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Paranoid Android (3)
안드로이드는 마법양의 꿈을 꿀지도 모른다.
깡통 로봇의 1분짜리 강의로 한 단계 성장한 강화 마법을 쓸 수 있게 됐던 그날 밤.
왜인지 녀석은 내가 마법에 성공하자마자, 호그와트 교수님에서 다시 깡통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니니시마스까?」
뭘 물어도 그 말만 반복할 뿐.
결국 퇴근할 때까지 그 상태였다.
다음 날. 평소보다도 일찍 출근한 스몰필드 씨가 녀석을 깡통에서 페트병 정도로 진화시켰다.
기본 OS 업그레이드에 포함된 사무용 스크립트 플러그인 분석을 마치고 시뮬레이션 AI를 손봤다는데, 막상 하는 짓은 별로 달라지는 게 없었다.
「나니니시마스까?」
“됐다! 성공이에요!”
“……이게 성공이라고요?”
“음성 인식 반응 속도가 0.5초 빨라졌잖아요. 엔진 성능을 고려하면 원래 이게 정상이거든요!”
“대답 빨라진 거 말고 다른 건 뭐 없습니까?”
“무선 네트워크에 대한 자동 탐색 및 병렬 교류 애드온을 설치했어요.”
“그러면 무슨 기능이 추가된 거죠?”
“와이파이요.”
신입 사원이 으레 그렇듯, 타이퍼 또한 우리 회사에 있어 즉시전력감이 되지는 못했다.
다만 커피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끓였다. 레시피를 입력한 건 스몰필드 씨인 모양이었는데, 인스턴트 전용 커피머신치고는 전기세가 많이 들 것 같기는 했다.
참고로 책상은 내 옆으로 배정됐다.
원래는 스몰필드 씨 옆에 두려 했지만, 그러면 일에 집중이 안 될 것 같다며 그녀 쪽에서 고사했다.
옆자리의 로봇은 하루 종일 앞만 보고 있다.
내가 “타이퍼?”라고 슬며시 한번 불러 보면,
「나니니시마스까?」
그 부담스러운 토마스 얼굴을 바짝 들이댄다.
물론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다. 어젯밤의 그 일은 도대체 뭐였던 거지 싶다.
하여튼.
그날 밤도 나는 야근이었다.
사무실에서 홀로 카페인에 쩔어 분투, 밤 9시쯤에 일을 거의 마쳤다. 어제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탕비품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시고 있던 그때.
문득 냉장고의 기능 강화를 시도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복사기도 성공했는데.
냉장고라고 못 할 게 뭐가 있나.
근거가 상당히 부실한 자신감만 가지고, 냉장고에 강화 마법을 써 보려던 바로 그 찰나에―
「무얼 하시려는 겁니까.」
타이퍼가 와서 말을 걸었다.
또박또박 아주 정겨운 표준어로.
“……너 인마, 낮엔 말 걸어도 고장 난 깡통 로봇인 척하더니. 이제야 멀쩡해진 거냐?”
「무얼 하시려는 겁니까, 주인님.」
“냉장고에 강화 마법 한번 써 보려고.”
「혹시 냉장고의 ‘기능’을 강화하려고 하신 겁니까?」
“근데, 왜?”
「그 행동은 추천 드리지 않습니다.」
“어째서?”
「열역학 제2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너 지금 열역학이라고 했니?”
「강화 마법으로 냉장고의 기능만을 강화한다면 그것은 지속적인 외부 상호 작용이 아니기 때문에 냉장고의 고립계는 유지됩니다. 기능이 강화된 냉장고는 평상시와 동일한 에너지 변환 상태에서 평소보다 더 낮은 온도를 만들려 할 것이고, 이는 엔트로피 역전 시도로 인한 마나 패러독스 현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아니, 언제는 구조적으로 접근하지 말래더니, 이제 와서 물리학을 들먹이면 어쩌라는 거야?”
「마법은 과학입니다. 따라서 이론과 원리에 의존합니다. 그 사실을 부정한 적은 없습니다.」
“이과충 납셨네, 아주.”
「주인님께서 보다 시원한 음료가 마시고 싶으시다면, 몹시 비효율적이나 냉장고 내부의 냉각을 담당하는 ‘액화열’을 강화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어제와 똑같다.
해가 지기 전까지만 해도 어눌한 일본어 문장 하나밖에 못 말하는 고물 로봇이었다가, 어느새 마법에 해박한 전문가로 변해 내 앞에 이렇게 으스대고 서 있다.
“너 진짜 뭐냐? 예전 주인이 마법사였어?”
「메모리카드가 포맷되어 1일 전 구동 이전의 기록은 알 수 없습니다.」
“메모리가 없으면 마법에 대해선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건데?”
「…….」
“타이퍼?”
「나니니시마스까?」
“아, 제발.”
그날이 기점이었다.
나는 일부러 매일 밤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을 때면 마법 연습을 시도했다.
그럴 때마다 타이퍼가 나타나 내게 쿠사리를 먹이고 짤막한 강의를 해주었다.
마법을 가르쳐 줄 스승의 존재가 절실했던 내게, 그 깡통 로봇은 참 고마운 1타 강사였다.
「자색 마력의 특징은 유지력이 매우 약하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강화 상태를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마력 공급이 필요합니다.」
「강화 마법은 얼핏 만능으로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빨리 움직이거나 높이 뛰어야 할 상황에 놓였을 때, 강화 마법으로 다리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은 가속 마법 <엑셀러레이션>이나 도약 마법 <스카이하이> 등에 비해 효율이 훨씬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력을 깃들게 하고자 할 때 사물과의 접촉은 필수적인 사항이 아닙니다. 강화 마법의 경우, 효율을 유지하는 사거리는 일반적으로 5미터 내외라 알려져 있습니다. 주인님의 경우는 자색 마력의 특성상 이보다는 더 짧지만, 마력 보유량이 월등해 최대 사거리 자체는 더 길 것이라 예상됩니다.」
그렇게 금요일이 되었다.
운 좋게도 밀린 업무들이 예상보다 일찍 끝이 나, 비교적 편안한 주말을 맞이할 수 있게 된 날.
인도네시아에서 걸려 올 중요한 업무 전화를 기다리느라, 나는 그날도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흐음.”
오랜만에 짬이 난 김에 <마제스틱&도메스틱>에서 사 온 흑마법 관련 서적들을 한 권씩 찬찬히 읽어 보는 중이었다.
―악마와의 계약은 술사의 심장을 요한다.
―악마에게 받는 힘의 크기는 술사의 마법사 적합도에 비례한다.
―흑마법사가 사망할 경우, 그 심장과 육체는 악마의 소유가 된다.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헌데 그중에, 눈이 쏠리는 부분이 있었다.
─단언컨대, 흑마법은 강한 마법이 아니다.
이것은 기이한 아이러니다. 흑마법을 추구하는 자들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강함에 억지로라도 도달하기 위해, 악마에게 (적어도 본인에게는) 귀중한 심장을 바쳐 흑마법사가 되는 길을 택한다.
그리고 대개는 실망한다. 왜냐?
악마란 존재가 기껏 손에 쥐여준 것이, 턱없이 형편없는 마법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은 당연한 이치다.
악마가 줄 수 있는 힘은 그릇의 크기, 즉 술사의 마법사로서의 강함에 비례한다.
허나 강한 마법사는 흑마법을 굳이 익힐 필요가 없다. 나약한 마법사들만이 흑마법을 찾는다.
그렇기에, 역사에 이름을 남긴 흑마법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로 강력한 흑마법사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읽는 동안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 대목이었다.
─그렇다면,
강한 흑마법사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글쎄올시다’ 혹은 ‘아마도 아닌 것 같소’라고 하겠다.
우선 흑마법사의 강함은 선천적인 강함에 큰 분량으로 의존한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허나 후천적으로 강해질 방법이 존재한다. 악마에게서 보너스 파워를 얻어낼 방법이 말이다.
첫째, 다른 사람의 심장을 바치는 것.
다만 이것은 모두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다. 남의 갈비뼈를 헤집어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뽑아다가 해골을 쌓은 제단에 뚝뚝 떨어지는 핏물과 함께 공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그로테스크한 제물을 바쳐 봤자 악마는 푸아그라를 선물 받은 채식주의자와 비슷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악마에게 타인의 심장을 바치는 것은 물리적인 방식이 아니다.
누군가의 심장을 바치려면, 당사자가 술사를 위하여 자신의 심장을 바치겠다 스스로 결심해야 한다. 바로 그 마음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친밀도를 쌓아야 한단 얘긴가……?”
<사이버판타지>의 관계도 시스템이 생각났다.
게임 속 NPC들은 저마다 플레이어를 향한 호감도 수치가 있는데, 그 수치는 플레이어가 보여주는 행동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관계도 수치가 MAX를 찍으면, 확실히 그 NPC는 플레이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희생할 정도로 아주 긴밀한 사이가 된다.
“게임에선 어렵지 않긴 한데…….”
과연 현실에서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만한 사람을 얼마나 만들 수 있을까.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닌 이상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말이다.
“어디, 두 번째 방법은…….”
책의 페이지를 넘기려던 그때.
「무얼 읽고 계시는 겁니까.」
계속 조용하던 타이퍼가 느닷없이 나타났다.
“깜짝이야. 너 충전 중 아니었냐?”
「1분 6초 전 충전을 완료했습니다. 배터리 수명을 위해 80%까지만 충전됩니다.」
“그래?”
「무슨 책을 읽고 계셨습니까, 주인님.」
“그냥, 마법 공부하는 책.”
「흑마법에 관한 책이군요.」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살짝 움찔했다.
「주인님께서 흑마법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자색 마력을 쓰는 마법사는 일반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근데 뭐. 문제 있냐?”
「주인님. 흑마법은 위험한 마법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선입견이 아닙니다.」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읽고 계신 책에 혹시 <부름>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였습니까?」
타이퍼가 그렇게 물었다.
페이지는 아직 넘기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
「<부름>은 써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그것만 기억해 주십시오.」
“그게 뭐길래 그러는데?”
타이퍼는 잠시 뜸을 들였다.
설명하기를 망설이는 듯했다.
「<부름>이란 계약의 역전이자 역류입니다.」
“제대로 설명해 봐.”
「흑마법은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성사됩니다. 악마는 심장을 요구하고, 그 대가로 술사의 소원을 들어줍니다.」
“…….”
「<부름>은 이와 반대입니다. 계약의 의무를 지는 주체가 악마에서 술사로 변합니다.」
타이퍼는 덧붙였다.
「술사가 악마에게 힘을 요구하고, 그 대가로 악마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이에 나는 물음표를 띄웠다.
“그게 뭐가 문제인 건데?”
「악마의 소원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을 것임은 확실합니다.」
“무리한 걸 요구할지도 모른다 이거지?”
「흑마법사들의 최후는 평균적으로 그리 좋지 않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부름>을 사용한 흑마법사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딱히 그 말에 겁이 나지는 않았다.
다만 겁이 난 척쯤은 해야 할 성싶었다.
“알았어. 조심할게.”
「약속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거참 알았다니까 그러네.”
「신용성이 떨어지는 발언입니다.」
“날 얼마나 오래 봤다고 신용 타령이야?”
「주인님께서는 항상 그릇된 선택을 고르려 하십니다.」
“뭐?”
「월요일 밤에 복사기 강화를 시도했을 때처럼 말입니다. 표본은 적습니다만, 어떤 때에는 마치 일부러 그러시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그 말에 살짝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다.
「흑마법사가 되신 것도 그렇습니다.」
“넌 그때 상황을 모르잖아.”
「평범한 사람이라면 설령 목숨이 위태로울지라도 악마에게 자기 심장을 바친다는 판단은 하지 않습니다.」
로봇에게 일침을 당한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나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비디오 게임 해 봤어?”
타이퍼는 침묵했다. 고개를 갸웃하듯, 위잉―. 하고 고철 머리통에서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마리오나 젤다 같은 거 보면 말이야. 악당에게 붙잡힌 공주를 구하겠답시고, 주인공이 목숨을 건 모험을 떠나고 그러거든.”
「…….」
“나도 약간 그런 느낌이야, 요즘.”
「구해야 할 여자가 생기신 겁니까?」
“그런 건 아니고.”
「구해야 할 남자가 생기신 겁니까?」
“아니야.”
「구해야 할 안드로진, 젠더플루이드, 논바이너리, 혹은 그 외 제3의 성으로 분류되는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생기신 겁니까?」
“게임 하는 기분이라고, 그냥.”
게임하는 기분.
그 말이 딱 맞았다.
2주나 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나는 이 세계가 현실 같지가 않다. ‘유진 연’이라는 캐릭터를 조종하는 플레이어가 되어 있는 느낌이다.
생존이 목적인 것은 지금도 변함없지만,
왠지 그 과정 자체를 남 일처럼 즐기고 있었다.
게임 속에 빠졌다는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실감이 날 리가 없지 않은가.
“가끔 긴가민가해.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
“사실 원래 내 삶은 이렇지 않았거든. 그래서 혹시라도 죽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뭐 그런 부질없는 생각까지 하게 되더라고.”
물론 방금 내가 말한 것처럼, 죽으면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행복한 가정은 부질없는 생각이다.
타이퍼의 말대로, 나는 항상 그릇된 선택을 고르려 한다. 무의식적으로도, 의식적으로도.
“그래도 앞으론 조심하는 게 맞겠지. 나라고 별천지에서 개죽음당하고 싶진 않으니까.”
「…….」
“아무튼 충고해 줘서 고맙다. 네 덕분에 많이 배웠어.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곧 타이퍼는 말했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나니니시마스까?」
“뒤진다, 진짜.”