 마법을 알지 못했다.
‘흑마법이건 뭐건 상관없어.’
<마나 드레인>이 인챈트 된 장갑으로 보호하고 있었기에, 그의 권총은 <강화 실패>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언제든지 문제없이 발사할 수 있었다.
‘오늘, 사신은 내 손에 죽는다.’
토니 웡은 천천히 뒤쪽으로 물러났다.
이후 소리에 집중했다. 장장 80명의 인기척 사이에서, 단 하나의 목표물을 찾으려 애썼다.
그는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집중했다.
비명이 터질 때마다 인기척이 줄어들었다.
40명. 30명. 20명. 10명.
아홉. 여덟. 여섯. 셋. 둘.
….
….
그리고 하나.
마지막 한 명.
‘어디냐.’
토니 웡은 총구를 들어 어둠 속을 겨냥했다.
사신의 위치는 알 수 없었다. 허나 이 자리에 있는 이상 기척을 끝까지 숨기지는 못할 것이다.
‘…….’
눈처럼 차가운 고요가 아스라이 흘렀다.
심장 소리조차 얼어붙어 들리지 않았다.
무無에 너무 익숙해진 청각이,
정적마저 시끄럽게 느낄 무렵.
휘청―.
토니 웡은 돌연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
그는 주욱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소리가 어찌나 웅장했는지, 쿠웅 하는 굉음이 메아리가 되어 칠흑의 공간에 울려 퍼졌다.
‘뭐, 뭐야?’
토니 웡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설마 자신이 긴장감에 못 이겨 발을 헛디디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양발 쪽이 뭔가 이상했다.
감각이 옅다고 해야 할지, 없다고 해야 할지.
….
….
감각이, 없다?
그즈음 안구가 비로소 어둠에 익숙해졌다.
검은색이었던 세상이 진한 회색이 되어, 시야가 아주 약간 트였다. 토니 웡은 자기 발을 보았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뭣?”
발이 있어야 할 곳에 발이 없었다.
그곳에는 기분 나쁜 꿈틀거림만이 가득했다.
곰팡이인지 뭔지 모를 기이한 생명체들이,
실시간으로 자신의 하체를 갉아 먹고 있었다.
“我去!”
토니 웡은 황급히 총구를 옮겼다.
이어서 몇 번이고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총성이 울릴 때마다 불빛이 반짝였다.
시야가 밝아질 때마다 광경이 변했다.
탕―!
발목이 사라져 있다.
타앙―!
무릎으로 기어오른다.
타아앙―!
허벅지에까지 올라왔다.
“으, 으으, 으그으아아아아아악!!”
토니 웡은 갓 태어난 돼지처럼 울부짖었다.
탕, 타탕, 탕타탕―! 그는 자기 하체를 뒤덮은 벌레들을 향해 미친 듯이 총알을 퍼부었다.
틱―.
방아쇠가 걸렸다. 탄창이 비었다.
벌레는 단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몇 배로 불어나 있었다.
이제 벌레들은 토니 웡의 허리를 탐식했다. 피부가 허옇게 문드러지며 살점이 드러나고, 이내 바스라 사라졌다. 곧 내장도 그렇게 될 터였다.
죽음이 코앞이다.
“안 돼, 아니야, 이건, 이런 건…….”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지는 않았다. 훗날 천하를 호령할 상하이맨이, 고작 이런 곳에서…….
―터벅.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토니 웡은 고개를 들었다.
올려다본 곳에는 사신이 있었다.
후드와 가면을 벗은, 맨얼굴의 사신이.
“하, 하…….”
미치광이 살인귀. 사상 최악의 흑마법사.
그를 목격한 이들 중, 살아남은 이는 없다.
“살려줘…….”
그것이 토니 웡의 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