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Welcome to My Evening (1)
“어때요, 팀장님?”
오후 12시.
스몰필드 씨와 점심 식사.
“……맛있는데요?”
“그쵸! 제가 맛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전에 우연히 한 번 동석하게 된 이후부터, 점심은 둘이 함께 먹는 것으로 거의 고정이 되었다.
비용은 기본적으로 먹은 만큼 각자 부담.
식사 장소를 선정할 때는 서로 의견을 맞출 때도 있고, 한쪽이 추천하는 집으로 갈 때도 있다.
“의외네요. 엘프풍 리조또라길래 무슨 풀떼기 비빔밥 비슷한 게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그게 다 편견이라구요. 엘프 요리라고 하면 사람들은 무슨 비건 푸드나 금욕적인 종교 식단 같은 건 줄 안다니까요, 정말.”
오늘 들른 식당은 엘프풍 퓨전 요리 전문점.
여기는 스몰필드 씨가 고른 식당이다. 그녀가 추천하는 밥집은 대개 성공적이다.
내가 음식 맛을 칭찬하면, 스몰필드 씨는 마치 자기가 만든 요리가 치켜세워진 마냥 한껏 의기양양해 하는데, 그 모습이 제법 귀엽다 생각한다.
오후 1시.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
“팀장님, 커피 드실래요?”
“아, 제 거는 제가 할게요.”
“그냥 앉아 계세요. 굳이 두 사람이나 움직일 필요는 없잖아요.”
스몰필드 씨는 혼자 탕비품 팬트리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가 들고 온 머그잔이 내 책상 귀퉁이에 스윽 올려졌다.
“고마워요.”
나는 머그잔을 들어 커피 향기를 맡았다.
그런데 뭔가, 평소에 맡던 것과는 달랐다.
“음?”
믹스커피 특유의 끈덕진 프림 내음이 아니라, 잘 우려낸 커피에서 맡을 수 있는 그윽하고 진한 향.
머그잔의 내용물을 보았다. 안에는 미약한 투명함을 머금은 진갈색의 맑은 액체가 들어 있었다.
“스몰필드 씨, 이거 직접 우린 건가요?”
“아, 네. 드립 커피예요.”
“향이 좋네요. 원두도 직접 다 하신 거죠?”
“네에. 룸메가 카페에서 일하는데, 일 끝나면 로스팅한 원두 남은 걸 갖고 오거든요.”
나는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실크처럼 혀에 감기는 질감. 입 전체에 가득 퍼져 어우러지는 향. 적절하게 툭 쏴주는 산미…… 과연, 인스턴트커피와는 맛의 깊이가 다르다.
“진짜 맛있네요. 바리스타 하셔도 되겠어요.”
“자격증 있는데요.”
“예? 진짜요?”
“대학 다닐 때 취업에 도움 될까 해서 이것저것 많이 따 놨어요. 결국 하나도 도움 안 됐지만요.”
“에이, 혹시 모르죠. 나중에 회사 안 다니고 카페에서 일하게 되실 수도 있잖아요?”
“……그렇네요. 저는 계약직이니까, 1년 채우고 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긴 하죠.”
잠시 정적.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제 일하러 갈게요.”
“…….”
“커피, 더 드시고 싶으면 말씀하세요.”
그녀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멋쩍은 감정을 뒤로 한 채 그녀가 준 커피를 마셨다. 두 번째 모금부터는 어쩐지 쓴맛이 좀 더 강하게 느껴졌다.
“1년이라…….”
역시, 아무래도 와 닿지 않는다.
스몰필드 씨는 벌써 내년의 일을 걱정하고 있는 듯하지만, 나에게 1년 뒤는 너무나 먼 미래였다.
윌슨앤코가 공중분해 되고 사원들이 전원 실종될 때까지, 앞으로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 근처다. 지옥으로의 카운트다운이 매일같이 째깍째깍 신경을 건드린다.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망할 회사를 지킬 수 있을까.
“후우.”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해볼 생각이다. 주어진 하루들을 열심히 사는 것 또한 그 일환.
“스몰필드 씨, 외근 다녀오겠습니다.”
“아, 네. 다녀오세요.”
“문단속은 부탁드릴게요.”
“네엡.”
오후 1시 15분.
외근 일정 소화 시작.
외근 시에는 주로 택시를 이용한다. 요금도 크게 비싸지 않고 어디서든 잡을 수 있으니까.
허나 오늘은 웨스트록과 사우스아치 양쪽을 왔다 갔다 해야 했기에 렌터카를 빌리기로 했다.
회사 근처 렌터카 업체에 미리 전화로 차를 예약해, 제시간에 맞춰 회사 앞으로 차가 탁송됐다.
이번에 빌린 차는 어스테이트 굴지의 자동차 기업 <알로이>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스테디셀러.
―4단 탑기어 수동 변속기.
―0.6L 직렬 3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
―공차중량 720kg. 배기량 598cc. 최대 45마력을 뿜어내는 도로 위의 야생마.
“흠.”
알로이 비트ALOY Bit.
2인승짜리 경차다.
“작군.”
이게 진짜 자동차가 맞나.
무슨 레고로 만든 범퍼카 같네.
나는 차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갔다.
외부도 그렇지만 내부도 참 초라했다. 어찌나 좁은지 어깨가 조수석 중간까지 닿을 정도였다.
“하.”
회사 지출 절감을 위해 부득이한 선택이긴 했지만, 불평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뭐, 연비는 좋겠지.”
다음엔 사비를 들여서라도 조금 큰 차를 빌려야겠다 마음먹고, 한숨을 뱉으며 시동을 걸었다.
부릉―.
어쨌든 차는 굴러가긴 했다.
오늘 들러야 할 장소는 총 4곳.
웨스트록 1구역의 윌슨앤코 프로퍼티스 서부지점 사무실. 10구역의 신흥 마법공학연구개발기업 <오펜하임> 본사. 사우스아치 제3공단의 신타케미컬 공장. 그리고 터미널 아일랜드의 항구.
외근 때 힘들 일은 보통 별로 없다.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는 게 피곤할 뿐이지, 해야 하는 업무는 끽해 봐야 간단한 시찰, 영업 관련 미팅, 거래처에 얼굴도장 찍기 정도.
액셀을 밟을 때마다 상하좌우로 춤을 추는 알로이 비트와 함께 목적지들을 빠르게 돌았다.
오늘 나의 가장 중요한 볼일은 마지막에 들를 장소에 있었다.
오후 5시 40분.
사우스아치 오션 터미널에 도착.
이곳은 어스테이트의 출입구. 대양 한가운데 위치한 신비의 섬과 세계를 연결해주는 통로다.
누리끼리한 하늘을 닮아 지저분한 빛을 띠는 바다 너머, 태평양과 대서양과 인도양을 가로질러 이계異界를 오가는 뱃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곳.
나는 알로이 비트를 끌고 항만 안쪽, 해운 회사 의 구역으로 들어갔다.
CPMO는 윌슨앤코 인터내셔널과 오랫동안 긴밀한 협력 관계에 있는 회사로, 북미 쪽에 유통되는 광물의 운수를 전담하고 있는 곳이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나와 주변을 살폈다.
저녁 무렵의 항만은 크레인이 컨테이너를 내려놓는 소리와 작업자들의 고함으로 시끌벅적했다.
나는 작업자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힘을 쓰는 대신 작업 명령을 내리고 있는, 척 봐도 관리직처럼 보이는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수고 많으십니다, 어르신.”
늙은 관리인이 내 쪽을 돌아보았다.
“윌슨앤코에서 나왔……?”
심드렁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그 노인은, 이전에 분명히 어디선가 만났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
기억났다.
한 달 전. 우드게이트 웨어하우스.
렘브란트의 부탁으로 흑마법 아티팩트 ‘카인의 단도’를 회수하러 갔던 그때. 창고 입구를 지키고 있던 그 무뚝뚝한 경비원이다.
“아, 어르신. 안녕하세요.”
“…….”
“저 기억하시나요? 우드게이트에서 뵀었는데.”
“…….”
“지금은 항구 쪽에 계시는 걸 보니 아웃소싱 계약인가 보군요. 일터 자주 옮기면 힘드실 텐데.”
노인은 말이 없었다.
그저 얄팍한 두 눈으로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용건이 있으면 빨리 쳐 말하란 듯한 눈빛이었다.
“하하, 그, 오늘은 다름이 아니라…… 어르신도 연락받으셨겠지만, 이따가 밤에 이쪽으로 야간 작업자 두 사람이 새로 들어올 겁니다.”
“…….”
“경력 없는 친구들이라 처음에 좀 허둥댈 텐데, 모쪼록 잘 챙겨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나는 품에서 봉투를 꺼내 노인에게 건넸다.
“이건 그 친구들을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에서 드리는 작은 성의입니다.”
“…….”
“받으셔도 돼요. 깨끗한 돈이니까.”
노인은 잠시 봉투를 가만 내려다보고 있다가, 무덤덤하게 그것을 자기 주머니로 가져갔다. 그러고 나서는 나를 흘겨보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밀항이군.”
쇠처럼 단단한 목소리.
나는 침묵으로 반응했다.
“그래, 알았다. 놈들 뒤는 내가 잘 봐주지.”
“…….”
“젊은 녀석이 어쩌다 렘브란트 같은 깡패 놈한테 잘못 걸려서, 뒤치다꺼리하느라 고생이군.”
그렇게 말하며 짤막한 한숨을 내쉬는 노인에게, 나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틀렸습니다.”
“뭐?”
“잘못 걸린 쪽은 제가 아니에요.”
노인은 말이 없었다.
나를 노려봤지만, 아까 전보다는 훨씬 유해진 눈빛이었다.
“나중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어르신.”
“…….”
“필요한 게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 주세요.”
나는 노인에게 내 명함을 한 장 건네준 뒤, 터미널 구역에 주차해 둔 차로 돌아갔다.
이걸로 오늘 외근 일정은 끝.
자아, 회사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오후 7시 28분.
막히는 도로를 뚫고 간신히 회사에 도착.
“아, 팀장님. 오셨어요?”
사무실에는 스몰필드 씨가 있었다.
둥근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두 눈동자는 초췌하기 짝이 없었다.
“스몰필드 씨? 퇴근 안 했어요?”
“처리할 게 조금 남아서요. 거의 끝났어요.”
이렇듯 우리 회사에서 잔업과 야근은 출근과 퇴근만큼이나 당연한 일상이다.
그래도 업무 환경은 전보다 많이 나아진 편이다. 적어도 최근엔 일요일에 출근한 적은 없으니까.
“그럼, 내일 뵐게요, 팀장님.”
“고생했어요. 들어가세요.”
“네에. 팀장님도요.”
오후 7시 45분.
스몰필드 씨가 퇴근.
“후우.”
이제 사무실에는 나 혼자 남았다.
다행히 오늘 전업량은 그닥 많지 않다. 대충 1시간이면 다 끝내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저녁에 사무실에 혼자 남아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의외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피로가 극한에 달한 뇌와 몸이 모자란 카페인을 요구해, 최후의 커피 한 잔이 절실할 때 즈음.
곤히 잠들어 있던,
그 녀석이 깨어난다.
「주인님.」
오후 9시 1분.
타이퍼가 커피를 들고 등장.
“오, 일어났냐.”
「좋은 밤입니다. 하루는 잘 보내셨습니까.」
“뭐, 그럭저럭.”
나는 녀석이 탄 커피를 받아 마신다.
커피 맛은 훌륭하다. 타이퍼의 인스턴트커피 조제 실력은 스몰필드 씨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왜냐하면 레시피 정보를 입력한 게 그녀니까.
“사무실에 커피 머신 하나 있으면 좋겠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아니, 제대로 된 에스프레소 머신 같은 거 말이야. 나 카푸치노 좋아하거든.”
「적지 않은 비용 부담이 우려됩니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그렇게 비싼가?”
「……검색 결과, 시중에 판매 중인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의 평균 가격은 158.87달러입니다.」
“뭐야, 별로 안 비싼데.”
「하지만 주인님의 쓸데없이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최저 11,600달러 사양의 고급 이탈리아 브랜드 제품 구입을 권장 드립니다.」
“11,600달러?”
「그렇습니다.」
“너 중고로 팔면 얼마냐?”
「…….」
“미안. 농담이야.”
타이퍼는 나의 마법 스승이다.
밤이 되면 녀석은 정상적인 안드로이드로 돌아온다. 말을 너무 잘해서 아주 얄미울 정도가 된다.
나는 매일 밤 녀석에게 마법 수업을 받는다.
딱히 할 일이 없는 날에도 그걸 위해 일부러 밤까지 사무실에 남곤 한다.
“오케이, 잔업 끝.”
「고생하셨습니다, 주인님.」
“그럼 이제 가 볼까? 충전 다 했지?”
「본래 배터리 수명을 위해 80%까지만 충전되지만, 오늘은 100%로 충전을 완료했습니다.」
“좋아. 렌터카 빌려 놨어. 바로 출발하자고.”
참고로,
오늘 수업은 야외에서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