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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45화 (45/201)

45화. Welcome to My Evening (2)

오후 9시 30분.

웨스트록 12구역. 버려진 창고에 도착.

이 거대한 창고는 윌슨앤코가 소유한 곳이다.

원래는 윌슨앤코 계열의 식품업체인 <스위트로드>에서 러시아산 대두 등 수입 식료품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이다가, 7년 전 <스위트로드>를 아세아 그룹에 넘겨주고 난 뒤로 최근까지 아무런 쓰임새 없이 텅 비어 있던 것을 내가 발견했다.

일대 지역이 통째로 윌슨앤코 사유지라 주변 눈에 띌 일도 없고, 난리를 쳐도 아무도 모른다.

마법을 연습할 장소로는 아주 딱이란 생각이 들어, 오늘 이렇게 타이퍼와 함께 와 본 것이다.

“타이퍼?”

「나니니시마스까?」

“이 새끼 왜 이래, 이거.”

회사 사무실을 벗어난 게 이번이 처음이라 그런지 타이퍼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보였다.

“타이퍼? 내 말 들려?”

「삐빅. 신경망 알고리즘을 실시간 반영하는 통신 기능에 잠시 문제가 있었습니다. 현재 로컬 네트워크를 경유해 인터넷에 연결하였습니다.」

다행히 금방 정상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창고에 들어가 준비를 시작했다.

틱, 티딕, 파앗―.

전등을 밝히자 창고 내부가 훤히 드러났다.

고등학교 강당 서너 개는 합친 듯한 너비에, 천장까지의 높이는 거의 30미터에 육박했다. 이 정도면 마법 연습 장소로는 충분한 사이즈였다.

“좋아, 그럼 시작한다?”

나는 창고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타이퍼는 거리를 두고서 나를 지켜봤다.

“자아, 먼저…… <폭렬파>.”

오른손에 마나를 장전.

불꽃을 한꺼번에, 점 하나에 모아 터뜨린다는 느낌으로, 손을 뻗음과 동시에 충격파를 <강화>.

“흐읍!”

콰아아아아앙―!!

묵직한 굉음과 함께 공간이 일그러졌다.

폭발 직후의 잔 진동이 내 손등을 타고 발까지 내려가 창고 바닥을 흔들었다.

나는 손바닥에 남은 얼얼한 통증을 휙휙 털어 젖히며 타이퍼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어때? 그럴싸하지?”

「지금 하신 마력 분사는 주인님의 최대 출력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의 출력이었습니까?」

“어, 글쎄…… 70%? 아니다, 75% 정도?”

「괄목할 성과입니다. 파괴력만 본다면 이미 중급 수준의 마법사는 아득히 초월하였습니다.」

“오오, 진짜?”

「이렇게 빨리 보유 마력을 최대치에 가깝게 활용할 수 있으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

「어쩌면 주인님께서는 의외로 마법에 재능이 있으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기분 좋은 척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마냥 그럴 수도 없었다.

“…….”

타이퍼에게는 거짓말을 했다.

사실 퍼센티지를 따지자면, 방금 분사한 마력의 출력은 내 최대 출력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폭렬파>를 구현하기 위해선 먼저 마나 폭발을 일으키고, 거기에 <강화>를 적용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때 ‘마나 출력’과 ‘강화 출력’ 간의 밸런스를 잡기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마치 오른손으로 별을 그릴 동안 왼손으로 팔각형을 그리는 느낌이랄까.

한쪽의 출력을 무턱대고 늘리면 다른 쪽의 출력이 버거워진다. 당연하지만 마나가 모자라지는 않는다. 그저 내 마법 구사 능력이 후달릴 뿐이지.

연습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허나 아무리 반복해도 나아질 기미는 없었다.

나한테는 정말 마법사로서의 재능 따위는 코털만큼도 없음을, 최근 들어 여실히 느끼는 중이다.

「다른 것도 보여 주십시오.」

“아, 그래.”

나는 심호흡을 하고서, 차분하게 속삭였다.

영창은 아무리 간단한 것이라도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의식을 술식에 집중시키게 한다나 뭐라나.

“<강화>.”

다리부터 허리까지의 신체 전반을 강화.

가볍게 도움닫기 자세를 취한 후에, 점프.

타앗―!

두 발로 있는 힘껏 땅을 박차자, 내 몸은 수직으로 솟구쳐 단번에 10미터 정도를 뛰어올랐다.

자, 여기서 집중해야 한다.

신체의 강화를 유지한 채,

손이 아닌 발을 통해 약간의 마력을 분사.

발밑의 공기에 마나를 섞은 다음,

그대로 공기와 마나에 <강도 강화>를 적용.

고체처럼 굳은 공기를 발판 삼아,

다시 한번― 양쪽 발을 굴려 점프.

탓, 타닷―!

약간 버벅댔지만 어쨌든 2단 점프 성공.

<강화>로 재현한 도약 마법 <스카이하이>다.

“후우, 봤지? 공중에서 한 번 더 뛴 거?”

나는 안전하게 착지한 뒤 타이퍼를 보았다.

「좋군요. 꽤나 유연한 동작이었습니다.」

“연습 졸라 했거든. 손이 아니라 발로 마력을 쏘는 게 생각보다 많이 어렵더라고.”

「응용 테크닉이 늘어난다면 비행 마법 <스카이워크>까지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타이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때마다 녹슨 금속에서 으레 들리곤 하는 끼익대는 소리가 났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주인님.」

“내가 뭐가 대단하냐. 대단한 건 너지.”

<폭렬파>나 <스카이하이>와 같은, <강화>를 응용하여 비슷하게 구현할 수 있는 마법들.

그리고 그것들을 실전에서 활용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숙지해야 하는 여러 이론과 지식들.

“네가 알려준 거잖아.”

모두 타이퍼가 가르쳐준 것이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수많은 정보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이버판타지>에 대한 지식보다, 녀석이 귀띔해준 몇 가지 조언이 훨씬 유용했다.

평범한 회사원인 내가 <폭렬파> 같은 무시무시한 파괴 마법을 익혀서 도대체 무엇에 쓰려고 하는 건지, 녀석은 굳이 묻지 않았다.

한번은 내 쪽에서 물어본 적이 있다.

마법을 기가 막히게 잘 아는 깡통 로봇아, 너는 왜 나한테 마법을 가르쳐주는 거니? 하고.

그때―

타이퍼는 이렇게 답했다.

「나니니시마스까?」

하여간 이 깡통 새끼는 꼭 지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만 던지면 냅다 도망치고 지랄이다.

뭐, 이해는 한다. 고물 인공지능의 한계이겠거니. 나중에 꼭 업그레이드시켜줘야지.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스승님.”

나는 타이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타이퍼의 토마스 얼굴은 쭉 무표정을 유지했다. 굴곡진 깡통에 이목구비가 그려져 있을 뿐이라 표정 변화 기능이 없었다. 그럼에도 왠지 나는 녀석이 쑥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감정 모듈이 없어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할 텐데도 말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주인님.」

“그래. 하던 거 계속할까?”

……내가 <부름을> 써 버렸다는 사실을, 타이퍼에게는 아직 말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얘기해야겠지. 그때 녀석이 나를 더러 뭐라고 매도할지가 궁금해질 따름이다.

마법 연습은 1시간 정도 더 이어졌다.

타이퍼가 이런저런 디테일한 조언을 해주긴 했는데, 내가 등신이라서 흡수는 잘되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너 배터리도 벌써 다 닳았고, 나 이따 갈 데가 좀 있거든.”

「약속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음, 맞아.”

오후 10시 48분.

드디어 집에 갈 시간이다.

회사로 돌아가 타이퍼를 충전기에 꽂아 놓고 퇴근. 렌터카를 반납하고서 야간 버스를 탔다.

버스는 30여 분 정도를 빙빙 돌아 에덴파크 모텔에서 좀 떨어진 정류장에 멈춰 섰다. 여기서부터는 택시를 타거나 걸어가야 했다. 보통은 걷는다.

오전 0시 3분.

에덴파크 모텔에 도착.

집에 들어가기 전, 이번 달 방세를 지불하기 위해 모텔 입구에 있는 프런트 건물에 들어갔다.

프런트 카운터에는 지루한 표정으로 풍선껌을 불고 있는 츄리닝 차림의 금발 아가씨가 있었다.

“어. 208호 아저씨다.”

그녀는 집주인 할머니의 손녀이자 시급 2달러를 받고 일하는 모텔 관리인, 페니 베인스 양.

“안녕하세요, 페니.”

“이 밤중에 무슨 일이세요? 가스 안 나와요? 전기 꺼졌어요? 화장실 막혔어요?”

“어, 아뇨.”

“그럼 뭔데요?”

“숙박비 내러 왔습니다. 월 750달러 맞죠?”

페니는 날 보고 반가워하는 듯하다가, 내 말을 듣더니 갑자기 언짢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냥 가세요.”

“예?”

“저번에 몰아서 내셨잖아요.”

“제가요?”

“허, 기억 안 나요? 전에 밀린 방값 1,000달러 받으러 갔더니 10,000달러 주신 거?”

엥, 그랬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암튼, 숙박계에는 요금 1년 치 미리 지불한 걸로 쳐 놨으니까 그렇게 아세요.”

“얼레, 그러면 저는 1년 동안 여기서 무조건 살아야 하는 건가요?”

“그건 아저씨 맘이죠. 참고로 환불은 안 돼요.”

그녀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다시 풍선껌을 불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별로 할 말이 없음을 깨닫고는 조용히 물러나기로 했다.

“저기, 아저씨.”

프런트 문을 열고 나가려던 중.

페니가 말로 나를 붙잡아 세웠다.

“고마웠어요. 그때.”

“그때라뇨?”

“지난번에 그, 강도 만났던 거요.”

“아.”

“경찰서에서 형사님한테 들었어요. 아저씨, 강도랑 싸우다가 죽을 뻔했다면서요.”

“과장이에요. 머리 좀 까진 게 단데요, 뭐.”

“멀리서 보니까 무슨 폭발이 막 불꽃놀이처럼 터지길래, 진짜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녀는 싫은 기억을 떠올리듯 눈가를 찌푸렸다가, 다시 나를 쳐다보고는 찡그린 표정을 풀었다.

“암튼, 뭐 필요하신 거 있으면 아무 때나 저 찾으세요. 제 서비스 모토가 불평불만불친절이긴 한데…… 아저씨한테는 예외로 할게요.”

말씨는 여전히 울퉁불퉁했으나,

어째서인지 부드럽다고 느껴졌다.

“고마워요. 좋은 밤 보내요, 페니.”

“아저씨도요.”

나는 모텔 프런트를 나왔다.

백열등 한두 개가 초라하게 밝히는 건물 계단을 타고 2층 복도를 지나 208호까지 향했다.

끼익―.

낡아빠진 문소리. 항상 느끼는 거지만, 모텔 방의 현관문은 정말 기분 나쁠 정도로 가볍다.

오전 0시 8분.

퇴근 완료. 집에 도착.

직장인의 하루가 끝났다.

“후우.”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침대에 가서 누웠다.

싸구려 섬유유연제 냄새가 나는 얇아 빠진 이불이 그렇게 푹신할 수가 없었다.

졸리다. 피곤하다.

이대로 잠에 빠지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오늘 밤은 할 일이 있었으니까.

나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다.

드륵―. 침대 옆의 탁상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 있던 휴대전화를 꺼내 버튼을 틱틱 눌렀다. 연결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를 귀에 가져다 댔다.

딸칵―.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1시간 뒤 모인다.”

뚝―.

전화는 바로 끊어졌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방구석에 놓아둔 가방을 챙기고, 구두를 운동화로 갈아 신은 다음,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서 방을 나섰다.

어두운 밤거리를 따라 비콘스트리트역까지 걸어갔다. 역으로 들어가는 굴다리 통로에서 가방을 열어 그 안에 들어 있던 후드 재킷을 꺼내 입었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탔다.

도착한 곳은 노스네스트 D구역.

역에서 나오자마자 레드존 특유의 철가루 섞인 공기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콧속에 들어왔다.

불빛 하나 없는 거리를 나 홀로 서성이고 있자니, 검은 하이에나 떼가 성큼성큼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모두 해골 목걸이 문신을 하고 있었다.

D구역의 실세, 데스트루퍼의 상징을 저마다 목에 주렁주렁 매단 갱스터 무리가 나를 에워쌌다.

“인원은?”

“총 101명입니다.”

“저쪽은?”

“아지트 내외부에 200명 근처, 15분 안에 올 수 있는 병력이 200명 더 있습니다.”

“할 만하네.”

“저희 숫자가 많지 않은데, 괜찮겠습니까?”

“블랙 대거즈가 200명 정도 줄여 놓을 거야. 우린 남은 200명만 상대하면 돼.”

“100 대 200이라…….”

“어때? 할 만하지?”

나는 앞장서서 걸었다.

하이에나들이 나를 따랐다.

“자, 친구들.”

직장인의 하루는 끝났지만,

나의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일하러 가보자고.”

오전 1시.

야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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