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Killing In The Name (3)
내게는 마법을 가르쳐주는 스승이 있다.
낮에는 우리 사무실의 커피머신 겸 마스코트 역할을 간신히 해낼 뿐인 쓸모없는 깡통 로봇이지만, 밤이 되면 호그와트 교수님 못지않은 강의 실력을 뽐내기 시작하는 미스터리한 고물 안드로이드― 토마스 기차를 닮은 타이퍼라는 녀석이다.
「마법은 과학입니다.」
야근을 마치면 강의가 시작된다.
그날의 컨셉은 이과충인 듯했다.
「이 말은 전에도 한 적이 있습니다만.」
“냉장고 때였나? 세세한 부분은 잘 기억 안 나지만, 이론과 원리 뭐 어쩌고 하는 얘기였지.”
「오늘은 원론적인 주제보다, 좀 더 심층적이고 실용적인 부분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나는 진지하게 팔짱을 낀 채로 타이퍼의 노이즈 낀 전자 목소리를 경청했다.
「마법의 계통은 다양하고 술사 또한 여러 갈래로 분류되지만, 일반적으로 ‘마법사’라 함은 주로 비전 마법을 사용하는 술사를 가리킵니다.」
“아케인 말이지.”
「비전 마법이란 비전 언어로 그린 술식을 통해 시전하는 마법을 뜻하며, 현대 마법에서는 가장 기초적인 계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빛이 있으라>, <엑셀러레이션>, <치유의 손길> 등,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범용 마법 대부분이 비전 마법에 속합니다. 주인님의 <강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타이퍼는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을 금이 간 안구로 지켜보면서 강의를 속행했다.
「마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흔히들 ‘기적’이나 ‘이적’ 같은 단어를 꺼내 들곤 하지만, 저는 ‘현실을 조작하는 기술’이란 표현을 애용합니다.」
“흠.”
「제가 마법을 과학이라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비전 마법을 뜯어보면 그것은 결국 벡터와 스칼라의 조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나를 매개로 하여 어떤 사물이나 현상의 물리량에 직간접적으로 변화를 준다는 것입니다.」
나는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뭔가 잘 안 와 닿는데.”
「예시를 들어보죠.」
타이퍼는 다시 말을 이었다.
「<파이어볼>을 예로 들겠습니다.」
“국민 마법이지.”
「<파이어볼>은 어떤 마법입니까?」
“어…… 뜨거운 불덩어리를 날리는 마법?”
「고열의 화염탄을 발사하는 것. 이를 실현케 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살펴봅시다.」
녀석은 계속 말했다.
「아시다시피, 물리계에 현현된 마나에는 미약한 열과 질량이 존재합니다. 이때 마나의 열과 질량을 충분히 높이면 불꽃의 포탄이 만들어지고, 이것에 적당한 척력을 가하면 발사가 이루어집니다.」
“되게 간단하네?”
「<파이어볼>은 파괴 마법 중에서도 습득 난이도가 매우 낮은 편에 속합니다. 그 이유는 조작의 난이도와 관련이 깊습니다.」
“……그렇구나. 단순히 마나 불꽃의 열과 질량을 높인 다음에 날려 버리기만 하면 되니까.”
마나 불꽃의 열과 질량을 높인다…… 그러고 보니 이미 비슷한 기술을 써먹었던 적이 있다.
내 심장을 노리고 온 마법사, 비너스와 싸웠을 때였지. 마력을 방출하면서 나온 열에너지에 <강화>를 써서, 제법 효과적인 공격을 시도했었다.
“나도 <파이어볼> 쓸 수 있겠는데, 그럼.”
마나 출력을 조정하여 열에너지를 강화하는 것에 초점을 두면, ‘불’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열기는 지금도 충분히 낼 수 있다.
불꽃의 질량도 <강화>로 높이고, 마력 방출의 반동을 이용해서 발사한다면…… 어쩌면 꽤나 그럴싸한 <파이어볼>을 구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파이어볼>의 예시로써 알 수 있듯, 비전 마법은 기본적으로 마나 그 자체를 조작하여 결과물을 만들어 내거나 현상을 일으키는 마법입니다.」
“…….”
「시전하는 과정은 대다수가 물리량을 높이는 방향. 즉―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요.」
그리고 그때쯤.
“아.”
머릿속이 번뜩였다.
“잠깐만, 설마……?”
「눈치를 채신 모양이군요.」
“<강화>만 가지고도, 웬만한 비전 마법은 비슷하게 따라 쓸 수 있다는 얘기야……?”
끽, 끼익―.
타이퍼의 고개가 삐걱거리며 끄덕여졌다.
「주인님께서는 자색 마력을 가지고 계시지요. 자색 마력의 특징은 ‘어디든 잘 깃든다’라는 것. 바꿔 말해 자색 마법을 사용하는 술사는 물리계의 모든 입자에 간섭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
「자색 마력과 <강화>의 조합은 무궁무진한 응용이 가능합니다. 이론적으로, 현대마법전서에 기록된 비전 마법의 60% 이상을 원본과 흡사한 수준으로 재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뭐야, 진짜로……?”
「물론 그것은 이론상의 이야기일 뿐. 현실적인 관점에서는 걸림돌이 많습니다. 자색 마력은 위력, 유지력, 변형성, 강도 등 거의 모든 성질이 다른 색채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특히나 변형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지금으로서는 가장 단순한 마나의 형태인 ‘테자스’― ‘불꽃의 형’을 다루는 일만이 가능할 것입니다.」
요악하자면 ‘꿈 깨셔’였지만, 왜인지 그 순간 나에게는 꿈을 꾸어도 좋다는 의미로 들렸다.
“타이퍼. <파이어볼> 말고, 지금 당장 내 수준에서 따라 할 수 있는 비전 마법이 또 있을까?”
「몇 가지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좋아, 쉬운 것 위주로 알려 줘.”
「알겠습니다. 그러면…….」
「<폭렬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마나를 방출하는 순간에는 반동이 생긴다.
보통은 손바닥 피부를 살짝 떨리게 할 정도의 미미한 떨림에 불과하지만, 그 진동에 <강화> 마법을 부여한다면 어떻게 될까?
반동은 척력. 밀어내는 힘의 세기를 최대한으로 강화시키면, 방출된 마력의 불꽃은 마치 폭발하듯이 퍼져나가 거센 충격파를 일으킬 것이다.
중요한 것은 출력의 조절과 <강화>의 타이밍.
무작정 쏘아 버리는 게 아닌, 손끝의 한 점에서 압축한 마나를 단번에 폭발시킨다는 느낌으로.
그래,
바로 이렇게.
―투콰아아아앙!!
소리와 충격이 귀와 몸을 때렸다. 수류탄에 준하는 폭발음과 진동이 내 오른손에서 터져 나왔다.
단 한 번의 마나 폭발로 가게는 반쯤 쑥대밭이 되었다. 카운터 쪽 천장 일부가 너덜너덜해졌고, 바닥에는 부서진 인테리어 잔해들이 나뒹굴었다.
내 옆에서 폭파의 직격탄을 맞은 테러리스트 놈은 반대쪽 벽까지 날아가 처박혀 있었다. 무너져 내린 벽에 난 구멍에서 찬바람이 휘잉 불어왔다.
“출입문이 하나 더 생겼네. 회전수 좀 늘겠어.”
“자, 자네, 지금, 블랙 대거즈를 건드린…….”
“술집 와서 주문도 안 하고 뻔뻔하게 뻐팅기던 진상 말이지. 다음부턴 손님 좀 가려 받도록 해.”
가짜 아케인. 마법인 척하는 마법.
어거지로 이룩한, 나만의 <폭렬파>.
한동안 열심히 수련했던 필살기다.
실전에서 어떨지는 미지수였는데, 생각보다도 강한 위력이 나와 줘서 내심 놀란 상태였다.
“거래는 결렬이야, 테러리스트 양반.”
나는 무너진 벽 앞에 고꾸라져 있는 스킨헤드 남자, 레오노프를 향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생각해 보면 난 항상 당신네들 사상이 맘에 들지 않았어. 아니, 그렇잖아. 마법 없는 세상이 무슨 재미야? 도대체 뭣 하러 그런 걸 꿈꾼대?”
이 말은 진심이었다. <사이버판타지>에서 ‘판타지’를 빼 버리면 아무래도 섭섭하지 않겠는가.
“하여튼 이제 서로 볼일은 없겠지.”
“…….”
“얼굴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길 바라.”
당연하지만 놈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리고 저쪽은 나를 살려 보낼 생각이 전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그럴 생각이 없으니까.
나는 부서진 술청 한켠에 놓인 보드카 병을 집어 들었다. 이어서 레오노프가 있는 쪽으로 술병을 냅다 던졌다. 놈이 날아오는 술병에 반응하여 손을 뻗어 그걸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놈이 반응하기보다도 먼저 손을 뻗고 있었던 것은 내 쪽이었다.
마나 불꽃을 방출.
불꽃의 열기를 <강화>.
―화아아아아악!!
자색의 화염이 거세게 뿜어져 나갔다.
무한히 공급되는 마력으로 강화된 마나의 열기는 이미 불장난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미친 출력 덕에 단순 화력만 보면 <파이어볼> 따위의 기초 마법과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
더욱이 보드카 병이 깨지면서 옮겨붙은 진짜 불꽃이 마력의 불꽃과 섞여, 붉은색 화염과 보라색 화염이 마치 설탕물에 달라붙은 두 부류의 개미 떼처럼 놈의 온몸으로 끈적끈적하게 엉겨 붙었다.
여기서 끝낼 생각은 없었다.
불 속에서 찜질 중인 놈에게 가까이 다가가, 비어 있는 왼손에다 <폭렬파>를 장전.
오른손의 출력을 자연스럽게 왼손으로 옮김과 동시에 놈의 얼굴 쪽에 대고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마무리는 심플하게.
바닥을 구르던 철제 의자를 들어 <강화>.
그걸로 있는 힘껏 놈의 정수리를 내려쳤다.
―뻐어억!!
테러리스트의 머리를 가격한 순간, 의자 다리의 두꺼운 부분이 찌그러지며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
그대로 잠시 고요해졌다.
나는 참고 있던 숨을 조금씩 몰아쉬었다. 긴장은 풀지 않았다. 풀고 싶어도 풀 수가 없었다.
“느껴졌다.”
놈은 살아있었다.
그게 당연한 것처럼.
“지금 분명히, 나를 죽일 생각이었군.”
놈이 무어라 중얼대기 시작했다. 걸걸히 떨리는 목소리는 처음 만났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실, 목소리 말고도 전부 다 그랬다.
“죽일 생각이었는데도 죽이지 못했다.”
“…….”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죽음은 그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것. 설령 구름 밑에 숨어 버린다 해도, 결국 그림자 속에 기어 들어가는 꼴이 될 뿐.”
놈은 멀쩡했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결론이 나왔다.”
지금까지의 내 공격들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단 거다.
“너는 암귀가 아니다.”
내가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쯤.
놈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무기였다. 검은 칼날의 마체테.
젠장,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시티헌터는 총만 쓰는 직업이 아니란 것을.
자책하는 틈에 반응이 조금 늦었다.
놈은 자기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마체테를 든 팔을 휘둘렀다. 피할 틈이라곤 없었다.
한순간 뒷목이 오싹해졌다.
옆구리가 갈라지며 내장이 흘러나오는 모습이 상상됐다. 이대로면 상상은 곧 현실이 될 것이다.
나는 다리가 구부러진 철제 의자를 양손으로 번쩍 들어 칼이 지나갈 궤적에 두었다.
몸뚱이를 뒤쪽으로 빼낼 동안, 이 말라깽이 의자가 제발 1초 만이라도 버텨 주길 기도했다.
콰드득―!!
마체테 칼날은 금속을 완전히 찢어 뭉갰다.
작전은 다행히 성공했다. 의자는 반으로 뜯어졌지만, 내 옆구리는 기적적으로 멀쩡했다.
허나 안도하기는 일렀다.
엉성하게 뒤뚱거리며 몸을 피하다가 확 미끄러진 탓에, 나는 지금 넘어진 채로 바닥에 있었다.
그리고 테러리스트는 내 앞에 있었다.
무시무시한 날붙이를 손에 쥔 채, 완전히 무방비 상태인 나를 꼿꼿이 내려다보며.
반항의 여지조차 없었다.
나는 목을 붙잡혔고, 몸은 공중에 떠올랐다.
“윽!?”
곧이어 말도 안 되는 악력이 호흡기를 조여 왔다.
“고통스럽나?”
“……컥…….”
“네 죽음은 이보다 더 끔찍한 고통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산이 맞지 않으니까.”
팔다리를 휘저으며 바동바동 떨어 봤지만, 별반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너를 죽이고 난 후, 시체를 잘게 조각내 주마. 그런 다음 이 도시에서 가장 붐비는 거리의 하늘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을 것이다. 푸줏간의 양고기처럼. 누군가는 그것을 보며 입맛을 다시겠지.”
“…….”
“상냥한 벌을 주는 것에 감사하도록.”
숨은 멈춘 지 오래였다.
더는 저항할 힘도 없었다.
“이제 죽어라.”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어렴풋이 죽음이 보였다.
죽음은 보라색 눈동자를 한 소녀였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검은 머리의 소녀.
그녀가 나에게 무언가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들리지 않았다. 바로 앞에 있는데도.
의식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죽음은 계속해서 속삭인다.
나는 그 목소리를 조금도 듣지 못한다.
나에게만은 닿지 않는다. 아마도 영원히.
그러다 뚝, 어느 순간에 의식이 끊겼다.
……그리고―
이상한 곳에서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