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47화 (47/201)

47화. Dancing for Money (2)

목요일 밤. 노스네스트 3구역.

뒷골목 주점 <펍 미드나이트>.

가게 안으로 들어서려던 와중, 어쩐지 문밖에서부터 시끌시끌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문을 열자, 평소와 다르게 손님들로 가득 차 미어터질 듯한 술집의 전경이 펼쳐졌다.

어두운 조명. 알코올로 덥혀진 공기. 천장 쪽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붐뱁 힙합 사운드.

바에 앉아 흑맥주를 마시는 손님. 담배 하나씩을 꼬나물고서 내기 포켓볼을 치는 엘프들.

저들끼리 테이블 여러 개를 차지하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프리랜서 용병 무리까지.

순간 가게를 잘못 찾은 줄 알았다.

<펍 미드나이트>에 손님이 4명 이상 있는 것을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나에게는 실로 몰래카메라 같은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오우, 자네 왔나.”

바의 구석 자리에 가서 잠시 앉아 있자, 옆옆 손님에게 위스키를 따라주고 있던 주인장이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는 헐레벌떡 다가와 말을 붙였다.

“바빠 보이네, 주인장.”

“말도 마. 정말이지, 오늘 같은 날엔 술병 따는 것만 해도 고역이야. 가끔가다 싱가폴 슬링 같은 거 시키는 놈은 콱 그냥 술병으로 정수리를 갈겨 버리고 싶어진다니까. 쌍것들이 여기가 무슨 힐튼 호텔 칵테일 바인 줄 아냐고.”

“그러고 보니 이렇게 손님 많은 건 처음 보는데, 공짜 맥주라도 주는 날인가?”

내 말에 주인장이 크핫 하고 웃었다.

“어제부로 블랙 대거즈가 여기 3구역을 자기네들 관리 체제하에 두겠다고 선언했어.”

“아아.”

“그게 무슨 뜻이냐? 별 볼 일 없는 갱단이나 짭새들은 이제 이 근처에는 얼씬도 못 한다는 거지. 덕분에 이쪽 상권은 오랜만에 아주 대호황이야.”

나는 모른 척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금방 이해했다.

블랙 대거즈와 손을 잡은 그 날 이후.

나는 그들에게 신변 보호를 받는 중이다.

미행을 당한다거나 하여 ‘암귀 카이트’가 ‘유진 연’이라는 게 들키는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블랙 대거즈는 나를 보호하고,

나는 암귀로서 밤거리를 활보한다.

도시 최악의 테러리스트 단체와 맺은 이 비밀스러운 거래가 과연 희망적인 미래로 이어질지, 아니면 절망적인 결말을 맞이할지, 두고 봐야 알 것이다.

“여튼 자네도 조심해야 할 거야. 이 주변에 블랙 대거즈 단원들이 쫙 깔렸을 테니까. 자기네 간부를 누가 죽였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을걸.”

“으음.”

주인장은 내가 블랙 대거즈와 한패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른다. 뭐, 아마 곧 알게 되겠지만.

“오늘은 무슨 일로 들렀나?”

“일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좋지, 일 얘기! 여긴 좀 그러니까 사무실에서 이야기하자고. 이봐, 로이! 바 좀 잠깐 봐줘!”

주인장은 바에 앉은 손님을 시간제 바텐더로 세워 놓은 뒤, 나를 데리고 가게 안쪽 방으로 향했다.

“자자, 이쪽일세.”

<펍 미드나이트>의 사무실은 사무를 처리하기에 썩 알맞은 공간 같지는 않았다.

먼지 쌓인 철제 선반에는 온갖 종류의 잡동사니들이 가득했고, 컴퓨터가 놓인 책상 위는 어떻게 하면 더 지저분해 보일까 연구라도 한 듯이 보였다.

“거기 앉게나.”

나는 어디 앉을 자리가 없나 방안을 찾아 헤매다가, 주인장이 거기 앉으라며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키고 나서야, 내 옆에 있었던 쓰레기통의 정체가 사실은 의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데스트루퍼 소탕 성공 축하하네.”

내가 의자에 앉은 뒤 후드와 마스크를 벗고 있을 동안, 주인장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대단해, 정말. 하룻밤 만에 또 전설을 썼더군.”

“사실은 이틀쯤 걸렸어. 화요일 밤에 아지트 병력과 스커미셔전에 들어간 병력을 동시에 쳤고, 다음날 밤에 D 구역에 남은 잔당들을 처리했지.”

이틀간 처리한 단원은 최소 600명.

데스트루퍼 전체 단원의 50% 이상을 궤멸시켰다. 보스는 잡지 못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전에 말한 대로, 놈들 자금을 보관 중이던 크레딧 서버를 몽땅 마비시켰어. 지금은 완전히 파산 상태지. 당연한 얘기지만 돈이 없으면 조직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유지도 회생도 불가능해.”

“스카우트 작전이 잘 먹혀들어 갔군. 데스트루퍼 놈들 중 한 100명 정도 꼬시지 않았던가?”

“이번 전투로 죽은 애들을 빼면 60명 정도 남았어. 이젠 우리 식구니까, 내가 먹여 살려야지.”

“자네가 이 동네 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부터 자기 갱단을 하나 꾸렸구만 그래. 크하핫!”

“갱단은 무슨. 그냥 갈 데 없는 깡패 녀석들한테 용돈 좀 쥐여 주고 알바로 써먹는 것뿐이야.”

방금 전에 말했듯 조직이란 돈 없인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나쁜 놈들이 모여서 나쁜 짓을 하는 이유는 그게 돈이 되기 때문. 다른 이유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일탈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다.

“아무튼 그래서, 돈이 좀 필요해졌어.”

“갱단 운영도 일종의 사업이니깐 말이지.”

“그래. 슬슬 일 얘기를 해보자고, 주인장.”

돈으로 굴러가고 돈으로 멈추기도 하는 이 도시를 살아가는 데, 돈벌이만큼 중요한 건 없었다.

“밀항 건은 어때? 손님은 좀 오나?”

“아주 순조로워. 이번 주만 해도 벌써 신청자가 20명이니, 매출 40만 달러 추가야.”

“출발이 나쁘지 않네.”

“기관 쪽에서도 아예 우리한테 일을 몰아주려는 낌새더군. 자네 계획대로 잘 되어 가고 있어.”

시에라시티에는 수많은 밀항 희망자들이 있다.

다양한 이유로 경찰 혹은 갱단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이들은 어떻게든 이 지옥 같은 섬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기 마련.

혼자 힘만으로는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 그들은 돈다발을 들고 밀항 중개자를 찾아간다.

기존의 밀항 방식에는 문제가 많았다.

운에 의존하는 과정. 그로 인한 낮은 성공률. 그에 비해 너무나도 과도한 용병 고용 비용.

전에 직접 밀항자를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현장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더 쉽고 안전하게, 더 높은 성공률에 낮은 비용으로, 밀항이 가능해진다고 하면 어떨까?

‘밀항 주선’은 상당히 괜찮은 사업이었다.

수요는 높은데 경쟁자가 없다시피 한 시장이니, 적절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기만 하면 됐다.

내가 설계한 방식은 간단했다.

언젠가 영화에서 봤던, 실제 러시아 마피아들이 검문을 피해 해외로 도피할 때 쓰는 방법이었다.

“하여간 처음 들었을 땐 놀랐어. 대체 호위도 없이 밀항을 어떻게 하려나 했더니, 설마 밀항자들을 검문소로 대놓고 보내 버릴 생각을 할 줄이야.”

윌슨앤코 그룹의 사원 데이터베이스에는 3만 명에 육박하는 미등록 프로필 데이터가 존재한다.

이들은 전부 유령 사원으로, 세계 어디에도 실존하지 않는 컴퓨터 속 가상의 인물들이다.

밀항 희망자를 받으면, 이러한 미등록 프로필을 이용해 신분을 세탁. 직원으로 정식 등록한다.

윌슨앤코 소속의 선박 노동자들은 LA, 부산, 상하이, 자카르타 등 세계 각국 16개 항만에서 12시간 이하 체류 시 여권 확인 절차가 면제된다.

직원 등록을 완료한 밀항자를 사우스아치 항만의 노동자들 사이에 섞어 보내기만 하면 끝.

은행 계좌를 만드는 것보다도 간단하게, 그 어떠한 트러블 없이 해외 도피가 가능해진다.

“그나저나 다른 데도 아니고 윌슨앤코씩이나 되는 큰 회사가 밀항 지원을 해주다니……. 카이트 자네, 대기업 쪽에 연줄이라도 있는 건가?”

“나 거기 다녀.”

“뭐? 정말? 연봉 얼마 받나?”

“150만 달러.”

“크핫! 지어내는 것도 참 못하는군!”

“진짠데.”

참고로 이 모든 과정은 팀플레이로, 윌슨앤코 인터내셔널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굴러가고 있다.

윌인터의 실질적 1인자 렘브란트와 맺은 거래.

그쪽은 내게 회사 측면에서의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고, 나는 그 대가로 윌슨앤코 그룹 정상화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꺼림칙한 일’을 대신 처리해 준다.

밀항 중개라는 떳떳지 못한 사업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렘브란트는 영 맘에 들지 않아 했지만, 내가 리스크에 준하는 리턴을 돌려주겠다 약속하자 일단 한 발짝 물러섰다. 어쨌든 거래는 거래니까.

―‘카이트’는 <블랙 대거즈>.

―‘유진 연’은 <윌슨앤코 인터내셔널>.

음지와 양지 각각 거대한 빽을 등에 업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나 자신이 거대해지는 것뿐.

“여하간 우리 밀항 중개 사업은 월간 매출 200만 달러쯤이 될 거라 예상하고 있네만.”

“그걸론 한참 모자라. 이것저것 떼고 나면 남는 것도 없으니까. 당분간은 부업을 뛰어야겠어.”

조직을 키우는 것과 앞으로 벌일 짓거리에 들어갈 비용을 생각하면 추가 수입원이 절실했다.

“그래서 말인데, 돈 될 만한 일 뭐 없을까?”

“흐음…… 투기장은? 자네 예전에 맥스페인에서 10연승할 동안 본인한테 연속 베팅해서 한몫 거하게 챙겼다고 하지 않았었나?”

“아, 그거 말인데. 며칠 이따 가보니까 내가 베팅 불가자로 등록돼 있더라고. 그때 한방에 돈을 너무 많이 뜯었던 게 문제가 된 모양이야.”

“허어, 그래?”

“쨌든 이제 거기선 저번처럼 큰돈은 못 벌어. 아마 다른 투기장에 가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면…… 용병 뛰는 것밖에는 없겠군.”

나는 주인장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러나저러나, <사이버판타지>의 메인 콘텐츠라 하면 언제나 용병 퀘스트가 중심에 있었으니까.

“실은 지금 소개해줄 만한 건 별로 없어. 들어와 있는 의뢰가 그리 많지는 않아서 말이지.”

“목록 같은 게 있으면 좀 보고 싶은데.”

“보자, 으으음…… 아, 여기 있네.”

주인장은 내게 종이 뭉치를 건넸다.

의뢰 정보가 적힌 문서들이었다. 나는 그걸 받아 한 장씩 꼼꼼히 살폈다.

“흐음.”

용병 의뢰는 난이도와 보수에 따라 1등급에서부터 9등급까지로 나뉜다.

9등급은 가장 쉽고 보수가 낮은 의뢰다. 이를테면 안전 구역의 경비원 알바 같은 임무다. 의뢰인 통이 크다면 최저 임금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1등급은 가장 어렵고 보수가 높다.

이쪽은 번외로 둬야 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실상 찾아보기 힘든 의뢰이기 때문이다.

<사이버판타지>에서도 고인물 콘텐츠로 꼽히는 게 ‘1등급 의뢰 올 클리어’니까 말 다 했지.

내가 노려야 할 것은 3-4등급 근처.

그중에 유독 눈에 밟히는 것이 있다.

“주인장.”

“왜?”

“여기, 이거.”

나는 종이 하나를 골라 주인장에게 들이밀었다.

“‘시온 퀘스트’에 나도 참여할 수 있을까?”

내 말을 들은 주인장은 잠시 말없이 의뢰 정보지를 쭉 훑더니, 이내 앓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글쎄, 아마 힘들겠지.”

“역시 그런가…….”

주인장은 고개를 저었다.

“자네도 알겠지만, 시온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데가 아냐. 전쟁 영웅, 검성, 마도사, 기타 등등. 이름 날리던 강자들도 다 같이 공평하게 뒤져 버리는 곳이라고. 거긴 전쟁터보다 더한 지옥이야.”

“직접 갔다 와 본 것처럼 말하는군.”

“게다가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용병을 모집할 때는 단순히 실력만 보고 뽑지 않아. 그치들이 일솜씨보다 더 중요하게 따지는 건 바로 ‘신용도’지.”

요약하자면 내 실적이 부족하단 얘기였다.

지금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카이트’의 명성을 좀 더 쌓을 필요가 있었다.

“뭐, 보수가 높다고 혹할 것 없어. 결국 자네 목적은 돈이니까, 돈만 벌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긴 하지.”

“마침 괜찮은 게 생각났어. 예로부터 돈 되는 건 항상 전쟁, 그리고 중국인들이었지.”

주인장은 씩 웃으며 말했다.

“최근에, 중국인들끼리 전쟁이 났어.”

무슨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돈 냄새가 물씬 풍기긴 했다.

“자세히 얘기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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