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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33화 (33/201)

33화. You Never Give Me Your Money (4)

상대는 다섯.

그들 각자가 한 손에 살벌한 무기를 쥔 채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당신들, 데스트루퍼로군.”

시에라시티의 스트리트갱은 조직 고유의 문신으로 서로를 구별한다.

목덜미에 그려진 해골 목줄 문신은 노스네스트 D 구역에 기거하는 갱단 ‘데스트루퍼’의 상징이다.

“밤새 여길 지키는 건가? 고생이 참 많네.”

“주둥이 털러 여기 온 거냐?”

“아니, 나도 따지고 보면 야근 중이거든.”

“그래서 어쩌라고?”

데스트루퍼는 중소 규모 갱스터 단체.

<사이버판타지> 초반부에 부담 없이 받을 수 있는 쪼렙용 토벌 퀘스트의 주 대상이다.

“그냥 동병상련이 좀 들어서.”

“지금 우리보고 썅련이라고 했냐?”

“아니, 으음……. 그래. 그렇다 치자.”

뭐, 쉽게 말하자면—

연습 상대로 딱 좋은 잔챙이들이란 거다.

“덤벼, 썅련들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놈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가장 먼저 못 박힌 배트가 내 옆머리를 노리고 들어왔다.

스윙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으니 몸을 숙인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다만 그때는 사시미칼이 문제였다. 칼침이 명치를 찌르고 들어오는 궤도에 친히 눈알을 헌납하는 꼴이 돼 버릴 터였다.

어디 그뿐이랴. 좌우로는 빠루와 쇠파이프가 나란히 내 양팔을 부러뜨리려 하고 있다.

피할 수 없다. 하나를 피해 봤자 남은 셋에 당한다. 상하좌우로 한꺼번에 날아드는 공격을 전부 피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피하지 않았다.

—터엉!

둔탁한 소리, 쨍하게 울리는 소리, 먹먹한 소리, 깡 부딪힌 소리…… 저마다 다른 소리들이 색다른 화음으로 합쳐져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이는 4개의 흉기로 연주된 타격음의 4중주였다.

“……뭐, 뭐야……?”

머리통에 야구 배트. 가슴팍에 사시미칼.

왼쪽 팔에 빠루. 오른쪽 팔에 쇠 파이프.

평범한 사람에게 가해졌더라면 치명상이 될 법한 공격들이었지만, 고출력의 <강도 강화>를 두른 내 피부에는 조금의 데미지도 입히지 못했다.

“……야, 이 새끼, 보기보다 쎈…….”

지금부터는 별로 할 게 없었다.

자신들의 공격이 통하지 않아 당황한 잔챙이들을 쓰러뜨리는 건, 어깨에 내려앉은 낙엽을 털어내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일이었다.

발길질 한 번으로 정면의 사시미칼과 야구 배트를 동시에 가격. 두 놈은 축구공처럼 걷어차여 저편의 벽까지 날아갔다. 이어서 나는 빠루의 안면에 펀치를 먹이고, 쇠 파이프의 턱주가리를 날렸다. 그렇게 놈들은 순식간에 창고 바닥을 나뒹굴게 되었다.

한 명당 한방 미만으로 마무리했으니,

나름대로 가성비 좋게 해결한 셈이다.

“이제 일 대 일이군.”

나는 협공에 참여하지 않은 한 명을 향했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너클 자식이 우두커니 나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쪽은 뭐 해, 안 덤비고?”

“…….”

놈은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노려보는 시선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

“렘브란트가 보낸 거냐?”

움찔, 나는 필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렘브란트라면…… 존 렘브란트 버미어?

나한테 ‘카인의 단도’를 가져가게 시켰던, 윌슨앤코 인터내셔널의 그 높으신 분을 말하는 건가?

“저번에도 용병 나부랭이가 왔었지. 그 새낀 사우스아치 앞바다에 던져 버렸었는데.”

“…….”

“니 새끼도 똑같이 해주마.”

타앗―! 놈이 바닥을 박찼다.

그리고 어느새 코앞에까지 와 있었다.

“……?!”

순간 제때 반응하지 못했다. 너클이 내 인중을 박살 내기 직전, 다행히 반사 신경이 나를 살렸다.

나는 급하게 몸을 뒤로 젖히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이어서 날아온 두 번째 펀치. 강화시킨 팔목으로 막아냈지만 얼얼한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큭!”

빠르다. 그리고 묵직하다.

아마추어의 펀치가 결코 아니다. 잡몹에 가까웠던 다른 네 명과는 격이 달랐다. 이 녀석은 본격적인 전투 훈련을 받은 무투가임이 분명했다.

호쾌하고 스피디한 주먹 공격이 특기인 것으로 보아, 세부 클래스는 필히 아이언피스트Iron Fist.

손에 낀 너클도 인터넷서 구할 수 있는 싸구려가 아닌 제대로 된 전용 장비일 것이다.

―퍽, 퍼벅, 퍼버벅!

상대의 프로필을 파악해 봤자 상황은 달라질 게 없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공격에 그저 가드를 올리고 있을 뿐인데도 장난 아니게 힘에 부쳤다.

어떻게든 주먹 사이의 빈틈을 노려 반격을 해보려 하여도, 놈이 나보다 빠르게 그 틈을 곧장 틀어막고, 오히려 그 타이밍에 역카운터가 들어와 버린다.

“하아, 후욱…….”

1분여의 공방, 혹은 일방적인 구타 끝에, 나는 간신히 거리를 벌려 숨을 돌릴 기회를 마련했다.

전신에 강화 마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숨을 헐떡이는 나와 달리, 놈은 땀조차 흘리지 않았다.

“새끼, 마법사치고는 튼튼하네.”

“…….”

“숨 쉴 수 있을 때 열심히 쉬어 둬라. 이제 좀 있으면 그럴 수도 없을 테니까.”

너무 만만히 본 것일까.

이전에 맥스페인 투기장에서 10연승을 찍으면서 근접 격투 실력에는 자신감이 붙어 있었거늘.

아니,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는 투기자 수준도 그렇고, 철완 같은 임플란트 바디 사용자들 상대할 때 <기능 강화 실패>를 써서 날로 먹은 것도 그렇고, 하여간에 여러모로 운이 좋은 편이었지.

서로를 죽이기 위한 싸움터.

이곳에는 고양감을 주는 구경꾼의 환성 따위도 없다. 그저 살의와 핏물만이 그득할 뿐.

이것이 바로 실전에서의 전투.

무대가 아닌 길바닥의 싸움인 것일까.

“……그래. 인정한다.”

상대는 강하다.

적어도 나보다는.

그러니까,

연습 따위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격투로는 도저히 못 이기겠어.”

……―콰아아아아앙!!

폭음이 울려 터졌다.

건물이 쪼개질 듯한 진동과 함께 공기를 반으로 찢어 터뜨리는 충격파가 일어났다.

<폭렬파>를 직격으로 맞은 상대는 피칭머신에서 발사된 야구공처럼 날아가 반대쪽 벽에 부딪혔다.

“커헉……!”

튕겨져 나간 놈의 몸뚱이는 바닥을 데구르르 구르다 쓰러졌고, 그 상태로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좀 격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힘 조절을 하긴 한 거였다. 설마 겨우 이 정도로 죽지는 않았을 거고.

“후우.”

나는 창고 중앙의 컴퓨터로 다가갔다.

책상 위 복잡하게 얽힌 케이블 사이에 신줏단지처럼 모셔진 서버가 있었다. 여기에 210만 달러어치의 크레딧이 담겨 있을 터였다.

어쨌든.

이걸로 1차 목적은 달성.

“좋아, 다음은…….”

서버를 챙기고, 안쪽 벽 앞에 쓰러져 있는 너클 놈에게 다가갔다. 놈의 옆구리를 발로 툭 쳤다.

“어이. 살아있나?”

두어 번 정도 더 발로 건드리자,

놈이 쿨럭거리며 의식을 되찾았다.

“뭣 좀 묻자.”

“…….”

“너네 하루에 얼마 받고 일하냐?”

“……뭐……?”

“200? 많으면 300쯤? 크레딧으로 받으면 환전 수수료 떼이니까 더 줄겠고. 하여튼 그리 만족스러운 벌이는 아닐 테지. 데스트루퍼 정도면 그래도 이 동네에선 명성 꽤나 있는 갱단인데, 목숨 걸고 고생해서 받는 게 꼴랑 그 돈이니 참 아이러니해. 그치?”

“……뭔 소릴 하는 거야, 대체……?”

“일종의 스카우트 제의지.”

나는 웃는 얼굴로 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직장 옮길 생각 없나?”

잠시 침묵.

긴 정적이 흘렀다.

“……뭐, 뭐……?”

“정시 퇴근, 4대 보험, 근무시간 외 근무에는 추가 수당, 각종 보너스에 퇴직금도 챙겨주고, 혹시 자식 있으면 육아비랑 교육비 지원도 해줄게.”

“……당신, 어디 소속인데……?”

“아직 없어. 하나 새로 만들려고.”

놈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때? 흥미 있어?”

“……헛소리 집어치워. 당신이 실력 있는 마법사란 건 알겠지만, 그것 말곤 좆도 없으시잖아. 어? 뭘 믿고 내가 당신이랑 짝짜꿍하겠냐 이 말이야.”

“글쎄, 내 이름은 들어본 적 있을 텐데.”

“……당신 이름이 뭔데?”

“카이트.”

순간.

놈이 움찔했다.

“몇몇은 나를 ‘암귀’라고 부르더군.”

최근 노스네스트에 퍼진 풍문이 있다.

블랙 대거즈의 간부 레오노프를 척살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자의 이름.

암귀 카이트.

그것은 8년 전 시에라시티 전역을 공포에 빠지게 했던 무시무시한 살인귀의 이름이기도 했다.

“……그 괴물이, 당신이라고……?”

“사칭이라 생각해도 상관없어. 중요한 건 내가 ‘괴물’이라 불릴 만큼의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지.”

“…….”

“그리고 당신은 방금 전에 내 능력을 아주 약간 체험한 직후인데, 감상이 어떤가 모르겠네.”

놈은 침묵했다.

마법 쪽에 조예가 없다 하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썼던 <폭렬파>는 단순 출력부터가 평범한 마법사들과는 아예 궤를 달리한다는 사실을.

“원한다면 지금 한 번 더…….”

“……?! 잠깐, 멈춰! 믿을게! 믿는다고!”

“이직 권유에 대한 대답은?”

“……미안하지만, 데스트루퍼를 나갈 순 없어. 이 해골 목걸이 문신이 목에 그려져 있는 한. 목이 잘려 목걸이가 벗겨지기 전엔 관둘 수 없다 이거야.”

놈은 자기 목을 가리키며 체념한 듯이 말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나는 놈의 목덜미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봐? 지금 뭘 하려는…….”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악마의 이름을 속삭였다.

“카인 나호르.”

그러자―

보라색 군체가 놈의 목을 감쌌다.

“우, 욱……!?”

나는 마나가 날뛰지 못하게 집중했다. 강력한 통제에 반하듯 벌레들은 사정없이 난동을 부렸다.

다행히 기 싸움에서 이긴 쪽은 나였다.

군체는 놈의 피부 속을 약간 좀먹은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노스네스트 3구역 펍 미드나이트. 혹시라도 맘 바뀌면 거기 주인장한테 얘기해 놔.”

마나를 차분히 거둬들였다.

해골 목걸이 문신은 사라져 있었다. 짐승에게 뜯긴 듯한 새빨간 자국만이 남아 있었을 뿐.

“그리고 팁 하나 주자면, 어디든 문 열려 있는 컴퓨터 가게 찾아서 서버 하나 공수해 오는 게 좋을 거야. 여기 있는 건 지금 내가 가져가니까.”

“…….”

“그럼, 뒤처리는 부탁하지.”

나는 창고를 빠져나왔다.

야근이 끝난 순간엔 항상 졸음이 밀려온다. 집 가서 자고 나면 다시 출근이다. 주말을 빼면 항상 똑같이 흘러간다. 가끔은 주말도 예외가 아니다.

뭐 그런 거지.

회사원이라는 게.

***

“형님, 괜찮으십니까?”

남자는 부하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가만 보니 다들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아윽. 갈비 부러진 것 같은데.”

“씨부랄, 난 어금니가 나갔어. 두 개나.”

“휴지 있는 사람? 피가 안 멈춘다, 야.”

쪽도 못 쓰고 발렸다.

것도 다섯 명이서 한 명한테.

“이제 어떡하죠, 형님?”

비자금을 보관 중인 서버도 통째로 빼앗겨 버렸으니, 두목이 아주 그냥 미치고 팔짝 뛸 테지. 본보기로 숙청까지 당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하.”

제기랄. 이놈의 좆같은 인생 같으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고생일까.

―직장 옮길 생각 없나?

문득 그놈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시 퇴근에, 보험에, 또 뭐라고 했더라.

“…….”

그는 목덜미에 남은 상흔을 어루만졌다.

난생 처음 느꼈던 괴상망측한 통증. 죽음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꿀렁거림이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식은땀이 떨어졌다. 그놈은 우리 모두를 죽일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간단하게.

하지만, 놈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자기 밑에서 일하지 않겠냐고 물었을 뿐.

“막내야.”

“예?”

“너 일당 얼마씩 받냐.”

“저요? 어, 120달러요.”

“달러로 받아?”

“아뇨. 크레딧으로. 근데,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보셔요?”

바보 같은 녀석들이다. 고작 120달러짜리 충성심에 의존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멍청이들이라니.

이 한심한 부하들을 누가 구제하리오. 그나마 그들이 믿고 따르는 건 대장인 자신밖에 없었다.

“다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결국,

남자는 마음을 먹었다.

“오늘 여기선,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미심쩍은 구원의 손길에,

빌어먹을 손을 뻗어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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