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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42화 (42/201)

42화. Play The Game (2)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는 절제된 분노로 그 침묵을 깼다.

“……하나도 안 위험한 놀이라며?”

“맞아. 나 거짓말 안 했어. 이거 진짜로 하나도 안 위험해. 적어도 오빠랑 나한테는 말이야.”

“블랙 대거즈는 마법사 대상의 테러만 벌이지 않나? 민간인을 막 죽였다간 보스가 화낼 텐데?”

“으응, 그치만 이건 테러가 아닌걸. 지금은 그냥 오빠랑 나랑 노는 거잖아. 뭐가 문제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내 앞에 있는 꼬맹이가 정신 나간 테러리스트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녀석이 날 죽이려 한 지 24시간도 채 안 지났거늘.

“오빠는 보스랑 만나고 싶은 것 같지만, 나랑 먼저 놀아 주기로 했으니까, 약속은 지킬 거지?”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허나 불평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1층 광장 어딘가에,

폭탄이 든 인형이 있다.

나는 그걸 찾아야만 한다. 찾지 못하면 벌칙. 그리고 벌칙의 내용은 아마도, 묻지 마 폭탄 테러.

“자아, 인형이 어디 있는지 맞혀 봐.”

소녀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긴박감 넘치는 ‘월리를 찾아라’가 시작됐다.

나는 빠르게 눈을 굴려 광장 전체를 훑었다.

제일 큰 문제는 역시 그놈의 빌어먹을 월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숨어 있는 인형이 얼마나 정교한 만듦새일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 거리에서는 사람과 구별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지금 지나다니는 사람들 중, 내 눈에 어색해 보이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좋아, 침착하자.

우선 시간부터 확인.

광장의 시계는 2시 58분을 가리키고 있다.

제한시간인 3시까지는 약 1분여가 남은 상태.

분수대 광장에 보이는 시민의 숫자는 50명 근처.

인형인지 아닌지 가까이서 한 명씩 붙잡고 확인해 보는 건 어떨까.

1층까지 내려가는 데 걸리는 시간 30초.

확인하는 시간을 한 명당 3초로 치면, 총 3분.

……안 돼. 턱없이 모자라.

운이 좋아 도중에 인형을 발견할 확률이 있다고 해도, 거기에 사람들 목숨을 걸 수는 없어.

남은 시간 1분.

좀 더 대가리를 써 보자. 어쩌면, 인형을 특정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소녀는 밑을 보며 계속 손을 움직이고 있다.

말인즉슨, 인형 또한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것.

나는 눈을 부릅뜨고 집중했다. 인형이라면 분명 사람답지 않은 뻣뻣한 움직임이 보일 것이다.

……남은 시간 50초.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남은 시간 45초.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다.

……남은 시간 40초. 30초. 20초.

……없다. 어디에도. 인형 같은 건 없다.

어느 정도 간추려지기는 했다.

소녀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인형을 조종할 수 있는 건 자기 눈에 인형이 보이고 있을 때뿐.

처음 광장에 있었던 사람들 중, 다른 장소로 이동해 시야에서 사라진 이들을 빼면― 대략 20명 정도가 남는다. 분명 이 중에 인형이 있을 터였다.

젠장. 이제 15초 남았다.

시간이 없다. 선택을 해야만 한다.

……어쩌지?

……20명 중에서 찍을 수밖에 없나?

나는 영겁의 시간 1초만큼 고민했다. 수십 명의 목숨을 걸기에, 5%의 확률은 충분한 확률인가?

….

….

그때 문득.

묘한 생각이 들었다.

“팔다리가 달렸거나, 사람이랑 비슷하게 생긴 건 다 조종할 수 있어.”

“내가 보이는 위치에 있기만 하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건,

별것도 아닌 순간들의 기억.

「웨스트필드 가든 플라자 3층 카페.」

「기다리고 있을게. 오빠.」

거리에서 내게 인형이 속삭였을 때.

소녀 역시 그 주변에 있었을 것이다. 인형을 조종하려면 자기 눈에 보이는 위치여야 하니까.

“이거 사 줘.”

나와 비슷하게 쇼핑몰로 향했을 터인 소녀는, 어째서인지 나보다 훨씬 늦게 카페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녀석을 기다리는 동안, 줄곧 분수대 광장의 시민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저기에 내가 숨겨 놓은 인형이 있어.”

소녀가 늦은 이유는, 1층 분수대 광장의 군중들 사이에 폭탄이 든 인형을 숨기기 위해서.

그 인형은 내가 소녀를 만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분수대 광장에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후보는 2명으로 압축된다.

―모자를 쓴 솜사탕 장수.

―고양이 인형을 품고 앉아 있는 소년.

그러고 보니, 광장에 솜사탕을 들고 있는 아이가 거의 없다. 솜사탕 장수는 아까부터 있었는데, 정작 솜사탕을 팔기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된 것 같다.

고양이 인형을 가진 소년은 몇 분째 벤치에 앉은 채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다. 어쩌면 혹시, 소년이 갖고 있는 저 인형에 폭탄이 들어 있는 건가?

“아직 못 찾았어?”

“…….”

“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에―.”

확률은 반반.

어쨌건 일취월장한 50%.

남은 시간은 10초.

선택을 해야만 한다.

솜사탕 장수냐.

인형을 가진 소년이냐.

나는 짧게 숨을 뱉고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솜사탕 장수.”

또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소녀는 웃었다.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땡.”

그것은 한 음절짜리 절망.

숨을 멎게 하는 실패의 울림.

“틀렸으니까, 벌칙이야.”

광장의 시계가 오후 3시를 가리켰다.

그리고 동시에, 테러의 시간이 찾아왔다.

“잠ㄲ……!”

그때의 나는 무력했기에.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었다.

시야의 모든 것이 뿌예지며,

온 세상이 하얀색으로 물들었다.

―퍼엉!

….

….

방금 그건 폭탄이 터진 소리가 아니다.

내 얼굴에 생크림 케이크가 처박힌 소리지.

“아하하하하! 오빠 얼굴 봐, 완전 웃겨!”

“…….”

소녀는 배꼽을 잡으며 까르르 폭소했다. 나는 한동안 정지 상태로 있었다. 치덕치덕―. 크림이 뚝뚝 턱을 타고 떨어졌고, 콧속에 단내가 진동했다.

“히힛, 벌칙 끝!”

“……이게 벌칙이라고?”

“응! 얼굴로 케이크 먹기! 레오랑도 자주 이러고 놀았어. 레오는 가뜩이나 얼굴이 하얀데 더 하얘질까 봐 초코케이크를 썼구.”

“……못 맞히면 폭탄 터뜨리는 거 아니었냐?”

“무슨 소리야? 나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잠시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이 녀석, 폭탄이 든 인형을 숨겨 놓았다고만 했지, 그걸 터뜨릴 거란 얘기는 안 했었네.

“아, 재밌었다. 오빠도 재밌었지?”

“……얀마, 너 재미있자고 어른을 놀리면 어떡하냐. 어? 거짓말이나 하고 말이야.”

나는 얼굴에 묻은 크림을 휴지로 닦으며 말했다. 그러자 소녀는 갸우뚱 고개를 젖혔다.

“나 거짓말한 적 없어.”

“뭐?”

“폭탄이 들어 있는 인형을 숨겼다는 건 진짜야. 그냥 터뜨리지 않았을 뿐이지.”

순간,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그 인형, 어디 있는데……?”

“저어기.”

소녀가 가리킨 것은 벤치에 앉은 소년.

그 소년이 품에 안고 있는 고양이 인형.

“저 애, 엄마아빠가 요 앞에 있는 매장에서 일하신다나 봐. 일 끝나는 거 기다리고 있다는데, 혼자서 심심해 보이길래 인형 하나 선물로 줬어.”

“……폭탄이 든 걸 선물로 줬다고?”

“으응, 깜빡해서 안 빼고 그냥 줘 버렸지 뭐야. 타이머가 맞춰져 있었던 거 같은데, 으으응, 기억이 잘 안 나네. 아마 좀 있으면 터지지 않을까?”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나는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 에스컬레이터를 뜀박질로 넘으며 1층까지 내려갔다.

겨우겨우 도착한 분수대 광장.

소년은 여전히 벤치에 앉아 있었다.

“미안하다, 꼬마야.”

나는 그 애가 들고 있는 인형을 홱 낚아챘다. 인형의 배 안쪽 부분에 뭉툭한 단단함이 느껴졌다. 여기에 폭탄이 들어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폭발이 일어나도 안전한 곳까지 이걸 들고 가기엔 아무래도 위험했다. 폭탄이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마당에, 경찰에 신고해서 폭탄 해제반이 오기를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강화 실패>로 타이머를 고장낼까?

아니, 타이머가 고장 나면 멈추는 게 아니라 바로 그냥 폭발해 버릴 수도 있어.

그렇다면,

이 방법뿐인가.

“카인 나호르.”

나는 속삭였다. <부름>으로써 태어난 자색의 박테리아 떼가,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마냥 내 손가락 사이의 피부를 뚫고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이 소름 끼치는 벌레들은 자기들에게 닿는 모든 물질을 잡아먹는다. 고체든, 액체든, 기체든, 형체가 없는 것이든, 닿는 순간에 자연히 먹이가 된다.

―그그그그극!

보라색 군체는 고양이 인형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곧 곤충의 껍데기가 터지는 듯한 해괴한 소리가 났다. 나는 이 광경을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재킷을 벗어 군체와 인형의 모습을 가렸다.

다행히 작전은 성공. 사람들 눈에 크게 띄지 않게 폭탄을 제때에 처리할 수 있었다.

“으, 으와아아아앙, 내 인혀어어엉……!”

문제는, 난데없이 인형을 빼앗긴 소년이 꺼이꺼이 눈물을 쏟으며 울기 시작했다는 것.

나는 얼른 앉아 꼬마와 눈높이를 맞췄다.

“꼬, 꼬마야, 울지 마! 아저씨가 새 인형 사 줄게. 응? 그러니까 뚝 하자? 응? 뚝!”

주변 시선이 따가웠다. 최선을 다해 달래 보려 했지만 꼬마의 울음은 멈출 기색이 없었다.

큰일이다. 이대로라면 아동 학대 현행범으로 붙잡혀 버릴지도 모른다. 제길, 어떡하면 좋지?

내가 당황해 하고 있었을 무렵.

툭―. 누군가 내 어깨를 건드렸다.

“……?”

솜사탕 장수였다.

그는 울고 있는 꼬마에게 솜사탕 하나를 쥐여 주었다. 그러자 꼬마가 점차 눈물을 그치기 시작했다. 이어서 녀석이 솜사탕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빨갛게 부은 얼굴에서 눈물기가 완전히 가셨다.

“아이들하고는 별로 안 친하신가 보군요.”

“…….”

“그래도 아리엘은 당신이 꽤 마음에 들었나 봐요. 그녀가 폭탄 인형까지 챙겨 왔는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건 흔히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나는 천천히 솜사탕 장수를 올려다보았다.

키는 170 정도에, 검은 머리를 가진, 많아 봐야 고등학생쯤일까 싶은 앳된 외모의 소년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진 씨. 아니면 카이트 씨라고 불러야 될까요? 어느 쪽이 편하신가요?”

“……너는…….”

“토마라고 합니다. ‘h’랑 ‘s’가 빠진 토마스요.”

녀석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을 보자마자 왠지 모르게, 나는 녀석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 네가 블랙 대거즈의 보스로군.”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지금은 다들 저를 따르고 있으니까요.”

확인까지 마쳤음에도 어째 긴가민가했다.

어리숙한 목소리에도, 가볍게 웃는 표정에도, 싱그러운 위화감이 있었다. 극단주의 테러리스트 단체의 수장치고는 너무 여리여리하고 나긋나긋했다.

“만나서 반갑다, 급식충 빈 라덴.”

“하하. 짓궂으시네요.”

“너네 꼬맹이만 할까.”

나는 시선을 올려 3층 카페 쪽을 보았다.

창턱에 앉아서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빨강 머리 소녀, 아리엘이 보였다. 내 옆에 있던 블랙 대거즈의 보스가 그걸 보고는 따라 손을 흔들었다.

“처음부터 둘이서 날 놀려 먹을 셈이었나?”

“그럴 리가요. 저는 아리엘이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 뒀을 뿐이에요.”

“걔는 날 죽이고 싶어 하던데.”

“당신이 그녀의 친구를 죽였으니까요.”

“내가 놈을 죽였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레오노프가 저에게 남긴 말이 있거든요. ‘자색 마법을 가진 흑마법사를 찾으러 가겠다. 만약 그가 암귀가 아니라면, 그를 죽이겠다.’라고 했죠.”

소년은 먼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

“너는 내가 암귀라고 믿고 있다더군.”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저는 의심이 많거든요.”

“만약 내가 암귀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땐 어쩔 셈이지? 너도 날 죽이려 들 건가?”

“그것도 모르겠네요. 마땅히 필요한 일이라면 하겠지만,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걸까요?”

보기보다 소심한 녀석 같다. 좋게 말하면 신중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우유부단한 성격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알려주지.”

즉,

구슬리기엔 딱 좋은 상대란 얘기다.

“너는 날 죽여선 안 돼.”

“이유는요?”

“그편이 너한테 이로울 테니까.”

나는 앉았던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거래를 하자.”

“…….”

“내가 원하는 걸 준다면, 나는 그 대가로―.”

소년에게 다가가,

악마처럼 속삭였다.

“네 소원을 이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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