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Master of Puppets (3)
화요일 아침.
아니, 어쩌면 점심.
취조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흉악 범죄자와 억울한 피해자 사이의 누군가로 보였다.
팔뚝과 머리에 감긴 두꺼운 붕대는 내가 지금 있어야 할 곳이 경찰서가 아니라 병원임을 여실히 말해주었으나,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정 청취 시작하겠습니다.”
이 좁아터진 공간의 유일한 대화 상대는 탁자 너머 꽉 끼는 제복을 입은 뚱뚱한 경찰뿐이었다.
“어젯밤 12시경에 메인 요크 로드 545번 도로에서 칼을 든 괴한과 마주쳤다고 했죠.”
“예.”
“그때 같이 있었던 페넬로페 베인스 양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는데, 그녀와는 무슨 관계입니까?”
“제가 투숙하는 모텔 관리인입니다.”
“당신은 우선 그녀를 도망치게 하고, 혼자 남아서 괴한과 몸싸움을 벌였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괴한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십니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괴한은 중간에 도망쳤다고 했는데, 어느 방향으로 도망쳤는지 기억하십니까?”
“기억나지 않습니다.”
“출동하던 경찰이 현장에서 발생한 폭발을 목격했습니다. 폭발의 원인은 무엇이었죠?”
“모르겠습니다.”
“괴한이 폭발물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모르겠군요.”
“본인이 폭발물을 가지고 있었나요?”
“아니요.”
경찰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진술서를 훑었다. 그는 나를 스트레스 해소 수단, 혹은 화요일 아침의 골칫거리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어쩌면 둘 다거나.
경찰의 사정 청취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대부분은 이미 했던 질문의 무용한 반복. 어떻게든 말꼬투리를 잡으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쩝, 사정 청취 끝났습니다. 여기 밑줄 친 데다 사인하세요.”
그가 내민 종이는 자신이 받은 조사 과정에 어떠한 문제도 없었음을 확인하는 동의서였다. 나는 그것에 볼펜으로 대충 서명을 마쳤다.
“이제 집에 가도 됩니까?”
“잠깐 그대로 앉아 계십쇼. 교정 감독관이 와서 몇 가지 확인을 할 겁니다.”
경찰은 그 말을 남기고 취조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한참을 기다렸다. 이곳은 너무 조용하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차라리 유치장 침대에 누워 있는 편이 더 안락할 듯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철컥―. 취조실 문이 열렸다.
“유진 연 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이는 갈색 단발머리에 까칠한 눈매를 가진 젊은 동양인 여자였다.
“사회 복귀 프로그램 담당 감독관 한태경입니다.”
“…….”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이것 말고도 처리할 업무가 많아서.”
여자는 나랑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차림새와 분위기로 보아서는 형사가 아닐까 싶었다. 까칠한 말투에서 특유의 사무적인 의협심이 느껴졌다.
“몸은 좀 괜찮나요?”
“‘괜찮다’의 기준은 모르겠지만, 모르핀을 맞아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의사가 그러더군요.”
“다행이네요. 연유가 어떻든 프로그램 기간 중 마약성 진통제 투여는 감점 사항인데. 알고는 있죠? 지금 본인 평가 점수 간당간당한 거?”
A급 전과자의 출소 후 사회 복귀 프로그램은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진행된다.
인격이나 사회성 등에 결격 사항이 있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재수감. 감독관의 재량에 따라 나는 언제든지 죄수 신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요즘은 어때요? 지낼 만해요?”
“그럭저럭이요.”
“직장은요? 사회생활은 할 만한가요?”
“분수에 맞지 않은 큰 회사에 들어가 버려서, 빨리 적응하려고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주소지를 보니까 아직도 모텔로 되어 있던데, 제대로 된 집을 구할 생각은 없나요?”
“이사할 곳은 천천히 알아보고 있습니다. 전과자를 받아주는 부동산이 흔치가 않아서요.”
“흠. 그런가요.”
여자는 나를 치켜뜬 눈으로 쳐다보았다.
“잘살고 있는 것 같군요.”
왠지 비꼬는 것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그녀는 짧게 숨을 뱉으며 서류를 덮었다.
“이만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유진 연 씨. 간밤에 큰일을 겪어 피곤했을 텐데. 수고 많았어요.”
“예,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곧바로 일어나 취조실을 나가려다 멈칫, 문고리를 돌리기 직전 갑자기 할 말이 떠올랐다.
“감독관님, 뭐 하나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뭐죠?”
“제가 무슨 죄로 감옥에 들어갔었던 거죠?”
여자의 표정이 굳었다.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는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졌다.
“아니, 그게, 정확한 죄목이 기억 안 나서요.”
“……주거침입. 절도. 방화. 공무방해. 재물손괴. 도주. 위증. 이상 7개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전부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8년 형을 선고받았어요. 출소 후 보호관찰기간도 똑같이 8년이고요.”
허허.
이것저것 많이도 저질렀구만.
“더 필요한 거 있어요?”
“아뇨.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녀에게 머쓱하게 웃어 보이며 취조실을 나왔다. 바깥에 있던 순경이 소지품을 돌려주었다.
시계를 보니, 당연하게도 11시가 넘어 있었다.
한 달만의 지각이군.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하아아……”
오늘만큼은 정말,
출근하기가 싫었다.
***
오전 11시 10분.
한태경은 서류를 챙겨 취조실 밖으로 나왔다.
“어이.”
그리고 그때,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녀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깁슨 경위님?”
형사팀의 아서 깁슨이었다. 그는 콧바람을 뀌며 걸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경위님은 무슨. 언제부터 그렇게 깍듯이 대했다고. 걍 옛날처럼 아서 아찌라고 불러, 인마.”
“그렇게 불렀던 기억은 없는데요.”
“것보다 지금 취조실에서 뭐 한 거냐? 전에 그 불법 밀항자 중개해 준 새끼 잡았어?”
“아뇨. 그냥 강도 미수 피해자 사정 청취였어요. 근데 그 피해자가 하필이면 제가 관리 담당 중인 전과자라서, 이렇게 뒷바라지 떠맡은 거죠.”
한태경은 사건 파일을 흔들며 말했다.
지원팀인 그녀는 경찰서 내부의 온갖 잡일을 다 처리하는 신세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강도 미수?”
“내용 자체는 별거 아녜요. 폭발물을 사용한 걸 빼면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사건이죠.”
“얼씨구, 뭔 놈의 강도짓에 폭탄을 쓰는 미친 새끼가 다 있대.”
“근데 걸리는 게 좀 있어요. 목격 증언으로는 폭발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장에서 발견된 폭발물의 흔적은 소형 IED 1개분뿐이거든요.”
“그거야, 폭발을 일으킨 게 폭탄이 아닐 수도 있겠지. 마법으로 일으킨 폭발이라든가.”
“네, 그래서 감식반 보내 확인해 봤죠. 그런데요. 아까 분석 결과가 나왔거든요? 현장 대기와 지반에서 검출된 잔존 마나 수치가…… 0%였어요.”
“0%?”
아서 깁슨은 물음표를 띄웠다.
“그건 이상한데. 0%는 못 나와.”
“알아요. 마나 바큠 처리를 거친 특수한 지역이 아닌 한, 공기 중에 잔존 마나가 아예 검출되지 않는 경우는 없죠. 그래서 걸린다는 거예요.”
한태경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녀로서는 이 의문스러운 수수께끼의 해답을 내릴 수 없었다.
“…….”
그때쯤에 문득,
아서 깁슨은 무언가를 떠올렸다.
“예전에도 있었어. 0%가 나왔던 적이.”
“어? 정말요?”
“10년 전이었지. 도시 외곽 공터에서, 수배 중이었던 마법사 12명이 머리만 남은 시체로 발견됐었어. 그놈들 모두 다 AAA급 수배자, 한 명 한 명이 저마다 굵직한 범죄 사건과 연관된 네임드였지.”
당시 사건 현장은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최소 가이우스급의 실력을 가진 마법사 12명이 서로 거센 힘겨루기를 벌였으니 그리되는 것도 당연했다.
허나 마법전의 흔적이 분명히 존재했음에도, 현장에서 검출된 마나 수치는 제로.
범인을 찾을 단서도 없어 수사는 흐지부지 종료. 결국 사건의 진실은 영영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혹시, 그때 사건의 범인이……?”
“돌아온 걸지도 모르지. 뭐, 아닐 수도 있고.”
아서 깁슨은 어깨를 으쓱했다.
“참, 아까 강도당할 뻔한 피해자가 있었다면서. 그 친구가 좀 수상쩍지 않나?”
“아, 그 새끼는 아니에요. 폭발에 죽을 뻔했단 거 보니까, 그냥 운 나쁘게 휘말린 것 같아요. 죽어 주는 편이 사회에 도움이 됐을 텐데 말이죠.”
“그러고 보니 그놈 전과자랬지.”
“완전 쓰레기 새끼예요.”
“뭔 짓 했는데?”
한태경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고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 여동생을 죽였어요.”
***
일단은 집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가뜩이나 피곤한 몸에 약간의 부상까지 입어, 체력은 이미 바닥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래도 출근은 해야 한다.
직장인이니까.
오후 12시 10분.
지친 몸을 끌고 사무실에 도착.
“앗, 팀장님……?”
안에 들어가자마자, 동그란 무테안경을 쓴 스몰필드 씨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미안합니다. 제가 좀 많이 늦었죠.”
“아, 저, 아까 병원에서 전화 온 거 들었어요. 어제 무슨 사고 당하셨다면서요.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보세요, 멀쩡하잖아요.”
“……피곤해 보이시는데, 괜히 무리하시는 것 아니죠?”
“무리해야죠. 사무실에 저까지 없으면 스몰필드 씨 혼자인데.”
“…….”
“그보다 지금 점심시간인데, 밥 먹고 오셔야지 뭐 하고 있어요? 사무실은 제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어서 식사 다녀오세요.”
“……팀장님은요?”
“에이, 지각해 놓고 어딜 출근하자마자 밥 먹으러 나가나요. 오전에 못 한 분량만큼 일해야죠.”
그때쯤.
스몰필드 씨의 눈빛이 변했다.
“팀장님. 오늘은 그냥 들어가세요.”
“……예?”
“어차피 이번 달은 일정 널널해서 쉬엄쉬엄해도 되잖아요.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건 제가 할게요. 팀장님이 내일 와서 잘 됐나 검토만 해주세요.”
“아뇨, 그건…….”
“알겠죠? 자, 얼른, 집에 가세요.”
그렇게 말하며, 스몰필드 씨는 나를 두 손으로 꾹꾹 떠밀어 사무실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저기, 스몰필드 씨? 제 얘기 좀…….”
“됐으니까 가서 쉬시라구요, 쫌!”
급기야 나는 스몰필드 씨에 의해 복도로 쫓겨났다. 그때 사무실 문틈으로 나를 째려보는 스몰필드 씨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안광이 비쳤다.
“내일 봬요, 팀장님.”
이후 문이 쿵 하고 닫히더니, 철컥―. 걸쇠를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문은 다신 열리지 않았다.
“…….”
나는 별수 없이 회사 건물을 나왔다.
구름이 좀 끼어 있었지만 날씨는 썩 나쁘지 않았다. 햇빛과 함께하는 퇴근길이 얼마 만이더라.
“후우.”
다만 행복감보다는 불안감이 앞섰다.
회사에 붙어 있어야 할 시간에 바깥 거리를 거닐고 있자니 어쩐지 죄악감까지 들었다.
우선은 관성적으로 지하철역에 향하던 도중.
툭―. 옆을 지나가던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혔다.
“아, 죄송…….”
나는 바로 고개를 돌려 사과를 하려 했다.
그리고 그즈음, 나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방금 전 부딪친 어깨.
사람치곤 너무 가볍다.
「웨스트필드 가든 플라자 3층 카페.」
어깨를 부딪친 자가 속삭이듯 말했다.
적어도 사람이 내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기다리고 있을게.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