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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53화 (53/201)

53화. Chinese Democracy (3)

여우? 늑대? 포메라니안?

잘 모르겠다. 생김새로 미뤄보아 개과라는 것만은 분명한데, 정확히 어떤 수인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앗, 미안. 만지면 안 되는 건 줄 몰랐어.”

“……아냐. 나야말로 소리 질러서 미안해. 그거 도료가 아직 안 말라서, 독한 거라 손에 묻으면 안 좋으니까. 그래서 만지지 말라고 한 거야.”

“아아, 그렇구나.”

나는 최대한 해롭지 않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얀 털을 가진 수인종 꼬마는 나를 약간 경계하는 눈치를 보이더니, 내 주위를 휭 돌아 작업대로 가서 거기 있던 가면 진열대를 다른 곳으로 치웠다.

“그 가면, 네가 만든 거니?”

“으응.”

“깜짝 놀랐어. 가면 제작 장인이라길래 당연히 수염 덥수룩한 드워프 할배일 줄 알았는데.”

“다들 그렇게 말해. 털뭉치 주제에 무슨 난장이 흉내나 내고 있냐고 말이야.”

“어, 아니, 난 그런 의미로 말한 게…….”

“괜찮아. 신경 안 써. 시그몽 할아버지가 그랬는걸. 남들이 하는 소리에 일일이 반응하는 건 시간 남아도는 애들이나 그러는 거라고.”

수인종 꼬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제 딴에는 어른스러운 언사였겠지만, 내게는 그저 어른인 척을 하고 있을 뿐으로 보였다.

“가면 사러 온 거 맞지? 시그몽 할아버지가 만든 가면들은 저쪽 장식장에 진열돼 있어. 견본품도 있으니까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나는 꼬마가 가리킨 쪽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곳에는 때깔이 괜찮은 가면들이 여럿 있긴 했으나, 어쩐지 눈에 확 띄는 것은 없었다.

“네가 만든 건?”

그때, 꼬마의 뾰족한 귀가 쫑긋 세워졌다.

“아까 그 까만 가면 말고도, 혹시 다른 게 더 있지 않아? 괜찮다면 조금 보고 싶은데.”

수인종 꼬마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설마 자기가 만든 작품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듯했다.

“……그으, 내가 만든 거는, 그게, 어…….”

꼬마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몇 번씩 머뭇거렸다. 그러다 결국 다짐한 듯 입을 열었다.

“……잠깐만 기다려. 창고 좀 다녀올게.”

녀석은 잠시 안쪽 방으로 향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플라스틱 케이스를 몇 개 가지고 되돌아왔다.

“……여기.”

“고마워. 열어봐도 될까?”

“……별로 기대하진 마.”

나는 꼬마가 작업대로 옮긴 케이스들 중 하나를 조심스럽게 열어젖혔다. 딸칵―. 닫혔던 뚜껑이 열리자, 안에 보관된 물건의 모습이 드러났다.

“와.”

거기 있는 가면을 보자마자,

저절로 감탄이 먼저 튀어나왔다.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유려한 맵시.

부품들 사이를 완벽히 메꾼 튼튼한 이음새.

조잡하거나 엉성한 부분은 한 군데도 없었다. 모르고 봐도 보통 솜씨가 아니란 게 느껴졌다.

“이게 정말 네가 만든 거라고?”

“실망했지? 기대하지 말라고 했잖아.”

“어…… 굉장히 잘 만든 것 같은데?”

“잘 만들긴 무슨. 경량화에만 신경 쓰느라 소재 배분도 엉망이고, 착용감 개선한다는 핑계로 원래 생각한 디자인이랑도 엄청 멀어졌어. ……시그몽 할아버지가 말한 대로야. 난 가면 만들기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아. 여기서 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 이제 할아버지도 없어서, 배울 수도 없는데…….”

수인종 꼬마는 울먹이지 않으려 애썼다.

슬퍼하는 어린 친구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 따위를 건네는 것은 아쉽게도 내 특기가 아니었다. 상냥함이 부족한 나는 그런 기술에 능하지 못했다.

“있잖아, 꼬마야.”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그저,

담담하게 사실을 말해주는 것뿐.

“아까 위에 계신 드워프 아저씨한테 물어봤어. 이 공방 최고의 가면 제작자가 누구냐고.”

“…….”

“그랬더니 그분이 나를 너한테 데려다줬지. 이게 무슨 뜻인 것 같아?”

털북숭이 꼬마는 모르고 있는 모양이지만, 적어도 이곳의 장인들은 녀석을 ‘최고’라 인정하고 있다. 도시에서도 내로라하는 망치질의 달인들이 말이다.

“난 최고로 좋은 가면이 필요하거든. 그러니까 너한테 가면 제작 의뢰를 맡기고 싶어.”

“지, 진심이야……?”

“돈은 얼마든지 낼 테니까, 어떻게 기똥찬 걸로 하나 만들어주지 않을래?”

수인종 꼬마는 괜스레 양손을 꼼지락댔다.

우물쭈물해 하고 있을 동안 자기 꼬리가 몽실몽실 흔들거리고 있음은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너 이름이 뭐야?”

“카이트.”

“나는 쥬. 쥬 화이트테일.”

녀석은 쭈뼛거리며 말했다.

“그, 뭔가 요구사항 같은 거 있어?”

보아하니,

의뢰를 받아주려는 모양이다.

“일단 좀 튼튼했으면 좋겠어. 오래 착용해도 불편하지 않았으면 하고.”

“또?”

“아참, 숨쉬기가 좀 편했으면 하는데. 공기 정화 기능 같은 것도 넣을 수 있을까?”

“으응, 해볼게.”

“그리고 무엇보다, 내 신원을 숨기고 싶거든. 얼굴 전체를 가릴 수 있는 디자인으로 해 줘.”

그즈음.

꼬마가 물음표를 띄웠다.

“저기,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뭔데?”

녀석은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혹시, 나쁜 짓 할 때 쓰려는 거야……?”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

무슨 대답을 기대한 걸까.

“나쁜 짓에 쓴다고 하면 안 만들어주게?”

“…….”

“글쎄. 매번 그러지는 않겠지만. 아마 좋은 짓 할 때만 쓰지는 않을 것 같아.”

수인종 꼬마는 침묵했다.

한참 망설이다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옛날에, 시그몽 할아버지가 그랬어. 만들기 싫은 가면은 만드는 게 아니라고. 그리고 난, 나쁜 사람한테만큼은 가면을 만들어주기 싫어. 절대로.”

녀석은 동글동글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치만, 너는 나쁜 사람 같지 않아.”

그것은 단지 꼬맹이의 어리숙한 감상이 아니었다. 그 눈에는 굳건한 의지가 오롯이 깃들어 있었다.

“만들어줄게. 나라도 괜찮다면.”

녀석은 (말버릇처럼) 기대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나는 진심 어린 미소로 그 결정을 반겼다.

“바로 작업 들어갈 건데, 언제까지 필요해?”

“내일… 은 역시 힘들겠지?”

“하루 만에 완성은 무리야. 못해도 일주일은 걸릴 거니까, 우선은 기성품 중에 하나 가져가. 아까 네가 말한 요구사항들에 맞춰서 몇 개 골라올게.”

나는 적당히 아무거나 괜찮다고 했지만 꼬마는 대충대충 고르지 말라며 끝까지 오기를 부렸다.

결국 임시로 쓸 가면을 정하는 데만 한 시간 정도 걸렸다. 하여튼 장인 정신이 쩌는 친구였다.

임시 가면의 성능 테스트는,

바로 그 다음 날 밤에 진행됐다.

***

노스네스트 4구역.

유흥가의 스트립 클럽 <도나 도나>.

눈을 괴롭히는 야릇한 핑크빛 조명.

귀를 간질이는 끈덕진 섹시 팝 사운드.

헐벗은 여인들이 두꺼운 봉에 매달려 흐느적거리는 꼴을 구경하기 위해 흔쾌히 달러를 집어 던지는 머저리들로 넘쳐나는 곳.

오늘 나는 이곳에서 홍룡파와 접선한다.

이전에 성사시킨 무기 거래의 대금을 받기 위해서다. 사우스아치 창고에 내가 준비해둔 물건을 홍룡파 놈들이 확인하면, 그때 돈을 받기로 했다.

접선 장소는 클럽 안쪽의 VIP룸.

VIP룸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맥스페인 투기장에서 10연승을 한 대가로 받은 플래티넘 배지를 보여주자, 경비원들은 바로 문을 열어줬다.

“왔군.”

그곳에는 홍룡파의 우두머리.

상하이맨 토니 웡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좀 의외인걸. 돈 갖다주는 허드렛일에 두목께서 직접 행차하실 줄이야.”

“안타깝지만 지갑을 덜컥 맡길 수 있을 정도로 믿음직한 부하가 내 밑에 없어서 말이지.”

어두컴컴하고 널찍한 방안에는 토니 웡의 따까리가 열댓 명 정도 있었다. 대놓고 무기를 들고 있는 놈은 없었지만, 다들 빈손은 아닐 터였다.

“돈은?”

“여기 있다.”

투웅―.

토니 웡은 룸 테이블 위에 철가방을 올렸다.

“5,000만 크레딧. 달러로 해서 딱 500만이다.”

“환율 계산이 꽤나 양심적이군.”

“우리 사람은 약속한 건 반드시 지켜. 못 지킬 약속이라면 아예 안 하고 말 뿐이지.”

나는 가방 쪽으로 다가갔다. 케이스를 열자, 초록빛 달러 뭉치들로 꽉 들어찬 안쪽이 보였다.

“그럼, 이 돈은 가져가면 되나?”

“기다려. 아직 물건 확인이 안 끝났다.”

그 무렵 나는 상하이맨의 한쪽 귀에 유선 이어폰이 연결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물건을 운반하러 간 놈들과의 전화가 연결 중인 듯했다.

“…….”

한동안 긴장감 속에 정적이 지속됐다.

얼마나 지났을까. 토니 웡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확인 끝. 트럭에 전부 실었다.”

그는 기분 좋은 듯 왕코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좋은 거래였다. 아메리칸 보이.”

그 시점부터 분위기가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나는 말없이 가방을 챙겼다. 토니 웡과 따까리들은 이에 뭐라 하거나 제재를 하려 하지 않았다.

자아, 이제 온전히 내 것이 된 이 500만 달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렸을 찰나.

“잠깐. 멈춰라.”

토니 웡이 말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왜 그러지?”

“…….”

“어이, 이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몇 초간 찡그린 얼굴로 어딘가를 노려보고 있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방금 부하에게서 연락이 왔다.”

토니 웡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물건 실은 트럭이 공격을 받았다는군.”

“……뭐?”

“그리고 지금, 연락이 끊겼다.”

그의 눈빛이 공격적으로 변했다.

“네놈 짓이냐?”

“뭐라고?”

“창고를 떠나자마자 습격을 받았다. 이번 거래에 대해 아는 인간은 너와 우리들밖에 없어. 고로, 우리 뒤통수를 칠 새끼는 네놈뿐이란 얘기가 되지.”

“허, 내가 무슨 이득을 보자고 그런 짓을 해?”

“곱게 물건 주는 척 돈만 갖고 튀어 버릴 속셈이었다 하면 어때. 앞뒤가 술술 맞지 않나?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워. 애초에 그럴 셈이었으면 이보다는 타이밍을 좀 더 잘 맞췄겠지. 돈 갖고 나가기도 전에 우당탕탕 습격해 버려서 이따위로 좆 되는 상황을 굳이 만들었을 것 같아?”

“…….”

“게다가 네 부하들 중에서 배신자가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하나? 아마 누군가 몰래 다른 갱단에 정보를 흘렸다고 봐야지. 적어도 내가 저질렀다는 개소리보다는 개연성 있는 스토리 같은데.”

토니 웡은 더 이상 추궁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상당히 억울한 일이었다. 당연하지만 나는 놈들의 트럭이 습격받은 일과는 전혀 무관했다.”

“그 가방, 도로 갖고 와라.”

“왜지? 거래는 끝났을 텐데?”

“물건을 대가로 돈을 주는 거래였다. 그런데 물건이 나에게 오지 않았으니, 돈을 줄 필요도 없지.”

“난 약속한 대로 물건을 준비했고 정상적으로 넘겼어. 이후에 벌어진 일은 그쪽 책임 아닌가?”

“여긴 법원이 아니야, 아메리칸 보이. 잘잘못을 따지는 건 행복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지. 우리처럼 불행한 놈들은…… 총알 개수만 따지면 돼.”

라고 말하며,

토니 웡은 총을 꺼냈다.

“어서. 내 돈 놓고 꺼져.”

그는 내게 총구를 겨냥했다.

나는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싫다면?”

토니 웡의 코가 씰룩였다.

매우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네놈은 여기서 죽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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