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Chinese Democracy (1)
오후 11시 28분.
노스네스트 C 구역.
원래 노스네스트 8구역이었던 이곳은 12년 전 레드존으로 지정된 후 C 구역이란 새 이름이 생겼다.
여기에 살고 있던 중국인들은 C 구역으로의 개명을 반겼다. 아마도 ‘China’의 ‘C’라서 그랬던 걸까.
C 구역에는 한때 8을 좋아해 8구역에 모여 살던 중국인들에 더해 전보다 더 많은 중국인들이 모여들어 인구 밀도가 터져 버렸으니, 일반 주민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C8 소리가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카이트 씨, 이쪽입니다.”
나는 애런과 함께 C 구역에 방문했다.
짧은 스포츠머리가 인상적인 애런 블런트는 과거 데스트루퍼의 소대장이었던 남자다. 지금은 내 밑에서 애들을 관리하는 실장 격으로 일하고 있다.
“아까부터 중국말밖에 안 들리네.”
“여긴 차이나타운이니까요.”
노스네스트 C 구역은 작은 중국이나 다름없었다.
밤거리를 휘황찬란하게 밝히는 패루, 팔각과 취두부 냄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구부러진 발음들.
이 동양적인 난장판의 중심에는 구룡성채를 연상케 하는, 콘크리트 쓰레기로 지어진 무덤이자 가난한 중국인들의 안식처― <드래곤 빌리지>가 있었다.
“이제 곧 홍룡파 구역입니다.”
다만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드래곤 빌리지가 아닌, 비교적 깨끗한 번화가의 중식당이었다.
“여기야?”
“그런 것 같습니다.”
그곳은 식당이라기보다 궁궐에 가까웠다.
입구부터 온갖 조명들로 꾸며져 눈부시기 그지없고, 건물은 또 어마어마하게 으리으리한 것이, 당장 이 식당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고 해도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냥 밥 먹으러 온 거였으면 좋았을 텐데.”
“나중에 제가 아는 맛집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좋아. 오늘 일 무사히 끝나면 애들이랑 같이 거기 모여서 회식이나 하자고.”
우리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은 바깥보다도 훨씬 더 화려했다. 로비에서부터 6층까지 쭉 이어진 원형 계단과 수많은 식탁들은 성룡 영화에서나 보았던 바로 그 풍경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곧 중국인으로 보이는 점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여기서는 애런이 나설 차례였다. 그가 점원을 상대할 동안 나는 살짝 뒤로 물러나 있었다.
“몇 분이신가요?”
“两个. 但一个会喝水离开这里.”
두 명. 한 명은 물만 마시고 나갈 거다.
“자리는 어디로 안내해 드릴까요?”
“靠窗的桌子. 带我去能看到厨房的地方.”
창가 쪽 테이블. 주방이 보이는 곳으로.
“주문하실 요리는?”
“东坡肉. 不要小白菜.”
동파육. 청경채 빼고.
“…….”
점원은 나와 애런을 번갈아 흘겼다.
이내 주변을 살피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우리는 점원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동안 나는 애런에게 슬쩍 말을 붙였다.
“중국어는 어디서 배운 거야?”
“어머니가 중국인이었습니다.”
“그래? 혼혈인 줄은 몰랐는데.”
“피는 안 섞였습니다. 입양아였거든요.”
“그렇구만. 부모님은 어떻게 잘 지내고 계신가?”
“두 분 다 제가 초등학생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 후로 거리에서 자랐죠.”
“에고, 물어봐서 미안.”
“아닙니다.”
“참, 나도 중국말 할 줄 아는 거 하나 있어.”
“어떤 겁니까?”
“차오니마.”
“……그 말은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점원이 우리를 데려간 곳은 식당 외부였다.
주방 샛길을 지나 건물 밖 뒷마당으로 나왔을 때,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또 다른 궁전이었다.
그러나 조금 달랐다. 식당 안이 빛의 세계였다면 지금부터 우리가 향할 곳은 어둠의 세계였다.
친절한 점원들 대신에 그 건물 입구를 지키고 있는 험악한 사내들의 존재가 그 사실을 증명했다.
손등 혹은 어깨에 그려진 용 문신.
말할 것도 없이, <홍룡파>의 상징.
거기서부터 점원의 안내는 끊겼다.
대신에 황소개구리 같은 눈을 한 말라깽이 남자가 우리더러 자기를 따라오라고 눈짓을 날렸다.
나와 애런은 말라깽이 뒤를 쫓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아편굴 같은 냄새가 점점 더 짙어졌다. 아마도 위험의 냄새였을 것이다. 혹은 죽음의 냄새였거나. 그게 그거지만.
우리가 마침내 당도한 곳은,
응접실로 보이는 거대한 공간.
허나 넓은 평수가 무색하게도, 방의 구석부터 구석에까지 어깨 넓은 중국인들로 가득 들어차 있어, 두 사람이 지나갈 길만 간신히 뚫려 있었다.
거한들 사이를 지나 테이블에 도착했다.
안쪽 상석에는 이미 누군가 앉아 있었다.
왕코 옆 큰 점, 중절모를 쓴 나이 많은 남자.
<홍룡파>의 우두머리― ‘상하이맨’ 토니 웡이다.
“니하오.”
먼저 말을 건넨 쪽은 나였다.
토니 웡은 대꾸하지 않았다. 혹시 내 발음이 시원찮았던 걸까. 북경어가 아니라 광동어로 말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두 개의 차이는 모르겠지만.
“앉아.”
그즈음 토니 웡은 키우는 개한테 명령하듯이 말했다. 사실 그보다도 좀 더 강압적인 어조였다.
나는 일단 말 잘 듣는 개처럼 굴기로 했다. 애런은 앉지 않고 내 옆에 가만히 우뚝 서 있었다.
“네놈이 카이트냐?”
그가 물었다.
나는 넌지시 고개를 끄덕였다.
“후드 벗고 마스크 내려.”
“왜?”
“그게 우리 사람 예절이니까. 아메리칸 보이.”
나는 코리안 보이였지만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물론, 후드를 벗지도 마스크를 내리지도 않았다.
“대화를 하려는 태도가 아니군.”
“맞아. 난 대화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니야.”
“그럼 뭘 하려고 온 거냐?”
“물건 팔러 왔지. 사고파는 일에 무슨 대화가 필요해? 그쪽은 편의점에 대화를 하러 가나?”
“여긴 내 집 안방이고, 네놈은 남의 집에 흙발로 쳐들어온 낯선 자다.”
“알면 손님 접대 좀 신경 쓰지 그래. 따끈한 우롱차라도 한 잔 내오면 여간 좋아?”
내가 계속 깐족거리자, 주변에 서 있던 홍룡파 녀석들이 버럭 고함을 쳐 대기 시작했다.
“你疯了吗! 你以为你是谁!”
“你他妈的去死吧! 你丫欠揍!”
“大哥, 让我们杀了这个混蛋!”
나는 슬쩍 애런을 쳐다보았다.
“얘네 뭐라는 거냐?”
“신나게 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 같더라.”
한동안 놈들의 불꽃 튀는 야유가 이어졌다.
홍룡파 보스 토니 웡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가볍게 쿵 하고 내려치자, 그제야 소란이 멎었다.
“네놈 말대로야. 이런 상황에 대화는 굳이 필요 없지. 예절을 차릴 필요는 더더욱 없고.”
“…….”
“물건을 팔러 왔으면 보따리나 펼쳐 보시든가.”
나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상하이맨은 그걸 가만히 노려보았다.
“이게 뭐지?”
“선하증권.”
“什么?”
“배에 선적한 운송물 목록을 증명하는 유가증권이야. 비행기에 수하물 싣고 나면 무슨 스티커 같은 거 붙여주잖아? 그거랑 비슷한 거지.”
“팔겠다는 물건이, 설마 이 종이 쪼가리냐?”
“이건 그냥 종이 쪼가리가 아니거든. 선물 상자를 찾아갈 때 사용하는 귀중한 티켓이지.”
토니 웡은 언짢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설명이 좀 더 필요할 성싶었다.
“사우스아치의 <우드게이트 웨어하우스>라는 물류창고에 OEM에서 생산한 슐츠 장비를 대량으로 보관하고 있어. 총기와 강화복을 포함해 약 70여 종. 800명 정도를 완전 무장시킬 수 있는 분량이지.”
“…….”
“이 선하증권을 내가 당신에게 양도하면, 당신은 거기 있는 장비들을 합법적으로 가져갈 수 있게 돼. 물론 약간의 절차는 거쳐야 하겠지만 말이야.”
나는 능청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평생을 불법의 세계에서 숨죽이며 살아온 이들에게, ‘합법’의 울림은 제법 달콤하게 다가올 터였다.
“어때, 흥미가 좀 생기나?”
토니 웡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자기 윗입술을 왼손으로 듬성듬성 만지작거렸다. 무얼 물어볼지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가격은?”
고심 끝에 그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뜸 들이지 않고 그 질문에 바로 답했다.
“1억 크레딧.”
내가 읊은 숫자는 옆에 서 있던 애런이 도리어 깜짝 놀랄 만큼,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액수였다.
“1억?”
“그래.”
“아메리칸 조크인가?”
“에누리는 없어.”
토니 웡은 기가 찬 듯 중국어로 웃었다.
“바가지가 좀 많이 심한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아. 선하증권 양도를 위한 페이퍼컴퍼니 창설을 포함해 화물인도지시서 같은 서류들도 챙기고 또 달러 환전하고 세금 신고하고, 이런 건 다 우리가 대리로 맡아서 해줄 테니까. 초회 한정으로 발생하는 필수 서비스 비용이란 거지.”
“이런 건 어떨까? 그냥 여기서 네놈과 네놈 꼬붕을 죽여 버리고, 아까 말한 그 우드게이트인가 뭔가 하는 창고에 가서 물건을 죄다 털어 버리는 거야. 그러면 돈을 지불할 필요도 아예 없어지지.”
“확실히 그쪽은 그런 방식이 익숙하긴 하겠네.”
“더 할 말이 남았나, 아메리칸 보이?”
상하이맨이 물었다.
유언을 묻는 듯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할 말은 좀 많이 있는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딱 한 마디만 하기로 했다.
“차오니마.”
참고로 이건 중국어로 되게 심한 욕이다.
게임 하면서 배웠다. 되도록 쓰지 말길 권한다.
―철컥.
토니 웡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소매 안쪽에서 순식간에 권총을 꺼내 들었다. 차가운 총구가 내 이마에 바짝 들이 밀어졌다.
동작이 어찌나 빨랐는지 나는 물론이고 반사 신경이 좋은 애런조차도 반응이 늦고 말았다.
“傻屄! 你个混蛋!”
“肏你祖宗十八代!”
“我都腻了, 大哥!射他!”
홍룡파 놈들의 고함 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나는 중국어를 하나도 모르지만, 놈들이 욕지거리를 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闭嘴!”
그때 토니 웡이 외쳤다.
방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나는 물론 중국어를 모르지만, 아마도 ‘닥쳐!’라고 말한 게 아니었을까.
상하이맨의 외침 직후.
그대로 긴 정적이 찾아왔다.
“뭐 하나, 안 쏘고?”
그는 총을 쏘지 않았다.
허나 총을 거두지도 않았다.
나를 포함한 그 자리의 모두가,
곧 어떤 사실 하나를 눈치챘다.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쪽은―
오히려 토니 웡이라는 사실을.
“내가 누군지 이제야 기억났나 보군.”
총을 쏘지 않은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암귀’에게는 총알 따위 통하지 않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난 대화하러 온 게 아니야.”
“…….”
“물건을 살 건지 말 건지, 슬슬 정해 주지 않으면 이쪽은 좀 기분이 나빠질 것 같은데.”
내 으름장이 통한 모양이었다.
비로소 토니 웡은 총구를 거뒀다. 그는 주변의 부하들을 한 바퀴 스윽 돌아보고는 말했다.
“우리 사람 방식으로 하겠다.”
“……?”
“홍룡파는 모든 일을 투표로 정하지.”
중국인과 민주주의는 상당히 거리가 먼 조합으로 느껴졌으나 일단 가만 지켜보기로 했다.
“이 자식의 거래 제안을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하는 녀석은, 손을 들어라.”
우두머리의 말에 몇몇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이어서 머뭇거리며 몇 사람이 더 따라 들었다. 최종적으로는 절반가량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31명.”
토니 웡은 다시 입을 열었다.
“다음은, 이 자식을 지금 이 자리서 죽여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는 녀석, 손을 들어라.”
처음부터 손을 번쩍 드는 이는 몇 명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꽤나 많은 숫자의 손이 올라가 있었다. 이번 역시 절반가량으로 보였다.
“…….”
상하이맨은 올라간 손들을 훑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숫자를 공개했다.
“32명.”
거래하자는 의견 31명.
그리고, 죽이자는 의견 32명.
“한 표 차이군.”
토니 웡은 씁쓸하게 혀를 찼다.
“어쩔 수 없구만.”
그는 다시금 총구를 올렸다.
조준을 하고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
….
나는 가만히 숨을 죽였다.
상하이맨이 발사한 권총탄은 나 대신 다른 사내의 이마를 뚫고 지나갔다. 총을 맞고 쓰러진 이는 나와 애런을 여기까지 안내한 말라깽이였다.
“이제 동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