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Chinese Democracy (2)
시체가 바닥을 뒹굴었다.
허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난 아직 투표 안 했어.”
토니 웡은 권총을 소매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 나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거래하도록 하지. 아메리칸 보이.”
“……비즈니스 방식이 제법 화끈하신데?”
“1억은 과해. 선금 5,000. 물건 상태가 좋다면 다음번 거래에 2,000 더 얹어 주지.”
“네고 시도하는 꼴은 별로 화끈하지 못하시군.”
“장사 한두 번 하고 말 것도 아니잖나. 응? 서로 신용이 쌓여야지 큰돈도 쉬이 오가는 법이야.”
상하이맨은 왕코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어때, 팔아줄 건가?”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고개를 한 차례 끄덕댔다.
“좋아. 팔아주지.”
토니 웡의 표정이 급속도로 밝아졌다.
“타이빵러, 아메리칸 보이. 흐하하하핫.”
“단, 반값 할인해줬으니 이번 거래금은 크레딧 대신 달러로 받겠어.”
“아암, 그 정돈 양보하고말고.”
방안의 분위기는 어느새 매우 차분해졌다.
화기애애한 정도는 아니었으나, 적어도 총성이나 중국어 욕이 더 이상 울릴 일은 없을 듯했다.
“무기 공급은 매월 15일. 보관 장소는 사우스아치 6구역 우드게이트 웨어하우스. 운반은 창고 입구의 야간 경비원이 도와줄 거야. 돈은 미리 정해둔 장소에서 접선자끼리 만나, 물건이 정상 공급된 게 확인되면 그때 전달하는 걸로.”
나는 오른손을 꺼내 악수를 청했다.
“그럼, 잘 부탁드릴게. 고객님.”
토니 웡은 크게 뜸 들이지 않고 내 손을 바로 움켜잡았다. 그의 악력은 적당히 매서웠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거래는 성공적으로 종료.
나와 애런은 무사히 건물 밖으로 나왔다.
홍룡파 구획을 떠나 차이나타운의 밤거리에 다다르자, 내내 굳어 있던 긴장이 스르륵 풀렸다.
“후우, 좋게 좋게 끝났네.”
“제가 동행할 필요도 없었던 것 같군요.”
“그러게. 괜히 귀찮게 불러서 미안하다, 야.”
“아뇨. 도움을 못 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혼자 오는 것보다는 맘 편했어. 시간 외 근무 수당은 제대로 챙겨줄 테니 걱정 말고.”
길거리는 여전히 득실득실한 사람들과 시끄러운 소음들, 눈을 찌르는 네온사인들로 가득했다.
허나 5,000만 크레딧을 벌고 나오는 퇴근길이 되니, 어쩐지 그 모든 것들이 축제처럼 느껴졌다.
“협상을 아주 잘하셨더군요.”
“그런가?”
“중국인들은 ‘꽌시’를 중요히 여기죠. 그들과 거래할 때는 언제나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상하이맨이 물건 가격을 1억에서 5천으로 깎았을 때, 만약 카이트 씨가 거기서 거절을 했다면 얘기는 그대로 끝났을 겁니다.”
“뭐, 1억은 내가 생각해도 오바긴 했어.”
“놈이 말한 것처럼, 이번 건은 한두 번 하고 말 장사가 아니었으니까요. 어쨌든 카이트 씨의 계획대로 됐습니다. 매달 꼬박꼬박 무기를 공급해준다면 놈들은 충성스럽게 돈을 갖다 바치겠죠.”
애런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공장 쪽에만 문제가 없으면 되겠군요.”
“응? 무슨 공장?”
“무기 생산 공장 말입니다. 전에 설명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슐츠 장비를 위탁 생산하는 공장이 이번 달부터 돌아가고 있다고요.”
나 또한 덤덤하게 입을 열어 말했다.
“그거 뻥인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예?”
“슐츠 쪽이랑 계약해서 공장 라인을 확보한 건 맞지만, 생산 시작은 6개월 뒤부터야. 이번에 홍룡파 쪽에 넘길 무기는 그냥 대리 유통 명목으로 가져온 타사 OEM 물량 중에서 조금 빼돌린 거고.”
“……그 말씀은?”
“지속적인 무기 공급은 못 해. 그러니까 이번 거래가 홍룡파와의 마지막 거래가 될 예정이지.”
애런의 표정이 확 굳었다. 원체 굳은 표정밖에는 지을 줄 모르는 녀석이긴 하지만 말이다.
“……원래 계획이랑은 다르지 않습니까?”
“세상만사가 다 계획대로 되는 법은 아니잖냐.”
슐츠와의 위탁 생산 계약 건이 형편 좋게 흘러가긴 했으나, 이후 상황은 그다지 여의치 않았다.
공단 측 사정으로 인해 생산 일정부터가 엄청나게 뒤로 밀린 데다, 생산된 제품 중에 암거래에 쓸 물건을 빼내는 것도 예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한 철 장사로 플랜 변경한 거지. 넘길 물건도 대부분 슐츠 딱지만 붙은 메이드 인 차이나, 개도국 지원용으로 염가 제조한 쓰레기들이야. 걔들 입장에선 국산이니까 좋아할 수도 있겠네.”
“……괜찮겠습니까? 뒤통수를 맞았다는 걸 알면 놈들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내가 짧은 인생 살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뒤통수는 무조건 먼저 때리는 쪽이 낫다는 거야.”
“외람된 말이지만, 아직 저희 조직 규모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 홍룡파를 적으로 두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지…….”
“겨우 홍룡파한테 뭘 쫄고 그래? 우리 뒤엔 블랙 대거즈가 있잖아?”
나는 여유로운 어투로 말했다.
“그리고, 어차피 놈들은 오래 못 가.”
<홍룡파>는 수십 년 넘게 C구역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세력이지만, 이는 곧 과거의 영광이 된다.
“한 달쯤 지나면 놈들은 <신제천>에게 완전히 밀려서, 지역 실세 자리에서 멀어질 거야.”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애런이 물었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미래를 알고 있다’란 사실을 녀석에게 조리 있게 설명할 방법은 별달리 떠오르는 게 없었다.
<사이버판타지> 본편 스토리라인이 시작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뒤.
플레이어가 게임을 시작한 시점에 <홍룡파>는 이미 반쯤 몰락한 약소 세력이 되어 있다.
결국 C 구역의 패권을 두고 다툰 중국인들끼리의 내전에서 승리하는 쪽은 <신제천>이라는 것이다.
내가 이번 거래를 ‘한 철 장사’로 끝내겠다 마음먹은 것도 그러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홍룡파>는 임종 직전의 환자. 아직 자기가 죽을 정도로 아프다는 것도 모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놈들 주머니를 털어먹을 절호의 순간이다.
“아무튼 이쪽 일은 알아서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당분간은 애들 관리나 좀 신경 써주라고.”
“알겠습니다, 카이트 씨.”
“그나저나 아까부터 취두부 냄새 진짜 고약하네. 저게 정말로 그렇게 맛있대?”
“글쎄요. 저는 안 먹어봐서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노스네스트는 어딜 가도 그놈의 냄새 때문에 참 스트레스받는다니까.”
뒷골목 특유의 먼지 낀 공기와 꿉꿉한 악취.
익숙해지면 좀 나아질까 했는데, 며칠을 왔다 갔다 해도 도무지 참아 주기가 어렵다.
“으으음.”
그러고 보니 전에 주인장이 말했었지.
자기가 잘 아는 가면 제작자가 있다고.
“마스크를 한번 바꿔 볼까.”
***
화요일 늦은 오후.
노스네스트 10구역.
웨스트록과 접해 있는 이곳 10구역은 도시의 시궁창이나 다름없는 노스네스트에서 그나마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여겨지는 동네 중 하나다.
길바닥이 더러운 것은 매한가지이나, 널려 있는 쓰레기들 중 노숙자와 약쟁이는 많지 않다. 벽에 그려진 무수한 그래피티도 청춘스러운 방황을 즐기는 대학생의 예술 작품과 엇비슷한 느낌이었다.
나는 후드를 고쳐 쓰고 상점가를 걸었다.
해가 뜬 시간에 노스네스트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연광이 비추는 노스네스트의 풍경이란 꽤나 넉살스러운 신선함을 선사했다.
주인장이 알려준 곳은 바로 이 근처였다.
찾아 헤맬 필요는 없었다. 살짝 두리번거리는 것만으로 나는 목적지를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끈적한 용암 공방>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작게 축소해 놓은 듯한, 철판으로 쌓아 올린 비행선 같은 외양의 건물.
이곳은 도시에서 내로라하는 장인들이 운영하는 대장간 공방이다.
<사이버판타지>에서도 자주 신세 지게 되는 곳.
게임 속에서 들렀던 장소들을 이렇게 실제로 보게 될 때마다 정말이지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철문을 열고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화악― 건물 안에 들어서자마자, 찜질방처럼 뜨거운 열기가 순식간에 피부를 에워싸 덥혔다.
“워우.”
내부는 그야말로 ‘대장간’이라는 풍경이었다.
뜨거운 쇳물이 흐르는 용광로, 증기 기관처럼 생긴 기계들, 그리고 망치를 두드리는 난쟁이들.
그들은 모두 드워프였다.
성인 남성의 허리에 간신히 닿을 키와, 그에 대조되는 통통한 통짜 몸매를 가진, 예로부터 ‘만들기’와 ‘고치기’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종족.
망치 두드리는 소리와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워낙 시끄러웠던 탓에 귀가 금세 먹먹해졌다.
나는 바쁘게 일하고 있는 드워프들 가운데 그나마 한가해 보이는 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창가, 바람 드는 곳에서 담뱃불을 태우며 휴식 중이던 검은 수염의 드워프가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볼일이오?”
“장비 제작 의뢰를 맡기러 왔습니다. 시그몽 운터가르트란 분을 찾고 있는데요.”
“누구?”
“가면 제작자인 시그몽 운터가르트 씨요. 혹시 지금 안 계신가요?”
내가 묻자, 검은 수염 드워프는 담배 연기를 앞니 사이로 뱉으며 말했다.
“그 친구는 죽었소.”
“……예?”
“간경화로 입원했다가 저번 달에 골로 갔지. 나 참, 간경화라니! 드워프의 수치 같은 놈.”
그는 짜증이라도 난 듯이 툴툴댔다.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난색을 표했다.
“허어, 그분이 시에라시티 최고의 가면 제작자라고 들었는데. 돌아가셨을 줄은 몰랐네요…….”
“뭐, 시그몽만큼은 아니어도 가면 좀 만들 줄 아는 놈이라면 몇 명 있긴 하오.”
“그러면, 그분들 중에선 누가 최고죠?”
검은 수염 드워프가 물었다.
“당신, 최고를 찾는 겐가?”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조금 뒤,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오시게.”
드워프는 뒤뚱뒤뚱 걸으며 어딘가로 향했다.
나는 그의 짤막한 발걸음에 맞춰 느지막이 가는 길을 쫓았다. 곧 도착한 곳은 대장간 안쪽 가장 깊은 구석에 있는 작은 철문 앞이었다.
드워프는 철문 옆 벽에 용수철로 연결된 금속 깔때기를 꺼내더니 거기다 대고 무어라 말을 했다.
“이봐, 쥬! 문 열어! 손님 내려간다!”
잠시 후.
철커덩―. 걸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살짝 열렸다. 드워프는 나더러 들어가라 시늉하고는 저 혼자서 자리를 훅 떴다.
나는 일단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너머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이 있었다. 밑에 뭐가 있는지는 깜깜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스무 계단쯤 내려가자 슬슬 불빛이 새어 나오는 출구가 보였다. 그렇게 지하에 도착했다.
“오?”
눈앞에 펼쳐진 공간은 제법 근사했다.
발 디딜 틈이 모자라게 꽉 들어찬 장식장들. 거기에는 갖가지 기묘한 장식과 신기한 모양의 기구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곳은 마치 19세기 유럽의 골동품들을 모아 놓은 조그마한 박물관 같았다.
나는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드디어 2평 남짓의 여유가 생긴 공간에는, 무언가를 만들 때 쓰는 듯한 작업대가 놓여 있었다.
작업대 중앙에 있는 것은 얇은 진열대.
그리고 진열대에는― 검은 가면이 있었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변장용 마스크.
사이버펑크 풍의 간결한 디자인. 매끄러운 흑색 곡면에 이중으로 그어진 렌즈 부분이 인상 깊다.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무척이나 놀라운 완성도였다.
감탄스러운 심경을 못 이겨,
무심코 손을 뻗어 버린 그때―
“만지지 마!”
등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치웠다. 그러고 나서 바로 등을 돌려 앙칼진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머리 위로 봉곳 솟아오른 귀.
푹신푹신해 보이는 새하얀 털.
천연덕스럽게 흔들거리는 꼬리.
뜻밖에도 그것은,
수인종 꼬맹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