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Dancing for Money (1)
4월의 마지막 밤.
노스네스트 D구역. 데스트루퍼 아지트.
“스, 습격이다!”
처음에 들려온 것은 누군가의 외마디 고함.
거기에 이어 총소리, 비명 소리, 폭탄이 터지는 소리들이 한꺼번에 들려오기 시작했을 무렵, 그들은 무언가 좋지 않은 사태가 벌어졌음을 알아챘다.
“뭐야, 어떤 새끼들이야?”
“웜매, 새벽부터 지랄 났네.”
“총 꺼내와, 빨리! 애들 다 불러!”
불붙은 드럼통을 두르고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있던 데스트루퍼 단원들은 서둘러 무기를 챙겼다.
소음은 강당 쪽에서 들려왔기에 그들은 그쪽으로 향했다. 허나 체육관에 가까워질 때즈음, 불길한 소음들은 이제 사방팔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무전기에 뭐 들리는 거 없어?”
“아까 전에 헬프 콜 몇 번 오고 나서는 아무것도 안 들려. 뒷문 쪽 애들도 벌써 전부 당했나 봐.”
“야, 이거 어째, 심상치 않은데…….”
하필이면 그날 밤은 보스를 포함한 데스트루퍼의 병력 절반 이상이 아지트를 비운 시점이었다.
D 구역의 패권을 두고서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용병단 <스커미셔>와의 중요한 싸움이 있는 날에, 설마 아지트 본진이 습격당할 줄이야.
“분명히 통수 친 새끼가 있어.”
“그렇겠지.”
갱단 내부에 배신자가 있지 않고서는,
우연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불행이었다.
“제기랄, 루이스 형님은 어디로 간 거야?”
“자고 있겠지. 일단 우리끼리라도 가보자고. 뭔 일이 터졌는지는 확인해야 할 거 아니냐.”
그들은 이 전쟁 같은 소음들의 최초 발원지, 아지트 구역 중앙에 위치한 강당에 도착했다.
스윽―. 강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매캐한 화약 냄새, 그리고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했다.
“윽.”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강당을 가득 메운 동료의 시체들.
대충 눈에 보이는 주검의 숫자만 20구.
검붉은 핏물 웅덩이 위에 쓰러져 있는 자들에게는 모두 해골 목걸이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하 씨, 뭔데, 이거…….”
“진짜 제대로 조져 놨구만, 젠장. 대체 어떤 씹새끼들이 이런 거래? 스커미셔인가?”
“아닐걸. 그 새끼들은 지금 지들 집 지켜야 돼서 남의 집 안방 쳐들어올 여유는 절대 없어.”
“씨팔 그럼 누군데?”
“낸들 알겠냐.”
그들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시체 사이를 서성이던 중, 끼익―. 강당 문이 또다시 열렸다.
단원들은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문을 열고 들어온 인물은 그들의 적이 아니었다.
“아, 루이스 형님.”
데스트루퍼의 간부, 루이스 핀.
장발의 사내는 자고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하품을 해 대며 강당 안으로 들어왔다.
“하아암……. 무슨 일이야?”
“웬 놈들이 아지트에 쳐들어왔습니다.”
“호오, 그래? 몇 명이나?”
“모르겠습니다. 아직 적은 못 봤어요.”
“그으래? 으으음, 그럼 일단 저 시체들이나 좀 뒤져 봐. 살아있는 애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알겠습니다, 형님.”
조무래기 단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강당 바닥에 쓰러진 시체에 다가가 생존 여부를 확인했다.
루이스 핀은 연신 하품을 하면서도 졸린 눈으로 난장판이 된 강당 내부를 찬찬히 살폈다.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묘한 기류를 감지했다.
‘뭔가 이상한데.’
얼핏 바닥의 시체들은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는 듯 보이지만, 눈썰미가 좋다면 다른 것이 보이리라.
대부분의 시체가 1:1, 혹은 1:2로 교차되어 쓰러져 있다. 이건 서로 간에 전투를 벌인 흔적이다.
‘꼭 지들끼리 싸운 것 같잖아.’
여기 누워있는 시체들은 전부 데스트루퍼다.
설마 같은 편끼리 싸우다 죽어 버렸다는 건가?
‘…….’
묘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세히 보면, 누가 봐도 죽었음이 확실한 시체들 사이에, 유독 겉으로는 멀쩡한 시체들이 꽤 있다.
마치 시체들 사이에 숨어―
죽은 척을 하고 있는 것처럼.
“오, 형님! 여기 이 친구 살아있…….”
푸욱―.
단원의 목에 칼침이 꽂혔다. 한창 뱉고 있던 목소리는 날붙이에 의해 갈라져 쇳소리로 흩어졌다.
“윽?”
“커헉.”
“끄아악!”
이내 다른 단원들의 비명이 연이어 터졌다.
그들 모두 시체인 척을 하고 있던 자들에게 기습을 받았다. 이제 시체인 것은 그들이었다.
죽어 있던 자들이 차츰 일어섰다. 조지 로메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루이스 핀은 그걸 보며 피식 웃었다.
“안녕, 좀비 새끼들아.”
한때는 데스트루퍼, 동료였던 자들.
허나 이제는 더러운 배신자일 뿐이다.
“두 번 뒤질 준비는 됐니?”
배신자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망설였다.
망설일 이유는 충분했다. 자신들이 루이스 핀에게 덤벼들어 봤자 승산이 없음은 명확했기에.
루이스 핀도 그걸 알았다.
때문에 망설일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칼집에서 검을 뽑았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레이피어의 칼날이 어두컴컴한 강당 속에서 은빛으로 반짝였다.
그 반짝임에 눈이 부셔,
잠시 눈꺼풀을 깜빡인 순간,
루이스 핀이 배신자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사실에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기도 전에, 레이피어가 그들의 눈알과 심장을 꿰뚫었다.
푹, 푸푹, 푸푸푹―.
순식간이었다.
고작 찰나에 벌어졌다.
3초 남짓한 시간 동안,
5명의 배신자가 쓰러졌다.
그리고 4초째 되는 순간이,
마지막 남은 1명의 차례였다.
“잘 가라.”
루이스 핀의 칼끝이 배신자의 눈을 노렸다.
배신자의 눈은 루이스 핀의 칼끝을 응시했다.
“싫은데.”
보고 있었기에,
반응할 수 있었다.
카앙―!
금속제 너클이 레이피어를 튕겨냈다.
“어이쿠.”
상대가 방어에 성공하자, 루이스 핀은 물러나는 대신 자세를 고쳐 잡고 찌르기의 연격을 날렸다.
배신자도 비단 방어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윽고 검과 주먹 간에 수십 차례의 공방이 오갔다.
강철도 뚫어 버릴 칼날과 바위도 부숴 버릴 너클이, 한순간 서로의 뺨을 위협적으로 스쳤다.
두 사람은 비로소 한 발짝씩 물러났다.
루이스 핀이 배신자를 향해 웃어 보였다.
“느려터진 건 여전하구나, 애런.”
배신자, 애런 블런트는 뺨에 생긴 상처에서 흘러나온 핏방울을 건성으로 닦았다.
“좆까, 루이스.”
“큭큭. 그래, 너는 예전부터 싹수가 참 노랗긴 했지. 누구 똥꼬에 달라붙은 거냐? 스커미셔? 테르시오? 설마 짱깨 새끼들한테 붙은 건 아니겠지?”
그때, 쾅―.
멀리서부터 폭발음이 들려왔다.
“어쭈, 폭탄까지 가져왔어?”
“…….”
“아주 각 잡고 일으킨 쿠데타다? 너 혼자 벌인 짓 아니지? 주동자 새끼 면상 좀 궁금해지는데.”
애런 블런트는 입을 열었다.
“폭탄 아니야.”
“뭐?”
“그딴 거 안 갖고 왔어.”
루이스 핀은 눈썹을 찡그렸다.
쾅, 콰앙―. 폭발음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다. 멈출 기미가 전혀 없다.
“폭탄이 아니라고?”
“그래.”
“그럼 뭘 갖고 온 건데?”
콰아앙, 콰아아앙―.
소리가 커지고 있다.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 코앞이다.
“괴물.”
….
….
콰아아아아아아앙―!!
귀를 때려 부술 기세로 울려 퍼진 우렁찬 굉음과 함께, 강당 천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부서진 천장의 잔해와 더불어 만신창이가 된 데스트루퍼 단원의 몸뚱이가 몇 개 같이 떨어졌다.
그중 한 몸뚱이를 밟고 착지한,
검은 후드 차림의 사내가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루이스 핀은 후드 입은 사내를 보았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평범한 체격의 남자. 보라색 마나의 잔불이 주위에 덕지덕지 묻어 있다.
‘잠깐, 보라색……?’
루이스 핀은 곧 눈치챘다.
자색 마력을 가진 흑마법사…… 틀림없다. 이 녀석이 바로 그 소문의 ‘암귀’인가.
“흐음.”
허나 어쩐지 이름값에 비해 위압감이 모자랐다.
강자들이 뿜어대는 특유의 위험한 아우라가, 눈앞의 사내에게선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좆밥처럼 보이는데.”
후드 입은 사내, 유진 또한 상대를 살폈다.
찌르기에 특화된 서양식 도검, 레이피어를 주무기로 쓰는 칼잡이― 호넷스팅어Hornetstinger.
빠른 움직임이 특기인 속도전의 대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그러니까―
움직이기 전에 끝낸다.
“<폭렬파>.”
콰아아아아앙―!!
유진의 오른손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애런 블런트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일전에 자신이 맞았던 바로 그 폭발 마법이다. 그때는 정말 뼈도 못 추릴 뻔했었지.
구경꾼 입장에서도 무시무시했다. 저 정도 위력의 폭파에 직격으로 맞고도 멀쩡할 이는 드물었다.
“……?”
그렇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폭발의 잔향과 연기가 슬슬 꺼지며, 루이스 핀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째서인지 그는 멀쩡했다.
“안됐구만. 나한테 마법은 소용없어.”
루이스 핀은 잔뜩 으스대는 표정으로 말했다.
폭렬파가 먹히지 않았다. 이유는 아마도, 그의 레이피어가 보랏빛으로 물든 것과 관련이 있을 터.
유진은 단박에 진상을 알아챘다.
“<마나 드레인>인가.”
간단히 말해 그것은 마법을 흡수하는 마법.
<마나 드레인> 자체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술식의 효율이 지극히 떨어지는 초급 범용 마법이기에, 실전에서 사용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하지만, 마법 특화 인챈트를 시킨 장비와 함께 사용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마나 드레인>은 마법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무력화시킬 수 있기에, 파괴 마법에만 효과 있는 <마나 배리어> 따위보다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 되었다.
때문에 <마나 드레인> 인챈트 장비는 대對마법전에 취약한 일부 클래스들이 애용하는 물건이었다.
루이스 핀 또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유진의 자색 마력은 ‘어디든 잘 깃든다’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효율이 좋지 못하다는 <마나 드레인>에도 기가 막히게 잘 먹혀들어 갔다.
“상대가 나빴군, 흑마법사 친구.”
확실히 그는 유진의 <폭렬파> 한두 방 정도는 가볍게 흡수할 수 있을 듯했다. 어쩌면 그 이상도.
“그딴 허접한 마법으로 내 칼을 뚫을 순 없을 거야. 못 믿겠으면 뭐, 얼마든지 써 보시든가.”
루이스 핀은 비웃듯이 말했다.
유진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얼마든지?”
그 말이 화근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찰나의 막간이 끝나고, 유진의 다음 공격이 시작됐다. 루이스 핀은 방어 자세를 잡았다.
화아아아아악―!
이번엔 불꽃이었다. 뜨겁게 불타오르는 보라색 화염이, 루이스 핀을 향해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핫, 소용없어.’
그에게 유진의 마법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불꽃은 욕조의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목욕물처럼 레이피어에 저절로 끌어당겨져 흡수됐다.
‘거참 시시해 죽겠구만. 이딴 성냥불만도 못한 걸로 뭘 어쩌겠다는 건지, 원.’
루이스 핀은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얼마 뒤면 녀석의 마력이 전부 닳아 없어지겠지. 그때 양쪽 눈알에 신나게 칼침을 쑤셔 넣어주마.
그는 기다렸다.
불꽃이 꺼질 때까지.
10초가 흐르고, 20초가 흘러갔다.
30초가 되었음에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
1분이 지났다. 2분이 지나갔다.
3분이 넘었음에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데……?’
불꽃은 5분째 지속됐다.
꺼질 기미가 전혀 없었다.
마치―
마나가 무한이기라도 한 것처럼.
루이스 핀이 불길한 상상을 했을 무렵.
그의 레이피어에 인챈트 된 <마나 드레인>이 흡수 한계점에 도달했다.
‘어?’
타닥―. 불꽃의 열기가 전해진다.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피부가 따가웠다. 근육이 속에서부터 천천히 익어가는 듯했다.
“자, 잠깐, 그, 그만……!”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제발 마법을 멈춰 달라는 애원이 들려왔다.
“이야, 5분이나 버텼네.”
“장비빨입니다.”
유진은 오른손의 불꽃을 그대로 유지한 채, 고개를 살짝 뒤로 돌려 애런 블런트에게 물었다.
“저 친구, 강한 편인가?”
“약하진 않습니다.”
“살려둘 가치는 있나?”
애런 블런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돈 아닙니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불꽃의 온도를 높였다.
“끄, 으그으극, 끄아아아아아아악!!”
불꽃과 함께 솟구친 비명은 천장에 뚫린 구멍을 지나, 그대로 닿을 데 없이 먼 하늘로 사라졌다.
그날 밤은 4월의 마지막 밤이었으며,
데스트루퍼 갱단의 마지막 밤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