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Master of Puppets (2)
인형이라는 확신이 든 순간.
그제야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냉랭한 찬기가 묻어나오는 인조 피부.
관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뻣뻣한 움직임.
이건 그저 외모만 유사할 뿐인 마네킹.
실물과 구별되지 않는 똑 닮은 생김새로 제작된, 할리우드 스타의 밀랍 인형 같은 것이다.
“허.”
공격이 가벼운 이유가 있었군.
모형을 아무리 잘 만들어 봤자 모형에 불과하니. 당연히 원본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일 수밖에.
“괜히 쫄았네.”
나는 오른손에 <폭렬파>를 장전했다.
강한 출력은 필요 없었다. 인형 대가리를 날려 버리는 데에, 필요 이상의 위력은 과분할 테니.
―콰아앙!
오른손을 뻗어 인형의 안면에 대고 <폭렬파>를 때려 박았다. 대가리가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충격으로 인해 목의 관절이 꺾여 돌아갔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강화>를 먹인 발차기로 인형의 옆구리를 후려갈겼다. 빠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인형의 허리가 시그마 기호처럼 잘록하게 파였다.
인형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 상태로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후우.”
나는 숨을 고른 뒤 쓰러진 인형을 살폈다.
부서진 내부에 기계 장치나 전자 장비는 보이지 않았다. 역시나, 이건 안드로이드 같은 게 아닌, 목재 따위를 깎아 만든 단순한 인간 모형이다.
“……어떻게 움직인 거지?”
인형이 저절로 살아 움직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여기가 게임 속 세상이기는 해도, 옛날 공포영화나 철 지난 도시전설 속 세상은 아니니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마법이다.
가령 오컬틱 마법을 사용하는 네크로맨서가 인형에 영혼을 깃들게 하여 움직이게 했다거나.
아니면 염동술 계열 마법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조작했다거나. 방법은 여러 가지다.
다만, 지금 여기에 있는 이 인형을 움직이게 한 기술의 정체가 마법일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마법이란 마력을 통해 일으키는 것. 마법이 발현된 순간 어떤 식으로든 마나의 자취가 남는다.
그러나 이 인형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움직이고 있었을 때도,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도, 어떤 때에도 마력이 발생한 흔적은 없었다.
즉, 범인은 마법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다른 의문이 피어난다.
마법 이외에, 아무런 장치도 없는 인형을 살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수단이 과연 있을까?
―있다. 딱 한 가지.
“에스퍼Esper인가.”
<사이버판타지>의 특수 전직 클래스.
과학적으로도 마법적으로도 그 원리를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능력을 가진 존재. ESP라 하는 ‘초상 능력’을 각성한 초능력자― 일명 ‘에스퍼’다.
에스퍼는 게임 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플레이어가 에스퍼로 전직하는 것은 캐릭터 생성 완료 후 순전히 운에 의해 결정됐는데, 이게 또 확률이 극악이라 치트를 쓰지 않고선 에스퍼 캐릭터를 평생 키워 볼 일도 드물었다.
에스퍼가 가진 초능력은 각양각색.
설정에 의하면 마법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참신한 능력들이 랜덤하게 주어진다고 하나, 이는 게임 시스템의 한계로 완벽하게 구현되지는 못했다.
어쨌거나.
만약 범인이 에스퍼라고 한다면, 살아 움직이는 인형의 비밀도 쉽게 풀린다.
초능력의 정체는 심플하게 염력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인형을 다루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습격해 온 이유는 아마도 레오노프를 죽인 나에 대한 복수일까.
“……?”
상대의 정체를 대충 알았을 즈음.
문득 저편의 가로등 너머에 무언가 조그마한 물체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린아이였다.
5살 남짓으로 보이는 잠옷 차림의 소녀가, 자기 몸만 한 크기의 곰 인형을 바닥에 질질 끌며 내 쪽을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저기, 꼬마야……?”
자정을 넘긴 시간, 홀로 거리를 걷고 있는 아이가 단지 몽유병에 걸린 미아는 아닐 터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저 작은 존재가 부디 나의 적은 아니기만을 빌면서.
소녀는 가로등 밑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어서 병아리 같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안녕, 오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죽은 듯이 조용히 그곳에 있었다.
“인형 놀이 좋아해?”
“…….”
“난 엄청 좋아해. 인형은 말을 못 하니까.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거든.”
소녀는 군데군데 흙이 묻어 더러워진 곰 인형을 꼭 끌어안았다.
“으응, 그래도, 역시 인형보다는 사람이랑 노는 게 더 재밌는 것 같아. 오빠도 그렇지?”
“…….”
“레오도 나랑 자주 놀아 줬어. 옛날에 우리 엄마아빠가 없어져서, 그때부터 레오가 엄마아빠 대신 나랑 놀아 준 거야. 같이 도둑잡기도 하고, 인형 놀이도 하고 그랬어. 우리 맨날 그러면서 놀았다?”
“…….”
“근데, 이제 레오도 없어졌다는 거 있지.”
바람이 내려앉았다. 건조한 냉기로 가득 찬 어두컴컴한 밤거리에, 망가진 밀랍 인형과 나, 소녀와 곰 인형만이 서로를 지그시 마주 보고 있었다.
“레오를 인형으로 만들어 봤는데, 하나도 안 닮게 나왔어. 시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
“그래도 덕분에 교훈을 얻었어.”
소녀는 넌지시 웃었다.
그 미소 틈으로 말했다.
“오빠 시체는 남겨 놓으려구.”
어디선가 기분 나쁜 기척들이 느껴졌다.
왼쪽, 오른쪽, 위쪽, 뒤쪽, 주위의 모든 방향에서, 끼릭끼릭 하는 섬뜩한 마찰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까드득―. 까드득―.
골목길 어귀에서, 건물 창문에서, 맨홀 안쪽에서, 지붕 위에서, 벽 너머에서, 하수구 구멍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서― 괴상하게 삐거덕거리는 관절인형들이 바퀴벌레 떼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그럼, 놀이를 시작할게.”
인형들은 줄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제각각 흐느적거리며 움직였다. 그 고장 난 듯한 움직임에 더해 제멋대로인 인체 비례와 강조된 얼굴의 이목구비가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함을 가중시켰다.
“모두가 좋아하는 술래잡기야.”
주변을 완전히 포위한 인형의 군세.
숫자는 대강 어림잡아 100체 이상.
“오빠랑 나랑 다 같이, 재밌게 놀자?”
‘놀자’란 단어에 인형들이 반응했다.
한순간 모든 인형이 돌연 움직임을 멈췄다. 곧바로 서늘하고 거북한 고요가 찾아왔다.
밤의 거리가 숨을 죽였다. 사뿐히 불어온 북풍이 반대편 거리의 입간판을 살짝 건드렸을 즈음.
―놈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부터 내 행동은 뇌가 아닌 척수가 결정지었다. 사방팔방에서 날아드는 인형의 공격에 일일이 대처 방법을 생각할 틈 따윈 없었기에.
본능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전신에 <강화>를 두르고, 놈들의 공격에 맞받아쳤다. 과정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막고, 때리고, 피하고, 걷어차고, <폭렬파>로 날리고, 다시 막고, 피하고, 뒤통수를 얻어맞고, 옆으로 넘어지고, 얼굴을 밟혔다.
“큭!”
어느새 완전히 둘러싸였다. 시야의 모든 곳에서 수십 개가 넘는 인형의 얼굴들이 흔들거렸다. 보고 있기만 해도 구토가 나올 것처럼 어지러웠다.
“제기랄, 좀 꺼져!”
<폭렬파>로 빠져나와 보려 했지만 한두 방 가지곤 어림도 없었다. 5마리를 날려 버려도 10마리가 도로 금세 달라붙었다.
젠장, 이대로는 인형들에 깔려 압사당한다.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마력을 모았다. 숨을 참고, 타이밍을 맞춰, 한꺼번에 폭발시켰다.
―콰아아아아아앙!!
가용 최대 출력의 <폭렬파>.
그 위력은 주변 10미터 이내의 시설물을 초토화시키고도 남았다. 폭파에 직격당한 인형들은 전부 산산조각이 되어 데굴데굴 떨어져 나갔다.
“……으크윽…….”
당연히 나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내가 쓰는 <폭렬파>는 마력 폭발 때 일어나는 충격파에 <강화>를 걸어 구현하는 어거지 스킬.
그 충격파의 반작용은 나에게도 똑같은 데미지를 준다. 나는 단지 데미지를 입는 부위에 <강화>를 써서 그 충격을 가능한 한 상쇄시킬 뿐이다.
이번에 쓴 <폭렬파>는 아무래도 출력이 너무 과했다. 빌어먹을 척수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자폭 버튼을 눌러 버린 거나 다름없었다.
“……쿨럭, 쿨럭……!”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피 묻은 기침을 뱉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
아직도 망할 인형들이 잔뜩 있었다.
오히려 전혀 줄어들지 않은 모양새다.
“죽고 싶다는 표정이네, 오빠.”
“…….”
“원하는 대로 해 줄게.”
……지친다. 당연히 지칠 수밖에 없다.
마나는 무한이지만 내 체력은 무한이 아니다.
좀 봐줘라, 제발. 이쪽은 매일같이 야근에 잔업에, 오늘은 개인 출장까지 다녀왔다고, 지금.
“스으읍.”
정말이지 오래간만에,
담배가 땡기기 시작했다.
“후우우.”
깊이 머금었던 숨을 한 차례 길게 내뱉었다.
거리에 사람은 없었다. 도로에 지나다니는 자동차도 한 대 없었다. 밤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꼬맹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런 끔찍한 마법 따위.
“네가 자초한 거다.”
다시 숨을 들이켠 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입을 열어, 그 이름을 불렀다.
“카인 나호르.”
***
불꽃은 태우고 난 자리에 재를 남긴다.
허나 거기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소녀는 침묵했다.
자신이 아끼던 인형들이 자색 군체에 휩쓸려 스러져 나갈 때에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제 인형은 없었다. 소녀 혼자뿐이었다.
유진은 자기 팔에서 꿈틀거리는 벌레들을 집어넣으려 애썼다. 벌레들은 주인의 살점을 갉아먹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1분여가 지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는지, 유진은 짤막하게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그는 소녀의 앞으로 다가섰다. 소녀는 곰 인형을 꼭 껴안은 채로 허공을 응시했다.
“…….”
유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애틋한 감정을 담은 한마디.
“미안하다.”
그건 자신이 저지른 일과,
저지를 일에 대한 사죄였다.
유진은 손을 뻗었다. 몇 번씩 망설이면서.
조심스럽게 갖다 댄 손가락이 소녀의 뺨에 툭 하고 닿았을 때, 그는 나지막이 느꼈다.
차갑다. 그리고 건조하다.
마치 죽어 있는 시체처럼.
“……?”
유진은 곧 알아챘다.
이것 역시 인형이라는 것을.
바로 이어진 순간에,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반짝― 하고.
섬광이 일었다.
“아.”
폭발이 일어난 것은 그 직후였다.
***
….
….
진짜로 죽을 뻔했다.
살아는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바로 눈앞에서 터진 폭발에 휘말린 내 몸은 두둥실 떠올라 도로 반대편까지 날아갔다.
인형에 폭탄을 심어 놨던 걸까. 제때 <강화>를 두르지 못했다면 좀 위험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눈이 떠지지 않았다. 그냥 피곤해서였다. 이대로 그냥 아스팔트 침대에서 잠이나 자 버리자며, 수면 부족 상태의 육체가 자꾸만 꼬드겼다.
그것참 괜찮은 생각인데. 어차피 이제 다른 인형은 더 없는 것 같고. 누구 또 나쁜 놈이 나타나도 난 다시 싸우긴커녕 일어날 기력도 없으니.
그래, 뭐.
잠이나 자자.
나는 의식을 무의식에 맡겼다.
귓속이 멍한 와중에, 경찰차인지 구급차인지 모를 사이렌 소리가 조금씩 내 쪽으로 다가왔다.
“현장 도착. 10-26 코드2. 부상자를 발견했다. 즉시 구급차 출동 및 신원 조회 바란다.”
“10-22 코드3. A급 전과자로 확인.”
“용의자 체포 후 이송하겠다. 오버.”
….
….
잠깐만.
누가 용의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